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十七章 호굴(虎窟) (1)
“죽였어?”
홀리가 깜짝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귀검이 총주를 죽였다. 살단 총주에 심장에 검을 꽂아 넣었다. 총주의 심장에서 피가 솟구친다.
총주가 무너진다. 두 무릎을 털썩 꿇었다. 무릎을 꿇고 싶어서 꿇은 것이 아니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저절로 굽혀진 것이다. 물론 의식은 이미 사라졌고.
귀검은 계속 검을 밀어 넣었다.
푸우욱!
검이 심장을 뚫었다. 그리고 등까지 뚫었다.
붉은 핏물이 검신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린다. 아니, 곧 격한 시냇물이 되어서 콸콸콸 쏟아진다.
이런 검은 생명을 순식간에 빼앗는다.
총주가 어깨를 움찔거렸다.
숨이 떨어지기 직전에 보이는 경직 현상이다.
귀검이 검을 뽑았다. 그리고 무릎을 꿇은 채 머리를 떨군 총주를 묵묵히 지켜봤다.
두 사람의 승부는 귀검의 승리로 끝났다.
“이거, 이거.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러면 난리 나는데.”
해자수가 살단 총주의 죽음을 보고는 얼굴빛이 새파랗게 질려서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맸다.
“그렇지? 이러면 안 되는 거지?”
“안 되죠. 당연히 안되죠.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저지른 건지.”
해자수가 귀검을 멍하니 쳐다봤다.
“뭐가 안 된다는 거야? 두 사람이 싸우면 한 사람이 죽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옆에서 당홍이 물었다.
“우리 빨리 피하는 게 좋겠어. 여기 있다가는 정말로 날벼락 맞는 일이 생기겠어.”
홀리가 급히 말했다.
“무슨 일인데?”
도천패가 상처를 살피며 물었다.
그는 요행이 움직일 수 있다.
살단 총주의 칼이 옆구리를 파고들면서 다리 신경을 건드린 것 같다. 하지만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 다리도 며칠 푹 쉬어주면 괜찮아질 것 같다.
“귀검이 총주를 죽인 일은…… 이건 공존이 깨진 거야. 혈천방과 천살단의 공존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봐야 해. 이제 양쪽이 치열하게 싸울 거고.”
“그럼 우리한테는 잘 된 거 아냐?”
“아이고, 잘되기는 뭐가 잘 돼! 저자들 적이라고 간주한 사람들은 눈에 띄는 대로 죽일 거거든. 중원 전체가 아주 큰 싸움판이 된 거지. 아마도 우린 제일 먼저 죽게 될걸?”
해자수가 손짓과 발짓 섞어가며 말했다.
“빨리 피하는 게 좋겠어.”
홀리가 다급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씨는 내가 데려갈 수 있는데, 거 덩치가 워낙 커서 데려갈 수 있겠어?”
해자수가 당홍을 쳐다보며 말했다.
도천패는 몸을 움직일 수 있지만 자유롭지는 못하다. 한쪽 다리가 거의 마비 상태다.
“내 몸은 내가 건사할 수 있어.”
도천패가 등 뒤에 매고 있던 칼집을 끌러냈다.
“가지. 일단 몸부터 피하고.”
도천패가 칼집을 지팡이 삼아서 절뚝거리고 숲으로 뛰어들었다.
잡랑은 귀검을 공격하지 못했다.
귀검이 여전히 총주를 쳐다보고 있다. 귀검의 모습이 총주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 같았다.
귀검과 총주는 오랜 시간 숙적이었다.
서로가 강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경시하면서도 존중했다.
결국, 승자는 귀검이다.
귀검이 죽은 총주를 애도한다.
잡랑은 귀검이 완벽한 탈진 상태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지금 공격하면 귀검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귀검이 지옥유부검이라는 검공을 펼친 것은 알지만, 지옥유부검이 어떤 검인지도 알지 못했다.
솔직히 잡랑은 지옥유부검을 처음 들었다.
그들은 살단 총주가 공격하는 것을 봤다. 하지만 귀검이 반격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총주의 가슴에 검이 꽂혀있었다.
그러니 어떻게 공격하나. 공격하면 개죽음당할 게 뻔한데, 그래도 공격해야 하나?
이런 행동은 총주의 예상을 많이 벗어난 것이다.
총주는 귀검이 지옥유부검을 펼친 이상 성공해도 죽을 것이라고 봤다. 잡랑이 탈진한 자를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는데, 실제로 잡랑은 공격하지 못했다.
그렇게 반 각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총주는 완전히 숨이 떨어졌다.
귀검은 그때서야 돌아섰다. 그리고 무척 힘든 모습으로 걸어갔다.
잡랑은 귀검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공격하지 못했다.
걸음걸이가 힘든 것은 육체적으로 힘든 것보다 정신적으로 힘든 탓이 크다고 봤다. 그 역시 총주의 죽음을 애도한다고, 원래 숙적끼리는 그렇지 않나.
잡랑은 귀검이 멀리 걸어간 후에야 황급히 달려와서 총주의 상태를 살폈다.
예상했던 대로 총주는 죽었다.
심장에서 핏물이 펑펑 쏟아져 나올 때부터 죽음을 짐작했는데, 역시 기적은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잡랑은 머릿속에 새하얘졌다.
총주도 인간인 이상 갑자기 죽을 수 있지만, 그들 머릿속에는 그런 생각이 들어있지 않았다.
“빨리! 빨리 본문에 연락해!”
우두머리를 잃은 잡랑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런 게 고작이었다.
* * *
후미에서 일이 생겼다. 도천패에게 무슨 일인가 터졌다.
호발귀는 잠깐 고개를 돌려서 뒤를 살펴봤지만, 걸음을 옮기지는 않았다.
도천패를 믿는다.
무엇보다도…… 호발귀는 인기척을 감지했다.
도천패 쪽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칼이 허공을 가르고, 비명이 터진다.
누군가가 도천패를 공격하고 있다.
그런데도 도천패에게 가지 못하겠다. 자신을 노리는 살기가 매우 날카롭다.
‘귀무살!’
호발귀는 단번에 상대를 알아냈다.
귀무살은 엄밀히 말하면 무인이 아니다. 살인자다. 무공 성취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만 죽일 수 있다면 만족한다.
이들을 이끄는 귀무령이 오직 무도만 추구하는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다르다.
‘정말 왔네?’
호발귀는 두 귀를 활짝 열었다.
앞에 한 명, 뒤에 한 명. 모두 두 명이다.
강하에서 움직였던 귀무살은 다섯 명이었다. 한 명은 죽었고, 네 명 남았다.
이 두 명이 네 명 중 두 명일까? 아니면 강하에는 가본 적도 없는 귀무살일까.
이 두 명이 강하에서 본 귀무살이라면 확실히 귀검이 보내준 선물이다.
귀검은 이 두 사람을 보내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이들을 그냥 보내줄 리는 없고, 반드시 무엇인가는 얻어갈 것이다. 그게 무엇인지 짐작도 안 간다.
홀리 말을 빌리면 혈천방은 자신을 원한다.
혈마 무공을 원하는 게 아니다. 혈마 무공을 수련한 마인, 세상을 피로 물들일 흉마를 원한다.
자신을 회유하거나 납치해야 한다.
귀검이 선물을 보냈다는 것은 회유하겠다는 뜻인데, 누가 봐도 호발귀를 회유될 사람이 아니다.
그럼 남은 것은 납치다.
도대체 귀무살 두 명을 생으로 죽이면서 무엇을 얻고자 하나.
솔직히 그런 것은 알 바 아니다. 자신을 회유하든 납치하든 마음대로 하라고 해라.
자신은 귀검은 보내준 선물을 받는다. 기꺼이 받아들인다.
‘나와.’
호발귀는 서둘지 않았다.
스읏!
뒤에 있던 자가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검을 가졌다. 그는 숲에서 나오기 전, 움직임에 방해가 될까 봐 검집을 슬그머니 땅에 놓았다.
호발귀는 이 자를 안다.
강하 귀무살 다섯 명 중 검을 든 자는 두 명이었다. 그중 한 명은 이미 죽였고, 남은 한 명이다. 물론 강하에 가본 적이 없다면 낯선 귀무살일 것이다.
호발귀는 앞에 있는 귀무살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렸다.
스스스스슷!
검을 든 자가 먼저 공격을 시도했다.
스읏! 스슷! 스으으읏!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신형을 매우 매끄럽게 움직인다. 뱀이 허리를 틀 듯이 좌우로 움직이는데, 이상하게도 앞뒤 거리가 쑥쑥 좁혀진다.
호발귀는 검수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감지했다.
무심무실공의 세계에 들어서면 모든 움직임이 정지한다.
무심무실공의 고요는 흔들리는 유동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흔들린다는 건 빠르게 움직인다는 것이다.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가 있다는 것이다. 움직임을 주시하지 않고 물체를 주시하면 움직임까지 덤으로 읽힌다.
강하에서 본 귀무살은 대단한 고수였다. 하지만 지금은 매우 약해 보인다. 움직임이 정확하게 읽힐 뿐만 아니라 빠르지도 않다. 검기도 약하다.
스릉!
호발귀는 검을 뽑았다.
호발귀는 아직 새 검을 구하지 못했다. 귀검과 싸울 때 사용했던 반 토막 난 검을 들고 있다. 하지만 불안하다는 생각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상대가 너무 약하다.
앞에 있는 자는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아마도 접전이 시작될 즈음, 기습을 가해올 생각인 것 같다.
쒜에에엑!
뒤에서 다가온 검수가 발목을 잘라왔다.
이 수법, 혈 리가 사용했다. 발목을 치는 척하다가 검을 위로 쭉 그어 올릴 것이다.
귀무살의 무공 또한 혈마 무공을 바탕으로 한다.
귀무살은 혈마 무공을 발전시키거나 보완하지 않았다. 받을 부분만 받았다. 다른 부분은 완전히 새로운 무공으로 대체했다. 그래서 귀검의 무공은 낯설고, 이 자의 무공은 낯익다.
호발귀는 기습을 느끼지 못한 척 조용히 대기했다.
츄릿!
검이 발목을 후려쳤다.
그 순간, 호발귀는 번쩍 신형을 솟구쳤다. 동시에 허공에서 신형을 틀어서 아래로 내리꽂혔다.
파르르르릉!
앞에 숨어있던 자가 그제야 모습을 드러냈다.
맞다! 이 자들, 강하에서 봤다! 동패와 왕소를 죽인 자들이다. 역시 귀검의 선물이다.
파르르릉! 팡팡팡!
앞에서 나타난 자는 도끼 두 자루를 맹렬하게 휘둘렀다.
귀무살의 몸이 중심이다. 도끼 두 자루, 팔 두 개가 회전 날이다. 몸을 중심으로 도끼가 무섭게 회전한다. 돌풍을 일으키는 팽이가 되어서 달려든다.
슈웃! 퍼억!
호발귀는 내리꽂히는 자세를 그대로 유지했다. 다만 진기를 백회혈로 몰아넣어서 속도만 한층 빠르게 했다.
파앙!
반 토막 검이 검수의 팔을 내리찍었다.
호발귀는 검을 놓아버리고 신형을 퉁겨 올렸다. 동시에 구뢰마권으로 쌍부를 격타했다.
타앙! 팡! 팡!
쌍부의 회전 도끼가 구뢰마권을 맞고 비틀거렸다. 순간,
타악!
두 사람 앞에서 귀화미요공이 터졌다.
“웃!”
잔살이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호발귀는 그가 물러서도록 내버려 두었다. 호발귀의 공격 목표는 쌍부였다.
쉬이익!
힘차게 뻗어 올린 오른발이 쌍부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쌍부는 반사적으로 도끼를 들어서 다리를 막았다. 도끼가 다리를 내리찍으려고 했다.
한데, 호발귀의 각법이 변했다.
머리를 쳐가던 다리가 갑자기 위로 쭉 솟구치더니 쌍부의 머리를 향해 뚝 떨어졌다.
퍼억!
쌍부는 머리가 찍히는 순간, 목뼈가 낭창거리는가 싶더니 풀썩 꼬꾸라졌다.
호발귀는 천천히 돌아섰다.
역시 맞다. 뒤에서 공격한 검수…… 강하에서 본 귀무살이다.
“당신들 참 잔인했어.”
호발귀가 손가락을 붙여서 빳빳이 곤두세웠다.
“후후후! 지금 너는 잔인하지 않다고 보나? 사람 죽이는 일은 모두 잔인한 거야. 당시 우리는 더욱 잔인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이 꼴을 당하는 거고.”
잔살이 실소를 흘리며 말했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하려고. 당신들이 했던 대로 당신들에게 돌려주려고.”
슈웃!
호발귀는 수도(手刀)를 쫙 펴서 곧장 찔러갔다.
잔살이 검을 들어 올렸다. 검초를 전개할 생각이다. 막 도약하려고 한다. 그때,
꽈르르릉!
갑자기 호발귀의 수도에서 용 울림소리가 일어났다.
수도가 공기를 찢으면서 달려든다. 역천금령공을 실은 수도는 철판도 뚫을 정도로 강력하다. 무엇보다도 떨어지는 번개가 느려 보일 정도로 빠르다.
쒜에에에엑! 퍼억!
관수(貫手)가 잔살의 목젖을 뚫고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