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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76화 (76/500)

第十六章 촉발(觸發) (1)

이 여자는 누굴까? 누구이기에 다짜고짜 칼을 뽑아 드나?

여인은 거칠다. 방금 산에서 내려온 산도적처럼 자유분방하고, 거침이 없다.

천살단 무인은 아니다.

천살단 무인 중 거친 자들을 꼽자면 단연 잡랑이 떠오른다.

잡랑은 무척 거칠다. 하지만 그들이 드러내는 사나움에는 절제와 복종이 포함되어 있다. 우두머리에게 복종하는 늑대 무리 같은 사나움이다.

여인은 어떤 것에 묶여 있지 않다. 자유분방하다.

혈천방에서 온 무인인가?

방금 이 자리에는 귀무살 귀무령, 영주, 귀검이 있었다.

그가 검을 썼고, 여인도 봤다. 멀리서 보고 다가왔다. 싸움이 한참 진행 중일 때부터 봤다.

물론 귀검도 여인을 봤다.

귀검이 물러선 데는 여인이 다가온 영향도 있다.

귀검은 여인을 경계한다. 그렇다면 서로 잘 알지 못한다는 것, 혈천방 무인이 아니다.

천살단도 아니고 혈천방도 아니라면 여인은 어디서 온 누구인가?

여인은 고수다.

귀검이 눈살을 찌푸릴 만큼 강하다.

여인은 매우 거칠게 행동하지만, 몸은 차분하다.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입으로는 막 떠들고 있지만, 몸은 일절 요동하지 않는다. 뱀처럼 고요하다.

저 몸이 움직일 때, 어떤 빠름이 나타날지 기대된다.

그렇다. 여인은 호발귀 정도 되는 고수가 싸움을 기대할 정도로 특별한 기도를 뿜어낸다.

분명한 것은 싸움을 피하지 못한다는 것.

스읏!

호발귀는 반 토막 난 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차분히 말했다.

“날 보고 칼을 뽑았으니 날 벨 생각인 것 같은데, 빨리 끝내지. 나 지금 좀 피곤해.”

“호호호! 좋네.”

여인이 성큼 한 발짝 다가왔다.

그때, 중년인이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며 말했다.

“아이고,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싸우더라도 통성명은 하고, 여차여차하니 검 좀 보자. 이런 말도 좀 하고. 그런 다음에 싸워야지, 난 이렇게 싸우는 건 아니라고 봐.”

“비켜!”

여인이 싸늘하게 말했다.

“비키라면 비키지. 비켜야지. 비키기는 비키는데, 꼭 이렇게 싸울 필요가 있을까 해서 하는 말이지.”

중년인이 슬그머니 옆으로 비켜섰다.

그는 여인의 말을 거부하지 못한다.

“혈마 무공이야. 밖에서 보는 것하고, 직접 겪어보는 것하고는 천양지차. 당연히 만나봐야지. 그리고…… 이 정도 상처에 쓰려질 혈마 같으면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어휴! 아씨는 꼭 말을 정나미 떨어지게 한다니까. 알아서 하슈. 나야 뭐 구경이나 하고 떡이나 먹으면 되지.”

중년인이 완전히 물러섰다.

“나 음문 홀리. 넌 호발귀. 통성명했지?”

쒜에엑!

여인은 말이 끝나자마자 쾌속하게 달려왔다.

여인이 허공으로 몸을 붕 띄웠다.

아니, 허상이다. 환각이다. 위로 띄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땅에 납작 엎드렸다.

오른발 안 축과 왼발 바깥 축으로 땅을 찬다. 발바닥으로 땅을 딛지 않는다.

몸이 땅에 눕다시피 바짝 쓰러졌다.

여인은 그런 상태로 무척 빠르게 다가왔다. 달려온다 싶은 순간, 어느새 코앞에 있었다.

쎅! 쒝!

여인이 정강이를 후려쳤다.

호발귀는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여인은 즉시 한 발, 아니 그 이상을 따라붙으면서 칼을 위로 쭉 찢어냈다.

푸아아아악!

칼이 호발귀의 배를 가르고, 가슴을 가르고, 얼굴을 갈랐다.

호발귀는 다시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간발의 차이로 칼이 비껴갔다.

호발귀는 칼을 피해냈지만, 그야말로 간발의 차이다. 코끝을 스쳐 지나가는 칼끝의 감촉이 여실히 느껴진다.

귀검처럼 빠르지만, 종류가 다르다. 귀검은 검을 쳐내는 몸이 빠른 것이고, 여인은 초식이 빠르다. 조금이라도 초식을 지켜보려고 한다면 당하지 않을 수 없다.

여인의 초식은 본능적으로 피해야 한다.

하지만 본능이라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어느 때는 일어나지만 거의 절반 정도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본능이라는 말보다는 훈련된 반사신경으로 피해야 한다는 말이 맞는다.

호발귀는 계속 뒤로 물러서기만 했다.

여인의 칼을 감당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여인은 귀검의 검법과는 전혀 다른 빠름을 구사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여인의 칼이 상대하기 더 쉽다.

여인의 도법은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다.

눈에 익은 도법이라고 할까? 그래서인지 칼이 변화하는 모습도 어느 정도 예상된다.

쒜에엑! 쒜엑!

여인이 연신 칼을 휘둘렀다.

여인은 환상과 실제를 병행시킨다. 환영을 띄우고, 정반대 방향에서 실제 공격을 펼친다.

환영은 어떻게 일으키나?

여인의 경우에는 실제 행동으로 일으킨다. 허공으로 몸을 도약시켰다가, 순간적으로 뚝 떨어진다. 상대방의 눈이 여전히 허공을 쫓고 있을 때, 다리를 공격한다.

그러니 여인의 환영은 언제든 실제로 변할 수 있다.

‘이 칼. 어디서 봤는데. 어디서 봤지?’

호발귀는 계속 뒤로 물러서기만 하면서 여인의 도법을 주시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아!”

호발귀는 나직이 탄성을 내질렀다.

그렇다. 여인의 도법은 혈마 무공이다. 혈천도법이다.

호발귀가 알고 있는 혈천도법과 매우 흡사하다. 하지만 굉장히 많이 왜곡되었다. 왜곡? 변형되었다는 편이 맞다. 필요 없는 부분은 사라지고 오직 실전적인 부분만 드러났다.

옛날 무공은 사라졌다. 도법을 완전히 재해석해서 새로운 도법으로 탈바꿈했다. 원형 그대로의 혈천도법보다 빠르고 강하게 만들었는데, 호발귀 눈에는 너무 급해 보인다.

만약 어떤 무공을 오랜 시간에 걸쳐서 계속 발전 보완했다면 꼭 이런 무공이 될 것 같다.

호발귀는 즉시 반 토막 남은 검으로 혈천도법을 전개했다.

쒜에엑! 쒜에엑! 쒝!

검에서 파공음이 터져 나왔다.

몸을 머리, 몸통, 다리로 떼어낸다. 혈신삼분(血身三分)!

칼은 두 번 휘두른다. 하지만 어느 것이 먼저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정작 몸이 갈라질 때는 머리, 몸통, 다리가 동시에 떨어져 나간다.

“흥!”

여인이 코웃음을 흘리며 같은 혈신삼분으로 막았다.

창! 창!

여인은 수비에서 그치지 않고 가슴에 바람구멍을 낸다는 혈흉개공(血胸開空)을 펼쳤다. 지금처럼 두 병기가 정중앙에서 부딪쳤을 때, 손목만 살짝 비틀어서 힘껏 찌르면 가슴에 커다란 바람구멍이 뻥 뚫린다. 문제는 속도다. 두 병기가 부딪치는 찰나, 번개처럼 쭉 뻗는 칼이 터져 나와야 한다. 마치 병기가 마주치기 전부터 예측하고 펼쳤던 것처럼.

호발귀는 옆으로 비켜섰다.

스읏!

칼이 가슴 앞으로 흘러갔다. 아니, 혈타조두(血打鳥頭)가 툭 튀어나왔다.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새 머리를 빗겨친다. 새 머리 윗부분만 날아가면서 머리뼈를 드러낸다.

호발귀는 검을 곧추세웠다.

깡!

후려치는 칼과 일직선으로 세워진 검이 부딪쳤다.

두 사람은 숨 한 모금을 들이쉬는 짧은 순간에 벌써 삼 초를 교환했다.

‘확실히 혈천도법이다.’

호발귀는 확신했다.

이 세상에 혈마 무공을 사용하는 사람이 또 있다.

자신은 혈마록을 통해서 수련했는데, 이들은 어디서 혈마 무공을 배운 것일까?

슈웃!

검에 가로막힌 칼이 방향을 틀더니 머리를 후려쳤다.

이럴 경우, 대부분 사람은 머리를 숙인다. 후려치는 칼이라서 살짝 머리만 숙여도 피할 수 있다.

그게 함정이다. 혈천도법은 늘 예상을 벗어난다.

머리를 숙이는 순간, 칼 든 손 엄지손가락이 급격하게 꺾인다.

이런 간단한 동작 하나로, 도법이 휘두르는 칼에서 밑으로 뚝 떨어지는 낙하도(落下刀)로 바뀐다.

머리가 반으로 갈라지는 것이다.

호발귀는 머리를 숙이지 않고 뒤로 물러섰다.

“피하기만 할 거야!”

여인이 칼을 겨누며 말했다.

“누구냐?”

호발귀가 처음으로 상대에 관해서 물었다.

“피곤하다면서? 빨리 끝내고 싶다고 했잖아. 그리고 난 음문 홀리라고 이미 말했는데?”

“혈마 무공을 어떻게 배웠는지 묻는 거야.”

호발귀가 침착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며 물었다.

지금 그가 보이는 침착함은 무심무실공의 차분함이 아니다. 이령귀화의 침착함이다.

혈기, 살기가 드러난다.

당신을 죽이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게 드러난다.

“으!”

지금까지 당당하게 말하던 여인이 바르르 치를 떨었다.

‘혈마 무공은 마공. 후후! 여인에게는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지 모르지만, 내 경우는 지독하게 나빴어. 그러니 이런 무공을 배웠다면 당연히 죽어야 해.’

여인이 어떻게 해서 혈마 무공을 배웠는지 모른다. 여인을 아예 모른다. 하지만 지금 살의를 품는다. 혈마 무공은 결코 좋은 무공이 아니기 때문에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음문이라고 했는데, 음문이 너희 문파야?”

“왜? 음문까지 몰살시키게?”

“그래.”

츠읏!

호발귀가 검을 들어 올렸다.

그의 검에서는 무형기(無形氣)가 흘러나왔다. 검에서 하얀 아지랑이가 피어났다.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검이다.

귀검과 싸울 때도 드러내지 않았던 무형기가 줄기줄기 피어난다.

사실, 호발귀는 무리하게 진기를 이끌었다.

상대는 혈마 무공을 수련했다. 무공 경지가 매우 높아서 귀검도 상대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보통 무공으로는 이길 수 없다. 전력을 다해서 혈마 무공을 펼쳐야 한다. 끄집어내기 싫은 역천금령공을 최대한 끌어내지 않는 한, 승부를 논할 수 없다.

역천금령공은 오래 펼칠 수 없다. 순간적으로 펼쳤다가 거둬야 한다. 거두는 시기가 늦어지면 어김없이 진기가 폭주한다. 그리고 혈마가 된다.

호발귀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다음 격돌에는 승부를 낼 생각이다. 여인이 누구든, 죽인다. 다음 일 초에.

구릉!

역천금령공이 움직였다. 독의의 독공도 함께 움직였다. 화기와 독기가 음양의 역할을 나눠맡았다. 덕분에 이령귀화는 조금 숨을 돌릴 수 있다.

“우웃!”

여인이 깜짝 놀라서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호발귀의 상태를 잘 알았다. 지금 호발귀가 일으킨 무형기가 어떻게 해서 흘러나오는지 알고, 다음 공격이 무엇인지도 예감했다.

“이거 강호에 나오자마자 죽을지도 모르겠네. 이봐, 내가 죽으면 나 대신 이 사실을 음문에 알려. 어떤 말보다도 정확하게 사실을 전해줄 거니까.”

“저 그러지 말고 지금이라도 말로……”

중년인이 나서보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쒜에에엑!

호발귀가 덮쳐왔다.

타악!!

손가락이 살짝 퉁겨지면서 노란 번갯불이 번쩍 튀었다. 마치 눈앞에서 화약 수천 개가 폭발한 듯 눈이 부셨다.

“제길! 귀화미요!”

중년인이 다급하게 눈을 감으면서 소리쳤다. 그 순간,

퍼억!

호발귀의 검이 여인의 복부를 쑤셨다.

여인은 엉거주춤 서서 바르르 몸을 떨었다. 칼을 미처 절반도 뻗어내지 못한 상태였다.

“혈마 무공을 배웠다면 내가 왜 독수를 쓰는지도 알겠지.”

꾸우욱!

호발귀가 검에 힘을 주었다.

그때, 한쪽 구석에서 눈을 감고 있던 중년인이 다급하게 말했다.

“혈, 혈마 무공이 아닙니다. 아니, 혈마 무공이 맞지만, 정수가 아닙니다. 음문을 모르십니까? 음문, 음문입니다. 혈마님의 심복, 음문입니다!”

“심복?”

“홀리님이 펼친 무공은 혈마 무공이 아닙니다. 초식만 배운 거예요. 혈마님이 신공은 전수해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흉내만 낸 거지, 혈마 무공이 아닙니다.”

중년인이 매우 급하게 말했다.

중년인은 귀화미요공에 일시 눈이 멀어서 눈을 뜨고 있어도 앞을 보지 못했다.

여인은 혼절했다.

검이 북부를 아주 심하게 찔렀다. 검을 맞는 즉시 즉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심한 독수다. 사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게 오히려 기적이다.

일 초에 여인을 죽일 생각이어서 일부러 독수를 썼다.

‘심복.’

혈마에게 심복이 있었나? 그런 사실은 모른다.

혈마가 죽은 지 이백 년, 그동안 심복들이 충성을 이어왔나? 불가능하다. 이백 년이라면 오육 대 이상을 이어왔다는 것인데, 그럴 수 없다.

호발귀는 검을 뽑지 않고 조심스럽게 여인을 눕혔다.

검을 뽑으면 기혈이 분산되어 즉시 숨이 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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