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十三章 무이산으로(3)
“헉! 헉! 헉!”
사내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산을 올랐다.
“내가 어쩌다 이놈들과 인연을 맺어 가지고는…… 아이고, 죽겠다.”
사내가 길가에 털썩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사내는 나이를 짐작할 수 없다. 서른쯤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쉰이 넘은 중년인 같기도 하다. 몸을 보면 젊은이인데, 얼굴을 보면 중년인이다.
얼굴이 많이 얽었다.
햇볕에 그을리고, 거친 바람을 많이 맞아서인지 고생한 흔적이 역력하다.
하지만 몸 하나만큼은 매우 튼튼해 보인다.
종아리에 알이 단단히 배겨서 돌덩이 같다. 웬만한 산쯤은 너끈히 타고 넘을 사람이다.
그런 그가 힘들어서 쩔쩔맨다.
높이가 천이백 장에 이르는 고산은 강인한 사람도 단박에 병자로 만들 수 있다.
사내는 자신의 맥을 짚어보았다.
“아직은 괜찮네. 하아! 하아!”
그는 고산병에 걸리지 않도록 매우 조심했다.
산 아래에 사는 사람이 고산에 올라서면 신체 능력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사람에 따라서 증상이 다르게 나타나지만, 심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머리가 아프고, 식욕이 없어지며, 토할 것 같고, 걷는 게 힘들어진다.
“아이고, 이놈을 가져가? 말아?”
사내는 지금까지 짊어지고 온 소금 가마니를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봤다.
소금은 고산지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하다.
그래서 짊어지고 오기는 했는데, 앞으로 걸어갈 일을 생각하면 걱정이 태산이다.
“에그! 그래도 이거 하나라도 가져다줘야지. 많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사내는 다시 소금 가마니를 짊어졌다.
“가자! 저녁은 얻어먹어야지! 끄응!”
산은 어느 순간부터 거칠고, 삭막해진다.
주위에 한 그루 없다. 오직 푸석거리는 바위만 널려있다.
그래도 억센 풀이 산 전체에 퍼져 있어서 멀리서 보면 푸르게 보이기는 한다.
산을 오르자 탁 트인 초원이 나타났다.
초원에는 놀랍게도 물이 흐른다.
비록 마시지 못하는 석회수이지만 초원 한가운데를 시원하게 흐른다.
고산 사람들도 이 물은 마시지 않는다.
소주를 내리듯이 물을 끓여서 물방울을 내려 마신다. 아니, 이것은 몹시 가물 때나 하는 것이고…… 대부분은 빗물을 받아놓았다가 식수로 사용한다.
몹시 고된 삶이다.
사람들은 물이 흐르는 개천 위쪽에 마을을 형성했다.
대략 삼십여 호? 이백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척박한 초원에서 살고 있다.
이 마을에는 비밀이 많다. 결코, 외부로 흘러나가서는 안 되는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산 아래 사람들과 교분을 나누지 않는다.
산에서 내려가지도 않고, 산 아래 사람들이 올라오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자기들끼리 모여서 살아간다. 초원에서 태어나 초원에서 살다가 죽는다.
그러다 보니 혼인도 마을 사람들끼리 한다.
대부분 근친혼이지만, 척박한 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아저씨!”
멀리서 힘차게 뛰어놀던 아이들이 사내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하! 그놈들……”
사내는 아이들이 귀여운지 마주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거 뭐냐…… 혈마록. 혈마록이 풀린 거 같던데.”
사내가 말했다.
“하하하! 쓸데없는 소리.”
둥글게 빙 둘러앉아서 식사하던 사람들은 사내의 말에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정말인데. 지금 천살단이고 혈천방이고 난리야. 잡랑, 귀무살 할 것 없이 죄다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니까.”
그제야 비로소 촌장이 사내를 쳐다봤다.
촌장이 밥그릇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자세히 말해보시게.”
“그러니까 그 뭐냐? 혈마 무공을 수련한 놈이 나타나서는 살단 총주 뱃가죽에 창을 푹 쑤셨다 이 말이지.”
“총주가 당했다고?”
머리가 산발해서 망나니처럼 생긴 자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머리에 쇠로 만든 철건(鐵巾)을 두르고, 얼굴은 온통 칼자국투성이여서 꼭 산적처럼 보인다.
“맞다니까.”
“정말이야?”
“이 사람 참…… 내가 왜 따뜻한 밥 먹고 쉰 소리를 하나? 사실이라니까.”
밥 먹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촌장을 쳐다봤다.
촌장이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자네는 그 소문을 어디서 들었는고?”
“아, 나야 혈천방이고 천살단이고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왜 그 자잘한 잡일하는 사람들…… 자세한 건 말해줘도 모르고. 남의 정보원을 알 필요가 있나?”
사내 해자수(解藉手)가 말했다.
해자수는 정보를 파는 사람이다.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면서 필요한 정보를 알아다 준다.
고산 마을 음문촌(蔭門村)은 오래전부터 사내를 고용했다.
“그자가 혈마 무공을 어디서 어떻게 배웠다고 하던가?”
“하! 그게 좀 요상하다 이 말이지. 이건 참 너무 말 같지 않아서 내 입으로 주절거리기도 그런데…… 그래도 나는 들은 대로 말할 수밖에 없으니까.”
“괜찮으니 말해보시게.”
촌장이 해자수를 쳐다봤다.
“그게…… 천살단 비자가 혈천방에서 혈마록을 빼돌렸는데, 그걸 투심문 배수 놈이 중간에서 꿀꺽했다는 거 아뇨. 그러면 양쪽에서 가만있나? 서로 잡아 죽이려고 난리지. 이 꿀꺽한 놈이 양쪽에서 쫓기니까 급한 김에 혈마록을 외워버렸다지 뭡니까.”
“혈마록을 외워? 그걸 어떻게?”
이번에는 왼쪽 눈에 검은 안대를 한 외눈 사내가 물었다.
“그게 더 말이 안 된다니까. 하룻밤 사이에 혈마록 열 권을 뚝딱 외워버렸대요. 이게 어느 정도 말이 되면 자신 있게 말하겠는데, 워낙 말 같지 않아서. 에이, 괜히 말했나?”
해자수가 말끝을 흐리면서 슬쩍 촌장을 쳐다봤다.
괜히 말한 것이 아니다. 천살단, 혈천방 양쪽에서 같은 정보를 들었기 때문에 말했다.
방금 한 말에는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
하지만 양쪽에서 어떤 말을 들었든, 촌장 한마디만은 못하다. 그래서 촌장을 쳐다봤다.
촌장은 문신으로 가득한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얼굴에 호랑이 가죽처럼 문신을 새겨서 얼굴색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특히 집안에서 보면 검은 얼굴에 눈동자만 반짝거려서 맹수를 보는 것 같다.
촌장이 침중하게 말했다.
“정말…… 혈마 무공이 풀렸나.”
혼잣말로 중얼거렸지만, 해자수 귀에는 똑똑히 들렸다.
“그, 그럼 정말 그게 혈마 무공이란 말입니까?”
해자수가 놀라서 촌장을 쳐다봤다.
“혈마록은 혈마가 정령(精靈)으로 쓴 책이지. 그래서 교감을 이루지 못하면 한 글자도 해독하지 못해. 아버님, 아무래도 혈마 무공이 나온 것 같은데요?”
외눈 사내가 촌장을 보며 말했다.
“신중해라.”
촌장이 외눈 사내를 질책했다.
“거참, 신중할 게 뭐가 있습니까? 나오면 나온 거지. 그거야 가서 눈으로 보기만 하면 당장 확인될 건데. 킥킥! 아버님, 제가 후딱 갔다 오겠습니다.”
윗머리가 텅 비어서 머리를 환히 드러내고 있는 대머리 사내가 말했다. 그는 주변머리를 길러서 위를 덮었는데, 그래도 머리 빈 것이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넌 도둑놈 티가 너무 나. 차라리 내가 낫지.”
철건을 쓴 자가 말했다.
“형님은 얼굴에 난 칼자국 때문에 안 된다니까. 그런 얼굴로 어딜 돌아다녀. 그래도 이 중에서 상판대기가 제일 변변한 사람은 나 밖에 없잖소.”
“죽을래?”
“킥킥! 언제 내 목숨 맡아놨수?”
“조용히들 해라!”
촌장이 소리를 빽 질렀다.
“차라리 여자가 가는 건 어때요? 오라버니들보다 내가 더 낫지 않을까 한데.”
곰처럼 우락부락하게 생긴 여자가 말했다.
여인은 매우 큰 덩치에 곰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어서 여인으로 보디지 않는다. 더욱이 겉으로 드러난 팔에는 알 수 없는 도형들이 잔뜩 문신 되어 있다.
얼굴도 네모반듯하고, 코는 너무 맞아서 풀썩 주저앉았고, 눈매는 늑대처럼 살기로 가득 차 있다.
웬만한 사내는 곁에 다가올 엄두도 나지 않는다.
“조용히 하래도!”
촌장이 입들을 막았다.
촌장에게는 자식이 일곱 명 있다.
사내 다섯에 여자가 둘이다. 하지만 모두 이복형제다. 아버지는 같고 어머니는 모두 다르다.
“그거 뭐 생각할 게 있다고. 날 보내라니까.”
윗머리가 없는 사내, 삼자가 중얼거렸다.
촌장이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번 일에는 막내를 보낸다.”
“예?”
“아휴! 무슨 말도 안 되는……”
촌장이 말을 하기 무섭게 자식들이 모두 한마디씩 했다.
“자넨 어떤가?”
촌장이 해자수에게 물었다.
“제 생각에도 홀리(囫利)는 조금…… 성격이 워낙 지랄 같아서 수틀리면 주먹부터 날리니.”
“그러니 자네가 잘 이끌어야지.”
“네? 제가 왜요?”
“혈마 무공을 배웠다는 자, 이름이 뭔가?”
“호발귀라고 들었는데요.”
“별호는?”
“별호 같은 것은 아직 없고. 사실 무림에 정식 출도한 것도 아니라서 아는 자들만 알죠.”
“그러니 자네가 이끌어야지. 우리가 중원에 나가서 백날 뒤진다고 해도 호발귀라는 자를 찾을 수 없잖아. 홀리를 데려가서 무공만 보게 해. 그럼 끝나.”
“어휴! 제발 그것만은……”
그때다. 움막 문이 덜컹 열리며 여인이 들어섰다.
“아저씨 왔다며? 아! 저기 있었네.”
여인은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곧장 해자수를 향해 걸어갔다.
“줘.”
“뭐, 뭐를?”
해자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잊은 거야?”
여인의 눈꼬리가 상큼 쳐들렸다.
여인은 다른 형제들과 달리 얼굴이 갸름하다. 이목구비도 단정하다. 피부도 깨끗하고 맑다. 몸도 날씬하다. 한눈에 봐도 매력적이다. 하지만 눈매는 표범처럼 사납다.
“아! 투침환(投針環). 그거 지금 열심히 만들고 있어요. 아직 제작이 안 되어서.”
“거짓말이지?”
“제가 왜 거짓말을 합니까. 만들어 드리기로 했으니 틀림없이. 조금만 참으시면 꼭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안 가져오면 죽는다!”
“네, 네.”
해자수는 여인에게 쩔쩔맸다.
여인은 볼일을 마친 듯 좌중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일별도 던지지 않은 채 밖을 향해 걸어갔다. 용건을 마쳤으니 더 있을 필요가 없다는 태도다.
“잠깐 앉아라.”
촌장이 말했다.
“뭐! 할 말 있으면 해! 나 지금 백표(白豹) 잡으러 가야 해. 천주봉에 그놈이 나타났대.”
“허어! 앉으래도!”
촌장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제야 여인은 화난 듯 홱 돌아서더니 털썩 주저앉았다.
“왜!”
여인이 촌장을 향해 마주 고함쳤다.
“너 중원 좀 다녀와라.”
“뭐? 정말!”
여인은 벌떡 일어나면서 되물었다.
얼굴이 활짝 펴지고, 입이 쭉 찢어졌지만 두 눈은 여전히 못 믿겠다는 의심이 가득했다.
“중원에 혈마 전인이 나타났다. 가서 확인해 보고 와. 이번 일은 우리 음문의 미래가 걸린 일이니 알아서 처신하고. 그놈의 성질머리 좀 죽이고!”
“혈마 전인이? 정말? 그럼 우리 중원 나가는 거야? 이것들 다 죽었어.”
“어허!”
“알았어, 알았어! 내가 확실히 알아보고 올게.”
여인, 홀리가 활짝 웃었다.
하지만 촌장은 인상을 있는 대로 찡그렸다.
밖으로 내보낼 사람이 그래도 일곱 째밖에 없어서 내보내기는 하지만, 홀리에게 말을 건네고 있자니 이게 잘하는 짓인지 의구심이 치밀었다.
“자네가 잘 알아서 이끌어……”
촌장이 해자수에게 당부를 건네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해자수의 얼굴은 똥 씹은 표정이다.
얼굴빛이 붉으락푸르락 머위 변한다. 입술 끝이 달달 떨리기까지 한다.
홀리와 중원에 나갈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한 것이다.
“휴우!”
해자수가 결국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막내 좀 보호해야겠다.”
“네.”
움막 밖에서 조용하고 차분한 음성이 들려왔다.
“모습을 드러내지 말고 신변만 보호해.”
“네.”
“섭섭한 게 많은 줄 안다만……”
“그런 것 없습니다. 아버님 명, 충실히 이행하겠습니다.”
여섯째 아들이다.
음문촌을 배신한 배신녀의 아들이다.
그래서 촌장의 아들이지만 노예처럼 음지에서 살아간다.
포해남(匏垓南)이 차분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