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마전인-92화 (92/500)

第十九章 환산만전투(環山灣戰鬪) (2)

귀검은 식사하기 위해 객잔으로 들어섰다.

객잔 겸 음식점을 겸비하고 있는 곳인데, 멀리서부터 튀김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어서오십쇼!”

점소이가 한달음에 달려와 인사했다. 그때,

“앗! 죄송! 죄송합니다.”

다른 손님에게 시중을 들던 점소이가 큰 실수를 했다. 손님에게 물잔을 엎질렀다.

“거참 조심 좀 하지.”

손님이 투덜거렸다.

스읏!

귀검은 가늘게 눈살을 찌푸렸다. 매우 못마땅한 듯 점소이를 쳐다봤다.

“저기 안쪽 자리가 비었습니다. 저기로 모실게요.”

점소이가 앞장섰다.

세상에는 천살단 간자만 있는 게 아니다. 혈천방도 고정 간자를 운용한다.

간자가 물잔을 엎질렀다.

쏟아진 물을 주워 담을 수 없듯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는 약속된 밀마다.

‘돌이킬 수 없는 사태?’

귀검은 미간을 찌푸린 채 좀처럼 펴지 못했다.

환산만이 떨어졌다.

현재, 혈천방 간자는 모든 시선을 호발귀에게 집중시킨 상태다.

광저가 호발귀에게 작업을 걸었다. 호발귀를 혈마로 만들기 위해 일련의 과정을 진행 중이다. 잘하면 하루나 이틀, 길어야 사나흘이면 결정 난다.

그동안 귀검은 광저 일에 개입하지 않고 떠돌았다.

그는 일단 이런 계획이 싫다. 호발귀를 혈마로 만든다는 계획에 반대한다.

혈천방 무인도 아닌 외인을 싸움 도구로 만들어서 무림을 피로 씻겠다니. 혈마를 이용해서 천살단을 쓸어버리고, 무림 문파를 박살 내고, 초상승고수들을 죽이고.

치졸하다. 개운치가 않다.

그렇게 자신이 없나? 무림을 피로 씻을 요량이라면 귀무살만 풀어놔도 된다.

물론 천살단과 전면전이 벌어지겠지만, 무림리 피로 적셔질 것은 확실하다. 아니, 중원 전체가 싸움판이 된다. 모든 문파가 싸움에 휘말린다.

이렇게 빠른 길을 놔두고 왜 혈마가 필요한가.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혈마처럼 확실하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도구가 있어야 한다, 누구도 이길 수 있으면서, 이지를 잃어버려서 강아지처럼 말을 잘 듣는다면 얼마나 든든한가.

그래서 혈천방은 혈마에 목을 맨다.

귀검은 마뜩잖지만, 본방에서 추구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 하나 이런 일에 손을 대기가 싫어서 아무 연관도 없는 곳을 떠돌아다녔다.

그런데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단언컨대 환산만을 아는 사람은 없다. 만약 누군가가 알아냈다면 꼬리를 붙였기 때문이다.

귀무살 귀문은 장소를 선정하면 일 년 치 생활용품을 준비해서 들어간다. 일 년 동안은 외부로 나오는 사람도 없고, 들어가는 사람도 없다.

꼬리가 붙었다면 이번에 붙었다.

광저가 호발귀를 데려가는 동안, 광저의 눈을 속일 수 있을 만큼 은밀한 꼬리가 붙었다.

비자라면 당연히 그럴 수 있다!

비자가 환산만을 알아내고, 천살단이 휩쓸었다면 광저가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광저는 귀무살을 양성하는 교두(敎頭)다.

본인 역시 귀무살 출신으로 오십여 회 이상 특별임무를 완수한 전설이다.

‘하지만 안 돼. 준비하고 달려든 놈들은 이길 수 없어.’

귀검은 물잔 하나 엎질러진 것으로 환산만에서 일어난 사건을 모두 추측해냈다.

‘그럼 이제 나도 편하게 움직일 수 있겠군.’

귀검은 피식 웃었다.

본방이 원하는 대로 호발귀를 내줬다. 혈마가 되도록 길을 열어줬다. 하지만 천살단이 가로챘다. 현재, 호발귀는 천살단 손아귀로 들어갔다.

호발귀를 다시 찾는다.

그러는 와중에 호발귀를 죽인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최소한 천살단에 넘겨주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넘겨줄 바에는 죽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귀검은 호발귀를 죽일 생각이다.

여타의 일은 모두 핑계다.

혈천방이 호발귀에게 목을 매고 있는 이상, 귀검도 마음대로 검을 휘두르지 못한다. 적당한 핑계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핑계는 방주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호발귀가 죽으면 혈마는 완전히 대가 끊긴다.

이제는 혈마록조차 남아있지 않으니 언젠가 혈마가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하는 건 미친 짓이다.

혈천방은 혈마 없이 움직여야 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귀검이 원하는 싸움, 전력을 다해서 무공으로 부딪치는 싸움이 벌어진다.

스읏!

귀검이 일어섰다.

그는 곧장 한 사람에게 걸어갔다.

먼 길을 걸어왔는지 먼지를 흠뻑 뒤집어쓴 길손이다. 들어서자마자 독한 화주로 목부터 풀었다. 그런 후, 편하게 앉아서 옆 사람과 주절주절 세상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스릉! 척!

귀검의 검이 반짝 빛을 뿌렸다.

길손이 눈을 부릅떴다.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하지만 곧 입에서 피를 푸왁! 뿜어냈다.

검이 등을 뚫고 들어가서 심장을 뀄다.

스읏!

귀검은 길손과 이야기를 나누던 자를 쳐다봤다.

“몇 번째인가?”

“네, 네? 무, 무슨 말씀이신지?”

사내는 겁에 질려서 사시나무 떨듯이 벌벌 떨었다.

“십육비자. 속임수는 버리고. 간자로 죽을 건가, 무인으로 죽을 건가? 무인이면 검을 뽑고.”

“나, 나리! 저, 정말 무슨 말씀이신……”

철컥! 퍽!

검광이 번뜩였다.

귀검이 언제 칼을 썼는지 정확하게 본 사람은 없다. 검이 검집을 벗어난 것은 알겠는데, 언제 무슨 초식을 써서 허파를 찔렀는지는 알지 못한다.

허파가 찔린 사내는 괴로워서 숨을 헐떡거렸다. 하지만 소리는 나지 않았다. 폐가 구멍 나서 바람이 센다. 목구멍으로 나올 바람이 폐로 빠진다.

귀검은 두 죽음을 내버려 두고 객잔을 나섰다.

십육비자에 대한 경고다. 더는 뒤쫓지 마라. 쳐다보지도 마라. 다가서는 즉시 죽는다.

“으음!”

객잔으로 들어선 사내들이 신음을 흘렸다.

책사가 경고했다. 너무 깊게 들어가면 죽을 것이라고. 그러니 멀리 떨어져서 쫓으라고.

그 말을 무시하고 깊게 들어갔다.

괜히 들어간 것이 아니다. 귀검의 행동이 이상했다. 음식을 먹으러 들어간 사람이 음식이 나왔는데도 먹지 않는다.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이런 모습을 봤는데 어떻게 가까이 다가서지 않을 수 있나.

“무섭도록 빠른 검.”

“총주님을 벤 검이니까.”

“이런 검은 책사도 감당하지 못해. 생각보다 훨씬 강한 검이야. 총주가 죽은 게 이해돼.”

“으음!”

비자들은 연신 신음만 흘렸다.

* * *

“이번에도 책사 생각이 맞았네요. 귀검이 환산만으로 가고 있다는 보고예요.”

천원주가 말했다.

“그래.”

천살단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책사의 생각은 언제나 잘 짜인 각본처럼 딱딱 들어맞는다.

모두 귀검이 환산만으로 갈 리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귀검은 혈마를 싫어한다. 실혼인(失魂人), 망혼인(亡魂人)처럼 약물로 사람을 조정하는 것도 경멸한다.

환산만이 귀문 역할에 충실하다면 갈 수도 있다.

하지만 혈마를 만드는 일에 간여한 이상, 귀검이 발을 들여놓을 리 없다.

그런데 등여산이 환산만을 정리하자마자 즉시 환산만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책사는 어쩌면 이렇게 모든 일을 딱딱 맞출 수 있을까 궁금하다.

책사는 모든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상황 속에 포함된 사람들을 분석한다. 성격, 무공 등등 모든 것을 고려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움직일 수밖에 없는 노선을 찾아낸다.

등여산은 그런 일을 아주 완벽히 잘한다.

책사는 귀검을 외골수 무인으로 단정했다. 또한, 혈천방이 몰락해도 가장 마지막까지 충성할 충인(忠人)으로 봤다. 무공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귀검은 무공과는 상관없이 달려온다.

무공이 약해도 오고, 강해도 온다. 호발귀를 죽여야 혈천방이 산다는 신념을 가진 이상, 반드시 온다. 혈천방에 내줄 핑계가 완벽하여서 반드시 온다.

등여산은 이처럼 확신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 말이 맞는다. 하지만 처음 등여산의 말을 들었을 때는 ‘설마?’ 하는 생각이 짙었다.

이 세상에 혈마를 마다할 사람이 있나? 공짜로 날 도와줄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인데? 쓰다가 버릴 수도 있고, 죽어도 안타깝지 않고, 아무 곳에나 보낼 수 있고.

천원주가 말했다.

“책사는 귀검을 감당할 수 없어요. 철수시키던가, 도와줄 사람을 보내야 해요.”

“자네 생각은 어때?”

단주가 주치균을 쳐다보며 말했다.

주치균이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책사가 귀검은 벤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책사를 의심하는 건 도리가 아닙니다.”

그 말에 천원주가 놀란 표정으로 주치균을 쳐다봤다.

단주도 고개를 들어 검주를 봤다.

주치균은 표정 변화가 없다. 무표정하다. 자신의 임무는 오직 단주를 보호하는 것뿐이라는 태도다.

“뜻밖이네. 다른 말을 할 줄 알았는데.”

천원주가 말했다.

주치균은 지금까지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적어도 등여산에 관한 일이라면 만사 제쳐놓고 나섰다. 궂은일이 되었든 위험한 일이 되었든 자신이 맡았다.

‘저를 보내주십시오. 제가 가겠습니다.’

‘제가 귀검을 상대하겠습니다.’

예전이라면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제 의견을 여쭤보셔서 말한 것뿐입니다.”

주치균이 여전히 냉정하게 말했다.

“이래서…… 남녀 간의 정분은 위험한 것이야. 쯧! 뭐가 어긋났군. 말투에서 보여.”

천살단주가 중얼거렸다.

주치균은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등여산에 대한 일은 자신과 상관없다는 듯 무표정했다.

천원주가 시선을 거둬 단주를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 환산만에는 음자 칠십 명이 있는데, 그들로는 무립니다. 귀검을 막지 못해요.”

“책사는 귀검을 잡는다고 하지 않았나?”

“환산만에 있는 백발연시포를 사용할 생각인데, 귀검이 그걸 왜 모르겠어요. 알면서도 간다는 것은 자신 있다는 거죠. 책사가 당할 겁니다.”

“호발귀도 있는데 설마 당할까?”

“마공관에서 시연해 봤는데, 호발귀가 귀검을 상대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으음!”

천살단 단주가 신음을 쏟아냈다.

마공관은 승부 예측이 뛰어나다.

싸움이 벌어질 것 같으면, 양쪽 무인을 분석한다.

성격, 내공, 무공 등등 모든 요소를 종합해서 실제로 시연을 해본다.

무공을 실제로 펼치는 것은 아니다.

마공관은 혈마 무공이나 지옥유부공을 사용하지 못한다. 하지만 무리를 알고 있으면 난상토론이 가능하다.

그 결과, 귀검의 승리가 나왔다.

“책사를 철수시키시죠?”

천원주가 제안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철수.”

단주가 검주를 보며 말했다.

검벽주 주치균이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책사는 해낼 겁니다. 본인이 한다고 했으면 해내는 성격이니 이번에도 믿는 것이 좋겠습니다.”

“호발귀와 귀검이 싸운다면 누가 이길 것 같나?”

“제 일이 아닙니다.”

주치균이 냉정하게 말했다.

“그렇군. 후후!”

단주가 웃었다. 그리고 천원주를 보며 말했다.

“여기 검주가 책사를 믿으라니 믿는 게 좋겠지. 믿어보자고. 책사도 본인이 한 말은 지킬 필요가 있고. 이번 일로 젊은 사람들이 세상을 알게 되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네. 알겠어요.”

천원주가 대답했다.

천살단은 침묵한다.

환산만에서 격전이 벌어질 것을 알면서도 아무도 보내지 않는다.

사실, 누군가를 보내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만은 아니다. 이쪽에서 누군가를 보내면, 혈천방에서도 누군가가 튀어나온다. 양쪽에서 강한 힘들이 계속 튀어나온다.

결국은 아주 큰 싸움이 된다.

혈천방도 천살단도 아직은 그런 싸움을 원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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