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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64화 (64/500)

第十三章 무이산으로(4)

“제길! 지겨워 죽겠네.”

도천패가 중얼거렸다.

“뭘 저런 것까지 신경 쓰고 그래? 싸우자고 달려드는 것도 아니잖아. 내버려 둬.”

호발귀가 말했다.

“차라리 싸우자고 달려들면 한바탕 땀이라도 흘리지. 이거야 원 감질나서. 뭐 하자는 수작이야!”

도천패가 귀 있는 사람은 다 들으라고 쩌렁 고함 질렀다.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두 사람을 훔쳐본다.

다리 밑에 있는 거지, 오가는 사람들, 집안에서 빨래를 너는 아낙까지 쳐다본다.

처음에는 도천패를 보는 줄 알았다.

도천패는 어디에 있든 단박 눈에 띈다. 덩치가 워낙 커서 곰이 걸어오는 것 같다.

도천패 주먹은 어린애 머리만 하다. 장난으로라도 한 대 맞으면 기절 혹은 사망할 것 같다. 더욱이 등에는 혼자 들기도 힘들 것 같은 대도를 메고 있으니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사람이든 한 번쯤은 훔쳐보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도천패를 지켜보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을 주시한다.

주시, 지켜본다. 감시한다.

집안에서 빨래를 너는 아낙은 어제저녁 객잔에서 술을 마시던 여걸이다.

옷은 바꿨지만,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예기가 똑같다.

길가에 나뭇짐을 내려놓고 땀을 닦는 노인은 어제만 해도 중년인이었다. 대낮부터 술에 취해서 길가에 널브러져 잠을 자던 중년인이 틀림없다.

호발귀와 도천패는 투심문 사람이다.

호발귀는 문도 없는 문주이고 도천패는 예비 문주로 키워지기까지 했다.

두 사람 모두 투심문 절기를 상당 부분 배웠다.

사람을 살펴보는 것, 이것은 배수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는 필수 요소다.

사람을 잘 살펴야 뛰어난 배수가 된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고작 변복이나 하고 서툰 변장 따위로 눈을 속였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사실, 호발귀 같은 경우에는 사람을 살필 필요도 없다.

혈마록 중 소요귀명검은 귀신의 호흡으로 쳐내는 검이다. 고요하기가 암흑과 같다. 검기, 살기는커녕 티끌만 한 기운조차도 암흑 속에 묻어버린다.

소요문의 소요청명검법은 마음을 편안하게 가라앉혀 주지만 소요귀명검법은 마음을 죽인다.

세상이 암흑으로 덮일 때, 상대방은 더욱 뚜렷하게 주목받는다.

검기, 도기, 살기, 흉기 등등 상대방이 드러내는 기운이 별빛처럼 반짝거린다. 나는 죽이고 상대방은 뚜렷하게 부각한다. 밝은 빛 속으로 끌어낸다.

공격은 그다음이다.

숨은 자와 환히 드러난 자가 싸우게 된다. 숨은 자는 맹수의 눈으로 쳐다보고, 드러난 자는 장님이 되어 어둠 속을 더듬는다. 검이 다가와도 알지 못한 채.

소요귀명검은 죽음의 검이다.

소요귀명검을 수련하면 부수적으로 얻어지는 효과가 있다.

타인의 기운을 장난처럼 읽어낸다.

담장 너머에서 빨래를 너는 아낙의 살기가 어제 객잔에서 술을 마시던 여걸과 똑같다.

살기를 어떻게 구분하느냐고?

살기는 지문처럼 독특하다. 사람마다 각기 다르게 표현된다.

보통 사람이 살기를 느끼면 그저 소름 끼치는 정도로만 받아들인다.

호발귀는 살기 속에서 맛과 향을 느낀다.

살기를 뿜어내는 자의 기운과 체취가 버무려져서 오직 하나뿐인 살기를 만들어낸다.

이들이 거기까지 알 수는 없을 것이다.

“밥이나 먹고 가자.”

호발귀는 길가에 있는 노점상으로 걸어갔다.

호발귀는 구운 고구마와 전병을 먹었다.

도천패는 그 정도로는 안 된다, 오리 두 마리를 집어서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쑥 훑어 넣었다.

호발귀가 전병 먹는 속도보다 오리 두 마리가 없어지는 게 더 빨랐다.

“모자라지 않아?”

“누굴 돼지로 아나!”

“한 마리도 더 먹지?”

“문주놈아! 나 돼지 아니다!”

도천패가 화난 듯 홱 돌아앉았다.

도천패가 그 정도 말에 삐지겠는가. 그는 무심히 돌아앉으며 주위를 쓸어봤다.

여전히 감시의 눈길이 흩어지지 않고 있다.

“우리 어디서 본 적 없나?”

도천패가 노점상 주인에게 말했다.

“네? 초면인뎁쇼?”

“초면은 무슨 초면. 그저께 만났잖아. 당신, 질그릇 가게에서 도기 굽지 않았어?”

“아, 아닌뎁쇼.”

노점상 주인이 당황해서 급히 손을 저었다.

도천패 말이 맞는다. 노점상 주인은 도기를 굽던 자, 맞다. 지금도 허리춤에는 단검 두 자루가 꽂혀있다.

설거지하는 아낙도 간자다.

아낙은 미처 모르는 모양인데, 소매 사이로 비침 주머니가 살짝살짝 보인다.

“아니라는데 왜 그래? 가자.”

호발귀가 전병을 마저 먹었다.

“우리가 돈을 내지 않고 가면 이놈들 뭐라고 하려나? 돈 달라고 할까?”

도천패는 아예 노점상 주인을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무전취식이야 할 수 있나. 값은 셈해야지.”

호발귀가 동전 열 닢을 꺼내 전병 그릇 옆에 놓았다.

노점상 주인과 설거지하는 아낙은 너무 긴장해서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두 사람은 배를 타기 위해 강에 왔다.

강가에도 많은 사람이 진을 치고 지켜섰다.

두 사람이 갈 길을 예측하고 앞을 정리한다.

노점상에 있으면 주인을 잠시 치워 놓고 자신들이 대신 그 자리에 앉는다.

뱃사공도 마찬가지다.

원래 주인은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오직 노만 젓던 뱃사공 대신 무인이 배 위에 앉아있다.

“강 건너갑시다.”

“타슈.”

뱃사공 심드렁하게 말했다.

호발귀와 도천패가 배에 오르자, 사공이 삐걱삐걱 노를 젓기 시작했다.

기습 같은 것을 하려나?

이들은 공격할 생각이 없다. 오직 두 사람이 가는 길을 지켜보기만 한다.

“어디까지 가쇼?”

뱃사공이 무심히 물었다.

“정말 신경질 더럽게 나네.”

도천패가 중얼거렸다.

“내버려 두지?”

“누군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난 워낙 못돼먹어서 눈꼴 시린 건 못 봐.”

도천패가 불쑥 일어나더니 뱃사공에게 걸어갔다.

뱃사공이 깜짝 놀라서 도천패를 쳐다봤다.

“내가 박아 줄까, 네가 뛰어내릴래?”

뱃사공이 놀란 눈으로 잠시 갈등을 일으키더니, 냅다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빌어먹을!”

도천패가 사공 대신 노를 잡았다.

삐걱! 삐걱! 삐걱!

배는 뱃사공이 노를 저을 때보다 훨씬 빠르게 물살을 헤쳐나갔다.

호발귀는 뱃전에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쩌다가 온 세상 사람들로부터 주목받는 신세가 되었나.

원래 투심문은 세상에서 가장 잘 숨는 사람들인데, 정반대로 모든 사람에게 주목받는 신세가 되었다.

‘이게 맞나? 노인네가 이 사실을 알면 길길이 날뛸 텐데.’

호발귀는 사부, 날수수를 떠올렸다.

사부가 그립다.

턱!

배가 강가에 닿았다.

순간, 도천패가 배에서 훌쩍 뛰어내리더니 등에 메고 있던 대도를 스르릉 뽑아 들었다.

“하하하하하!”

도천패가 허공을 향해 미친 듯이 웃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대도를 허공에 휘둘렀다.

휘이잉!

칼바람에 매섭게 몰아쳤다.

대도는 허공을 몇 바퀴 선회한 다음, 그들이 타고 온 배를 향해 거침없이 떨어졌다.

꽈앙!

일격에 나룻배가 산산조각이 났다.

도천패는 미치기라도 한 듯 맹렬하게 칼을 휘둘렀다.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두 번, 세 번, 네 번 계속 휘둘렀다. 목표는 강물이다. 강물을 쳐올렸다.

파앙! 꽈르르르릉!

강물이 흩날리는 폭포가 되어 솟구쳤다.

“아아아아아!”

도천패가 정말 미쳤나? 이번에는 강 건너편까지 들릴 만큼 거세게 고함질렀다.

“지금부터 눈에 띄는 놈은 다 죽인다! 어떤 놈이든 다 죽인다! 목숨에 미련 없는 놈들만 알짱거려라! 내 모가지를 떼서 닭 모이로 주고 말 것이야!”

누구에게 한 말인지 모른다.

누가 들어도 상관없고 듣지 않아도 무방하다.

온 천지가 울리도록 고함쳤다. 그리고 칼을 꽂지도 않은 채 손에 들고 땅이 쾅쾅 울리도록 거칠게 걸었다.

“문주놈! 어떠냐?”

도천패가 히죽 웃었다.

“잘하네.”

호발귀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겨우 그 정도야? 이 정도면 정나미 뚝 떨어지지 않나? 그렇다고 포기할 놈들이 아니지만.”

배수에게는 꼬리가 많이 달라붙는다.

배수하고 상관없는 일이 생겨도 제일 먼저 배수부터 잡아 족치는 것이 아예 상례처럼 되었다.

그래서 배수들은 추격에 민감하다.

도천패가 괜히 신경질을 부리기 시작한다.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시비를 걸지 못해 안달 난 모습을 여러 번 보여준다.

그러다가 마침내 미친 듯이 폭발한다.

실제로 어느 한 놈을 잡아서 반쯤 죽여놓는 수도 있고, 지금처럼 폭발하는 모습만 보여줄 때도 있다.

그러면 쫓는 자들은 일시 위기감을 느낀다.

도천패의 신경이 너무 날카로워서 가까이 다가서면 정말 무슨 일이든 일어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추격 거리는 자연히 벌어진다.

천살단이든 혈천방이든 상관없다. 누가 추격하는지 알고 싶은 생각도 없다. 일단 가까이 달라붙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신경이 예민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 방법은 매우 효과가 크다.

투심문 문주들이 오랫동안 시행해 본 결과,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추천되었다.

그렇다. 추격 회피술이다.

물론 저들이 완전히 떨어진 것은 아니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계속 따라붙는다. 그러니 결국은 완벽하게 떼어내는 방법을 시도해야 한다.

도천패가 물었다.

“언제 떼어낼 거야?”

“지금.”

“지금? 지금은 너무 이르지 않아? 조금 더 예민한 모습을 보여준 다음에……”

“마찬가지야. 그 정도에 주눅들 놈들이 아니거든. 지금 바로 떼어낼 건데, 일안(一案)? 이안(二案)?”

“뛰기 싫다. 이안으로 하자.”

도천패가 말했다.

일 안은 무공으로 떼어내는 방법이다.

상대보다 무공이 월등하게 높을 때, 그리고 충돌을 피하고 싶을 때 사용한다.

전력을 다한 도주!

신법에서 워낙 차이가 크게 나니 쫓아오지 못한다.

두 번째 방법은 은잠(隱潛)이다.

하늘로 솟은 듯, 땅으로 꺼진 듯 소리소문없이 사라진다.

호발귀와 도천패는 두 번째 방법을 쓰기로 했다.

물론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도피를 시작한 후에는 누구도 만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무너진 동굴에서부터 지금까지 누구와 싸운 적이 없다. 말을 섞지도 않았고, 누군가를 방문하지도 않았다. 오직 무이산을 향해서 걷기만 했다.

그런데도 추격자가 달라붙었다.

이들은 사람들 틈에 섞여 있다. 길을 오가는 모든 무인을 관찰하다가 의심쩍은 자가 있으면 당장 따라붙는다. 물론 본문과 연통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호발귀와 도천패의 신분 내력이 이미 파악되었다고 생각한다.

“저기가 좋겠지?”

호발귀가 다 쓰러져가는 폐가를 찾아냈다.

“한데 이놈들, 어디 놈들인지 짐작이 가?”

“아니.”

“내가 장담하는데, 두 군데가 섞여 있어. 이놈들이 서로 묘하게 경계하더라고. 같은 편이 아니라는 거지.”

“더 안 좋은 말이네.”

“그런가?”

“한쪽에서만 추격당해야 공격도 한 곳에서만 당하지. 지금은 양쪽 다 쫓는 거니…… 쟤들을 떨어낼 목적이 아니더라도 지금은 무조건 피하는 게 낫겠다.”

“흐흐! 난 싸우는 것도 괜찮아.”

호발귀와 도천패는 폐가를 향해 걸었다.

오늘 밤은 폐가에서 노숙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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