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十六章 촉발(觸發) (4)
“길이 끊겼습니다.”
잡랑이 보고했다.
“길이 끊겨?”
총주는 눈살을 찡그렸다.
지금까지 잡랑이 길을 잃은 적은 없다. 목표를 두 눈으로 보고 쫓는데, 길을 잃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길을 잃어버렸다?
중간에 누군가가 농간을 부렸다.
“우리 추적술을 잘 아는 놈이 있군. 우리에 대해서 아주 잘 알아. 재미있네.”
총주가 웃었다. 한편으로는 고개도 갸웃거렸다.
농간을 부린 자가 누군가?
호발귀는 흔적을 지울 능력이 없다. 아니, 아예 누가 쫓아오는 것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런 점은 혈천방도 마찬가지다.
혈천방은 살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저번에는 귀무살이 급습을 당했기 때문에 망한 것이고, 만약 반대 상황이라면 잡랑이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
잡랑과 귀무살은 누가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달라진다.
그러니 귀무살은 흔적을 지우지 않는다.
누군가가 쫓아오는 것을 알게 되면 오히려 함정을 파고 기다린다. 상황이 아무리 불리해도 역습을 가할 생각부터 한다. 쫓아오지 말라고 흔적을 지우지는 않는다.
흔적을 지운 자가 호발귀나 혈천방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 누가 흔적을 지우고 있나? 누가 있어서 잡랑이 길을 잃을 정도로 완벽하게 흔적을 제거하나?
호발귀는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뒷덜미까지 낚아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손을 뻗어보면 한 걸음쯤 떨어져 있다.
대단히 약게 움직인다. 아니, 간발의 차이로 빠져나가니 운이 좋은 것인가?
제 삼의 세력이 개입했다.
총주가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앞장선다. 뒤처지는 놈들은 쫓아올 생각 말고 돌아가. 귀찮다.”
총주는 웬만해서는 직접 앞장서지 않는다.
총주가 직접 나서려면 살단 총주의 모든 것을 내걸고 반드시 잡아야 할 자여야 한다. 그것도 수하들이 이미 제 능력을 모두 발휘했다고 생각할 때에 국한된다.
지금이 그런 때다.
“가자!”
쉬이이익!
총주가 신형을 띄웠다.
총주의 눈썰미는 인간의 안력(眼力)을 벗어난다. 인간과 똑같이 생각하면 오산이다.
인간이 독수리의 눈을 가졌다면 세상을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보통 인간과 독수리의 눈을 가진 인간은 능력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보통 사람은 안일하게 늘어져 있을 때, 독수리 눈을 가진 자는 화살에 살을 재운다. 누군가는 경계심을 풀어헤치고 잠을 잘 때, 누구는 풀숲을 조용히 기어간다.
이 정도면 흔적을 모두 지웠다고 생각할 때, 독수리 눈은 사람이 손댄 흔적까지 찾아낸다.
총주는 인간 범주를 벗어난 인간이다.
쒝! 쒜에엑! 쒜에에엑!
잡랑들이 뒤처지지 않으려고 전력을 다해서 뒤쫓아갔다.
“내가 매력이 없나?”
홀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이고! 무슨 말을 그렇게 합니까. 매력이 없다니요. 매력이 철철 넘치죠.”
“그런데 저 사람, 내게 눈길도 안 주잖아.”
“그럼 아씨는 조금 전까지 목에 칼을 들이댄 사람을 나 너 좋다 하고 쳐다볼 수 있습니까?”
“응.”
“으응?”
“쳐다볼 수 있다고. 지금 쳐다보고 있잖아.”
“가만. 그러니까…… 지금 아씨 말은…… 아씨가 저 호발귀를 좋아한다 이 말입니까?”
“좋아한다기보다는 끌려.”
“아이고, 그 말이 그 말이죠, 뭐.”
“왜 날 안 보지?”
“솔직히 저놈, 지금 아씨에게 신경 쓸 정신이나 있겠어요? 혈마가 된다, 안 된다 하는 마당인데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니죠. 그 뭐냐. 아씨가 옷을 홀딱 벗고 있어도 눈에 안 들어올 겁니다.”
“뭐야! 내가 옷을 왜 벗어!”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죠. 지금 저놈 머릿속에는 그냥 뭐 혈마 무공만 꽉 들어차 있어서. 그리고…… 아씨도 그렇지. 저놈이 끌리면 나중에 주문을 외워서 노예로 만든다 어쩐다 하는 말은 하지 말았어야지, 그런 말은 왜 합니까?”
“사실이잖아?”
그때, 옆에서 듣던 도천패가 기가 막혀서 큰 숨을 토해냈다.
“하아! 내참 기가 막혀서. 이것들은 어떻게 입에서 나오는 말마다 모두 개똥이야.”
해자수가 홀리에게 즉시 말했다.
“저런 말도 신경 쓰지 마세요. 세상에 신경 쓸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하찮은 말들을 일일이 신경 씁니까?”
“신경 안 써. 난 호발귀만 봐.”
홀리를 호발귀를 쳐다봤다.
호발귀는 백 장 앞에 있어서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홀리 눈에는 보이는 듯하다.
당홍이 ‘미친 것들’이라는 뜻으로 손가락을 들어 머리에 대고 빙글빙글 돌렸다.
그때, 갑자기 도천패가 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홀리는 인상을 확 찡그렸다.
“왜요? 상처가 아픕니까?”
홀리가 인상을 찡그리자 해자수가 바싹 다가서며 물었다.
“쉿!”
홀리가 손가락을 입에 대고 조용히 시켰다.
모두 즉시 움직임을 멈췄다. 도천패와 홀리가 동시에 몸을 경직시킨다. 무슨 일이 있다.
당홍이 땅에 납작 엎드려서 귀를 댔다.
“음!”
당홍이 신음을 흘렸다.
“꽤 많은데…… 몇 명이나 돼?”
도천패가 물었다.
“대략 이백 명.”
“잡랑 이놈들이군. 살단은 안 올 줄 알았는데.”
스릉!
도천패가 칼을 꺼냈다.
호발귀는 백 장 정도 떨어져 있다. 지금 위기가 호발귀에게는 전해지지 않는다. 설혹 싸움이 벌어진다고 해도 호발귀는 돌아서지 않는다.
호발귀는 귀검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귀검이 줄 선물을 고대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호발귀는 기다린다.
그러니 이번 싸움은 뒤에 남은 사람들이 처리해야 한다.
“이백 명. 꽤 많군. 싸울 수 있나?”
도천패가 홀리에게 물었다.
홀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호발귀에게 당한 상처가 매우 깊다.
복부에 검을 박힌 것, 외상은 대수롭지 않다. 하지만 부러진 검에 응축되어 있던 무형기는 매우 치명적이었다. 당홍이 재빨리 손을 썼지만, 무형기 중 일부가 홀리의 내부로 흘러들면서 내가진기를 건드렸다.
싸울 수 있는 몸이 아니다.
“그럼. 빠져 있어. 가까이 있으면 다친다.”
“지금 나 걱정해주는 거야?”
“걱정이 아니고.”
“걱정, 맞는데?”
“그렇게 나쁜 사람 같지 않아서 말해주는 거야. 머리가 좀 어떻게 된 것 같기는 한데, 조금 모자란다고 해도 나쁜 인간은 아니니까 피해 있어.”
“같이 피하는 건 어때? 어차피 승산도 없는 것 같은데.”
“힘 좀 쓰지 뭐. 딱히 할 일도 없잖아. 당매(唐妹), 독도 함께 쓰자. 아무래도 정상적인 싸움은 힘들어.”
도천패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당매? 갑자기 호칭이 왜 그래?”
당홍이 눈빛을 반짝이면 되물었다.
“어차피 책임지기로 했고. 아! 솔직히 까놓고 말하면, 너 마음에 들어. 그러니 툭 까놓고 지내자. 부인(婦人), 내자(內子). 뭐라고 부를까 고민했는데, 모두 낯 간지러워서. 당분간 당매라고 부를 테니 그렇게 알아.”
도천패가 그답지 않게 중얼중얼 빨리 말했다.
“뭐? 호호호! 고민했다고? 호호!”
당홍이 깔깔거리면서 웃었다.
“왜? 듣기 싫어? 바꿀까?”
“아니. 듣기 좋아. 좋다! 오늘 아주 기분 좋은 말, 들었으니까 내가 한턱 쏜다.”
당홍이 재빨리 움직이면서 숲 곳곳에 독을 뿌리기 시작했다
“멈춰! 독이다!”
총주가 말했다.
잡랑이 일제히 멈췄다.
“피독단!”
총주가 품에서 검은 단환을 꺼내 입에 넣었다.
잡랑들이 일제히 같은 단환을 꺼내 삼켰다.
“조금이라도 몸에 이상 있다 싶으면 뒤로 빠져라. 무리할 것 없어. 다 잡은 쥐새끼들이야. 괜히 개죽음당할 필요 없으니까, 괜찮은 놈들만 간다. 따라와!”
총주가 앞으로 치달렸다.
“독이 안 통해!”
당홍이 당황해서 말했다.
살단 잡랑들이 독이 잔뜩 뿌려져 있는 숲을 질주하고 있다. 전혀 독기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만혈독단(萬血毒丹)을 복용한 거지.”
해자수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태연히 말했다.
“만혈독단!”
당홍이 깜짝 놀라서 해자수를 쳐다봤다.
“몰랐어? 아휴! 천살단 살단과 싸우는 사람이 만혈독단도 모르면 어떻게 해?”
해자수가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반문했다.
“만혈독단이 뭐야?”
도천패가 물었다.
“말 그대로 독단. 이독치독(以毒治毒). 독으로 독을 제압한다는 거니까, 독성이 매우 강해야 해. 다른 독은 침범하지 못할 정도로. 해약이 없다면 살단 저 사람들…… 반 각 후에는 모두 죽어.”
해약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토록 지독한 독단을 아무렇지도 않게 삼켰다는 거다. 나중에 해독한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일단 중독되었던 것이니 몸에 무리가 갈 건 뻔한데.
“저놈들 옛날에 혈마가 펼친 천망독진(天網毒陣)도 뚫고 들어온 놈들이야. 아주 지독하다고.”
해자수가 이백 년 전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
확실히 음문은 이백 년 전에 있었던 혈마대겁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지금도 혈마대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주역은 당연히 호발귀일 것이고.
쉬이이잇!
앞장서서 숲을 뚫고 나오는 사람이 보였다.
멧돼지 가죽을 둘러쓰고, 거칠게 자란 턱수염, 햇볕에 그을린 피부, 혈광을 뿜은 눈빛, 총주다.
총주가 도천패를 봤다.
총주가 걸음을 멈추자 잡랑들도 함께 멈췄다. 그리고 그들 모두 도천패 일행을 봤다.
쒜에에엑!
잡랑들이 득달같이 달려온다.
“이 사람들 데리고 피해.”
도천패가 당홍을 등 뒤로 밀어내며 말했다.
“너. 죽으면 안 돼!”
“걱정하지 마. 이래 봬도 대력금강이야.”
쉬링!
도천패가 자신 있다는 듯 허공에 큰 칼을 휘둘렀다.
쒜에엑! 퍽!
앞장서서 달려오던 잡랑이 힘도 써보지 못하고 털썩 쓰러졌다.
어차피 말은 필요 없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안다. 양보할 수 없는 것을 원한다.
쒜에엑!
도천패가 신형을 번뜩이며 대도를 휘둘렀다.
퍼억!
또 한 명이 어깨에서부터 가슴까지 깊게 베이면서 무너졌다.
피가 확 솟구쳤다. 쓰러진 사내들은 연신 붉은 피를 울컥울컥 쏟아냈다. 사지에 경련을 일으키면서 부르르 떨기도 했다. 의식이 없으면서도 살고자 한다.
쒜에에엑!
도천패는 쓰러진 자들을 보지 않았다. 다시 대도를 휘둘러서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잡랑을 후려쳤다. 한데,
까앙!
이번에는 잡랑을 치지 못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귀두도가 대도를 받아쳤다.
“웃!”
도천패는 손목이 얼얼해지는 충격에 헛바람을 토해냈다.
“어이, 쥐새끼.”
도천패 앞에 총주가 섰다.
“그거 말 참 곱게 한다. 쥐새끼라니. 이렇게 큰 쥐새끼 봤냐?”
쉬링!
도천패가 대도를 고쳐잡았다.
“크고 작은 건 문제가 아냐. 내 손에 무너지는 놈들은 모두 쥐새끼인 거야. 넌 안 무너질 것 같아? 아! 한 번 무너진 적 있잖아. 괜히 살려줬나?”
쒜에에엑!
도천패가 일도양단의 기세로 대도를 내리쳤다.
“어? 쥐새끼가 움직이네? 곱게 죽는 게 나을 텐데?”
총주가 귀두도를 들어 올렸다. 아니, 들어 올린다 싶은 순간, 어느새 삼변(三變)을 일으켰다.
까앙!
일변에 대도를 옆으로 밀어냈다.
까앙!
이변에 밀려난 대도를 다시 한번 격타해서 도천패의 중심마저 무너트렸다.
쒜에엑! 퍼억!
삼변에 옆구리를 베며 지나갔다.
“크윽!”
도천패는 신음을 흘리며 털썩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