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十八章 재회(再會) (1)
“자! 오늘은 여기서 푹 쉬시고!”
광저가 호발귀 일행을 산속 움막으로 안내했다.
산속에 제법 그럴듯한 집을 지어놨다. 밤이슬만 피했다가 떠나는 집이 아니라 누군가가 생활을 했던 듯 모든 집기가 알뜰하게 갖춰진 집이다.
“애게? 이건 뭐 돼지우리도 아니고! 어떻게 손님을 이런 데로 모시나?”
해자수가 움막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여기서 살 것도 아니고, 두 사람만 죽인 후에 떠날 것 아닌가? 하룻밤 지내는 건데, 뭔 불만이 그렇게 많아?”
“하긴 그렇지.”
해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월도와 무지는?”
호발귀가 물었다.
“아 참 성질도 급하시네. 팔팔 끓는 물을 마시는 사람이 어딨소? 식혔다가 마셔야지. 오늘은 먼 길을 왔으니까 푹 쉬시고, 내일쯤 영주님이 오실 테니까 그때 말합시다. 약속은 지키니까 너무 염려 마시고. 자, 할 말 있으신 분?”
광저가 사람들을 둘러봤다.
“없으면 난 이따가……”
광저가 씩 웃으면서 나갔다.
“그러고 보니까 오는 동안 집이란 걸 구경하지 못했지? 분명히 아무것도 없었어. 그럼 저놈들은 어디서 자나? 이런 산속에서 이불도 없이 쪼그리고 잘 리는 없고.”
해자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해자수 말이 맞는다. 오면서 집이라는 걸 보지 못했다.
산에 많은 무인이 있다. 그들도 쉬어야 한다. 한데 쉴만한 장소가 없다.
당장 두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하나는 동굴이나 토굴에서 산다는 것이다. 야지 생활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임시방편일 뿐, 오래 머물지는 못한다.
둘째, 무인들은 이곳에 살지 않는다.
특정한 목적이 있어서 산으로 모여들었을 뿐, 이곳에서 생활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후자일 것이다.
광저는 그나마 집 같은 곳에 데려왔다.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특별 대우인 셈인가?
“아이고, 좀 쉬자. 오랜만에 산을 탔더니 다리가 천근만근이네. 난 좀 잘 테니까 깨우지 마쇼.”
해자수가 벌렁 드러누웠다.
척척척! 척척!
바깥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많은 사람이 약속이라도 한 듯 질서정연하게 움직인다.
“뭐 하는 수작들이야?”
도천패가 바깥을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백발연시포가 움막을 중심으로 재배치 되었다. 아니, 원래부터 배치해 놨던 것인데, 거적을 걷어냈다. 눈에 띄어도 상관없다는 듯 시포를 환히 드러냈다.
백발연시포가 움막을 중심으로 배치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시포 방향이 바깥을 향하고 있지 않다. 움막을 향하고 있다.
혈천방의 의도가 읽힌다.
저들은 호발귀 일행을 감시하고 있다. 움막에 갇혀 있는 상태, 독 안에 든 쥐로 생각한다.
“이 상태로 싸우면 절대적으로 불리해.”
당홍이 시포 배치 상태를 살펴보면서 말했다.
“아함!”
해자수가 길게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그는 몸이 근지러운지 손을 가슴에 넣고 북북 긁었다.
“시간이 얼마나 됐나? 배가 슬슬 고프네. 아직 저녁때 안 됐나?”
해자수가 말을 하면서 바깥을 쳐다봤다.
해는 이미 떨어졌다. 벌써 해 떨어진 지 반 각이 훌쩍 넘었다. 더욱이 산속이다. 어둠이 빨리 찾아오는 바람에 주위는 칠흑처럼 어두웠다.
“왜 불도 안 켜고?”
해자수가 주위를 돌아봤다.
표정이 모두 무겁다. 잠자는 동안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것 같다.
“왜? 무슨 일인데?”
해자수가 도천패에게 물었다.
“밥 좀 달라고 하지? 배고픈데.”
“밥도 안 가져왔어? 뭔 손님 대접이 이래?”
해자수가 잠에서 덜 깬 듯 몸을 북북 문지르면서 바깥으로 나갔다.
덜컹!
그가 문을 열었다. 순간,
슷!
해자수 목에 검이 드리워졌다.
“아! 깜짝이야! 아니 왜 느닷없이 검을 대고 지랄이야! 이러다가 모가지 떨어지면 네가 책임질래!”
해자수가 소리를 빽 질렀다.
“들어가라.”
무인이 냉담하게 말했다.
“뭐?”
“들어가라!”
해자수는 눈만 끔뻑끔뻑하면서 무인을 쳐다봤다.
“알았어. 들어가지 뭐. 거 사람 참 이상하네. 바깥 공기 좀 쑀다고 검을 대고. 아! 밥은 안 주나?”
“들어가라!”
“들어간다니까, 들어가. 들어가긴 들어가는데, 밥은 먹여야 살지. 쫄쫄 굶기면 쓰나.”
해자수가 손을 휘저으며 되돌아왔다.
“이거 생각보다 심한데.”
도천패가 인상을 찡그렸다.
해자수가 무인에게 말을 걸 때, 도천패와 당홍은 백발연시포를 살폈다.
시포 열 대가 해자수를 겨눴다.
한 대에 화살 백 대다. 시포 열 대면 무려 강시 천여 발이 해자수 몸에 꽂힌다.
물론 해자수를 막아선 무인도 화살 꼬치를 면치 못한다.
그래도 무인 십여 명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죽음 따위는 이미 초월했다는 투다.
“뭐야? 다들 알고 있었던 거야?”
해자수가 섭섭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녁이 되었어도 광저가 오지 않는다. 밥과 물도 주지 않는다. 시포는 움막을 향해 겨눠졌다.
혈천방, 뭐 하자는 건가!
“내가 뚫어볼까?”
당홍이 말했다.
“아니. 잠깐 기다려요.”
호발귀가 만류했다.
“기다려…… 요? 방금 나한테 ’요‘라고 했어?”
당홍이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보위가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그래서 형수님 대접하려고.”
“형수님. 그럼 내가 형이라는 거네?”
도천패가 말했다.
“아니. 문주와 보위 사이에 형·동생이 어디 있어. 나는 문주, 보위는 보위. 형수님 대접은 오직 형수님만. 간단하잖아. 내 말이 어렵나?”
“그래. 너 잘났다.”
도천패가 툭 쏘아붙이며 신발을 툭툭 털었다. 하지만, 호발귀가 당홍을 형수님이라고 부르자 기분이 좋은지, 입술을 비틀며 히죽히죽 웃었다.
호발귀가 말했다.
“공격하려면 한꺼번에 확 치고 나가야지, 찔끔거리면 안 되니까. 아직 여유도 있고. 뭐 하자는 건지 두고 보자고. 기다려보면 무슨 말인가 해올 거 아냐.”
호발귀가 편히 드러누웠다.
밤이 지나가고 새벽이 밝았다. 해가 뜨고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밤이 깊었다.
하루를 꼬박 움막 안에서 지냈다.
물론 음식은 제공되지 않았다. 문밖출입도 철저하게 통제되었다. 누구든 문만 열면 당장 무인이 나타나서 검을 겨눴다. 물론 시포도 즉각 발사할 태세로 돌입했다.
이제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혈천방이 원하는 것이 싸움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계속 갈증과 기아에 시달리면 정작 싸워야 할 때 힘을 쓰지 못한다.
“정말 뭐 하자는 수작인지 모르겠네. 굶겨 죽이겠다는 건가? 우리가 그냥 손 놓고 당할 리는 없잖아. 당장 뛰쳐나갈 때 뻔한데, 눈에 환히 보이는 수를 쓴다고?”
해자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때, 지금까지 운공만 하고 있던 홀리가 눈을 떴다.
“너, 혈마 만들려는 거야.”
홀리가 거두절미 호발귀를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 밖에는 백발연시포 삼십 대가 있어.”
“삼십 대!”
당홍이 깜짝 놀라서 말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열 대뿐이다. 그렇다면 스무 대가 은밀히 감춰져 있다.
“열 대는 미끼야. 우리가 열 대를 부수는 동안 나머지 스무 대가 공격할 거야. 미끼를 가운데 놓는다. 적이 달려들면 좌우에서 협공한다. 시포 가용법 중 하나야. 물론 미끼도 그냥 당하지는 않을 것이니, 최소한 강시 삼천 대를 피해야 해.”
“하아!”
해자수가 입을 쩍 벌렸다.
백발연시포로 쏘는 화살은 철궁으로 쏘는 철시에 비견된다.
화살 삼천 대는 전쟁터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대규모 궁전(弓箭)이다.
강한 데다가 숫자도 많다.
더욱이 화살이 밀집될 수 있는 산골짜기다.
전면전으로는 승산이 없다. 호발귀와 도천패가 일시에 쳐나가도 해도 당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내가 전력을 다하게끔 만든다. 그래서 기혈이 폭주하면 혈마가 된다?”
“그래.”
“그래서 날 혈마로 만들려고 일부러 이런 곳으로 데려왔다 이거군. 우린 미련하게도 순순히 따라온 거고.”
“맞아.”
“처음부터 말하지 그랬어. 백발연시포를 봤을 때 말했으면, 여기까지 들어오지 않았지. 어렵지 않게 빠져나갈 길이 많았는데, 힘들게 됐군.”
“맞아. 그랬다면 벌써 그 얌탱이 같은 놈을 쳐 죽이고 빠져나갔을 거야. 왜 말 안 했어요?”
해자수가 홀리를 쳐다봤다.
홀리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왜?”
“……”
모두 의아한 눈으로 홀리를 쳐다봤다.
“네가 혈마가 되면 내가 조정하게 되는데, 내가 왜 말려? 오히려 내가 이런 자리를 마련해도 모자랄 판이지. 하물며 혈천방에서 방석까지 깔아줬는데, 왜 말리냐고. 호호호!”
“뭐? 뭐 이런!”
도천패가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섰다.
호발귀가 도천패를 잡았다.
“놔둬. 모두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이쪽이나 저쪽이나…… 어떻게 모두 정신 나간 사람들 뿐이야. 보위는 안 되고…… 형수, 만약 내가 혈마가 되면……”
“알았어. 이 자들 내가 죽일게.”
“보위, 형수 보호해. 저 여자, 굉장히 강해. 그러니 일격만 막아. 일격은 무조건 막아. 그럼 형수가 알아서 할 거야.”
“넌?”
“난 길을 뚫어야지.”
호발귀가 일어섰다. 그리고 해자수에게 걸어가서 그의 허리춤에 꽂혀있는 단검을 뽑아냈다.
“잠시 빌려. 병기가 마땅치 않아서.”
호발귀는 움막을 나왔다.
무인들은 달려오지 않았다. 저들은 호발귀가 나온 것을 알지 못한다. 소요귀명을 펼치면 호발귀는 철저히 음지로 숨는다. 동시에 저들은 밝은 곳으로 드러난다.
툭!
돌멩이가 발끝에 차이는 소리를 들었다.
돌멩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만큼 작은 돌이다. 모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그런 돌을 밟았다고 해서 인기척을 흘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사위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호발귀는 두 귀로 똑똑히 소리를 들었다.
‘좌측 삼 장.’
적은 매우 가까운 곳에 있다.
이것이 소요귀명이다. 이토록 가까운 곳에 있는데도 적은 호발귀를 보지 못한다.
스으으읏!
호발귀는 조용히 움직였다.
마차를 타고 오는 동안, 생각할 시간이 많았다.
모처럼 한가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으면 되는 시간이었다.
조용히 무공을 참오했다.
혈마 무공을 생각한 것은 아니다. 당연히 장진 스님도 나타나지 않았다.
독섬칠공을 생각하고, 연구하고, 습득했다.
운기를 하면 독섬칠공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역천금령공을 펼치든, 이령귀화를 사용하던, 무심무실공을 펼쳐도 독섬칠공의 독기가 피어난다.
독의가 전해준 원정에는 독기가 없다. 독기를 운용하는 기혈만 타통시켜 주었다.
독기를 뿜어내려면 외부에서 독을 흡취해야 한다.
실제로 독을 먹고, 원정에 갈무리하는 과정을 거친다. 말로만 듣던 독인(毒人)이다. 다만 독기를 뿜어내지 않을 때는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다는 점이 전설 속의 독인과 다르다.
호발귀는 이런 원리를 습득했다.
독섬칠공의 구결을 깊이 이해해서 완전한 내 것으로 만들었다.
움막을 나오기 전, 독단 하나를 복용했다.
- 이건 신경을 마비시키는 신경독이야. 두꺼비에서 짜낸 독인데 매우 강해. 이름은 없어. 내가 만든 거라서.
손바닥을 활짝 폈다. 운기를 해서 진기를 장심에 모은 후, 검지 끝 상양혈(商陽穴)을 통해 기운을 뿜어냈다.
츠읏!
무심무실공과 함께 섬독이 흘러나갔다. 독단이 기체로 변해서 허공에 뿌려졌다.
호발귀는 무인 뒤로 다가갔다.
등 뒤에서 그의 입을 막고, 단검으로 심장을 찔렀다.
무인이 바르르 치를 떤다. 무엇인가 말을 하려고 입술을 달싹거린다. 하지만 음성은 새어 나오지 않았다. 이미 신경이 마비되어서 몸이 굳어졌다.
쿵!
무인이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