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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72화 (72/500)

第十五章 귀검(鬼劍)(2)

“천유봉에 대나무 숲이 있는 건 모르지?”

“그런 게 있었어?”

“들어가 보면 굉장히 좋아. 왕죽이 쭉쭉 뻗어있어서 가슴이 다 시원해진다니까.”

유람객들이 이상한 말을 주고받았다.

“천유봉 죽림을 들어가 봤소?”

방금 사냥을 마치고 오는 듯, 허리에 꿩 대여섯 마리를 묶은 엽사(獵師)가 물어왔다.

“들어가 봤죠. 굉장히 좋던데요?”

“거길 어떻게 들어갔을까? 대나무가 워낙 빽빽이 자라서 들어갈 수 없었을 텐데?”

“전에는 그랬을 것 같은데, 누가 싹 베어냈던데요? 안으로 들어가려고 일부러 벤 것 같던데.”

“죽림 안에 사람은 없었습디까?”

“있었죠. 너무 덩치가 커서 곰인 줄 알았다니까. 깜짝 놀라서 허겁지겁 도망치다가 뒤돌아보니까 사람입디다. 등에 대단히 큰 칼까지 차서. 에구!”

유람객이 치까지 떨었다.

죽림 안에서 봤다는 사내에게 단단히 겁을 먹은 모양이다.

‘죽림이 훼손됐다!’

엽사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엽사는 날이 저무는데도 산에서 내려가지 않고 오히려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엽사의 주 임무는 독의를 감시하는 것이다.

감시한다고 해서 죄인처럼 지켜보라는 말이 아니다. 독의를 그런 식으로 감시했다가는 목숨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천유봉에 올라서 죽림이 훼손되었는지, 외인이 오갔는지만 슬쩍 훑어보고 내려가면 그만이다.

고작 그 정도의 일 때문에 살인 무공을 지닌 잡랑이 무이산 자락에 틀어박혀서 살았다.

‘곰처럼 우람한 사내라면 도천패? 그러면 호발귀도? 이게 무슨 일이지?’

엽사는 한달음에 천유봉에 올랐다.

그는 매우 조심스럽게 죽림을 살폈다.

유람객들이 말한 대로 죽림이 훼손되었다. 누군가가 칼로 대나무를 베어내고 길을 만들었다. 폭이 대단히 넓고, 대나무가 예리하게 잘린 것을 보면 도천패가 자른 것 같다.

그는 캄캄한 죽림 속을 조심스럽게 걸었다.

어떤 상황이 벌어지면 별로 쓸모는 없겠지만 활을 꺼내서 화살까지 재웠다.

유람객이 봤다는 곰처럼 우람한 사내는 보이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죽림 안이 텅 비었다. 독의가 거주하던 토굴도 비었다.

아무도 살지 않는다. 모두 떠났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그는 숨을 고를 사이도 없이 산 아래를 향해 질주했다. 이 사실을 빨리 총주에게 보고해야 한다.

“너냐? 안내해.”

“넷! 넷!”

엽사는 황송해서 급히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는 설마 살단 총주 오택골이 직접 나타날 줄은 몰랐다. 이 정도 일이라면 잡랑을 보내서 확인시킬 줄 알았다. 겨우 천유봉에 올라서 사실을 확인하는 것뿐이잖나.

“절 따라오십시오. 바로 안내하겠습니다.”

쉬이이잇!

엽사가 신형을 날려 치달려갔다.

엽사의 보고 중에 ‘곰처럼 큰 사내’라는 말이 주의를 잡아끌었다.

도천패다. 대도문의 대력금강을 사용하는 자이며, 도법 수준이 상당히 높다. 천살단에서도 도천패의 칼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몇 명 되지 않는다.

그가 호발귀를 지킨다.

도천패가 나타났다는 말은 호발귀가 나타났다는 말로 바꿔서 들어야 한다.

물론 죽림은 텅 비었다는 보고도 받았다.

죽림을 찾아가봤자 건질 게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왠지 발길이 끌렸다.

마침 호발귀를 찾아가던 길이다.

그가 머물던 곳에서 가깝기도 했다.

겸사겸사 그가 직접 왔다. 자신의 눈으로 죽림을 살펴보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할 생각이다.

‘이곳에서 뭘 했던 거냐?’

총주는 미간을 잔뜩 찡그렸다.

토굴은 보고받은 대로 텅 비었다. 독의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 떠나고 없다.

총주는 토굴을 들어서면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독의가 머물던 토굴이라면 독기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 엽사가 토굴을 살펴봤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상식선에서 생각할 때, 엽사는 토굴에 발도 딛지 못했어야 한다.

토굴에 독기가 없다.

독기가 없으니 엽사가 토굴을 살펴볼 수 있었다.

토굴 안쪽은 여전히 독기가 넘실거린다. 그러니 엽사가 들어가 보지 못했다. 하지만 입구에서부터 토굴 중간 어림까지는 어느 동굴보다도 깨끗하다.

“독을 태웠네.”

총주가 중얼거렸다.

독을 태운 사람이 누군지 대충 짐작이 된다.

호발귀가 찾아왔다. 오직 양강지공(陽綱之功)만이 진기로 독을 태울 수 있다. 호발귀의 역천금령공이다. 대력금강은 파괴적이기는 해도 독을 태우지는 못한다.

독의와 호발귀가 만났다.

두 사람이 만나? 왜? 무슨 인연으로? 무슨 일로?

독의와 호발귀는 어떤 연관성도 없다. 그동안 두 사람이 같이 거론된 경우가 전혀 없었다.

두 사람이 여기서 무엇을 했을까?

총주는 토굴을 샅샅이 훑어봤다.

그때, 밖을 뒤지던 잡랑이 급한 걸음으로 달려와 보고했다.

“총주님, 밖에서 무덤을 찾아냈습니다. 금방 생긴 무덤이라서 파봤는데, 독의 같습니다.‘

“뭣!”

총주는 깜짝 놀라서 잡랑을 쳐다봤다.

죽림에 묻혀 있던 무덤은 이미 파헤쳐진 상태였다.

관이 꺼내졌고, 대나무로 만든 관뚜껑이 활짝 열린 채 시신을 드러냈다.

독의가 맞다. 맞나? 살이 뼈에 찰싹 달라붙어 있어서 용모를 알아보기 힘들다. 작은 키, 굽은 등, 시커먼 피부가 아니라면 정말 독의인지 의심스러웠을 것이다.

총주는 눈빛을 반짝 빛냈다.

’진기(眞氣)…… 무존(無存)?‘

독의는 진기를 완전히 잃었다. 죽는 순간에는 단 한 줌도 남아있지 않았다.

중원에는 타인의 진기를 빼앗아서 내 것처럼 사용하는 무공이 있다.

물론 독의가 그런 공부에 당할 정도로 미숙하지 않다.

독의에게 그런 무공을 들이댔다가는 한 줌 혈수로 녹아버리고 말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진기를 모두 소진한 상태에서 죽었다.

칼 맞아 죽더라도 진기를 가진 상태에서 죽으면 경맥에 탄력이 남아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총주는 미간을 찡그린 채 펴지 못했다.

호발귀가 진기를 빼앗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는 호발귀를 봤다. 직접 겪었다.

호발귀가 비록 혈마 무공을 사용하지만 사람 자체는 악하지 않다. 그가 언제든 혈마로 변할 수 있어서 죽이려는 것이지, 현재 악행을 저질러서 죽이려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틀림없이 혈마로 변할 것이기 때문에 미리 차단하려는 거다.

총주는 토굴과 독의의 시신을 번갈아 쳐다봤다.

분명히 무슨 일이 있었다.

여기서 벌어진 일은 현재 상황을 단번에 뒤바꿔 버릴 정도로 중대하다.

그런데도 무슨 일인지 짐작하지 못하겠다.

“재미있네.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잖아. 꼭 귀신과 싸우는 기분이야. 후후! 아주 재미있어. 어디 무슨 일인지 마음껏 해봐.”

총주는 독의의 시신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우리 천살단에서 여기를 아는 사람들, 명단 파악해서 가져와.”

“넷!”

잡랑이 대답했다.

“은밀히. 한 놈도 빼놓지 말고 샅샅이 캐오도록 해.”

총주는 천살단에서 비밀이 새어 나갔다고 판단했다.

호발귀가 이곳을 알 리 없다. 무이산 천유봉에 독의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손꼽는다. 그리고 비밀을 누설한 사람이 누군지도 대충 짐작된다.

책사 등여산!

천살단에서 호발귀와 접촉한 사람 중 천유봉 독의를 아는 유일한 사람.

등여산이 왜 호발귀에게 독의를 소개했을까?

자고로 독의든 신의든 의원을 찾는다는 것은 몸에 탈이 생겼다는 뜻이다.

무엇인가 알지 못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책사! 책사가 지금 뭐 하고 있는지도 알아보고!”

“넷! 알겠습니다.”

잡랑이 움직였다.

총주는 산에서 내려왔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산 밑에서 대기 중이던 잡랑들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있다.

“무슨 일이냐?”

총주가 얼굴을 싸늘하게 굳히며 물었다.

“필호(泌豪)가 죽었습니다.”

“필호가? 왜?”

“검에 맞았습니다.”

“……”

총주는 눈살만 찌푸렸다.

필호는 잡랑 중에서도 최고수다. 총주를 제외하고는 가장 강한 무인 중 한 명이다. 살단에 몸담고 있으니 이름이 없지, 다른 곳에 있었다면 벌써 무명을 떨쳤을 것이다.

그런 자가 검에 맞아 죽어? 그것도 무이산 자락에서? 다른 잡랑들이 있는 곳에서?

“보자.”

총주가 말하기 무섭게 잡랑이 시신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필호는 키가 육 척에 이르는 장신이다. 온몸이 근육으로 뭉쳐 있어서 바위 같다고 느끼게 한다.

필호의 가슴이 뻥 뚫렸다.

검은 위에서 떨어졌다. 필호를 무릎 꿇리고, 머리 위쪽에서 가슴을 향해 검을 찔러넣었다.

한 번에 푹! 심장까지 관통!

피가 극심하게 솟구쳤을 것이다. 몸에 있는 피는 모두 쏟아져 나갔을 것이다.

이런 자상(刺傷)은 주로 사냥꾼들이 동물에게 사용한다.

방혈(放血)이라고 해서, 죽자마자 몸에 있는 피를 뽑아내야 살코기에 핏물에 베지 않는다.

총주는 필호의 몸에 새겨진 자상을 보자마자 한 사람을 떠올렸다.

귀무살 총수 귀검(鬼劍)이 왔다.

무림에 ’귀(鬼)‘ 자를 쓰는 무인은 많다. 문파도 많고, 귀신 귀 자가 들어간 무공도 많다.

하지만 총주가 인정하는 검, 귀신 귀 자와 어울리는 검은 딱 한 명뿐이다. 중원제일검(中原第一劍)이라는 말을 들어도 하등 이상하지 않다.

필호는 가슴에 일격을 받기 전, 족근(足筋)에 타격을 받았다.

검집으로 후려쳐서 피는 흐르지 않았지만, 바지를 벗겨보면 멍이 들어있을 것이다.

두 팔도 쓰지 못한다.

다리를 무너트리고, 팔을 망가트린다. 아무것도 못 하고 그저 얼굴만 쳐다보게 만든다.

귀검은 그런 후에야 검을 뽑는다. 사실, 마지막 검은 사형집행이나 다름없다.

필호는 자신이 죽는 모습을 봐야만 했다.

검이 살을 찢고 들어와서 심장을 쪼개는 것까지 모든 과정을 지켜봐야만 했다.

귀검은 사람을 짐승처럼 사냥한다.

“후후후! 왔니? 죽으러 왔으면 형님부터 찾아야지. 칼부터 쓰면 되니? 재미있군.”

총주는 일어섰다.

필호의 죽음은 총주에 대한 경고다. 아니, 자신이 왔다는 것을 알리는 예고다.

“후후! 후후후!”

총수는 웃었다.

귀검이 왜 경고를 했겠나? 곧 검을 맞대자는 선전포고다. 이번에 무림에 나온 목적이 총수에게 있다는 뜻이다. 곧 네 심장도 이렇게 찢어놓겠다는 거다.

귀검의 사냥은 이미 시작되었다.

앞으로 잡랑은 하루가 멀다 하고 죽을 것이다. 밤에 잠이 들기 두려워서 사방을 살피게 될 것이고, 불침번을 서고, 낯선 사람은 모두 경계하는 지경까지 치 몰린다.

물론 귀검이 잡랑을 죽이는 자잘한 일까지 개입하지는 않는다.

잡랑을 괴롭히는 일은 귀무살이 한다. 정면 대결이 아니라 암살이기 때문에 상당히 곤욕스럽다.

귀검은 최종적인 단계에서 나타난다.

“이건 너희 싸움이다. 알아서 해.”

총주가 잡랑들에게 말했다.

“흐흐흐! 걱정하지 마십쇼. 이미 눈치 깠으니까.”

잡랑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잡랑은 귀무살의 행동 유형에 대해서 이미 분석해 놓은 상태다.

필호가 죽은 상태로 나타났을 때, 귀무살이 움직일 것이라는 사실쯤은 예상한다.

“호발귀에 대한 정보를 가져와! 놈이 근방에 있다! 모두 눈과 귀를 활짝 열어!”

총주가 말했다.

귀검은 이미 호발귀를 쫓아가고 있다.

예감이지만 틀림없을 것이다. 호발귀가 아니었다면 이런 식으로 경고만 하고 물러갔을 리 없다. 겨우 산 하나 올라서면 자신과 부딪칠 수 있는데.

귀검에게는 그만한 시간도 아까웠던 것이다.

“후후! 혈청이 움직인다는 것은 알았지만 귀검이 직접 나올 것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한 방 얻어맞았군. 하지만 앞서간다고 반드시 좋은 건 아니지. 후후!”

총주는 서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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