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十六章 촉발(觸發) (5)
“잔살, 쌍부. 호발귀를 막아.”
“알겠습니다.”
잔살과 쌍부가 두 손 모아 읍했다.
“호발귀, 강하에서 너희가 쫓던 풋내기가 아니다. 내 검을 받아낼 정도로 강해졌어.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죽는다.”
“넷!”
두 사람이 힘차게 대답했다.
귀검은 눈을 가늘게 뜨고 두 사람을 지긋이 쳐다봤다. 그러다가 툭 던지듯 말했다.
“너희, 죽으러 가라는 건데 불만 없나?”
“없습니다.”
“지금 이런 일에 너희가 차출되었다. 왜 차출된 것 같나?”
“강하에서 일을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그 일이 저희를 다시 부른 것 같습니다.”
“잘 알고 있군.”
귀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우리 일은 특별하다. 뒤처리를 깨끗하게 하지 못하면 지금처럼 반드시 탈이 난다. 제대로 하지 못하면 몇 년, 몇십 년이 지나도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게 우리 일이다. 이번에 살아나면 평생 이번 교훈을 잊지 마라.”
“넷!”
잔살과 쌍부가 힘차게 대답했다.
“난 진심으로 너희가 살기를 바란다. 가라.”
“지도, 감사합니다!”
힘찬 대답과 동시에 잔살과 쌍부가 숲으로 뛰어들었다.
귀검은 허리에 매달린 검을 툭 쳤다.
철컥!
검이 검집에 부딪히면 맑은소리를 울렸다.
호발귀와 싸울 때는 시중에서 판매하는 청강 장검을 사용했다. 이번에는 자신의 애검이다. 날카롭기가 면도날 같아서 얇은 종이도 긋기만 하면 반듯하게 잘라낸다.
귀검은 잠시 생각했다.
그는 이것저것 사정 봐주면서 움직이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
잔살과 쌍부에게 말했던 대로 귀무살이 행하는 일은 티끌만큼도 허점이 있어서는 안 된다.
모든 일에 완벽해야 한다.
그 말은 귀무살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귀무살 영주인 귀무령에게도 해당한다.
그는 호발귀는 놓쳤다.
외인이 와서 습관적으로 몸을 물렸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바로 티끌이었다.
‘호발귀를 죽였어야 해. 후후!’
귀검은 피식 웃었다.
“누구냐!”
물음이 떨어지기 전에 검광이 번뜩였다.
“크윽!”
물음을 던진 자는 상대방이 누군지 알지도 못한 채 검을 맞았다.
그저 힘없이 피식 쓰러졌다.
귀검은 연달아 검초를 펼쳤다.
쒜에엑! 쒜엑!
“크아아악!”
잡랑들이 비명을 토해냈다.
일 초에 한 명, 필살 검이 터진다. 잡랑들이 싸워보지도 못하고 풀썩풀썩 쓰러진다.
귀검은 대충 검을 그어대는 게 아니다.
목을 베이고도 살 수 있다면 살아라. 심장이 찔려서 피가 콸콸 쏟아지는데 어떻게 살까? 살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으면 즉사한다.
잡랑들이 그렇게 쓰러졌다.
“죽엇! 크악!”
뒤늦게 귀검의 등장을 알아챈 잡랑이 분분히 공격을 펼쳤지만, 역부족이다.
일 검에 한 명씩 여지없이 쓰러졌다.
도천패는 일어서려고 발버둥을 쳤다.
칼이 옆구리를 쑤시면 지나갔는데, 일어설 수가 없다. 몸이 마비된 것 같다.
“훅!”
도천패는 인상을 잔뜩 찡그리면서 무릎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곧 힘이 빠졌다. 어떻게 된 게 팔에도, 다리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완벽하게 무기력하다.
“새끼, 어디를 어떻게 친 거야?”
도천패가 중얼거렸다.
“어이! 쥐새끼! 일어서지 마. 그냥 편하게 가라고.”
총주가 칼을 들어 올렸다.
도부수가 참수하듯이 머리를 잘라내려고 한다. 그때,
“아아악!”
잡랑이 내지르는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총주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고개를 돌렸다. 비명이 들려 온 곳을 쳐다봤다.
“뭐야? 내 뒤를 깐 거야?”
총주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이제 막 쥐새끼 한 마리를 잡았는데, 이러면 재미없지.”
총주가 왼손으로 도천패의 뒷머리를 탁탁 내리쳤다.
잡랑 무인을 거침없이 베면서 다가오는 자가 누군지 이미 짐작하고 있다.
치렁치렁 늘어진 긴 머리, 이마에 두른 검은 두건, 덥수룩한 수염, 거의 육 척에 이른 키, 검초를 쓰면서도 죽음처럼 고요하고 서늘한 눈동자.
“날 노리고 온 손님인데, 마중 가야지. 어이, 쥐새끼. 내가 저놈을 베기 전까지 도망가. 너희 같은 놈들이 잘하는 거 있잖아? 쥐구멍 찾아서 도망가는 거. 후후후!”
총주가 웃었다.
두 사람이 마주 섰다.
한 사람은 살단 총주, 한 사람은 귀무살 영주인 귀무령이다.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두 문파의 거물이 병기를 들고 서로를 노려본다.
“나 잡으러 온 거야?”
“누가 잡힐지는 싸워봐야 아는 것이고, 피를 보기에는 좋은 날씨 같아서.”
“날이 좋으면 담벼락에 쭈그리고 앉아서 햇볕이나 쬘 일이지, 살귀놈의 새끼가 어딜 싸돌아다녀.”
“훗! 세월이 꽤 오래 지났는데도 그 입은 여전하군. 입에 문 걸레는 빨지도 않나?”
“쥐새끼, 사람이 변하면 죽는 법이야.”
“내가 살귀라면 넌 혈귀. 우리 둘 다 죽을 시기는 놓친 것 같고. 지금이라도 보내주자고.”
스읏!
귀검이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쥐구멍을 나온 거야? 어지간해서는 꼼짝도 안 하더니.”
“방주님이 네 심장을 원하시니 어쩔 수 있나.”
“내 심장?”
탁탁!
총주가 왼손으로 자신의 심장을 쳤다.
“심장, 여기 있어. 가져가. 가져가려고. 뭐해? 빨리 와서 후딱 가져가. 마음 변하기 전에.”
총수가 귀검을 재촉했다.
저벅! 저벅!
귀검이 걸어왔다. 거침없이 총주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쒜에엑!
귀검이 다짜고짜 검을 휘둘렀다.
귀검의 검은 검법을 모르는 어린아이가 막대기를 휘두르는 것 같다. 매우 어설프고, 뭔가 어색하다. 하지만 검날이 허공을 긋는 순간, 검기가 변한다.
쒜에에엑!
검이 흐른다. 그리고 소리가 검을 뒤따른다.
소리보다 빠른 검이 총주를 후려친다.
스읏!
총주는 허리를 숙여서 검을 피했다.
귀검이 총주의 머리카락을 베어내며 지나갔다.
“이봐. 심장을 가져가랬지. 머리카락으로 가져가면 어떻게 해? 그걸로 만족하겠어?”
쒜에엑! 쒝!
귀검은 대꾸도 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총주도 칼을 휘둘러 마주쳐갔다.
쒜에엑! 쒝! 쒜에엑!
한동안 두 사람은 상대방을 적중시키지 못하고 헛손질만 했다.
눈 깜짝할 순간에 십여 초를 교환했다. 하지만 실낱같은 차이로 스쳐 지나기는 했지만, 적중시키지는 못했다.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 검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것은 아무것도 안 한 것과 마찬가지다. 손톱만큼이라도 살을 파내고, 피를 흘리게 만들어야 한다.
퍽!
귀검이 먼저 살을 파냈다.
그는 정확하게 총주의 심장을 쑤셨다. 하지만 검은 일 촌 깊이에서 더 들어가지 않았다.
“후후! 쥐새끼!”
총주가 웃었다. 동시에 손에 들린 살도가 귀검의 복부를 갈랐다.
츄릿!
칼은 귀검의 검은 무복을 쭉 찢으며 지나갔다.
귀검의 배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정확하게 가격당하지는 않았지만, 완전히 피하지도 못했다.
귀검이 애검을 들어서 살폈다.
검은 굉장히 예리하다. 살을 파고들면 단번에 등 뒤까지 뚫고 나간다. 그런데 이번에는 일 촌, 손톱 한 마디조차 파고들지 못했다. 철판에 가로막힌 듯 뚝 멈췄다.
“반야호신공이 더 강해졌군.”
“곧 죽을 놈이 그런 건 알아내서 뭐 해?”
“후후!”
귀검이 웃었다. 그리고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 같은 놈들은 죽어도 좋은 데 못가. 아마도 지옥에 떨어질 거라고 생각되는데. 거기서 아부를 잘하면 지옥 사자에게 한두 수 잔재주를 배울 수 있어.”
“지옥유부검(地獄幽府劍)!”
“그거면 반야호신공을 뚫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그래? 큿큿! 네 말대로라면 오늘 죽는 놈은 내가 되겠군. 내년 오늘이 내 제삿날이야.”
스릉! 스르릉! 쩌엉!
귀검의 검이 새파란 검광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니, 온갖 빛이 쏟아져 나온다 싶더니 이내 뚝 그쳤다. 모든 빛이 검에 집중되었다. 그리고 빛없는 검, 무광검(無光劍)이 되었다.
무광은 무기(無氣)다.
귀검은 진기를 끌어올린 상태가 아니다. 텅 비었다. 아니, 언제든 충만할 수 있다.
일단, 그는 텅 비었다.
누군가가 그를 공격한다면 단번에 격살할 수 있다.
귀검이 다시 진기를 일으켜서 반격하면 어떻게 될까? 그럴 만한 시간이 없다. 특히 총주 같은 초고수를 앞에 두고 진기를 풀어헤치는 것은 죽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이것이 지옥이다.
귀검에게는 지옥밖에 없다. 살길은 없다. 사방을 둘러봐도 오직 지옥뿐이다.
총주가 공격하는 순간, 지옥에서 한 줄기 빛이 솟구친다.
그 빛은 귀검이 만든 빛이 아니다. 생령(生靈), 귀령(鬼靈)을 담은 검이 스스로 움직인다. 공격해 오는 자의 허점을 뚫고 들어가서 텅 빈 곳을 친다.
지옥유부검은 검신일체(劍身一體)를 넘어서 검령일체(劍靈一體)에 이르러야만 펼칠 수 있다.
총주가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후후! 정말 지옥유부검이군. 어쩐지 쥐새끼가 자신 있게 걸어 나왔다 싶었지.”
스읏!
총주도 진기를 끌어내어 살도에 집중시켰다.
귀검이 지옥유부검을 전개했다.
지옥유부검은 매우 큰 단점이 있다.
일 검에 전력을 쏟아붓기 때문에 초식을 전개한 후에는 극심한 탈진 상태가 일어난다.
성공 여부에 상관없이 한동안 움직이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귀검은 이번 검초로 승부를 보겠다는 거다. 총주를 죽이겠다는 뜻이다.
자신 역시 살아남지 못한다. 주위에는 잡랑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만약, 귀검이 탈진 상태를 보이면 가차 없이 공격할 것이다.
이래저래 귀검은 죽는다.
귀검은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검초를 꺼내놓았다.
총주는 반야호신공을 끌어내서 전신을 보호했다. 동시에 영혼을 칼에 심었다.
츠으으읏!
도신일체가 이루어졌다.
총주는 사라지고 오직 칼만 남았다.
칼이 움직이면 번개처럼 빠르다. 움직이지 않고자 한다면 꼬박 날을 밝힐 수 있다.
쒜에에엑!
칼이 움직였다.
귀검은 먼저 움직이지 않는다. 지옥에서 기다린다. 그래서 일부러 칼부터 움직여주었다.
쒜에에엑!
칼이 귀검 코앞까지 다가갔다.
귀검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다. 꼼짝도 하지 않는다. 망부석을 치는 느낌이다.
퍼억!
살도가 귀검의 정수리를 가격했다. 순간,
퍽!
총주의 가슴에서 매우 짧고 진한 파육음이 터졌다.
“큭!”
총주는 눈을 부릅떴다.
귀검이 심장에 꽂혔다.
반야호신공이 흩어지면서 단단하게 밀집되어 있어야 할 진기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검이 푸우욱 밀고 들어온다.
“이거……”
총주가 귀검을 쳐다봤다.
귀검은 냉오하게, 감정 없는 눈으로 그를 쳐다본다. 그리고 마지막 힘을 불어넣었다.
푸욱!
귀검이 심장을 관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