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二十章 질투(嫉妬) (2)
홀리는 귀문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한다. 정작 길을 안내하는 사람은 해자수다.
홀리는 척박한 땅을 벗어난 적이 없다.
높은 산에서 흰 표범과 싸우고, 부족들과 싸움을 하며 지냈다. 간혹 음문을 침범하는 자가 있으면 죽이기도 했지만, 그런 경우는 지극히 드물었다.
홀리는 중원 지리를 잘 알지 못한다.
지리를 모르는 것은 다른 세 사람도 마찬가지다.
호발귀는 강하 땅을 벗어난 적이 없다. 황수 이남에서 배수만 배우며 살았다.
도천패도 장소만 다를 뿐, 한 곳에 틀어박혀 움직이지 않았다.
당홍도 지리를 모른다.
그녀는 혈천방에서 태어났다. 평생 혈천방 안에서만 살았다. 그러다가 천유봉으로 옮겨진 후에는 계속 빽빽한 대나무 숲만 보면서 지냈다.
중원 지리를 알 틈이 없었다.
일행들 전부 어쩌면 이렇게 까막눈일까 싶을 정도로 길을 알지 못한다.
반면에 해자수는 보통 사람 이상으로 길을 잘 안다.
그는 평생 중원을 떠돌아다니면서 살았다. 그러니 어디로 가면 무엇이 있다는 정도는 기본적으로 안다.
해자수가 투덜거렸다.
“이 친구만 아니면. 그 살 좀 뺄 수 없나? 이거 어떻게 좀 안 될까? 사내가 임신한 것도 아니고.”
해자수가 도천패의 배를 툭툭 건드리면서 말했다.
그가 괜히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도천패는 키가 육 척을 훨씬 넘고, 덩치가 곰처럼 단단해서 어떤 사람 눈에도 단번에 띌 수밖에 없다.
그런 몸에 보통 사람은 들지도 못할 것 같은 대도를 등에 메고 있으니.
도천패가 길을 걸으면 사람들이 스르륵 길을 열어준다.
도천패가 주루에 들어가서 자리에 앉으면 옆에 앉았던 사람들이 슬그머니 일어나서 다른 자리로 옮긴다. 정 자리가 없으면 그냥 술값을 셈하고 나가버린다.
도천패 주위는 늘 텅 비었다.
혹여 시비라도 붙을까 봐 사전에 피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디를 가든 눈에 띌 수밖에 없다. 눈에 띈다는 것은 혈천방이나 천살단 귀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어디를 가든 감시 대상이 된다는 거다.
그래서 해자수는 어쩔 수 없이 사람 눈에 띄지 않는 물길과 산길로 이동했다.
큰 배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면 배를 탔고 그렇지 않은 것이면. 험한 산길을 걸었다. 그리고 산을 탈 때마다 어김없이 도천패를 투박했다.
“도대체 뭘 먹었길래 이렇게 큰 거야? 나중에 자식을 낳아도 이렇게 크겠는데. 아! 소저! 소저는 쬐깐한데 이만한 덩치를 낳을 수 있을까?”
당홍에게 한 말이다.
“그러려고 이 사람 만난 건데?”
당홍이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내…… 전에 한 번 들은 적 있는데…… 소저, 대체 씨를 바꿔서 뭘 어쩌려고? 그냥 포기하지? 그 씨라는 게 바꾸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바뀌는 게 아니거든.”
“신경 끄셔.”
“덩치가 크면 독술도 강해지나?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곰같이 미련한 힘과 독술? 영 안 맞아.”
“이 덩치에, 무공도 잘하고, 금강불괴에 독까지 잘 써. 이런 사람을 뭐라고 하게?”
“그런 사람을 부르는 말도 있나?”
“있지. 두 개나. 하나는 ‘내 자식’. 다른 하나는 천하제일인.”
“하! 꿈도 야무지시네. 그럼 소저 몸에 곰 얼굴. 또 여자네? 힘도 잘 못써. 곰을 닮아서 독술도 못 해요. 이런 사람은 뭐라고 부르는지 아쇼?”
“죽고 싶지?”
“여기서 날 죽이면 어쩌려고? 길도 모르면서?”
해자수가 히죽히죽 웃었다.
해자수가 길로 협박하지 모두 꼼짝하지 못했다.
해자수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당홍이 안다는 장소를 찾아가려면 여러 사람에게 물어야 하는데, 그러자면 자연히 혈천방 눈에 띄게 된다.
호발귀가 혈천방을 찾아간다는 소문이 금방 퍼진다.
그러면 혈천방은 만반의 준비를 한다. 어쩌면 찾아가는 장소를 폐쇄할지도 모른다.
은밀히 그들을 찾자면 일단은 도천패를 떼어놔야 한다. 그러면 물어 물어서라도 찾아갈 수 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마찬가지다.
해자수는 도천패를 떼어놓기 위해서 안달이다. 도천패만 없으면 산길로 이동하지 않고 편하게 관도를 걸을 수 있으니까. 누가 사서 고생하려고 하겠나.
해자수의 마지막 말은 늘 도천패를 향했다.
“거참 별 도움도 안 되면서 왜 꼭 따라붙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어디 한 군데 눌러있으면 안 되나? 일 끝나면 찾아간다고 해도 악착같이 따라붙네.”
“어휴! 저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게.”
“그럼 한주먹 거리지, 두 주먹 거리냐? 여기 있는 사람 중에 네 주먹 맞고 뻗지 않을 놈 누가 있어? 모두 한주먹 거리지. 그게 자랑이냐?”
“하아!”
도천패가 기가 막혀서 한숨을 쏟아냈다.
“킥킥! 억울해도 오늘만 참아라.”
“오늘…… 만?”
“다 왔어. 오늘 밤이면 도착해. 킥킥!”
해자수가 신발을 딱딱 털며 말했다.
그날 밤, 해자수는 사라졌다.
“여기 산만 넘으면 나오니까, 산 넘을 때 조심하시고.”
“잘 다녀와.”
“내 걱정은 마시라니까. 이래 봬도 이 두 다리 가지고 중원 구석구석 안 가본 데 없는 사람이오.”
“알아.”
“내가 후딱 갔다 올 테니까. 그 쓸데없이 그냥 뭐 이상한 말 하지 말고. 말할 때마다 저놈 눈에 쌍심지 돋는 걸 보시면서도 자꾸 이상한 말을 하시니까. 그냥 조용히, 조용히.”
“알았어.”
해자수가 홀리에게 신신당부하고 길을 떠났다.
해자수는 어디로 간다고 말하지 않았다. 호발귀나 도천패에게 인사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냥 떠나갔다.
원래가 그런 사람이다.
세 사람은 홀리와 해자수가 하는 나누는 말을 들었지만, 일부로 못 들은 척했다.
해자수는 음문으로 갔다.
혈천방이 음문을 공격했다는데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다.
홀리는 겉으로는 무심한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무척 걱정하고 있다.
겉모습만큼 사납지 않다. 난폭한 말투만큼 매정하지 않다.
원래 해자수는 음문으로 갈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홀리가 길을 오는 내내 계속 재촉했다.
- 갔다 오면 좋을 텐데.
- 다녀오는 데 얼마나 걸릴까? 발이 빠르니까 보름이면 될 것 같은데, 그걸 안 갔다 오나?
- 촌장님은 잡혀갈 분이 아닌데.
길을 오면서 톡톡 던진 말인데, 해자수에게는 은근히 협박하는 게 된다.
빨리 안 다녀와? 죽을래!
해자수는 귀문을 찾아주자, 즉시 음문으로 길을 떠난 것이다.
“사람들은 나쁘지 않은 거 같아.”
당홍이 말했다.
“나쁘진 않은데, 말투가 영 싹수없어서 적응이 안 되네. 말을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주먹을 쥐고 있다니까.”
도천패가 머리 아픈 듯 좌우로 흔들면서 말했다
해자수가 말한 그대로다.
산을 넘으니 뱀처럼 구불구불한 긴 골짜기가 나왔다.
골짜기는 하얀빛을 띤다. 하얀 뱀이 기어가는 것 같다. 그래서 은사곡(銀蛇谷)이라고 부른다.
은사곡은 산맥 깊은 곳에 숨겨져 있다.
사람 발길이 닿은 적 없는 원시림이 깊게 펼쳐져 있다.
호발귀가 살았던 독림과 마찬가지로 대낮인데도 햇볕이 들지 않을 만큼 나무가 울창하다.
혈천방은 어떻게 이런 장소만 용케 찾는 것일까?
은사곡은 달리 절사곡(絶死谷)이라고도 한다. 들어가면 절대로 살아나오지 못한다는 뜻이다.
골짜기에 사람 잡아먹는 괴물이 산다는 말과 천년 묶은 여우가 사람을 홀린다는 말이 가장 널리 퍼져있다.
어쨌든 은사곡에 들어선 사람은 모두 죽는다.
“찾았지?”
홀리가 옆에 와서 속삭였다.
“고맙다.”
호발귀는 진심으로 고마웠다.
홀리에 대해서 가졌던 나쁜 느낌도 길을 오는 동안 많이 누그러졌다.
살아온 문화가 그녀를 거칠게 만들었다. 천성이 나쁜 여자는 아니다. 정도 많다. 칼을 쓸 때는 서슴없이 사용하지만, 사람 죽이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 정도면 된 것 아닌가.
“저기 혈천방.”
홀리가 손을 들어서 숲을 가리켰다.
호발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은사곡 입구에 혈천방 무인들이 숨어있다.
무인들은 환산만에서처럼 참호를 파고 들어가 있다. 참호 위는 풀로 위장했다.
위장술이 지극히 은밀해서 눈을 부릅떠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소요귀명을 펼치면 너무 쉽게 찾아진다. 진기를 운용하는 순간, 세상이 둘로 나뉜다. 나는 음지에 있고, 나 이외의 것은 밝음 속으로 드러난다.
참호에 숨어있는 혈천방 무인들이 모두 보인다.
“모두 몇 명이야?”
도천패가 부지런히 무인들을 찾아내며 물었다.
“대략 이십 명.”
“이십 명? 난 겨우 열 정도 찾았는데. 자식들, 숨는 건 되게 잘하네.”
도천패가 미간을 찌푸렸다.
“힘들게 찾을 필요 없어. 내가 할까?”
당홍이 나섰다.
그녀가 손을 쓰면 스무 명쯤은 간단히 죽일 수 있다. 죽이지 않고 혼절만 시킬 수도 있다. 바람 부는 방향만 잘 선택해서 독가루를 뿌리면 된다.
“아니. 저 사람들 손에 은사가 묶여 있어요. 방울과 연결된 것 같은데…… 독은 안 됩니다.”
호발귀가 고개를 저었다.
혈천방 무인들은 손목에 은사를 묶어놨다. 신변의 이상이 생기면 즉시 은사가 당겨지고, 방울이 소리를 낸다. 쓰러트리는 것은 곤란하다. 침입이 발각된다.
“그럼 어떻게? 전면전?”
“아니. 뚫고 들어가야지. 은밀히. 여기서 기다려. 오늘 밤 내가 들어갔다 올게.”
“혼자?”
“여기가 혈천방 본방도 아니고, 우리가 찾는 귀무살이 여기 있을 것 같지는 않고. 어디 있는지 물어보고 오면 되는 거니까 나 혼자서도 충분해.”
호발귀가 말했다.
호발귀는 몸이 반응하는 대로 움직였다.
걸으라고 하면 걸었다. 기어가라고 하면 기었다. 나무를 타라고 하면 나무 위로 올라갔고, 멈추라고 하면 제자리에서 다음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멈췄다.
모든 움직임을 느낌에 맡겼다.
소요귀명은 절대적인 믿음 위에서 피어난다.
조금이라도 소요귀명을 의심하면, 의심이 곧 현실이 된다. 소요귀명이 말을 하지 않는다.
바깥 동정만 살핀다. 나는 저절로 어둠 속에 숨게 되니 주시할 필요가 없다.
일부러 은신술을 펼친다고 애를 쓸 필요가 없다.
소요귀명의 안내를 받아서 움직인다. 가장 눈에 안 띄는 행동을 한다.
정지!
호발귀는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지 말라는 말은 어둠이 밝음 곁에 있다는 뜻이다. 자칫 밝은 빛이 쏟아들 수 있다. 다시 움직여도 좋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다.
눈과 귀는 믿지 않는다. 소요귀명은 이미 눈과 귀로 얻어 들인 정보를 분석했다. 거기에 주변에서 일어나는 기운까지 감지한 상태다. 눈과 귀보다 훨씬 정확하다.
소요귀명은 몸속 생기를 일으켜서 타인의 생기를 감지한다. 이것보다 정확한 판단은 없다.
‘가자!’
소요귀명이 움직여도 좋다는 명령을 내렸다.
“참 아슬아슬하네.”
도천패가 중얼거렸다.
호발귀가 움직이는 모습을 멀리서 보면 매우 위태로워 보였다. 금방이라도 혈천방 무인과 부딪칠 것 같았다. 어떤 때는 바로 곁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희한한 것은 그토록 가깝게 지나가는 데도 혈천방 무인이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호발귀는 일절 기척을 일으키지 않는다.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느낌도 주지 않는다. 그러니 이상하다는 느낌조차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소저도 저 무공을 펼칠 수 있나?”
도천패가 홀리에게 물었다.
“아니. 저건 소요귀명검 같은데, 우리에게는 전수되지 않았어. 하지만 옛날이야기는 알아. 혈마가 저걸 펼치면 귀신도 찾을 수 없다고 했어.”
“아! 그놈의 혈마, 혈마. 이젠 그 혈마라는 인간, 한번 만나보고 싶다니까.”
도천패와 홀리가 티격태격하는 사이, 호발귀는 이십여 장을 파고들었다.
이제는 호발귀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가 완전히 경계망을 뚫고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