第二十章 질투(嫉妬) (5)
산 하나가 완전히 사라지는 대폭발이 있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산이 워낙 깊은 곳에 있었던 탓이다.
아무도 발길을 들여놓지 않는 깊은 골짜기에 사람이 왜 들어갔나? 또 산 하나를 통째로 무너뜨릴 만큼 엄청난 폭발은 왜 일어난 것인가? 모든 게 놀랍고 의아하다.
‘호발귀다!’
주치균은 폭발 소식을 듣자마자 호발귀가 연관된 사건이라도 단정했다.
산 하나를 통째로 무너트리려면 엄청난 화약이 필요하다.
재원(財源)이 넉넉하지 않은 문파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러니 혈천방이다.
혈천방이 폭발을 일으켰다.
현재, 혈천방이 산을 무너트릴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라면 호발귀밖에 없다.
‘또 무슨 짓을 한 거냐!’
“이 사건, 누가 알고 있습니까?”
주치균이 물었다.
“단주님께는 일차로 보고를 드렸고, 두 번째로 총주님께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럼 이 소식, 제 선에서 끝내주세요.”
“네?”
비보전주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절대 보안이 필요합니다. 이 소식은 천살단에서 단주님과 비보전주님, 그리고 나. 딱 이 세 사람만 알아야 합니다.”
주치균이 강하게 말했다.
옛날의 주치균이라면 비보전주에게 이런 말을 하지 못한다. 강압은커녕 부탁도 하지 못한다.
검벽주에게는 단주에게 접근하는 자를 차단하는 역할만 주어진다.
그러나 살단 총주는 다르다. 살단 총주는 단주와 천원주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명령권을 행사할 수 있다.
주치균은 지금 살단 총주의 신분이다.
그의 명령은 누구에게든 통용된다.
“책사에게도 비밀인가요?”
비보전주가 물었다.
“……”
주치균은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비보전주는 슬쩍 웃었다.
주치균은 지금 조치에는 호발귀에 대한 견제가 숨겨져 있다.
호발귀 때문에 주치균과 등여산 사이가 껄끄러워졌다는 건 천살단 사람이면 모두가 안다.
원래 두 사람은 무척 사이가 좋았다.
두 사람이 지금 당장 혼인 발표를 한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만큼 사이가 좋았다.
호발귀가 두 사람 사이를 파고들었다.
등여산이 참회동에서 호발귀를 꺼내 강하로 간 것부터가 잘못이다. 그때부터 주치균이 냉담해지기 시작했다.
너무 티가 난다. 지금도 티를 내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티를 내는데 어떻게 모를 수 있겠나.
호발귀가 연관된 사건이 터지고, 주치균이 살단 총주의 입장에서 명령을 발동했다.
이게 어떻게 공적인 명령인가, 사심이 숨겨진 명령이지.
하지만 비보전주는 웃는 낯으로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이 사건, 철저히 묻어두죠.”
주치균은 살단 총주가 되자, 즉시 조직부터 정비했다.
전임 살단 총주의 체제를 무너트렸다. 그리고 자신의 체제로 바꿔버렸다.
- 내가 싫은 놈은 다 나가도 좋다. 낙향하고 싶다면 보내준다. 다른 곳으로 전직하고 싶다면 보내주겠다. 단, 내 밑에 있겠다면 철저히 복종해라.
전임 총주는 살단 잡랑과 형제처럼 지냈다. 모두가 동생이고, 총주가 가장 큰 맏형이었다.
주치균은 철저한 상하 관계로 변형시켰다.
총주 밑에 부주(副主) 두 명을 두었다. 검벽과 같은 체계다.
각 부주 밑에는 당주 다섯 명씩을 배치했다. 쌍부(雙副) 십당(十堂)이다.
각 당주는 능력껏 잡랑을 흡수하도록 했다.
타 당주의 잡랑을 뺏어와도 무방하다. 무명인을 육성해서 잡랑으로 키워보겠다고 해도 허락한다. 수하로 몇백 명을 부려도 다 허락한다. 단, 명령이 떨어지면 절대적으로 이행해야 한다.
각 당주에게 자신을 능력을 보이라고 주문한 것이다.
능력이 없거나 인심을 잃은 당주는 잡랑을 다 빼앗기게 되어 있다. 어쩌면 홀로 남을지도 모른다. 혹은 두세 명밖에 없는 당주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때는 부주가 문책을 당한다.
철저히 능력 위주로 잡랑을 개선했다.
주치균은 부주 손철목(孫鐵木)에게 명령했다.
“지금 즉시 은사곡으로 가라. 가서 절곡을 기웃거리는 놈들을 잡아. 반항하면 죽여도 좋다. 사람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을 기웃거리는 놈들이라면 정상이 아니지. 모조리 잡아라.”
“네!”
손철목이 떠나갔다.
주치균은 부주에게 세부적인 사항을 지시하지 않았다.
손철목은 총주의 명령을 받고 나름대로 판단해야 한다. 은사곡에 가면 어쩌면 혈천방과 싸울지도 모른다. 그러면 수하가 얼마나 필요할까? 수하를 얼마나 데려가는 게 좋을까?
은사곡은 혈천방 귀문이다.
그러니 혈천방 무인이 반드시 나타난다. 그들도 폭발을 조사해야 하지 않겠나.
그들과 싸워서 이기려면……
손철목은 생각을 깊게 해야 한다.
주치균은 공당(工堂)을 찾았다.
“은사곡에서 시신을 수습해야겠습니다.”
“시신 수습? 그건 우리 공당이 할 일이 아닌 것 같네만.”
“은사곡이 폭발했습니다. 산 전체가 무너졌어요. 시신을 수습하려면 땅을 파헤쳐야 합니다. 폭발로 지반이 약해져서 전문적인 채굴이 필요합니다.”
“시신이 그렇게 중요한가?”
“중요합니다.”
“음! 무너진 산을 채굴하자면 우리 공당이 전부 움직여야 해. 일단 천원주님께 허락을 받아야겠네.”
“그러시지요. 제가 사흘 후에 도착할 겁니다. 그때까지 매몰된 사람을 전부 수습해 주세요.”
“어렵네.”
“하셔야 합니다.”
“뭐라고!”
“살단 총주로 말하는 겁니다. 천살단 밖에서 제 명을 어기면 즉참도 가능합니다.”
“협박인가?”
“총주가 바뀌었습니다. 상황이 바뀐 거죠. 모든 게 바뀌었으면 바뀐 것에 맞춰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습니다. 사흘 후, 가겠습니다. 매몰된 사람들을 모두 수습해 놓으세요.”
주치균이 싸늘하게 말하고 일어섰다.
“어떻게 살단 총주만 되면 다들 사람이 변하는지. 따뜻한 심성은 사라지고 죄다 난폭해져. 호호! 살단 총주라는 직함에 저주라도 걸린 것 같아. 총주 말을 따르세요. 지금 같아서는 정말 검을 뽑고도 남을 것 같네요.”
공당주의 보고를 받은 천원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 * *
등여산에게 밀지 한 통이 전해졌다.
비보전에서 전해온 소식인데, 시녀를 통한 것도 모자라서 밤참 반합 속에 밀지를 넣어 보냈다.
‘또 그 버릇!’
등여산은 밀지를 보자마자 주치균이 소식을 통제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밀지가 이런 식으로 전해졌다면 자신을 감시하는 눈길도 있다는 소리다. 검벽 무인들이라면 자신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은밀히 감시할 수 있다.
그녀는 밀지를 책상 밑으로 내려서 살며시 펼쳤다.
주치균은 모든 소식을 통제하라고 했지만. 책사는 중원 돌아가는 사정을 환히 꿰고 있어야 한다.
더욱이 이번에 등여산은 귀검을 죽이기까지 했다.
천살단에서 등여산은 신망이 높다. 그녀의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도 없다.
밀지에는 은사곡에서 일어난 대폭발이 기재되어 있었다.
“음!”
등여산은 신음을 흘렸다.
‘호발귀!’
그녀는 밀지를 읽자마자 당장 호발귀부터 떠올렸다.
은사곡은 혈천방 귀문이 존재할 것이라고 짐작되던 곳이다.
원래 귀문은 은신처를 일이 년 사용하고는 버린다. 사람이 살았던 모든 흔적을 지우고 떠난다. 하지만 은사곡 귀문은 무려 십 년 이상, 한곳에 머물러 있다.
그 덕분에 천살단에 노출되기는 했는데, 눈치를 챘으면서도 함부로 달려들지 못했다.
바로 이것, 교두가 마음만 먹으면 산 전체를 날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은사곡 전체가 화약 위에 세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위험해서다.
또 은사곡 귀문 무인은 무척 강하다.
은밀히 잠입시킨 간자가 모두 적발되었다. 그들은 발가벗겨진 채 온몸이 난자되어 버려졌다.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다.
결국, 은사곡을 조사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무인이 쳐들어가야 하는데, 그러면 지금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주치균은 이런 사실을 모른다.
그녀는 책사 신분으로 비보전 정보를 전해 받았지만, 주치균은 검벽주였기 때문에 아무런 정보도 듣지 못했다. 물론 지금은 모두 알겠지만.
호발귀는 세력이 아니다. 단지 몇 명으로 뛰어들었다. 아니, 호발귀 혼자서 들어갔다.
도천패, 당홍, 홀리, 해자수.
호발귀가 그들을 데리고 들어갈 리 없다.
일단 싸움은 호발귀가 이겼다.
저들이 본거지를 폭파했다. 같이 죽자고 덤빌 수밖에 없을 정도로 상황이 최악이었다.
이제 주치균은 은사곡에 가서 죽은 자들을 분석할 것이다.
매몰된 사람을 수습하려는 이유가 그것이다. 본격적으로 혈마 무공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주치균은 호발귀에게 당한 적이 있어서 섣불리 달려들지 않는다. 세밀히 연구하고 분석한 끝에 공격할 것이다.
이것이 전임 충주와 다른 점이다.
그래서 주치균이 달려들 때는 호발귀도 위험할 것이다. 필승의 자신이 생겨서 달려들었을 테니까.
‘아직은 안심해도 돼.’
문제는 호발귀의 다음 행동이다.
그가 어디로 갈까? 고의든 타의든 호발귀는 귀문 두 개를 날려버렸다. 하나는 자신이 날렸지만, 그때 호발귀도 멸문 장소에 버티고 있었다.
이번에는 호발귀가 직접 날렸다.
혈천방에는 귀문이 모두 일곱 개 있다. 그중 두 개가 날아갔다.
혈천방이 움직일 것이다.
‘뒤를 봐줘야 하는데.’
등여산은 생각만 했을 뿐, 실제로는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검벽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면 상당히 조심해야 한다. 검벽의 눈은 곧 주치균의 눈이다.
‘버텨줘야 해. 잘 버틸 거지?’
호발귀를 믿는다.
이상한 일이지만 호발귀를 떠올리면 얼굴에 웃음이 일어난다.
다정한 사내도 아니고, 무뚝뚝하기만 하고, 퉁명스럽고, 싸움은 신물 나게 하고……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데, 그런데도 그를 보면 웃음이 난다.
그가 다른 사람보다 강인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강인한 사람을 따지면 천살단에도 넘친다. 정말로 강한 사내는 질리도록 봤다.
그런데 왜 유독 호발귀만 생각나는 것일까.
“풋! 내가 미쳤나 봐.”
등여산은 호발귀를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 * *
은사곡은 처참했다. 골짜기라고 할 수가 없었다.
텅 빈 황무지다. 거인이 밀가루 반죽을 주먹으로 내리쳤을 때처럼 산 전체가 움푹 팼다.
공당주는 매몰된 폐허 속에서 시신 이십여 구를 찾아냈다.
육신이 갈가리 찢겨서 날아간 시신도 있고, 땅속 깊이 매몰된 시신도 있어서 그나마 이십여 구라도 온전하게 건져낸 건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이게 최선이네.”
주치균은 공당주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의 신경은 온통 시신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이게 뭐지?’
주치균은 시신을 보자 무척 혼란스러웠다.
시신은 칼을 가슴에 박고 있다. 그런데 칼이 바로 혈천방도가 쓰는 칼이다. 칼날에 혈천방 문양이 새겨져 있다. 자신들이 사용하는 칼에 가슴을 찔렸다.
사인이 모두 같다.
누구는 검에 베였고, 누구는 창에 찔렸다. 하지만 모두 혈천방 병기다.
호발귀가 혈천방 병기로 혈천방 무인을 죽였다.
그런데 무인들을 쓰러뜨린 수법이 매우 이상하다.
너무 평범해서 어떤 초식인지 파악되지 않는다. 하다못해 비슷한 무공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혈천방 무인은 매우 평범한 살인자에게 당했다.
길을 가다가 낯선 자가 느닷없이 불쑥 칼을 꺼내서 쑤셨다.
그런 칼에 찔렸다. 어떤 초식도 없고, 내력조차도 찾을 수 없는 칼에 죽었다.
또 하나 죽은 자들의 얼굴에 공포가 없다.
죽음의 순간이 무척 빨랐다는 거다.
촌살(寸殺)이다.
병기에 찔리자마자 숨이 떨어졌다.
무척 빠르고, 정확하고. 강하다.
“으음!”
주치균은 신음했다.
지금 호발귀와 싸우면 반드시 이 칼에 맞는다. 하면 반야호신공이 막아낼 수 있을까?
호발귀와 싸워봤다. 호발귀는 귀화미요공을 사용할 것이다. 구뢰마권으로 뼈를 부술 것도 안다.
이 모든 부분에 대해서 대비책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혈천방 무인들의 몸에서는 어떤 혈마 무공도 보이지 않는다. 모두 평범한 칼에 죽었다.
주치균은 머릿속이 텅 비어서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시신을 보면 호발귀를 상대할 방법이 선명히 그려져야 하는데 더 깊은 미궁에 빠졌다.
‘반드시 잡는다. 반드시.’
주치균은 주먹을 꽉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