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二十章 질투(嫉妬) (4)
호발귀는 진기를 활짝 열었다.
동굴에 존재하는 모든 기운을 읽어보려고 노력했다. 생기는 물론 쇠가 내뿜는 철기(鐵氣), 죽은 기운 사기(死氣), 사악한 기운 사기(邪氣)까지 전부 받아들였다.
기관을 봉쇄하는 방법은 없다. 그러니 기관이 작동되기 전에 피해야 한다.
구르릉! 구릉!
울림이 다시 터졌다.
어느 한순간, 호발귀는 움직이지 못했다.
‘함정이다!’
눈앞에 함정이 펼쳐져 있다.
노루 발목을 낚아채는 올무처럼 발밑에 죽음의 덫이 깔려있다.
앞으로 나가려면 함정을 밟아야 한다. 함정에 빠지기 싫으면 물러서면 된다.
‘음!’
호발귀는 침음했다.
발밑에 함정이 있는지 확신하지는 못한다. 이화귀령이 푸석푸석한 동굴 벽과는 전혀 다른 기운을 감지했다. 무슨 기운인지는 모르지만, 왠지 다르다.
그래서 멈춰 섰을 뿐인데…… 함정이 없다면 괜히 고민부터 하는 셈이다.
‘가보자!’
호발귀는 이화귀령을 믿었다.
혈마 무공은 모든 무공이 절대적인 믿음에서 출발한다. 친절하게 세세한 부분을 설명해 주지 않고 퍼뜩퍼뜩 영감으로 표현해 주기 때문에 무조건 믿어야 한다.
진기를 믿는다면 앞쪽에 분명히 함정이 있다.
최소한 동굴과는 재질이 전혀 다른 무엇인가가 설치되어 있다.
그 점을 참고로 하고 이동한다.
스으읏!
호발귀는 발을 내디뎠다. 순간,
꾸르르릉!
동굴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거칠게 요동쳤다.
진기가 옳았다. 앞에는 함정이 있었다. 그것도 진기가 느낀 그대로 발밑에 있었다.
호발귀는 흔들리는 동굴 속에서 마음을 침착하게 가라앉히고 사태를 지켜봤다.
하늘이 무너져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
굉장히 어려운 말 같지만 한 가지만 유의하면 무척 쉽다.
진기에 집중하라. 진기를 보라. 외부에 신경을 빼앗기지 말고, 오직 진기만 주시하라.
부동심(不動心)은 저절로 일어난다.
꾸르르르릉! 꽈앙!
“웃!”
호발귀는 깜짝 놀라서 신형을 퉁겨냈다.
동굴 천정이 무너진다. 안에서부터 균열이 일어났는가 보다. 동굴이 갈라지는 모습을 봤을 때는 이미 늦었다. 돌무더기가 우수수 떨어진다.
쒜에에엑!
호발귀는 은허신법을 펼쳐서 동굴 안으로 쏘아갔다.
지금 같은 경우, 거의 대다수 무인은 뒤로 빠진다. 동굴에서 빠져나가려고 한다.
진기는 입구에서 생기를 읽지 못했다. 오히려 동굴 안쪽에서 숨구멍을 찾았다.
진기를 절대적으로 믿으라고 했지!
쒜에에엑! 쒜에엑!
호발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앞으로 치달렸다.
돌무더기가 떨어져서 어깨를 때렸다. 등을 때리고, 다리를 때리고, 전신을 두들긴다.
“후우욱!”
호발귀는 가득 피어난 흙먼지 때문에 숨을 쉬지 못했다.
무너지는 돌무더기를 피해서 간신히 안전한 곳에 안착한 후에야 막아놨던 숨통을 텄다.
후우욱!
텁텁한 동굴 공기가 폐부 가득히 밀려 들어왔다. 그런데,
‘훅!’
호발귀는 눈살을 심하게 찌푸렸다.
동굴 공기 속에서 살 타는 냄새, 비릿한 냄새가 섞여서 딸려왔다.
독이다.
독성이 매우 심한 독인 듯, 흡입하자마자 머리가 띵! 하고 울린다. 누가 뒷머리를 세게 친 느낌이다.
하지만 호발귀는 독섬칠공을 지녔다.
어떤 독이든 해독시킬 수 있는 체질이다. 독을 빨아들이기도 하고, 뿜어내기도 한다.
츠으으읏!
호발귀는 폐로 흡입된 독을 말끔히 빨아들였다.
스읏! 스슷! 스스슷!
동굴 벽을 타고 사람들이 이동했다.
그들은 두꺼운 석벽 너머에서 이동하고 있지만, 이령귀화의 기감에 정확히 포착되었다.
스읏!
호발귀는 단창을 꺼냈다.
단창에 이령귀화를 담는다. 그리고 마음껏 날아가게 도와준다. 단창을 던진다.
쒜에에엑! 퍼억!
단창이 석벽을 뚫고 들어갔다.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누군지 모르지만, 석벽 너머에서 이동하던 자는 즉사했다.
이것도 느낌이다. 즉사했다는 느낌이 든다.
움직임이 뚝 멎었다.
저들이 위험을 감지하고 모든 행동을 중지했다.
호발귀는 일어서서 걸었다. 동굴 통로가 앞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으니 출구도 있을 것이다.
“호. 발. 귀.”
사내는 보통 사내들보다 조금 작았다. 그래서 눈 아래로 낮게 보였다. 하지만 몸은 매우 다부졌다. 상의를 벗고 있는데, 배며 팔이며 말 근육 탄탄하게 박혔다.
그는 호발귀를 한 번에 알아봤다.
“사람을 찾으러 왔는데.”
“원래 이렇게 위험한 곳으로 사람을 찾으러 다니나?”
“위험한 곳에 사는 인간이라서.”
“월도, 무지?”
호발귀는 사내를 쳐다봤다.
이 사내, 자신이 찾는 자를 안다. 월도와 무지를 정확하게 짚어냈다.
“귀검이 그자들을 주기로 했는데 안 줬어. 그러니 다른 사람이 책임져야지.”
“하하! 하하하!”
사내가 웃었다.
사내 나이는 서른 중반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퉁퉁 튀는 탄력이 보통 아니다.
무공을 펼치면 굉장히 빠르고 강할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그건 귀검께서 말한 게 아니라 광저가 말한 거지. 그러니 광저에게 따져야지. 안 그래? 광저는 현산만에서 죽었다던데, 그 자리에 있지 않았나?”
“소식이 빠르군.”
호발귀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았다.
혈천방은 현산만에서 일어났던 일을 빠르게 전달했다. 호발귀에 대한 모든 사항을 전했다.
눈앞에 있는 사내는 적어도 현산만 사건을 들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호발귀가 월도와 무지라는 귀무살을 찾는다는 것도 높은 위치에 있어서 안 것이다.
여기가 혈천방 귀문이라는 말, 맞았다.
“솔직히 말하지. 난 여기가 어딘지 모르고 찾아왔어. 혈천방과 관련된 곳은 무조건 부술 생각이어서. 여기가 어디고, 네가 누군지 소개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후후후! 여긴 어떻게…… 아! 음문?”
우둑!
사내가 일어서면서 손가락 관절을 꺾었다.
“여기는 귀문 오소(五所). 나는 오두(五頭). 다섯 번째 교두라는 말이고, 광저는 칠두. 누군지도 모르고 죽였을 같아서 말해주는 거야. 죽은 사람이 누군지는 알아야지.”
“월도와 무지는 어디 있는데?”
“후후후! 웃기는 이야기군.”
“……”
“넌 지금 애벌레가 탈피해서 성충이 되어 날아갔는데,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고 묻는 거야. 내가 비록 이놈들을 키워서 귀무살을 만들어낸다만, 죽음의 대장정 사망대장정을 치른 후에는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해. 날 이기고 살아남는다면 참고로 해. 헛수고하지 말란 말이야.”
우둑! 우두둑!
사내가 두 다리를 쭉쭉 뻗어 올렸다.
“병기는 치우고 맨몸으로 하지. 귀화미요공 같은 거는 집어치우고 주먹과 발만 쓰자고.”
호발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귀무살 중에는 의외로 무인이 많다.
귀검도 무인이었고, 이 자도 무인이다. 무공을 탐구하다가 죽으라고 하면 기쁘게 죽을 자다.
오두는 기쁜 마음으로 몸을 푼다.
이것이 목숨을 건 결전인데, 좋은 상대와 만나서 실컷 싸운다는 흥분으로 들떠있다.
스읏!
호발귀는 하나 남은 단창을 꺼내서 옆에 놓았다.
우둑!
호발귀도 손가락 관절을 풀었다.
권각으로 대결하자면 아무래도 혈마 무공보다는 팔십일수가 나을 것이다. 어느 한 가지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팔십일수 모두를 버무려서 사용해야 한다.
“내 청을 받아준 대가로 하나 알려주지. 귀문을 벗어나서 귀무살이 되면 그때부터는 오직 영주만이 그들 생살여탈권을 쥐게 돼. 귀무령. 귀검 소관이야. 그들이 어디 있는지는 귀검만 안다는 거지. 아! 귀검도 죽었나? 그럼 본방으로 찾아가 봐.”
“본방이 어디 있나?”
“그것까지 알려달라는 건 무리지. 그건 알아서 하고.”
스윽!
오두가 두 다리를 넓게 벌리고 자세를 낮췄다.
쒜에엑! 쎅! 쒜엑!
권각이 날아들었다.
‘아! 이건 정당한 싸움이 아냐.’
호발귀는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오두가 말한 사내 대 사내의 싸움은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오두의 모든 동작이 읽힌다.
발을 쳐내기 전에 다리를 쓴다고 느껴진다. 주먹을 날아오기도 전인데 몸은 벌써 피하고 있다.
이화귀령이 생기를 읽고 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역천금령공의 금령이 생기를 읽는다.
상대방의 상대 흐름을 읽어내면, 그다음은 무척 쉽다.
타악! 탁탁탁!
호발귀는 얼굴로 날아든 연환각(連環脚)을 양손으로 막았다.
‘명치!’
호발귀는 허점을 봤다. 하지만 주먹을 날릴 수 없었다. 금령이 미리 읽고 말해준 것…… 엄연히 반칙이다. 호발귀는 오두처럼 인간적인 싸움을 할 수 없다.
탁탁탁탁! 타악!
호발귀는 오두의 손발을 연속해서 다섯 번이나 막았다. 아주 쉽게, 그리고는 훌쩍 물러섰다.
그가 오두를 쳐다봤다.
오두도 싸움 중에 이상한 느낌을 받았는지 인상을 찡그린 채 호발귀를 쳐다봤다.
“뭐냐? 사술이냐?”
오두가 말했다.
“무인이라면 사술이라도 깨야지. 어때, 깰 수 있겠나?”
“사술이 아니라는 말이군.”
“오두, 오두 소원대로 공정한 싸움을 하고 싶었는데…… 미안하게 됐네. 내 몸이 그런 걸 받아들이지 않아. 나도 이런 사실을 싸움을 시작한 후에야 알았다.”
“그런가? 후후!”
오두가 뒤로 물러나 의자에 앉았다.
“내 공격이 너무 쉽게 막혀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어떤 무공…… 아니, 몸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심공이겠군. 내공인가? 뭔지 알고 싶은데?”
“역천금령공.”
“역시!”
오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다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영주와 싸우지 않았나? 그때 몇 검 맞았다고 들었는데. 무공이 그 정도라면 내 공격도 이 정도로 쉽게 막지는 못할 텐데, 역천금령공이 내 무공에 특화되었나?”
“그 후, 성취가 있었다.”
“그 말은 귀검도 지금은 상대가 안 된다는 말이겠군.”
“……”
호발귀는 대답하지 않았다.
전에 만났던 귀검이라면…… 오두 말이 맞는다. 지금 다시 싸우면 상대가 안 된다.
공격 의도가 일어나는 즉시 동작을 파악해 버린다.
역천금령공이 생기를 관장하는 한, 이런 현상은 영원히 지속할 것이다.
“비밀 하나. 여긴 폭파된다. 네가 붕로(崩路)를 통과할 때, 나도 상대가 안 될 것을 알았어. 그래서 폭파를 명령했다. 곧 동굴 전체가 무너진다. 잘 살아가라.”
“음!”
호발귀는 풀어놓았던 단창을 집어서 허리춤에 꽂았다.
“비밀 둘. 본방에 혈마가 있다.”
“뭣!”
호발귀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본방은 혈마록 없이 혈마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다만 통제력에 문제가 있어서 풀어놓지 않고 있는데, 상황이 위급하면 공멸(共滅)을 감수하고 풀어놓겠지.”
“으음!”
호발귀는 정말 깊은 신음을 했다.
오두가 말을 이었다.
“비밀 셋. 천살단도 혈마를 연구하고 있다. 어떤 식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혈마를 연구한 흔적이 있어. 누구든 믿지 마라.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세상이야.”
“고마운 말을 해주는군.‘
“나를 무인으로 대한 대가다. 네가 만약 역천금령공을 숨기고 나를 쳤다면 이런 말은 듣지 못했겠지. 그렇다고 해도 동굴 폭발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가라.”
오두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는 동굴과 함께 생을 마감할 생각이다.
몇 수에 불과했지만, 역천금령공과 싸운 후에 무공에 대한 의욕을 싹 잃어버린 것 같다.
“혈마 무공을 이어받은 사람으로…… 혈마가 나타나면 제거해야겠지. 고맙소. 말해줘서.”
오두는 대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