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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66화 (66/500)

第十四章 독의(毒醫)(1)

호발귀는 천유봉 정상에서 열흘 동안 머물렀다.

열흘 동안 거의 이천여 명을 건드렸다. 그들의 품을 일일이 확인했다.

보통 배수들은 이런 짓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배수 짓을 하면서 돌아다니지 않는다.

일단 열흘 이상 천유봉에 머물면 천유봉을 터전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발각된다.

짐꾼이나 가마꾼 같은 자들이 쳐다본다. 그리고 유심히 살핀다. 그들에게 ‘이상하다?’라고 찍히면,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한다. 또 시비가 붙는 일도 있다.

그들 눈을 피한다고 해도 위험도는 매우 높아진다.

유람객 중에는 일반인만 있는 게 아니다. 무인도 있다. 눈과 귀가 매우 밝은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또, 여러 사람이 무리를 지어서 유람하는 때도 있다.

배수는 무리를 지어서 움직이는 사람들은 건드리지 않는다.

하지만 호발귀에게는 소요귀명검이라는 아주 강력한 무기가 있다. 도천패도 알지 못하는, 어떤 배수문파도 가르치지 않는 배수 최고의 절기가 몸에 붙어 있다.

호발귀의 배수는 소요귀명검을 알기 전과 안 후로 갈린다.

알기 전에는 뭇 배수 중 한 명에 불과했지만, 안 후에는 중원 제일의 배수가 되었다.

배수 솜씨가 극과 극으로 갈렸다.

지금은 마음먹은 대로 손을 넣었다가 빼도 눈치채는 자가 거의 없다.

나는 어둠 속에 묻혀 있고, 상대는 밝은 쪽에 드러나 있는데 어떻게 할 수 있겠나.

어둠과 밝음은 시차에서 얻어진다.

실질적으로 나와 상대방은 똑같이 밝은 쪽에 있다. 환한 대낮에 똑같이 드러나 있다. 그러니 나만 어둠 속에 묻혀 있다는 말은 상징적인 의미가 짙다.

상징? 아니다. 실제로 나는 어둠에 있다.

상대방이 눈길을 돌리는 잠깐, 모든 사람이 쳐다보지 않는 순간적인 시간, 그 시간을 노리는 것이 바로 어둠 속에 묻힌다는 말의 의미다.

소요귀명검을 펼치면 모두가 보지 않는 순간을 잡아낼 수 있다.

호발귀는 철저하게 어둠 속에 묻어서 이천여 명을 뒤졌다.

사람을 보고 미리 예단은 하지 않는다.

저 사람은 짐꾼이니까 아닐 거야. 저 사람은 옷을 잘 빼입었으니 아닐 거야. 저 사람은 무공도 모르고, 평생 글이나 읽으면서 살아온 문사야. 아닐 거야. 여자야, 어린이야, 노인이야, 병 들었는데 설마 독의겠어?

이런 모든 예단을 없애고 일일이,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품을 뒤졌다.

그런 데도 없다. 독의로 짐작되는 자가 없다.

그러면 등여산은 왜 독의가 천유봉에 산다고 했을까?

등여산은 천살단 정보를 이용한다. 그녀가 개인적으로 독의를 알아서 말해준 것이 아니라 천살단 정보를 읽고 문득 생각나서 말해준 것이다.

천살단은 독의가 천유봉에 있다고 확신한다.

개인이 판단한 게 아니라 천살단이라는 거대한 집단이 내린 판단이다.

독의는 틀림없이 천유봉에 거주한다.

독의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않는다. 틀림없이 비정상적인 생활을 한다.

‘열흘 동안이나 뒤졌는데도 없으면 여기 없는 거야.’

호발귀는 시선을 천유봉, 아름다운 산줄기로 던졌다.

많은 사람이 이 풍경을 보기 위해 천유봉에 오른다. 환히 트인 정경을 보고자 한다. 굽이진 물줄기를 보면서 강렬한 탄성을 토해내며 즐거워한다.

호발귀는 다른 곳을 봤다.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곳이 있다. 천유봉에 오른 사람들이 발길을 들여놓지 않는 곳이 있다. 너무 위험해서, 혹은 너무 외진 곳이어서, 아니면 길이 끊겨서.

호발귀는 산길을 따라서 걸었다.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곳을 일부러 뒤지면서 천천히 걸었다.

천유봉은 넓고 크지만, 사람이 보지 못하는 땅, 음지는 거의 없다. 아마도 쉽게 찾을 것이다.

호발귀는 이틀이나 천유봉을 뒤졌다.

찾기가 매우 쉬울 것이라는 판단은 틀렸다. 천유봉은 비밀이 없는 산이다. 사방이 환히 탁 트였다. 그러니 음지 같은 곳이 찾아질 리 없다.

“흠!”

호발귀는 대나무숲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수상한 곳이라면 이곳이 유일하다.

다른 곳은 수상하다는 생각조차도 들지 않는다. 너무 환히 트여 있어서 세밀히 살펴볼 필요도 없다. 지나가는 눈길로 훑어보기만 해도 사방이 보인다.

그나마 대나무 숲이 유일하게 속을 들여다볼 수 없다.

죽림에는 대나무가 너무 촘촘하게 자라있다.

다람쥐 정도라면 들어갈 수 있으려나? 토끼만 해도 들어갈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안을 볼 수 없다. 그러니 안으로 들어간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한다.

오직 이곳만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친다.

대나무숲은 천유봉이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니 굳이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또 대나무가 너무 촘촘해서 들어갈 수도 없다.

‘답답할 정도로 촘촘하군.’

호발귀는 눈빛을 빛냈다.

그에게는 더없이 좋은 음지다.

이곳은 무이산에서 완전히 버려진 땅이다. 천유봉에 오르는 모든 사람에게서 가려진 곳이다.

호발귀는 두 손으로 대나무를 잡고 옆으로 밀쳤다.

후두두두둑!

대나무가 벌어지기 싫다는 듯 요란한 소리를 냈다.

호발귀는 벌려진 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당장 탄성을 받은 대나무들이 몸을 꽉 조여온다. 안으로 들어가기에는 너무 좁다.

‘괜히 들어가나?’

자신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치밀었다.

대나무는 자연 상태 그대로다. 누가 손본 흔적이 없다. 더 들어가봤자 얻을 게 없어 보인다.

호발귀는 대나무 틈새를 비집고 조금씩 안으로 파고들었다.

얼마나 파고들었을까? 대나무 숲의 답답함에 갈증까지 치밀 무렵이다. 갑자기 싸한 느낌이 치밀었다.

‘응?’

호발귀는 미간을 잔뜩 찡그렸다.

무엇이라고 딱 꼬집어서 말할 수 없는 위험이 감지된다. 뭔지 모르지만 앞으로 나가면 안 될 것 같다.

이런 예감은 거의 정확하다.

호발귀는 움직임을 멈추고 주위를 돌아봤다.

“이건 또 뭐야?”

호발귀는 얼마 돌아보지 않아서 싸한 느낌이 어디서 일어나는지 알아냈다.

발밑에 산짐승을 잡을 때 쓰는 덫이 있다.

멧돼지, 노루 또는 사람.

작은 짐승밖에 들어올 수 없는 조밀한 대나무 숲에 큰 짐승을 잡을 때나 쓰이는 덫이 놓여 있다.

이곳에 누가 산다는 느낌이 강하게 일어났다.

“차라리 이런 게 없었으면 의심이나 않지. 이렇게 되면 끝까지 들어갈 수밖에 없잖아.”

호발귀는 대나무를 꺾어서 덫 한가운데를 꾹 눌렀다.

철컥!

덫이 와락 닫혔다.

양쪽에서 달려든 강철 톱니가 대나무를 싹둑 잘라냈다.

단지 발을 잡아놓으려는 덫이 아니다. 치명적인 상처를 안기는 덫이다. 사람이 걸려들었다면 적어도 발목이 싹둑 잘려 나갔을 것이다. 그만한 강하다.

“발목을 자르더라도 누군지는 알고 자를 것이지.”

호발귀는 푸념을 늘어놓으면서 앞으로 나갔다.

철컥!

또 다른 덫을 찾아서 해제시켰다.

덫은 풀잎에 가려져 있다. 그러니 주의에 주의를 거듭해야 한다.

“흠!”

대략 삼십 장쯤 나아가자 촘촘하던 대나무 공간이 넓게 벌어졌다.

이제는 굳이 대나무를 벌리면서 나아갈 필요가 없다. 산책하듯 유유히 걸어도 될 정도다.

삼십 장은 웬만한 궁사도 목표를 정확히 맞추기 어려울 정도로 먼 거리다.

그만한 거리를 답답함을 이기고 대나무를 밀쳐내야만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다. 산짐승도 들어올 수 없도록 외벽이 조밀하게 펼쳐져 있는 셈이다.

호발귀는 천천히 죽림을 산책했다.

걸어갈수록 대나무도 종류를 달리했다. 바깥쪽 대나무는 줄기가 가는 세죽(細竹)이었는데, 안으로 들어서자 굵기가 어른 팔뚝만 한 왕죽(王竹)이 불끈불끈 서 있다.

이제야 비로소 죽림을 산책하는 기분이 난다.

덫도 없다. 왕죽을 밟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덫이나 함정이 싹 사라졌다.

‘이렇게 은밀한 곳에 있으니 찾지 못하지. 하! 천유봉에 이런 곳이 있다니.’

천유봉은 산 정상이다. 천유봉에서 세상을 쳐다볼 수는 있지만, 천유봉을 굽어볼 수 있는 곳은 없다. 천유봉을 보려면 하늘로 올라가야 한다.

대나무 숲은 천유봉에 있다.

위에서 쳐다볼 수 없는 곳에 있다. 그러니 죽림 한가운데 세상 낙원이 있다는 사실도 숨겨진다. 모두 답답한 죽림만 볼 뿐, 여유로운 죽림은 보지 못한다.

“음!”

호발귀는 신음을 또 흘렸다.

죽림 안으로 들어서자 사람이 사는 움막도 쉽게 발견했다.

엄밀히 말하면 움막이라고 할 수도 없다. 절벽에 토굴을 파고, 입구를 풀더미로 가려놓았다.

산짐승도 들락거릴 수 없는 곳이니 저 정도만 해놔도 편안하게 잠들 수 있을 것이다.

호발귀는 움막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욱!”

호발귀는 갑자기 심장을 움켜잡았다.

피가 탁 막힌다. 몸이 딱딱하게 굳는다.

쿵!

호발귀는 서 있지 못하고 쓰러졌다.

의식은 뚜렷하다. 오감도 잃지 않았다. 눈은 여전히 왕죽을 본다. 귀는 대나무 사이로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를 듣는다. 코는 싱그러운 풀냄새를 맡는다.

감각은 살아있는데 몸만 움직이지 못한다.

‘중독?’

호발귀는 기가 막혀서 피식 웃었다.

물론 웃음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얼굴 근육이 딱딱하게 경직되어서 입술 주변이 움직이지 않는다.

‘이게 이대로 독물 실험당하는 거 아냐?’

호발귀는 편한 마음으로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한참 지나갔다. 쓰러진 지 한 시진쯤 지난 것 같다. 그런데도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 사람이 펼쳐낸 독에 중독된 것이 아니라 특정 지역에 살포한 독에 중독되었다.

‘거참…… 어디서 중독되었지?’

호발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떻게 중독되었는지 모르겠다.

쓰러지기 전까지 이상 증세를 느끼지 못했다. 어떤 느낌도 없다가 갑자기 마비가 찾아왔다. 그때,

“아미타불!”

귀에 익숙한 불호 소리가 들렸다.

호발귀는 활짝 웃는 얼굴로 장전 스님을 돌아봤다.

“그동안 왜 이렇게 뜸했어? 죽었는지 살았는지 궁금했네.”

호발귀는 진심으로 장전 스님을 반겼다.

장전 스님이 벗으로 찾아왔다.

얼굴에 차가운 기운이 없다. 전에 봤던 염라대왕의 싸늘함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호발귀를 지배할 생각이 없다.

지배할 목적으로 찾아왔다면 불호에서조차 살기가 감지된다. 정나미 뚝 떨어지게 차갑다.

지금은 불호에 온기가 스며있다.

장전 스님이 벗으로 왔다는 것은 혈마 무공이 호발귀를 잠식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이럴 때는 스님을 배척할 필요가 없다. 그도 벗으로 반긴다.

“쯧! 잠시 못 본 사이에 이게 무슨 꼴인고? 천하에 혈마 전인이 독 따위에 쓰러진다면 세상이 웃지.”

장전 스님이 호발귀를 쳐다보며 놀리듯 말했다.

“이게 무슨 독인지, 언제 중독되었는지 영 알 수가 없네?”

“그럼 알면 되잖아?”

“뭐? 아는 수가 있어?”

“하하! 아직 그런 것도 몰라? 도대체 뭘 배운 거야? 진기를 쓰면 되잖아! 진기로 몸을 싹 훑어봐. 그럼 어디가 막혔는지 당장 드러나잖아.”

“그거야 해봤지.”

“그런데도 안 된다고?”

“그러니까 묻는 거 아냐.”

“어디? 다시 해봐. 내 눈으로 보게.”

호발귀는 무심무실공을 일으켰다.

대주천(大周天)을 한다. 진기를 전신 경맥으로 보내서 각 요혈을 살핀다.

“너 지금 뭐 하냐?”

장전 스님이 비웃듯이 말했다.

“운기하잖아. 왜?”

“너…… 상처 입은 곳을 살살 어루만지면 아프냐, 안 아프냐?”

“살살? 정도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부드럽게 쓸어준다면야 아프지 않겠지?”

“네가 지금 그렇게 하잖아.”

“……?”

“독은 나름대로 성격이 있어. 독성이 강할수록 성질이 지랄 같거든. 그런 게 숨어있는 거야. 가시를 뾰족하게 세우고. 그런 데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어루만져? 그럼 가시가 만져져? 강한 힘으로 확 조져야 알지!”

결국, 역천금령공을 쓰라는 말이다.

장전 스님이 악마처럼 꼬드겼다.

“너 혈마 무공 통제할 수 있다며? 지금까지 한두 번 써본 것도 아니고, 독기를 파악할 정도만 쓰면 되잖아. 그 정도도 통제 못 해? 에라이, 나가 죽어.”

장전 스님이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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