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十三章 무이산으로(2)
딩디링딩 딩딩딩 딩디리링 딩딩딩!
여인이 의자에 앉아서 고쟁(古箏)을 연주한다.
음률이 매우 빠르고 경쾌하다. 스물한 개의 현이 시냇물 흐르는 소리를 흘려낸다.
많은 사람이 여인의 연주를 듣는다.
여인의 탄주에 맞춰서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술잔을 들어 몇 모금 마시기도 한다.
띠리리링! 띵띵!
여인은 힘차게 연주를 마치고 살포시 고개를 숙였다.
“와우! 와우!”
머리가 하얀 중년인이 감탄을 금치 못하고 연신 소리를 지르며 손뼉을 쳤다.
“굉장해! 굉장해! 어떻게 이런 연주를 할 수 있지?”
중년인은 활짝 웃으면서 엄지손가락을 곧추세워 보였다.
여인이 살포시 고개를 숙여 답례했다. 그리고 곧바로 고쟁에 손을 얹고 두 번째 연주에 들어갔다.
딩 딩 딩 딩딩딩 딩 딩 딩 딩딩딩!
어린아이가 춤을 추면서 뛰노는 듯, 노랑나비가 꽃을 찾아서 돌아다니는 듯 밝고 활기찬 곡이 흘러나왔다.
청아하고, 맑고, 밝아서 심장이 쿵쿵 뛴다.
백발 중년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연주를 지켜봤다.
“사랑스럽지 않나?”
백발 중년인이 말했다.
등 뒤에 서 있는 차가운 용모의 검객에게 한 말이다.
검객은 대답하지 않았다.
검객은 연주조차 듣고 있지 않았다. 그는 칼밖에 모른다. 연주는 모른다. 여인도 모른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백발 중년인이 하는 말에 동조해 줄 말도 없다.
백발 중년인이 슬쩍 뒤돌아서 검객을 쳐다봤다.
딱딱한 표정, 무표정한 얼굴, 차가운 검 한 자루가 서 있을 뿐이다.
“쯧!”
백발 중년인이 혀를 찼다.
딩디리리링 딩딩딩 딩디리 딩 딩딩!
고쟁 소리가 아름답게 울려 퍼진다.
여인은 일다경 정도를 탄주한 끝에 손을 곱게 내려놓으며 머리를 숙였다.
“와우! 와우! 와우!”
백발 중년인이 이번에도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힘껏 손뼉 쳤다.
그는 손뼉을 치는 것으로 성이 차지 않는지, 술잔에 술을 따라서 여인에게 가져갔다.
“형전주(刑殿主), 한 잔 받으시게.”
“감사합니다. 방주님.”
여인이 공손히 술잔을 받아서 단숨에 들이켰다.
“와우! 하하하! 형전주는 통쾌하기가 사내 뺨 때릴 정도라니까. 하하하!”
백발 중년인이 깔깔대며 웃었다.
여인은 살포시 고개를 숙여 답례했다.
“자! 그럼 모두 실컷 즐기시게. 난 좀 귀찮은 손님이 찾아와서. 꼭 이럴 때만 찾아와서 흥을 깨는 못된 친구가 있다니까. 안 그래? 하하하!”
백발 중년인이 검객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번에 손해를 많이 봤다고?”
“열세 명이 죽었습니다.”
“삼십일살도 포함됐다면서?”
“네.”
“삼십일살까지 잃었다면 대단한 손해군. 그래, 받았으면 돌려줘야지. 어떡할 생각인가?”
“제가 나가보겠습니다.”
검객이 차분히 말했다.
“저쪽에서 살단 총주가 나왔다면 자네가 가는 게 당연하겠지. 자네 아니면 총주를 잡을 인간이 없어. 가 봐.”
“감사합니다.”
검객이 고개를 숙였다.
“호발귀, 죽이지 말고 잡아 와. 그놈, 혈마 무공을 사용한다는 소문이야. 봐야지?”
“네. 그럴 생각입니다.”
검객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호발귀는 죽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원래 무림은 호발귀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소문은 천살단 안에서만 퍼졌다.
천살단에 잠입한 간자가 전해온 말이니 십분 믿어도 될 것 같다.
하지만 혈천방은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아니, 비웃는다.
호발귀는 살아 있다. 그를 목격한 자가 한두 명이 아니다. 지금도 호발귀를 주시하는 눈이 상당수다. 그림자처럼 따라붙어서 동정을 살피고 있다.
백발 중년인이 말했다.
“이번에 나가면 살단 총주라는 자, 심장을 꺼내 와. 그 사람 피는 어떤 색인지 한번 보자고.”
“알겠습니다.”
“그 사람, 쯧! 웬만하면 봐 주려고 했는데, 너무 날뛰어. 겁 없이 날뛰는 망둥이는 정리해야지.”
“네.”
“그리고 자네 말이야. 형전주가 연주할 때는 좀 기다렸다가 올 수 없나? 내가 형전주한테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잘 알면서 훼방이야!”
검객은 대답하지 않았다.
농에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농을 모르니 그저 입을 다물고 얼굴만 쳐다본다.
“아이고, 내가 말을 말아야지.”
백발 중년인이 가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면서 중얼거렸다.
“사람이 재미없어. 쯧!”
“잔살, 월도, 쌍부, 무지 중에서 가장 빨리 올 수 있는 자는 누가 있나?”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총무가 황급히 인명록(人名錄)을 펼쳤다. 그리고 검객이 말한 자들을 찾았다.
“잔살은 섬서(陝西)에 있습니다. 쌍부가 하북(河北)에 있고. 둘이 오는 시간이 비슷합니다.”
“다른 자들은?”
“월도는…… 사천(四川)에 있네요. 무지는 광동(廣東). 시간이 배는 더 걸립니다.”
“잔살과 쌍부. 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언제까지 오라고 할까요?”
“나는 지금 출발한다. 내 동선에 맞춰서 찾아오라고 해.”
“예. 알겠습니다.”
총무가 깊이 허리를 숙이며 답했다.
“날수수는?”
“형옥에 있습니다.”
“알았다.”
검객이 일어섰다.
“저…… 형전주님께 전할 말씀이라도?”
“없다.”
검객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네? 네.”
총무가 다시 허리를 숙였다.
날수수는 호발귀를 유인하는 최적의 도구다. 날수수만 있으면 호발귀가 제 발로 걸어온다.
그래서 더더욱 내주지 않을 것이다.
방주가 호발귀에게 관심을 가진 이상, 날수수는 방주가 이용할 생각이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잔살과 쌍부만 있어도 호발귀가 찾아온다.
호발귀는 열세 명의 귀무살 중 섬전을 한눈에 찾아냈다. 그리고 거리낌 없이 죽였다.
강하 사건에 개입한 귀무살에게 원한이 매우 깊다는 뜻이다.
그러니 잔살과 쌍부는 아주 뛰어난 미끼다. 그들만 있으면 호발귀는 멀리 가지 못한다.
지금 호발귀를 찾아가는 중이지만, 만에 하나 도주하는 일이 생겨도 다시 돌아오게끔 만든다.
저벅! 저벅!
검객이 걸어갔다.
“행낭 하나 없이 그렇게 가십니까?”
검객은 대꾸하지 않았다. 허리에 검 한 자루만 찬 채 집무실을 나섰다.
“어휴! 저놈의 성질머리.”
총무는 검객이 나간 후에야 허리를 펴며 푸념했다.
* * *
“호발귀가 살아 있습니다.”
순간, 고기를 뜯어 먹던 사람들이 일제히 먹는 것을 멈췄다.
그들은 멧돼지를 잡아서 구워 먹는 중이었다. 술도 한 잔 걸쳐서 몸도 풀어졌다.
총주도 눈이 시뻘게질 정도로 술을 마셨다.
안주가 멧돼지 앞다리를 들고 으적으적 씹어먹다가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을 들었다.
“방금 뭐라고 그랬어?”
총주가 잡랑을 노려보며 말했다.
“호발귀가 살아 있다는 보고입니다.”
“확실해?”
“확실합니다.”
“흐흐! 흐흐! 흐흐흐! 그럼 그렇지. 그놈은 내 손에 죽어야 해. 다른 놈에게 죽으면 안 되지. 흐흐흐!”
총주는 기분 좋은 듯 웃었다.
“도천패라는 놈이 있습니다. 호발귀는 죽었다고 해도 도천패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자라서 주목했는데, 그놈 곁에 호발귀가 나타났습니다. 방금 들어온 보고입니다.”
잡랑이 말했다.
“그래. 그래. 아, 뭐해? 어서 먹어! 배불리 먹고 오늘 밤 달리기 좀 해보자고. 하하!”
총주가 기분 좋게 웃었다.
잡랑들은 일제히 식사에 열중했다.
오늘 밤 고생길이 훤하다.
호발귀는 총주 몸에 창을 박았다. 근래 들어서는 총주 몸에 상처를 입힌 자가 없었는데, 호발귀가 창을 쑤셔 넣었다. 그것도 절명에 이를 정도로 중한 상처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총주는 ‘호발귀’라는 말에 대해서 부쩍 예민해졌다. 자다가도 호발귀 비슷한 말만 들리면 벌떡 일어나 눈을 부라릴 정도였다.
방금 총주를 들뜨게 만드는 보고가 들어왔다.
밤을 새워 달려가는 건 당연하다.
“뭐해? 어서 먹어! 배불리 먹고 오늘 밤 죽을힘을 내서 달려보자고.”
총주는 자신이 먼저 손에 들고 있던 멧돼지 다리를 씹어 먹기 시작했다.
곧 다시 좌중은 시끌벅적해졌다.
잡랑들이 멧돼지 고개를 뜯어먹으면서 잡담을 나눴다. 하지만 술을 마시는 자는 없었다.
* * *
“호발귀가 살아 있는 것 같습니다.”
문밖에서 나직한 음성이 울렸다.
검벽 무인이 검벽주에게 보고한다.
‘호발귀가?’
주치균은 큰 대 자로 드러누운 채 천정을 쳐다봤다.
술에 취해서 몸을 일으킬 수가 없다. 하지만 정신은 또렷하다. 몸이 말을 안 들을수록 정신은 더욱더 또렷해진다. 등여산의 모습이 더욱 환해진다.
“후후! 후후!”
주치균은 툴툴 웃었다.
사즉사를 맞고도 살아났다면 어쩌란 말이냐. 동굴을 무너트렸는데, 살아났다면 뭘 더 어떻게 해.
문밖에서 음성이 또 들려 왔다.
“살단 총주께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후후!”
“호발귀를 쫓아가는 중인데, 잡랑이 대거 동원되었습니다. 아마도 결판을 내실 생각인 거 같습니다.”
그래도 주치균은 움직이지 않았다.
일이 어디서부터 일이 잘못됐는지 모르겠다.
등여산이 왜 호발귀 같은 놈에게 겁탈을 당해야 하나. 등여산은 또 왜 자신을 겁탈한 호발귀에게 호감을 느끼나. 오랫동안 연정을 표시한 자신을 무시하고.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등여산과 함께 참회동을 찾을 때부터 잘못된 것 같다.
검벽 무인이 보고했다.
“혈천방 쪽도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귀무살 상당수가 움직이는데, 목표는 아무래도 호발귀가 아닐까 합니다. 만약 예상이 맞는다면 큰 충돌이 일어날 거로 보입니다.”
보고는 맞을 것이다.
검벽은 천살단주를 호위한다. 단주를 곁에서 지킨다. 당연히 단주에게 전해지는 보고 내용도 알게 된다.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까지 안다.
검벽 무인들의 입은 자물쇠를 채워놓은 듯 무겁지만, 검벽주에게까지 무겁지는 않다.
주치균이 술 취한 음성으로 말했다.
“지금 이 말…… 명조각에 들어가지 않도록 해.”
“……”
검벽 무인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검벽주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안다. 여차하면 검을 쓰는 한이 있어도 입을 막으라는 것인데, 그러자면 천살단 식솔을 죽이는 일도 벌어진다.
“절대로…… 책사가 알아서는 안 돼.”
“정신 좀…… 차리시면 안 됩니까? 저희가 보기에는 지금 정신을 많이 놓으신 것 같습니다.”
“후후!”
주치균은 툴툴 웃었다.
“내 말대로 해. 모든 입을 막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답이 들리기까지 잠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검벽 무인은 검벽주의 뜻을 좇았다.
이제 명조각은 어떤 소식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호발귀! 지독한 놈. 악귀.’
주치균의 눈에는 호발귀가 천하에 다시 없는 악귀, 혈마처럼 보였다.
그는 혈마가 되어가는 중이 아니었다. 이미 혈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