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十八章 재회(再會) (3)
“아함!”
광저는 길게 기지개를 켰다.
지난밤, 그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주위를 유심히 살폈다.
분명히 누군가는 움직일 것이다. 백발연시포를 보았으니 호발귀가 튀어나올 것이다.
광저는 충분히 기습에 대비했다.
다행스럽게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싸움이 시작되면 상당히 바빴을 텐데, 조용히 지나갔다.
“이것들 바보인가? 하루를 꼬박 굶겼으면 뭔가 이상한 걸 느꼈어야지. 더 기다리겠다는 건가? 생각 밖으로 멍청한 놈들이군. 답이 없는 놈들이야.”
광저는 상쾌한 기분으로 아침 공기를 마셨다.
해가 뜨고 날이 밝았다.
“크크! 영주님도 틀릴 때가 있네. 하루쯤 굶기면 반드시 움직일 거라고 했는데.”
그는 쇠로 만든 철창을 쳐다봤다.
철책은 매우 단단하게 만들어졌다. 철봉 굵기가 어린아이 팔뚝만 하다. 호발귀가 혈마로 변하면 잡아서 가둘 철창이기 때문에 매우 단단해야 한다.
광저는 곰도 가둘 수 있다고 자신한다.
“어젯밤에 널 쓰게 될 줄 알았는데, 하루 더 기다려야겠다. 후후! 사람 가두는 철창이라. 하하!”
광저는 기분 좋게 웃었다.
그때, 밖에서 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타타타탁! 타타탁!
언뜻 들어도 매우 다급해 보인다.
“뭐야? 지금 시작한 거야? 날이 환히 밝았는데?”
날이 밝으면 백발연시포를 피하지 못한다. 밤에도 피할 수 없지만, 낮에는 더욱더 피하기 힘들다.
이것들이 정말 미쳤나!
광저는 벌떡 일어났다.
“큰일! 큰일! 큰일 났습니다. 공격이…… 기습이!”
동굴 안으로 달려들어 온 무인이 숨도 가누지 못한 채 급히 말했다.
“이게 도대체!”
광저는 깜짝 놀랐다.
혈천방 무인이 앉은 자리에서 조용히 칼을 맞고 죽었다.
지난밤,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비명 같은 것은 더더욱 없었다. 아주 조용했다.
무인 대부분이 심장에 일격을 맞았다.
아주 깨끗한 솜씨다
단검이 정확하게 심장을 관통했다. 주저한 흔적조차 없다. 두부 찌르듯이 푹 찔렀다.
이렇게 당하면 숨이 빨리 끊어진다. 또 살아나는 것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죽은 자들은 두세 호흡을 넘기지 못했다.
단검이 심장에서 빠져나갈 즈음에는 숨이 떨어졌을 것이다.
“으음!”
광저는 신음했다.
누구 솜씨일까? 간밤에 누가 나왔나?
오는 길에 끌고 오는 놈들을 살펴봤다. 그중 이런 솜씨를 보일 자는 딱 한 명, 홀리밖에 없다.
호발귀는 무공이 너무 난폭하다. 역동적이고, 활기차다. 조용한 무공이 아니다. 굉장히 난폭해서 이토록 조용하고 은밀한 살수는 전개하지 못한다.
곰같이 생긴 도천패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그는 대도를 사용한다. 단검으로 찔러대는 그런 무공이 아니다.
한 여자는 독을 쓰고, 다른 한 놈은 이만한 무공이 없다.
오직 홀리만이 이런 습격을 할 수 있는데, 그녀가 왜 나섰을까? 가만히 있으면 호발귀가 혈마로 변할 것이고, 그러면 음문 저주를 알고 있는 그녀 차지가 되고.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몇 명이나 당한 거야!”
광저가 빽 소리쳤다.
“백, 백사 명입니다.”
“백사 명? 모두 백발연시포야?”
“네.”
대답 소리가 쥐구멍을 찾고 있다.
“백발연시포를 스물여섯 대나 잃어버렸다는 거야?”
“네.”
“하! 웃기게 됐군.”
광저는 할 말을 잃었다.
백발연시포는 아무나 사용할 수 없다. 시포를 다루려면 몇 개월 동안 훈련을 받아야 한다. 화약이 터질 때, 포가 흔들린다. 화살이 목표를 잃어버린다.
시판을 꽉 붙잡아 둔 상태에서 화약을 터트릴 줄 알아야 한다.
보아하니 홀리는 백발연시포만 노린 것 같다.
시포 서른 대 중 스물여섯 대를 잃어버렸다면, 모두 잃은 것이나 진배없다.
아직도 네 대가 남아있지만, 충분한 위협이 되지 않는다.
서른 대를 갖췄을 때도 은밀히 습격해서 모두 도륙해버렸는데, 겨우 네 대 가지고 뭘 하나.
“정말 지난 밤에 움직인 사람을 아무도 못 본 거야?”
“전부 확인해 봤는데, 보지 못했습니다. 쥐 죽은 듯이 조용해서 아무 일도 없는 줄……”
수하가 말끝을 흐렸다.
하기는 광저도 아무 일 없는 줄 알았다. 이런 난리가 벌어지고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저놈들, 어떡할까요? 배고프다고 난리인데.”
“줘라.”
“네?”
“밥도 주고 물도 주고 다 줘! 나 찾으면 심부름 가서 이틀 후에 온다고 해!”
이틀 후면 귀검이 온다.
광저는 귀검이 올 때까지 시간을 끌 생각이다. 어차피 혈마로 잡아놓기는 틀렸고.
* * *
츠읏! 츳! 착착! 착!
일단의 무인들이 절벽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무인들은 일절 말이 없었다. 바로 옆에서 움직이는 무인에게도 말을 걸지 않았다.
물론 지시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들은 각기 한 장소에 도착해서 절벽을 봤다. 옆 사람과는 상의하지 않는다. 오직 홀로 판단하고 준비한다.
준비가 끝나면 절벽을 오른다.
어느 쪽이 쉽게 올라갈 수 있다거나, 어떤 도구를 사용하는 게 좋은지 말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손에 쇠갈고리를 끼고 오른다.
어떤 사람을 밧줄을 이용해서 안전하게 천천히 오른다.
어떤 사람은 맨손으로 절벽을 탄다. 안전은 무시하고 빨리 올라가기 시합이라도 하는 것처럼 무척 빠르게 올라간다.
모두 자신만의 방법으로 절벽을 탄다.
이들은 현장에 도착해서 현장을 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직감적으로 안다.
이들은 이런 일에 능숙하다.
“기가 막히는군.”
재각주는 솔직히 감탄했다.
음자는 재각에서 관리한다. 이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결과를 보고받는다. 지원해줄 부분은 지원하고, 문제가 되겠다 싶으면 꼬리도 자른다.
하지만 이들을 보는 건 처음이다.
그는 늘 재각에서 지시만 내렸다.
음자가 빠른 속도로 절벽을 탄다.
재각주도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앞서간 사람이 남겨 놓고 간 밧줄을 이용했다.
사실 이 정도의 절벽이라면 벽호공(壁虎功)만 사용해도 간단히 오를 수 있다.
하지만 힘을 비축한다는 의미에서 밧줄을 이용한다.
절벽을 올랐을 때, 쉴 틈도 없이 곧바로 싸움이 벌어지면 어쩔 수 없이 응해야 한다. 그때, 절벽을 오르느라 힘이 전부 소진되어 있으면 곤란하다.
이것은 재각주의 생각이다.
모두 이런 식으로 자신만의 생각을 한다.
재각주와 같은 생각인 사람은 밧줄 같은 도구를 이용하는 것이고,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사람은 속도에 치중한다. 모두 자신의 목숨은 자신이 관리하니 개인의 판단도 존중한다.
스읏!
재각주가 절벽 위로 올라섰다.
음자는 모두 올라선 후이다. 재각주가 제일 늦게 절벽을 탔기 때문에 올라서는 것도 맨 마지막이다.
언만(堰灣)은 무척 험한 절곡이다. 높이만 거의 이백여 장에 이른다.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세상 사람 중 언만 절벽을 기어오를 사람은 없다. 아니, 미친놈도 오르지 않는다. 목숨에 전혀 미련이 없다는 사람만 오른다.
절벽에 올라선 음자는 숨소리 한 올 흘리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병기를 움켜쥔 채 조용히 어둠 속을 살폈다.
언만은 위험하지 않다. 정작 위험한 곳은 환산만이다. 언만에서 서북 방향으로 십 리쯤 달려가야 한다.
십 리? 매우 먼 거리다. 하지만 언만과 환산만 사이에 오를 만한 절벽이 없다. 등여산에서 지시를 받은 후, 전도전을 찾아가서 지도를 살펴봤다.
등여산의 판단이 정확했다.
다른 곳은 안으로 움푹 팬 곳이 많아서 오르기가 적합하지 않다. 더욱이 높이도 이백 장을 훨씬 넘어선다.
“목숨이 두어 개라도 모자라겠군.”
지도를 살핀 끝에 자신도 모르게 쏟아낸 말이다.
그나마 언만에서 오르는 것이 제일 수월하다.
언만에서 환산만으로 가는 길은 많다. 등여산이 가르쳐준 길 외에도 더 편한 길들이 있다. 하지만 등여산은 반드시 절벽을 따라서 달려가 달라고 말했다.
“가자!”
재각주가 명령했다.
동이 틀 무렵, 음자는 환산만에 도착했다.
오는 길은 매우 험했지만, 마음은 편했다.
도저히 경계병을 세워둘 위치가 아니다. 물론 중간중간 경계병으로 보이는 무인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절벽으로 내려오지 않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감시했다.
등여산이 왜 절벽을 따라서 가라고 했는지 이해가 된다.
등여산은 단지 지도만 보고 이런 길을 찾아냈다.
‘적이라면 제일 먼저 죽여야 할 사람이야. 그 나이에 책사를 맡고 있으니 천재는 분명하지.’
재각주는 눈 아래 펼쳐진 깊은 골짜기를 쳐다봤다.
‘여긴 원시림인데?’
재각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골짜기는 자연 그대로다. 사람이 손댄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이런 곳에 혈천방 무인이나 귀문이 있다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조용히 귀를 기울여 보면 사람 소리가 들린다. 작은 소리가 골짜기를 타고 절벽으로 올라온다.
재각주는 음자를 쓱 훑어봤다.
모두 긴장하고 있다. 흥분 상태에서 일으키는 긴장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이완된 상태에서 약간 긴장한다.
음자들이 싸움을 예감한다.
재각주가 말했다.
“혈천방 무인들이다. 인원은 대략 사백 명. 살려서 보내는 자가 없도록. 가!”
스으읏! 스읏!
음자들이 대답도 없이 움직였다.
그들은 짧은 호흡 한 번 내뱉을 동안 일제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시작했어.’
환산만 한 구석, 등여산이 음자들의 행동을 지켜봤다.
재각주에게는 사정을 봐가면서 이삼일 후에 도착하겠다고 했지만, 사실은 먼저 와있었다.
그녀는 환산만으로 왔고, 환산만에서 절벽을 올랐다.
음자에게도 환산만 절벽을 알려줄 수 있었지만, 고민 끝에 알려주지 않았다.
환산만 절벽은 매우 험하다. 언만에서 오르는 것보다 두 배는 더 힘들다. 무엇보다도 환산만에서는 조그만 소리만 흘려도 당장 혈천방 무인에게 발각된다.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
그녀는 호발귀가 머무는 장소도 찾아냈다.
골짜기에는 굴이 무수하게 뚫려있다. 마치 쥐 떼가 모여 사는 쥐구멍을 보는 듯하다.
그중에 움막 한 채가 있다.
사방에서 포위 협공을 당하기 딱 좋은 곳에 집을 지어놨다.
누군가를 보호할 목적이라면 절대로 짓지 않을 땅이다. 오히려 누군가를 끌어들여서 잡을 요량이라면 저곳보다 더 좋은 곳도 찾기 힘들다.
호발귀는 틀림없이 저곳에 있다.
등여산은 일부러 마음을 차게 굳혔다.
호발귀가 혈천방을 공격하는 줄 알았는데, 살단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다.
살단 총주를 끌어내는 미끼가 되었다.
살단 총주가 죽은 후에는 혈천방과 함께 움직였다. 혈천방이 준비한 마차를 타고.
호발귀는 총주를 죽인 대가로 무엇을 얻은 것인가?
아니, 그것은 어떤 사정이 있을 것이다. 앞으로 알아봐야 하겠지만, 이곳까지 와서 저런 곳에 갇힐 정도면 아주 깊은 사연이 있는 게 틀림없다.
등여산이 화나는 것은 호발귀 곁에 낯선 여자가 있다는 거다.
호발귀가 누구와 만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괜히 화가 난다. 질투인가 싶기도 했는데, 그건 아니다. 호발귀와 어떤 일이 있었어야 질투가 되지. 아무런 일도 없지 않았나.
‘콱 죽게 내버려 둘걸.’
호발귀를 구하는 것과 귀검을 죽이는 일이 용케 맞아떨어졌다.
‘제일 목표는 귀검을 죽이는 것, 두 번째가 호발귀를 구하는 거야. 마공을 포기하게 만들면 되는데. 무공 전폐밖에 방법이 없어. 동의할까? 안 하겠지? 안 할 거야. 그건 나라도 안 해. 도대체 혈마 무공이 뭔지 알아야 방법을 찾지.“
그녀는 자신 스스로 환산만에 온 제일 목표가 귀검을 죽이는 것이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어느새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호발귀를 혈마로부터 구해낼 방법을 생각한다.
쒜에엑! 쒜에에엑!
음자들이 살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혈천방 무인들이 쥐구멍에 숨어있다가 소리 없이 푹푹 쓰러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