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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67화 (67/500)

第十四章 독의(毒醫)(2)

장진 스님 말이 맞는다.

독은 근본적으로 이질물(異質物)이다. 몸에 들어오면 좋지 않은 작용을 한다. 하지만 곧 몸 일부로 동화된다. 나쁜 작용을 일으키지만, 몸속 물질과 섞인다.

부드러운 진기로 독을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장진 스님 말처럼 역천금령공을 일으키면 단박에 독성을 드러낼 수 있다.

역천금령공이 독의 성질을 돋워낼 것이다.

해볼까? 혈마 무공은 쓰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장진 스님이 말했다.

“상처는 살살 쓰다듬는 게 아니라 주먹으로 콱 쥐어박아야 하는 거야. 그래야 아픈 데가 앗! 나 여기 있어요! 하고 스스로 신고하지. 안 그러면 안 나타나.”

“결국, 혈마 무공을 쓰게 만드네?”

“한두 번 운기 해본 것도 아닌데 뭘 그래? 너 참회동에서 숱하게 써봤잖아?”

장진 스님은 호발귀를 잠식할 생각이다. 호발귀는 장진 스님의 정체를 안다. 서로가 서로를 안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서로에게 휘둘리지 않으려고 한다.

도와주기도 하고, 잡아먹기도 하는 관계다.

‘좋아! 역천금령공을 약간만 운기 하면……’

호발귀는 진기를 끌어냈다. 쓰지 않겠다고 작심한 역천금령공을 일으켰다.

쏴아아아!

당장 폭포 같은 기운이 일어나서 전신을 휩쓸었다.

역시 강력하다. 통쾌하다. 소낙비가 묶은 때를 씻어내는 듯 시원하기까지 하다.

“그래. 이제 곧 독이라는 놈들이 지랄할 거야. 살려고 발버둥 칠 텐데, 인정사정없이 쓸어버려. 육신을 좀먹는 마구니야.”

장진 스님은 승려인가, 마구니인가.

스님 말처럼 독기가 발광했다. 살기 위해서 혈맥 안으로 숨기도 하고, 크게 일어나서 진기가 싸우기도 했다.

독의 기본 성질은 음(陰)이다. 역천금령공의 기본 성질은 화(火)다.

불이 독을 태운다. 순식간에 전신 요혈에 숨겨져 있던 독기를 확 불살랐다.

“한 번 더. 뿌리까지 뽑아야 해.”

장진 스님이 재촉했다.

독기 대부분이 불에 태워졌다. 깨끗하게 소멸하였다. 이제 몸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잔독이 남아있으면 현기증도 치밀 것이고, 구역질도 일어날 것이다.

독기의 여파는 사람을 불쾌하게 만든다.

호발귀는 다시 한번 역천금령공을 운기했다.

파파파팟! 츠츠츠츠츳!

역천금령공이 전신 경맥을 휘돌았다. 남아있던 여독마저 깔끔히 불태워버렸다.

‘이제 됐어.’

호발귀는 운기를 중단하려고 했다. 그런데 역천금령공이 질주를 멈추지 않았다.

일주천, 이주천, 삼주천…… 그동안 운기 못한 것이 한이라도 되는 듯 저절로 맹렬하게 치달렸다.

“웃! 이거!”

호발귀가 당황해서 장진 스님을 쳐다봤다.

그 순간, 호발귀는 차게 굳어있는 장진 스님을 봤다. 눈빛에 얼음처럼 차가운 칼이 담겨 있다. 호발귀를 쳐다보지도 않고 나직이 불호만 외운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

호발귀는 탄식했다.

무인들은 이런 상태를 주화입마라고 한다.

호발귀는 언제든 주화입마가 일어날 수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운기를 하면 안 되는 거였다.

예전에는 괜찮았다고? 맞다. 괜찮았다.

그런 경험들이 축적되어서 지금의 상황까지 치달려왔다. 상처가 쌓이고 쌓여서 단단하게 곪았다.

지금은 운기만 하면 곧바로 주화입마를 향해 달려간다.

“치잇! 못된 중 같으니. 알면서도 유도해?”

“아미타불!”

“차라리 불호나 외지 말지? 그게 가당키나 해? 악승이 읊는 염불은 정말 듣기 싫어.”

“아미타불!”

호발귀는 이런 상태를 어느 정도 예상했다. 아니, 이런 상태가 될 것을 염두에 두고 대책까지 세워놓았다.

그는 일어섰다. 그리고 주위에서 날카로운 돌을 집어 허벅지를 찍었다.

퍽! 퍽! 퍽!

허벅지가 뭉개지면서 핏물이 솟구쳤다.

파파팟! 츠츠츠츠츳!

거침없이 질주하던 역천금령공이 허벅지 상처를 통해서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질주가 서서히 멈춰졌다.

“후후!”

호발귀는 장진 스님을 쳐다보며 웃었다.

어때? 이런 수는 생각하지 못했지?

“아미타불!”

장진 스님은 다시 벗으로 돌아와 활짝 웃었다.

“예상했지. 예상했으니까 하라고 한 거지. 아! 그런데 조금 아깝기는 하다. 혈마가 되는 게 꼭 나쁜 것은 아닌데. 천하무적!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말 아냐?”

“아니.”

“아니라고?”

“결국, 혈마도 죽었잖아. 그러니 천하무적이 아닌 거지. 자, 이제 가봐. 다음에 나타나면 마음 좀 곱게 쓰고. 어떻게 사람이 갈수록 악랄해져.”

호발귀가 투덜거렸다.

일어나 앉았다.

무심무실공을 일으켜서 진기를 차분하게 골랐다. 움직이기 전에 들끓는 진기부터 가라앉혀야만 했다.

심신을 정리한다. 들뜬 마음을 죽이고 상쾌한 기분이 전신에 퍼지도록 유도한다.

장진 스님은 두 가지 도움을 주었다.

하나는 중독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역천금령공은 무적이다. 빠름과 강함에서 따를 무공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해독 작용도 뛰어나다.

스님이 도와준 또 다른 일도 독과 연관이 있다.

스님은 독의 찾는 길을 가르쳐 주었다.

역천금령공을 운용하면 독의를 찾을 수 있다. 다만, 질주하는 역천금령공을 통제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남는데, 이건 호발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

본인 스스로 결단을 내리고, 그 결단이 가져온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지면 된다.

“세상 살기 정말 어렵네.”

호발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탄했다.

강하에 있을 때,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툭 튀어나오곤 했던 버릇인데,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천유봉에서 배수 짓을 실컷 해서인지 불쑥 옛 버릇이 튀어나왔다.

“독의를 못 찾으면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거지? 절절매면서. 독의를 찾는다고 뾰족한 방법이 있을 것 같지도 않다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까.”

호발귀는 역천금령공을 운용할 생각이다.

“정 안되면 죽으면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죽는다는 말은 한낱 말버릇에 불과하다. 하지만 호발귀에게는 실세다.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일이 일어나면 즉각 결단해야 한다.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 끝이 날카로운 돌멩이를 집었다.

“이번에 내려가면 단검이라도 하나 장만해야겠어.”

호발귀는 병기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

다른 사람을 죽이기 위한 병기가 아니다. 자신의 목숨을 끊을 병기다.

묵사검을 어디서 잃었는지 모르겠다. 그건 주치균이 찾아갔을 것이다. 살단 총주를 찌른 단창은 어디선가 비바람을 맞으며 고철이 되어갈 것이고.

병기가 필요하면 주위에서 구했고, 다시 버렸다.

버리고 싶어서 버린 게 아니다. 발악을 하다 보면 어느새 손아귀에서 떨어져 나가 있었다.

호발귀는 돌멩이를 옆구리에 찼다.

여차하면 머리를 찢을 도구다. 예리한 병기처럼 타격을 단단하게 입혀야 한다.

준비가 끝나자 역천금령공을 일으켰다.

몸에 들어온 독을 태우는데도 폭풍처럼 질주하던 진기인데, 이번에는 어떻게 변할까? 정말 통제할 수 있을까? 계속해서 사용해도 될까?

불안감이 불쑥 치밀었지만, 역천금령공을 사용한다.

츠으으읏!

역천금령공이 장심(掌心)에 운집되었다.

호발귀는 망설이지 않고 운집된 진기를 터트렸다.

촤아아악! 츠츠츳! 치이이이익!

예상했던 대로 진기가 독기를 태웠다.

불길이 기름을 쫓아가듯이, 진기가 독기를 태운다. 빠르게 앞으로 질주한다.

한눈에 독기가 많은 곳과 적은 곳이 구분된다. 독이 많이 퍼진 곳은 그만큼 불길이 거세게 타오른다. 독이 묻어있지 않은 곳은 아무런 변화도 없다.

진기는 토굴을 향해서 급격하게 빨려 들어갔다.

예상했던 대로 독의는 토굴에 산다.

밖에서 봤을 때는 작은 토굴처럼 보였는데, 안에 들어오니 상당히 넓고 깊다.

사람이 살만하다.

독의는 찾아온 환자를 실험한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는 느낌이 든다.

사방에 인골인 듯싶은 뼈다귀가 널려있다.

비린내도 매우 역하게 풍긴다. 피비린내와 독기가 풍기는 비린내가 섞여 있다.

호발귀는 역천금령공을 다시 한번 흘려냈다.

화르르르륵!

진기가 토굴을 불태워버린다.

실제로 불길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호발귀 눈에는 토굴이 불타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리 독의라지만……”

토굴은 온통 독투성이다.

독에 면역력이 없는 사람은 한 걸음도 들어서지 못한다. 장담한다. 누구나 들어설 수 있는 땅이 아니다. 해독단을 준비했어도 쉽게 들어서지 못한다.

휘익! 화라라라락!

호발귀는 독을 태우면서 안으로 걸어갔다.

독의는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살고 있다고 확신하는데, 아무도 없다. 모두 밖에 나갔나?

‘아!’

호발귀는 한참 만에야 인기척을 잡아냈다.

소요귀명검이 아니었으면 결코 발견하지 못했을 기척이다. 가는 숨소리, 지극히 정제된, 수련이 무척 깊은 절정 무인의 숨소리가 가늘게 잡힌다.

‘독의!’

호발귀는 역천금령공을 일으켜서 아주 강렬하게 독기를 태웠다.

화라라락! 츠츠츠츳! 화아아아악!

독기가 불길에 태워진다. 역천금령공의 강력한 화기 앞에 속절없이 무너진다. 그때!

“그만!”

안쪽에서 거센 고함이 들려왔다.

“그만해! 누구 마음대로 독을 다 태워! 빌어먹을 자식 같으니라고! 뒈지려고 환장했어!”

‘하아!’

호발귀는 속으로 한숨을 토해내며 역천금령공을 거뒀다.

안에서 그만하라고 말하지 않았어도 그만둘 생각이었다. 운기가 한계에 이르러서 조금만 더 진행하면 정신을 잃을 것이라는 느낌이 왔다.

호발귀는 옆구리에 찔러넣은 돌멩이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왼팔을 거칠게 찍었다.

퍼억! 퍼억! 퍼억! 퍼억!

한두 번 찍는 게 아니다. 살이 찢어져서 핏물이 뚝뚝 떨어져도 계속 찧었다.

“하악!”

호발귀는 비로소 역천금령공을 멈췄다.

한데, 진기를 멈추자 독기가 밀려들었다.

핑! 하고 현기증이 치민다. 속이 울렁거린다. 심장이 쿵쾅쿵쾅 거칠게 뛴다.

다른 사람 같으면 맥없이 쿵! 떨어졌을 독기이지만, 그는 역천금령공 때문에 버티고 있다. 아직 역천금령공의 잔기가 남아있는 까닭이다.

“이거 당장 안 치우면 다 불태워버릴 거야!”

호발귀가 이를 꽉 깨물며 말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모든 독기가 싹 가셨다. 어떤 증상도 일어나지 않았다. 동굴에서 풍기던 비린내조차도 말끔히 가셔서 상쾌하기까지 했다.

“킥킥! 재미있는 놈이 찾아왔군,”

동굴 안쪽에서 작은 물체가 용수철처럼 콩콩 뛰어서 날아왔다.

‘아!’

호발귀는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나타난 사람은 무척 괴이했다.

머리가 치렁치렁 길어서 동굴 바닥까지 질질 끌리는 노인인지 노파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키는 오척단구, 매우 작다. 거기에 허리까지 꾸부정하게 굽었다. 오척단구가 사 척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다. 키가 호발귀 허리에도 미치지 못한다.

피부는 새카맣다.

캄캄한 동굴에 섞이면 사람과 허공이 구분되지 않을 것 같다.

쒜에엑!

독의가 호발귀 앞으로 다가왔다.

“네놈이 펼친 무공, 역천금령공이냐?”

독의가 다짜고짜 물었다.

“그럴 어떻게?”

호발귀는 너무 놀라서 말도 잇지 못했다.

설마 당금 무림에 역천금령공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그것도 무림에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호발귀는 눈만 끔뻑거리면서 독의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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