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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96화 (96/500)

第二十章 질투(嫉妬) (1)

등여산은 천살단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개선 영웅이다. 살단 총주를 죽인 귀검을 죽였다. 귀문도 없앴다.

살단 총주도 하지 못한 쾌거다.

그녀는 귀검을 죽였다고 보고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천살단에서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음자가 소식을 보냈고, 당장 소문이 퍼져서 귀 있는 사람은 모두가 알게 되었다.

“기어이 죽였네?”

천원주가 등여산의 두 손을 꼭 잡으며 반겼다.

천원주는 등여산을 딸처럼 여긴다.

언제나 자상하고 포근하게 대하며, 충고도 해주고 아픈 이야기에 귀도 기울여준다.

이번에는 정말 기쁜 듯하다.

“운이 좋았어요.”

“늘 운이라지. 잘한 거는 잘한 거야.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천원주가 손을 꽉 쥐었다.

이번 작전은 기관진학(機關陣學)이 깊이 있게 활용된 두뇌의 승리다.

두뇌가 무공을 이긴 작전이다.

등여산은 혈천방이 만든 참호를 정비했다. 흙에 횟가루를 섞고, 화약을 매설했다. 폭발이 일어날 경우, 흙이 매몰되는 위치도 충분히 고려했다.

토목술을 모른다면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음자는 토목술을 모른다. 광산에서 일하는 광부나, 집 짓는 목수가 아닌 한 토목을 사용하는 사람은 드물다.

등여산은 진학(陣學)도 충분히 활용했다.

귀검은 점점 함정을 향해 다가섰는데, 음자를 죽이면서도 자신이 함정 속으로 끌려들어 간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귀검처럼 예민한 사람이 눈치채지 못했다.

십방진이 귀검의 눈을 가렸다.

등여산은 음자들이 투망술에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실은 투망술이 아니라 갈고리 같은 것을 던지는 데 능했는데, 그 정도 솜씨면 투망술도 정확하게 펼칠 수 있다고 봤다.

판단은 옳았다.

음자는 하루가 안 되는 매우 짧은 시간에 투망술을 베웠다.

등여산은 투망 여러 개를 이어서 대 그물망을 만들었다. 그물망에 쇠침을 박아서 살상력을 더욱 높였다.

이 모든 것이 임기응변이 아니다. 처음부터 치밀하고 완벽하게 준비된 것이었다.

이번 계획에는 투망, 화약, 부시독, 불을 붙일 때 사용한 기름 등 많은 물자가 사용되었다.

현장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물품들이다.

그렇다. 등여산은 천살단을 떠날 때부터 이런 물품들을 준비해서 가지고 갔다.

지도를 보고 계획을 짜는 순간부터 이럴 작정이었던 거다.

재각주를 환산만에 보낼 때부터 그녀의 머릿속에는 최종적으로 환산만을 불태울 생각까지 들어있었다.

운이 좋아서 귀검을 잡은 게 아니다. 치밀한 계획을 순서대로 착착 진행한 결과다.

“단주님이 기다리셔. 가봐.”

“네.”

“호호호! 이번에는 상을 단단히 주실 것 같아. 기대하면서 가봐. 호호호!”

천원주가 밝게 웃었다.

“실수가 있었어요.”

등여산은 성공한 부분보다 실패한 부분부터 말했다.

단주는 말해보라는 듯 손짓을 했다.

“귀검이 살아 있을지도 몰라요.”

“흐음!”

알았다는 건지, 실망했다는 건지…… 단주가 의미 모를 신음을 흘렸다.

“만에 하나, 살았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해요.”

“시신을 보지 못해서?”

“아뇨. 독을 뿌린 후에 바로 불을 질러야 하는데, 시간을…… 놓쳤어요. 필살 계획에 미세한 틈이 생긴 것이라서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네요.”

“어떻게 된 일인지 이야기는 들었어.”

단주가 일어섰다.

단주는 몸이 중후하다. 단단하면서도 크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무게 있게 걷는다.

단주가 걸어서 창가로 갔다.

“그 정도면 나라도 살지 못해. 귀검은 죽었다고 생각해도 좋아. 너무 완벽한 것도 좋지 않아. 그거 강박증이야. 그건 책사가 잘했다고 보는데…… 난 다른 게 마음에 걸려.”

단주가 등여산을 쳐다봤다.

등여산은 단주가 무슨 말을 하는지 짐작했다. 단주는 호발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를 사로잡아서 압송하지 않고 왜 놓아주었냐고 질책하는 것이다.

“호발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세히 살펴보았어요. 혈마가 될 위험에서 벗어난 것 같았습니다.”

“책사는 혈마 무공을 아나?”

“아뇨. 모릅니다.”

“모르는 무공인데, 어찌 앞을 볼 수 있누?”

“……”

“혈마 무공을 수련했으면 언젠가는 혈마가 된다고 보는 게 정상이지 않을까 하는데.”

“호발귀는 혈마가 되느니 죽는 걸 택할 거예요.”

“그자를 믿는구나.”

“네. 거짓말할 사람이 아네요.”

“쯧! 사람이 거짓말하는 게 아니지.”

“……”

“원래 사람은 누구나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주민에서 거짓말을 시켜.”

“주변에서요?”

“돈이 거짓말을 시키고, 사랑이 거짓말을 시키고, 질투가 거짓말을 시키고. 사람은 사실대로 말하고 싶은데, 주변 상황이 거짓말을 하게끔 만들지.”

“네.”

등여산은 차분히 대답했다.

단주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을 할 때는 이미 심중을 굳힌 상태다.

단주가 호발귀에 대해서 말한다. 호발귀를 이대로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다.

단주가 말했다.

“호발귀가 지금은 사실을 말할지라도 언젠가는 거짓말을 말하게 될 거다. 그러면 넌 그때도 믿을 거야.”

등여산은 침묵했다.

단주가 호발귀를 건드린다면, 이 일은 자신에게 주지 않는다. 한 번 놓아준 사람은 두 번도 놓아준다. 그래서 절대로 놓아주지 않을 사람을 선택한다.

‘검벽주! 안 돼!’

등여산은 주치균을 퍼뜩 떠올렸다.

주치균은 단주가 가장 쉽게, 또 가장 편하게 쓸 수 있는 패다.

주치균은 호발귀보다 약하다.

만약 단주가 주치균을 보내기로 했다면, 무공에 대한 대비책도 세워놨을 것이다.

질 것이 뻔한 싸움에 무인을 투입하는 경우는 없다.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판단해도 이 정도면 반드시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할 때, 그 사람을 보낸다.

단주가 걸어와 자리에 앉았다.

“이번 일은 수고했어. 푹 쉬도록 하고.”

단주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비급을 등여산에게 내밀었다.

- 태산(泰山) 이지공(二指功).

“이건!”

등여산이 깜짝 놀라서 비급을 쳐다봤다.

“가져가. 이번 일에 대한 상이야.”

단주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단주님, 이건……”

등여산이 말을 잇지 못했다.

태산이지공은 태산파의 절정 무공이다. 검지와 중지, 손가락 두 개로 철판을 뚫는 공부다.

그런데 태산이지공을 잘못 사용한 사람이 있다.

그는 태산이지공으로 사람 머리를 뚫었다. 언제나 공격점이 머리였다. 머리뼈를 부수고 들어가서 구멍을 냈고, 뇌수가 흘러나와야지만 이긴 것으로 간주했다.

이런 끔찍한 살수를 계속 펼치니 태산이지공이 패공(覇功)으로 분류될 수밖에.

태산이지공은 수거되어 마공관에 소장되었다.

태산파에는 태산이지공을 수련하면 안 된다는 무림 혈첩이 보내졌다.

“왜? 태산이지공의 명예를 회복하는데 태산파의 숙원인 줄 아는데?”

“단주님!”

“가져가. 책사가 수련하든 태산파로 보내던 마음대로 해. 어제부로 태산이지공을 패공에서 해제시켰어. 이제는 누구든 수련해도 되니까. 사람 머리만 찌르지 말고.”

“감사합니다!”

등여산은 사양하지 않았다.

태산이지공을 회수하는 것은 사문의 숙원이다.

또한, 등여산은 태산이지공이 패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지공은 정종 무공이다. 강대한 내력을 바탕을 정당하게 펼치는 강공(强功)이다.

사문이 숙원을 이뤘다.

등여산은 단주 집무실 옆에 있는 대나무 숲에서 걸음을 멈췄다.

“있어?”

그녀가 말했다.

주치균을 부르는 말이다. 그런데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검주님께서는 폐관 수련 중이십니다.”

말을 한 사람은 부검주(副劍主) 정보랑(丁普朗)이다.

검벽에는 부검주가 두 명 있다. 한 명은 정보랑이고, 다른 한 명은 임명강(林銘康)이다.

부검주들은 충성심이 강하고, 저돌적이다. 오직 검벽주만 보면서 달린다. 주치균이 천살단을 위해서 우리가 죽어야 한다면 기꺼이 죽을 사람들이다.

그중에서도 정보랑은 주치균과 나이가 같아서 친구처럼 지낸다.

“폐관 수련 중이라고요?”

“네.”

“언제 시작했는데요?”

“곧 끝내실 겁니다.”

폐관 수련을 언제 시작했냐고 물었는데, 곧 끝난다는 대답이다.

매우 짧은 극일폐관(克日閉關)이다.

대체로 폐관 수련이란 문을 닫아걸고 안에 침잠해서 차분한 마음으로 수련 연공하는 것이다. 문 닫고 들어갔다가 하루 이틀 만에 나오는 예는 없다.

극일폐관은 매우 짧은 시간만 갇혀 있으면 된다.

연공을 할 때 고통이 너무 심해서 전신을 쇠밧줄로 묶어놓는다거나, 자칫 미칠 위험이 있어서 갇힌 상태에서 수련한다거나 할 때 시행한다.

패관수련은 자발적이고, 극일폐관은 누군가가 옆에서 지켜봐 줘야 한다.

주치균은 뭐가 그렇게 급했을까?

마공으로 분류되지 않은 마공이 있다.

살단 총주가 수련한 반야호신공도 마공이다. 모두 정종 무공으로 알고 있지만, 등여산은 마공이라고 생각한다.

반야호신공은 얼핏 정종 무공처럼 들린다.

또 실제로 부처님이 호신막을 펼쳐준 것처럼 아주 강력한 방어막을 형성시켜 준다.

하지만 성격이 포악하게 변한다.

살단 총주처럼 황량해지고, 거칠어진다. 살인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단주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살단 총주가 무례하게 말하거나 행동해도 눈감아주었다. 총주의 성격이 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주치균은 틀림없이 전임 살단 총주의 무공, 반야호신공을 연성하고 있을 것이다.

“폐관 수련 중이구나. 언제 나오는데요?”

“날짜는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오늘내일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나오면 연락해 주시겠어요?”

“……”

정보랑은 대답하지 않았다.

* * *

등여산은 주치균이 폐관을 풀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한달음에 달려갔다.

“폐관 수련했다며? 얼굴 좋아졌네?”

등여산이 말했다.

주치균은 웃지 않았다. 마치 모르는 사람을 보듯이 냉담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언제나 밝고 싱그러운 웃음을 머금던 사람인데,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연성한 무공이 혹시 반야호신공이야?”

주치균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봤다.

“이제는 책사가 그런 것까지 신경 쓰나?”

“그건 안 돼. 반야호신공은…… 위험해.”

“무림에서는 약한 게 위험한 거야. 약하면 잡아먹히지. 검을 들었으면 먹힐 게 아니라 잡아먹어야 할 것 아닌가.”

주치균이 싸늘하게 말했다.

등여산은 어떤 말로도 주치균을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괜히 간섭했네. 미안. 지금 하는 일,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기 바래.”

등여산이 뒤돌아섰다.

그때, 주치균이 말했다.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라. 이번에 귀검을 죽인 일은 네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었나?”

“그래.”

“호발귀가 거기 있어서 간 것은 아니고?”

“사람이 왜 이렇게 배배 꼬였어? 그걸 그렇게밖에 생각 안 해?”

“그럼…… 호발귀에게 겁탈당한 일은 어떤가? 겁탈당한 후,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은 뭐였을까? 나 같으면 호발귀를 죽였을 텐데, 넌 오히려 간호했어. 낯선 남자에게 겁탈당해도 그저 그만인 헤픈 여자였나?”

“마음은 알겠는데, 그렇게 상처 주는 말 하지 않아도 되잖아. 이제는 정말 널 못 볼 것 같다.”

“검주.”

“……?”

“너가 아니라 검주라고 불러.”

등여산은 가만히 서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 순간, 한 사람을 완전히 잃었다. 친우가 떠나갔다. 누구보다도 가까웠던 사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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