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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70화 (70/500)

第十四章 독의(毒醫)(5)

중독을 치료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세상에 해약이 없는 독은 없다.

독의는 독을 연구할 때마다 항상 해약도 연구한다.

해약을 쉽게 만들 수 있는 독은 가치가 떨어진다. 해약을 전혀 만들 수 없는 독도 마찬가지다. 독성과는 상관없이 크게 소용되지 않는다. 해약이 없는 극독은 절대적으로 이놈을 죽여야지! 할 때가 아니면 사용하지 못한다.

독으로 사람을 죽이기는 쉽다.

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복어 독도 치명적이다. 아주까리 씨앗이나 협죽도 같은 꽃도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독살이 목적이라면 굳이 독공을 수련할 필요가 없다.

해약이 없는 치명적인 독이나 아주까지 씨앗이나 복용하면 죽는데 다를 게 무엇인가.

사람을 죽일 때, 꼭 싸우면서 죽여야 하나? 항복해서 손발이 묶인 채로 끌려가다가 죽이는 방법도 있다. 오히려 그쪽이 힘도 덜 들고 훨씬 깨끗하다.

독공을 수련하는 목적은 ‘천하제일’에 있다.

누구든 복종을 거부하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공포와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

독은 협박할 때도 사용된다.

‘너 내 말 들어. 안 그러면 죽어.’

이럴 때 해약이 귀한 독을 사용한다. 중독시켜 놓고 해약을 조금씩 주면 사납던 망아지도 고분고분해진다.

호발귀는 어느 쪽도 통하지 않는다.

독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중독되었다고 해서 고분고분하지도 않다.

호발귀가 중독된 독은 부골산과 혈독이다.

이 두 가지 독은 매우 치명적이지만 해약이 존재한다. 지금 독의가 가지고 있다.

해약을 복용시키면 한두 시진 안에 깨어날 것이다.

당홍은 도천패에게 아주 힘든 듯, 거창하게 말했지만 사실 손 안 대고 코 풀기보다 쉽다.

‘혈마 정령을 접한 놈이라.’

독의는 해약을 쓰기 전에 먼저 진맥부터 했다.

두 손가락으로 호발귀의 완맥을 잡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맥박을 주시한다.

츠으읏!

그녀의 진기가 완맥을 통해 들어갔다. 순간!

“우웃!”

독의는 깜짝 놀라서 눈을 떴다.

그녀의 진기가 무서운 속도로 빨려 들어갔다.

“이게 뭐야?”

독의는 깜짝 놀라서 손을 떼려고 했다. 한데 손가락이 떨어지지 않는다.

완맥에 손가락을 아교로 붙여놓은 것 같다.

츠츠츠츳!

그녀의 진기가 매우 빠르게 흡수된다.

“타앗!”

독의는 고함까지 지르면서 진기를 쏟아냈다. 아주 격하게, 강하게 밀어냈다.

타악!

호발귀의 완맥이 거센 충격을 받고 떨어져 나갔다.

독의는 놀란 눈으로 호발귀를 쳐다봤다.

지금 일어난 현상은 독의도 처음 겪어본다.

의서(醫書)를 손에 잡은 지 육십 년이 넘었지만, 이런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진기를 빨아들여? 흡정공? 흡성대법? 북명신공? 아냐. 혼절했으니 진기를 움직이지 못하잖아. 이건 체내에서 일어난 작용이야. 무엇인가가 진기를 빨아당겼어.’

독의는 매우 강렬할 호기심을 느꼈다.

혈마 정령과 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호발귀가 관심거리였다. 한데 이런 일까지 벌어졌으니.

“아무래도 너…… 쉽게 보내지 못하겠다.”

독의가 중얼거렸다.

약을 복용한 지 칠 주야가 지났다.

독은 모두 해독되었다. 하지만 정신은 여전히 깊은 수면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일부로 수혈(睡穴)을 짚었다. 해독약에 신경을 느슨하게 풀어주는 약도 섞었다. 몸은 나았지만,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뒤척거리기만 한다.

‘몸에 손을 대면 안 돼.’

호발귀는 여전히 살만 닿았다 싶으면 진기를 빨아들인다.

독의는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나무로 침을 만들어서 경혈을 격타했다. 모든 혈을 나무 침으로 찔러봤다. 탕약도 고루 복용시켰다. 어떤 약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 유심히 살폈다.

지금 호발귀는 실험 재료다.

호발귀가 왜 이런 증상을 보이는지, 그 이유는 진작 알았다.

생기 부족. 외기 포악.

원정이 지닌 힘에 비해서 휘두르는 진기가 너무 강하다. 혈마 무공에 원정이 휩쓸린다. 그래서 원정이 기운을 북돋고자 외인의 진기를 흡취한다.

자연스러운 운공이다.

모든 생물은 생명을 보존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어떤 동식물도 죽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팔다리가 잘리더라도 목숨만은 보전하려고 한다.

그런 현상이 호발귀에게도 일어났다.

원정이 무조건 혈마 무공에 대응하고자 외인의 진기를 흡취한다. 어떤 진기인지도 모른 체 무조건 빨아들인다. 그만큼 혈마 무공이 강하다는 뜻이다.

칠 주야가 지났을 때, 독의는 모든 상황을 파악했다.

‘그렇군. 원정을 죽여야 해.’

호발귀가 억지로라도 버틸 수 있는 것은 원정이 남아있어서다.

원정을 파괴하면 혈마 무공만 남는다. 혈마 무공이 정신과 육신을 지배한다. 제대로 된 생각을 하지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한 채 오직 살인만 추구하는 괴물이 된다.

혈마 재현이다.

혈천방도 이런 혈마는 원하지 않는다. 혈천방이 원하는 혈마는 통제할 수 있는 혈마다. 중원을 장악하는데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칼을 원한다.

‘내가 묶인 혈마를 풀어놓으면…… 살천단은 물론이고 혈천방도 쑥대밭이 될 거야. 어느 쪽이든 진짜 강한 자만 살아남겠지. 킥킥! 이것도 좋겠어.’

독의는 호발귀의 원정을 깨부수기로 작심했다.

우걱! 우걱! 우걱!

도천패가 아귀처럼 밥을 먹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배고픈 것은 참지 못한다. 칼을 맞는 것보다 굶는 게 더 힘들다.

덩치가 크면 다른 것은 다 좋은데 먹는데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잘 먹네.”

독의가 말했다.

“그렇지, 할머니? 후후! 귀여워.”

도천패는 중년인이다. 그런데 이제 서른도 넘지 않은 여자가 귀엽다고 말한다.

도천패는 이런 말에 익숙해졌다. 열흘도 안 되는 동안에 낯부끄러운 말을 참 많이 들었다. 같이 잠자자고 옆에 눕지 않는 게 다행이다. 그래서 못 들은 척 밥만 먹었다.

“밥 더 줘라. 모자라겠다.”

“그런 건 알아서 하더라고. 내가 안 해도 되는 건 굳이 할 필요 없어. 그렇지?”

당홍이 도천패를 보며 말했다.

도천패는 고개도 쳐들지 않고 밥만 먹었다.

이 두 조손의 사고는 도천패와 아주 다르다. 정말 해서는 안 되는 말도 태연히 한다.

처음에는 그런 말들이 민망했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오늘 호발귀를 깨울 생각이다.”

독의가 말했다.

“아! 그렇습니까?”

도천패가 처음으로 반응했다.

“깨워도 돼요?”

당홍도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당홍도 단지 중독 때문에 호발귀가 저렇게 긴 시간 동안 잠만 잔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할머니가 호발귀를 만지면서 뭔가 고심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중독이 문제가 아니다. 혈마 무공의 저주를 어떻게 푸느냐 하는 문제다.

“정말로 목숨을 걸어야 한다.”

독의가 침중하게 말했다.

“문주를 대신해서 감사드립니다.”

도천패가 일어나서 정중하게 포권했다.

“인사는 나중에. 자칫하면 혈마가 될 수도 있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뒷일은 제가 책임질 테니 너무 염려 마시고 진행해 주십시오.”

도천패가 자신 있게 말했다.

독의도 도천패가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안다.

‘이놈아, 혈마가 깨어나면 넌 단박에 죽어. 너 정도 무공으로 감히 혈마를. 킥킥!’

독의는 속으로 웃었다.

“내가 잘못될 수도 있다. 내가 잘못되면 호발귀도 잘못되고, 호발귀가 혈마로 변하면 내가 제일 먼저 죽게 되겠지. 그때는 네가 이 아이, 책임져라.”

독의가 당홍을 떠밀었다.

“네. 알겠습니다.”

도천패가 순순히 대답했다.

당홍도 뜻밖의 대답에 도천패를 쳐다봤다.

“지금 그 말, 진심이야?”

“진심. 한 입으로 두말 안 한다.”

도천패가 다짐하듯 말했다.

독의는 사랑스러운 눈으로 당홍을 쳐다봤다.

자신은 틀림없이 잘못된다. 호발귀의 원정을 깨트리려면 진기를 쏟아부어야 한다. 그러자면 어쩔 수 없이 진기가 고갈될 때까지 끌려가야 한다.

시술이 끝나면 피떡이 되어서 쓰러져 있을 것이다.

호발귀는 가만히 내버려 둬도 혈마가 될 팔자이지만,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

자신의 손으로 혈마를 만든다.

지금 당장 세상 밖으로 보낸다.

독의는 아무도 없는 텅 빈 토굴을 천천히 걸었다.

이승에서 보는 마지막 풍경이다. 결국, 이곳에서 죽는다. 토굴이 영원한 안식처다.

독의는 호발귀 앞에 섰다.

“내가 결국 네 놈 손에 죽겠구나. 그래! 좋아! 혈마로 깨어나서 날 일 장에 때려죽이고 나가!”

먼저 혈마 무공을 격발 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부골산 투입한다.

독의는 옥병을 꺼냈다.

한 방울만 닿아도 살이 썩고 뼈가 녹는 강력한 산(酸)을 호발귀에게 투입한다.

입을 벌리고 옥병째 들이부었다.

이런 행동은 자칫 혀를 마비시킬 수 있다. 목구멍을 태워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혈마가 될 놈인데, 목소리 정도 잃는 것이 무에 대순가. 무공만 격발시키면 된다.

강력한 산은 위장을 녹이기도 한다.

괜찮다. 부골산에 죽을 놈이라면 혈마도 되지 못한다. 그럴 바에는 지금 죽는 것도 무방하다.

독의는 마음 놓고 부골산을 투입했다.

이어서 독섬칠공을 전개했다.

호발귀의 육신을 타격한다. 뱃속으로 흘러든 부골산을 흩트려놓는다. 몸 곳곳으로 스며들도록 강력하게 타격한다. 전력으로 독섬칠공을 전개한다.

퍼억! 퍽! 퍽! 퍽!

독섬칠공이 체내에 있는 부골산을 격타했다.

여기까지는 독의도 진기를 빼앗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진기가 쓸려나갈 것이다.

‘잘 살아, 이것아!’

독의는 마지막으로 당홍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호발귀의 단전에 장심을 바짝 밀착시켰다.

파아아아앗!

각처로 흩어진 부골산을 원정으로 모은다.

독의의 진기가 무서운 속도로 빨려 나갔다. 하지만 이미 예상했던 바다. 자신이 진기에 혈독까지 쓸려서 흘려보내니 하등 아쉬운 것이 없다.

원정이 부풀어 오른다.

‘됐어! 이것만 깨면 넌 혈마가 돼!’

독의는 계속해서 진기를 불어넣었다. 원정이 팽창하면 할수록 혈마 무공도 기승을 부린다. 실제로 독의는 호발귀의 체내에서 미증유의 힘이 원정으로 흘러드는 것을 감지했다.

‘이것이 역천금령공!’

독의는 용암 줄기처럼 뜨겁게 쏟아져 내리는 진기를 맞이하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파괴! 파괴! 파괴되어라!’

독의는 사력을 다해서 원정에 독기를 불어넣었다.

‘실패……’

독의는 망연히 호발귀를 쳐다봤다.

원정이 터지지 않았다. 그놈의 원정이 터질 듯이 간당거리다가 끝내 버텨냈다. 부골산에도 녹지 않고, 혈액 독에도 타들어 가지 않았다. 꿋꿋이 버텼다.

“할머니!”

당홍이 와서 그녀를 껴안았다.

독의는 손가락조차 들 힘이 없다.

전신 진기가 모두 빨려 나가서 목내이(木乃伊:미이라)처럼 피골이 상접했다.

“훅! 후우욱!”

독의는 숨을 급하게 들이켰다.

마지막 숨을 내뱉기 전에 보이는 짧고 격한 숨이다.

“할머니!”

독의는 손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호발귀만 쳐다봤다.

‘어차피 혈마로 변할 것……’

지금 독의를 위로해주는 것은 역천금령공의 거센 기운이다. 항거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던 힘, 하늘에서 바윗덩어리가 쏟아지는 느낌이었다.

그것들이 원정을 부술 것이다.

지금 역천금령공은 호발귀를 잠식하고 있다. 어쩌면 호발귀는 벌써 혈마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봐야 정확한 상태를 알겠지만.

“호발귀…… 손대지 마. 절대로.”

“네.”

“잘 살고.”

“할머니!”

그녀는 자신이 원정조차도 부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자신이 진기를 모두 빼앗긴 채 숨을 거둘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호발귀가 혈마로 변하면 일장에 머리가 깨져서 죽을 것이라는 생각은 했다.

“킥킥! 일장춘몽. 킥킥킥!”

독의는 툭 고개를 떨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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