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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69화 (69/500)

第十四章 독의(毒醫)(4)

도천패가 나서면 모든 사람이 쳐다본다. 그것은 사실이다. 도천패는 보통 사람보다 두 배는 더 크기 때문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쳐다보지 않을 수 없다.

호발귀 말이 맞는다.

독의는 숨어서 사는 사람이니 은밀히 찾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그가 나서지 않는 편이 낫다.

그렇다고 해서 지켜보지 말라는 법도 없다.

호발귀가 하는 짓을 멀리서 지켜본다.

호발귀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이라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다.

호발귀를 왜 따라다니나? 말할 필요도 없다. 투심문 문주가 원하니 같이 행동한다.

처음에는 그랬다.

투심문 문주라는 놈이 불쑥 나타났는데,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특히 자신을 이긴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이런 놈이라면 한번 같이 부대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다른 이유로 쫓아다닌다.

호발귀가 혈마로 변신하는 순간, 문주를 죽일 생각이다.

자신이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한다. 투심문 문주가 세상을 피로 물들이는 혈마가 되게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 일은 보위가 할 일 중 가장 중대한 일이다.

“여기로 들어갔는데?”

도천패가 호발귀를 쫓아왔다.

그는 빽빽이 들어찬 대나무 숲을 보면서 인상을 있는 대로 찡그렸다.

호발귀는 어떻게 들어갔을지 모르지만, 그가 들어가기에는 너무 좁다. 도저히 들어갈 수 없다.

어떻게 할까? 들어가야 하나? 아니면 조금 더 기다려 볼까?

도천패는 잠시 망설였다.

호발귀가 들어간 지 한참 지났다. 대략 반나절 정도 지났으니 상당히 긴 시간이다. 그런데 아직도 나오지 않는다. 틀림없이 무슨 탈이 생긴 것 같다.

“에잇! 모르겠다!”

스릉!

도천패는 칼을 뽑았다. 그리고 거침없이 휘둘렀다.

쉬링! 파파파파팟!

대나무가 싹둑 잘려 나갔다.

길이 뻥 뚫렸다. 그가 넉넉히 지나갈 정도로 대나무가 우수수 베어졌다.

쉬리리링! 파파파파팟!

도천패는 연신 칼을 휘둘렀다.

빽빽이 들어찼던 대나무들이 싹둑 베어지면서 큰길을 내주었다.

도천패는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여긴 좀 괜찮군.”

도천패는 비교적 대나무 간격이 넓게 퍼져있는 곳에 이르렀다.

처음에 비하면 한결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아직도 그가 지나가기에는 빽빽하다. 대나무가 어깨며, 허리에 걸린다. 억지로 비집고 지나갈 수는 있지만 귀찮다.

쉬링! 파파파파팟!

또 칼을 휘둘러서 길을 냈다. 그때,

쒜쒜쒜쒝! 쒜에에엑!

앞쪽에서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렸다.

아니, 방향을 종잡을 수 없다. 처음에는 앞에서 들렸는데, 곧 사방에서 들린다.

“우하하하하!”

도천패는 크게 웃으면서 칼을 휘둘렀다.

이까짓 비표(飛鏢)들!

도천패는 무심히 칼을 들어서 비표를 막았다. 한낱 비표 따위가 걸음을 늦출 수는 없다.

한데, 비표가 갑자기 중간에서 방향을 홱 꺾었다.

칼과 비표가 부딪치려는 순간, 비표가 옆으로 빙글 돌더니 도천패의 등을 후벼팠다.

“웃!”

도천패는 깜짝 놀라서 급히 칼을 휘둘렀다.

대력도강에는 칼을 강하게 쓴다. 하지만 방어를 할 때는 무척 부드러워진다.

이제부터 손목만 이용해서 칼을 휘돌린다.

반걸음 앞으로 나가면서 칼을 전면으로 빙글 휘돌린다. 다시 반걸음 나가면서 이번에는 뒤로 휘돌린다. 칼이 앞과 뒤를 전환될 때는 손목만 사용한다. 큰 움직임이 없이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칼이 앞뒤로 움직인다.

파르르르릉!

큰 칼이 도천패와 앞뒤를 전부 막았다.

탕탕! 탕!

비표가 칼에 부딪혀 퉁겨나갔다.

쒜에에엑!

앞에서 바람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한 여인이 내려섰다.

여인은 눈꼬리가 위로 쭉 치솟아서 무척 날카로워 보인다. 콧날이 오뚝하고, 입술은 새빨갛다. 피부는 햇빛을 보지 않아서인지 창백할 정도로 희다.

어떻게 보면 매력적이고, 어떻게 보면 부담스럽다.

비표는 여자가 던졌다.

“멧돼지 같은 놈이!”

여자가 나타나면서 터트린 일갈만 봐도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 수 있다.

여자는 살기등등했다.

한데…… 여인이 도천패를 보더니 당장 살기를 누그러트렸다. 그리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봤다.

도천패는 이런 눈길에 익숙하다.

호기심 가득 찬 눈길!

모든 사람이 그를 쳐다볼 때 이런 눈으로 쳐다본다. ‘뭐 이렇게 큰 놈이 다 있어?’ 하는 눈빛이다. 말은 하지 않지만, 눈빛만 봐도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죽림을 훼손한 건 미안한데…… 여기 사내 한 명이 들어왔을 텐데?”

“미안한 표정이 아닌데?”

여자가 생긋 웃으면서 말했다.

“아! 미안합니다. 보다시피 이 몸으로는 이 안에 들어서기가 힘들어서. 마음은 급하고.”

도천패가 정중히 포권하며 사과했다.

“너 나랑 살자.”

여인이 불쑥 말했다.

“뭐, 뭐?”

도천패가 여인을 빤히 쳐다봤다.

‘뭐 이런 여자가 다 있어?’

여인은 도천패의 생각은 아랑곳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만 했다.

“놀라기는. 나 싫어? 이 정도면 괜찮은 여잔데? 난 네가 마음에 들어. 들어와.”

여자가 앞장서서 걸었다.

도천패는 귀신에 홀린 듯 눈을 끔뻑거렸다.

하지만 여자가 앞장서서 길을 안내한다. 호발귀 상황을 알아보려면 안으로 들어가야 하고.

도천패는 무심히 칼을 들어서 대나무를 후려쳤다.

쉬링! 파파파파팟!

대나무가 싹둑 잘려 나갔다.

앞으로 걸어가기 위해서 대나무를 자른 것인데, 자르고 나니 여인이 화나서 나타난 게 생각났다.

도천패는 급히 칼을 거뒀다.

여인은 뒤돌아봤다. 하지만 이번에는 뭐라고 하지 않았다. 아니, 생긋 웃기까지 했다.

저 웃음…… 불길하다.

도천패는 급히 여인의 뒤를 쫓으며 물었다.

“반나절쯤 전에 사내 한 명이 여기로……”

“들어왔어. 지금 다 죽어가.”

“뭐, 뭐요!”

도천패가 깜짝 놀랐다.

“다 죽어 간다고. 같은 말을 두 번씩 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네?”

여인이 태연히 말했다.

“중독이 심해서 살릴 수 없어. 살려도 혈마가 될 팔자라는 건 알지? 친구라면 알 거야. 어떤 상태인지. 곱게 못 죽지. 그러니 차라리 지금 이대로 죽는 게 낫지 않아?”

여인이 도천패를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호발귀를 살릴 수 있다.

독에 중독되어서 죽어가는 놈인데, 독의가 살리지 못하면 누가 살리나.

여기서 두 가지 고민이 나온다.

하나는 호발귀를 살려서 혈천방으로 압송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대로 죽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다.

어떻게 할까? 어떤 게 더 나은가?

독의는 고민했다.

“아직도 혈천방에 미련 있어?”

여자가 말했다.

“그놈의 말버릇하고는!”

독의가 젊은 여인을 나무랐다.

“인제 그만 미련 버려. 혈천방, 우리가 죽어도 눈 하나 끔쩍하지 않아. 아직도 혈천방 사람들과 연락하지? 그런데도 구해줄 생각을 하지 않잖아. 정신 차려. 우린 버림받았어.”

“닥치지 못해!”

독의가 버럭 성질을 부렸다.

살단 총주는 독의를 붙잡았지만, 천살단으로 데려가지 않았다.

- 당분간 경치 좋은 곳에서 휴양이나 하시지.

총주는 독의를 천유봉 죽림에 가뒀다.

물론 이까짓 죽림은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다. 죽림을 지키는 자도 없다. 죽림은 외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주는 것일 뿐, 독의를 가두지는 못한다.

하지만 독의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혈천방 패권 싸움에서 밀려났다. 더는 혈천방에 앉아 있을 자리가 없다. 또 살단 총주는 그녀가 마음껏 실험하게끔 독과 환자를 보내준다.

어쨌든 독의는 움직이지 않고, 혈천방은 연락까지 주고받으면서도 한쪽 모른 척하고, 살천단은 언젠가 쓰일 날이 있겠지 하면서 지켜보기만 한다.

이런 상황이 독의에게는 괜찮지만, 손녀에게는 답답할 수도 있다.

젊은 청춘을 허송세월로 보내고 있지 않은가.

“혈마가 되는 건 막을 수 없지? 내가 보기에는 그런데.”

손녀는 독의의 진전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독공도 거의 팔 성이나 따라붙었다.

손녀는 제이의 독의다.

“조용히 좀 해 봐라. 생각 좀 해보게.”

“생각 실컷 해. 시간 많으니까. 하지만 치료할 생각이면 미리 말해줘. 얻어낼 게 있어.”

“저놈이 좋냐?”

독의가 허리를 굽힌 채 웅크리고 있는 곰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저만한 몸 가진 사람 없잖아. 우리는 씨 좀 바꿔야 해. 맨날 고만고만한 사람끼리 어울리니까 이 모양이지.”

“뭐야! 네가 어때서!”

“호호호!”

손녀 당홍(唐紅)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손녀가 오해하고 있는 게 있다.

독의는 혈천방 사람이다. 뼛속까지 혈천방 냄새가 배있다. 죽으면 죽었지 살천단에 몸을 의탁하지 않는다. 혈천방을 배신해? 꿈도 꾸지 않는다.

독의가 세력다툼에 밀려 나왔다고 생각하나?

만약 그랬다면 혈천방은 진작 살수를 보내왔다. 지금까지 패배자를 살려두지 않는다.

손녀는 혈천방 사람이 아니라서 혈천방을 모른다.

어차피 세력다툼에서 패했다면 남은 건 죽음뿐이다. 그때 혈천방을 위해서 마지막 제안을 했다. 살단 총주에게 잡히겠다고. 그렇다. 죽림에 갇힌 것은 독의 본인의 의사다. 본인이 생각하고, 상의하고 결행했다.

독의로 지내다 보면 언젠가는 살천단 본단으로 들어갈 날이 올 것이다.

그날, 살천단은 무림에서 지워진다.

독섬칠공이 살천단에 뿌려질 것이다. 적어도 살천단 무인 중 절반은 죽을 것이다.

그날을 위해서 참는다.

그러면 살단 총주는 이 사실을 모를까? 안다. 알기 때문에 살천단으로 데려가지 않는다.

서로 기회만 엿보고 있다.

그런데 호발귀가 나타났다.

호발귀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보고를 받아서 알고 있다. 혈천방을 숙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안다. 이미 등여산과 살을 섞은 관계라는 소문도 있다.

‘어떻게 하지? 시간이 지나도 천살단에는 들어가지 못해. 중원에도 설 땅이 없고. 네놈 신세나 내 신세나.’

혈천방과 살천단, 이 두 집단을 적으로 돌린 사람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을까? 호발귀밖에 더 있나. 만약, 독의가 죽림 밖으로 나가면 독의도 그런 신세가 된다.

‘가만히 내버려 둬도 혈마가 된다 이거지? 네놈은 무공을 쓰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지만 무림이란 그리 녹록한 곳이 아냐. 넌 무공을 쓰게 되어 있고 혈마가 될 거야. 그래 혈마가 돼라. 천하를 온통 피로 물들이는 혈마가 돼.’

독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사람 이름이 호발귀라고 했지? 치료해 줄 수 있어. 그런데 굉장히 어려운 일이야. 그동안 모아놓은 약재를 모두 써야 해. 진기 손실도 틀림없이 일어날 거고. 그러게 왜 남의 땅에 함부로 들어와서 중독되고 그래!”

“호발귀를 대신해서 감사드립니다.”

도천패가 두 손 모아 읍했다.

“아니, 그런 건 필요 없고. 너 나랑 살자.”

“소저!”

“싫으면 관두고. 사실 이건 내가 손해야. 당신 같은 사람에게 나같은 미인이 가당키나 해?”

“부부의 인연이란 하늘이 정해준 것인데……”

“누가 부부 하재?”

“……?”

“같이 살면서 애만 낳자고. 두 명만 낳아주고 가. 그럼 잡지 않을게. 선택해. 할 거야, 말 거야?”

도천패는 할 말이 없어서 눈만 끔뻑거렸다.

도대체 이토록 무지막지한 여자가 어디서 나타난 거지? 정말 현재 세상에도 이런 여자가 있나? 같이 살기만 하자고? 애만 낳자고? 이게 말이야, 방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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