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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61화 (61/500)

第十三章 무이산으로(1)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천살단주의 집무실은 늘 어둡다. 공기도 무거운 것 같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어깨가 짓눌린다.

단주는 다른 때와 다름없이 손으로 턱을 만졌다.

“총주 손에서 호발귀를 빼내 갔다고?”

“네.”

등여산이 차분히 대답했다.

“대답이 아니라 이유를 말해야지?”

“살려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혈천방을 상대하기 위해서?”

“네. 호발귀는 혈천방 귀무살을 격살했습니다. 혈천방에 원한이 많다는 것은 모두 아는 사실이고요. 그러니 혈천방으로 끌려가게끔 내버려 뒀어야 합니다.”

“그래도 총주가 나섰지 않나?”

“네.”

“총주가 죽을 뻔했어.”

“네.”

등여산은 자그마한 음성을 대답했다.

사실, 등여산은 지금 매우 놀랐다.

‘총주가 살아있어? 단창에 꿰뚫리고도? 아!’

놀랍다 못해 기절할 지경이다. 분명히 절명 직전까지 치 몰린 것을 확인했는데 살아있다니.

“총주에게 창을 꽂았는데, 책사가 채갔어. 이러면 잡랑들도 화가 날 텐데.”

“네. 어떤 벌이라도 받을게요.”

등여산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자신에게 징벌이 내려질 것은 이미 예상했다.

천살단은 철저하게 단(團) 위주로 움직인다. 중원 안위보다도 천살단이 먼저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가치보다도 천살단 안위가 최상위에 존재한다.

천살단이 하는 일은 악행도 합리화되어야 한다.

총주가 천살단주의 명령을 위배해서 움직였지만, 그 일은 내부 징계로 다뤄질 일이고…… 밖에서는 철저하게 총주의 움직임을 쫓아야 한다.

혈천방이라는 강력한 마방과 싸우는 처지에서 결정한 특별 조처다.

천살단주가 말했다.

“구금 정도면 섭섭하지 않겠지?”

“감사합니다.”

“가서 푹 쉬어.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천살단주가 나가라고 손짓했다.

집무실 밖에는 검벽주 주치균이 서 있었다.

“어떻게 됐어?”

주치균이 물었다.

“구금. 이제 명조각(明照閣) 밖으로 나오지 못해. 나 보고 싶으면 찾아와.”

등여산이 활짝 웃었다.

“쫓겨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 어떻게 그 상황에서 호발귀를 채가?”

“그러게. 내가 잠시 미쳤나 봐. 그런데 여긴 왜?”

“밖에 나갔다가 왔으니 보고해야지.”

“그래. 들어가 봐. 심심하면 놀러 오고. 난 당분간 사람 구경 못 할 거야. 호호!”

두 사람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환하게 웃었다.

천살단주가 주치균을 힐끔 쳐다봤다.

주치균은 차분하게 앉아서 조용히 숨만 골랐다.

“어떻게 된 거냐? 난 명령을 내린 기억이 없는데, 내가 언제 명령을 내렸다고 책사를 귀환시켜?”

“처분, 받겠습니다.”

“그거야 당연한 거고, 이유를 말해야지?”

“……”

주치균은 입을 다물었다.

“질투냐?”

천살단주가 불쑥 말했다.

“아닙니다.”

주치균이 즉시 답했다.

“책사와 호발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면, 그건 나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책사 표정이 예전 같지 않아.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 내가 책사를 본 게 몇 년인데 모를까. 골방 늙은이 취급 그만하고, 어떤 일인지 나도 알아야 할 것 같은데?”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래?”

천살단주가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그래, 아무 일 없었다면 없는 거겠지. 이제는 네 문제인데, 호발귀를 왜 죽였는지 말해보지?”

“총주께서 죽이려 했던 자,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호발귀가 죽은 것, 책사도 아나?”

“……”

주치균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럴 것 같아서 말은 하지 않았지. 당분간 근신시켰으니까 그동안 마음 추스르면 좋고. 너도 근신해.”

“네.”

“근신하면서 마음 추슬러. 무인이 질투에 휘둘려서 살인하는 건 망할 징조야.”

천살단주는 질투 때문에 호발귀를 죽였다고 생각한다.

등여산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주치균이 격한 질투에 휩싸였다는 것은 안다.

“근신하겠습니다.”

주치균이 일어나서 읍했다.

“공식적으로는 폐관 수련한다고 해. 폐관 수련이 좋겠어. 명령 사칭에 관한 건 입도 벙긋하지 말고. 말해봤자 여러 사람 피곤해. 앞으로는 삼가고.”

“감사합니다.”

주치균이 두 손 모아 읍했다.

등여산은 온종일 책만 읽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책을 잡아서 저녁에 잠들 때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식사하세요.”

시녀가 밥을 가져왔다.

등여산은 대꾸하지 않았다. 책에 집중했다.

시녀의 말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시냐가 하는 말을 듣지 못했다. 아니, 시녀가 들어온 것도 알지 못했다.

시녀는 독서에 방해가 될까 봐 조용히 식사를 놓고 물러갔다.

“다 드셨……”

상을 치우러 들어온 시녀가 말을 하지 못했다.

등여산이 식사에 손도 대지 않았다.

“밥이 식었는데, 다시 내올까요?”

역시 대답이 없다.

등여산은 밥 먹는 것을 잊었다. 차도 마시지 않는다. 오직 책에만 몰입했다.

“책사님처럼 뭐에 열중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니까.”

“전부터 그랬는데 뭘. 뭐 하나에 빠지면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하시잖아. 이번엔 뭐에 빠지셨을까?”

시녀들이 수군거렸다.

살심은 잘 다스렸겠지? 심지가 곧은 사람이니까 괜찮을 거야. 건강은 회복했을까? 보음탕을 더 먹어야 하는데. 지금 어디에 있을까? 혈천방을 찾아가나?

등여산의 머릿속은 온통 호발귀 생각으로 가득 찼다.

책을 펴 놓고 있지만 한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은 온통 호발귀가 보였던 이상 증세에 집중되었다.

총주와 격렬하게 싸울 때도 냉정했는데, 오히려 싸움이 끝난 후에 살심이 거칠게 일어났다.

이런 마공은 난생처음 본다.

생각 같아서는 마공관에 들어가서 마공들을 들춰보고 싶다.

하지만 그녀는 근신 중이다. 명조각에서 꼼짝도 하지 못한다. 마공관을 이용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무림 소식도 들을 수 없다. 눈과 귀가 모두 막혔다.

등여산은 주치균을 기다렸다.

그가 오면 마공관에 가서 색욕을 일으키는 마공들을 추려달라고 할 참이다.

그런데 주치균도 오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나? 이렇게 안 올 사람이 아닌데.’

생각이 주치균에게 머물다가 다시 호발귀에게 옮겨갔다.

살심을 참던 눈이 생각난다. 미안하다면서 처연히 바라보던 눈동자가 떠오른다.

잘 생기지 않았는데, 자꾸 떠오른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그 사람 현황을 좀 알아야겠어. 그 상태로 내버려 두는 건 위험해. 혈마가 되기 전에 미리 조치할 수 있으면 해야지.”

등여산은 호발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무림 안위 때문이라고 자위했다.

“뭐? 방금 뭐라고 했어?”

“폐관 수련이요.”

시녀가 그게 왜 이상하냐는 듯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폐관 수련 중이라고?”

“네.”

등여산은 한겨울에 찬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검벽주가 폐관 수련 중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사전에 아무 언질도 없었는데, 갑자기 불쑥 문을 닫아걸었다.

아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왜 그랬을까?’

대체로 무인이 폐관 수련에 들어가는 경우는 둘 중 하나다.

먼저, 계획적으로 작심하고 폐관 수련을 하는 경우가 있다.

- 언제부터 언제까지 폐관 수련할 거야. 그래서 이번에는 반드시 어떤 무공을 깨달아야겠어. 지금이 아니면 폐관 수련을 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주치균은 이 경우가 아니다.

당장 주치균이 목이 메도록 깨닫고 싶은 절공도 없다. 그런 게 있었다면 수차 말했을 것이다.

두 번째는 무림에 나갔다가 큰 곤욕을 치렀을 때다.

좌절, 절망, 패배를 맛보면 무공 성취처럼 절박한 것이 없게 된다.

주치균은 무림에서 돌아오자마자 폐관 수련에 들어갔다. 그렇다면 이유는 뻔하다.

‘무림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

“검벽주를 따라갔던 검벽 무인이 있었는데, 모두 돌아왔지?”

“한 명은 죽었다고 들었는데요?”

시녀가 곧이곧대로 대답했다.

“한 명?”

“네.”

틀림없다. 무림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

주치균은 자신이 귀환할 무렵까지 싸움을 벌이지 않았다. 살단과 귀무살이 치열하게 싸울 때도 멀리 떨어져서 구경만 했다.

그렇다면 자신이 명령을 받고 귀환한 다음에 싸움이 있었다는 뜻이다.

검벽과 호발귀가 부딪쳤다.

호발귀가 먼저 검벽 무인을 공격했을 리는 없다. 주치균이 공격을 시도했다.

“됐어. 나가봐.”

등여산은 시녀를 내보내고 눈을 감았다.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 침착해야 한다.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그녀의 심장은 쿵쾅쿵쾅 무섭게 뛰었다.

‘호발귀에게 일이 생겼어!’

쉬잇!

등여산은 신형을 날려 명조각을 빠져나왔다.

구금이라는 형벌도 그녀를 막지 못했다. 불안한 마음이 일어나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쉬이이잇!

그녀는 단숨에 주치균의 거처를 찾아갔다.

주치균은 천살단주 집무실 옆에 작은 움막을 짓고 거주한다. 담장도 없고, 시종도 없다. 왕족 신분에 검벽주를 맡고 있지만 갓 입문한 문도처럼 생활한다.

집무실에 있다면 검벽 무인들이 지키고 섰으니 만나기가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아무래도 근신 중이니. 하지만 집에 있다면 폐관 수련 중이라도 찾아가기만 하면 된다.

“나야.”

문밖에서 말했다.

주치균은 대답하지 않았다.

방안에서 불빛이 비쳐 나오고 있으니 안에 사람이 있는 건 분명한데, 침묵한다.

“들어갈게.”

“돌아가.”

주치균이 방문을 거절했다.

등여산은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주치균은 불빛 아래 단정하게 앉아서 숫돌을 깔아놓고 검을 가는 중이었다.

“호발귀를 공격했어?”

“죽였다.”

주치균이 대뜸 말했다.

“뭐?”

“어차피 알게 될 테니, 말해주는 거야. 내가 죽였다. 사즉사로.”

“왜?”

“널 겁탈했으니까.”

“뭐? 무슨 엉뚱한 소리야? 겁탈이라니? 갑자기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고!”

“널 겁탈한 자, 살려둘 수 없었다. 네 표정을 보니 아마도 이게 너에 대한 내 마지막 배려가 될 것 같네.”

등여산은 신형을 휘청이더니 벽에 등을 기댔다.

호발귀가 죽었다.

순간, 갑자기 가슴이 미어져 왔다. 무엇인가 툭 떨어져 나간 듯 허전했다. ‘미안해.’하며 말하던 호발귀의 눈동자가 선명하게 그려지면서 눈물이 왈칵 흘러내렸다.

‘왜?’

그녀는 자신이 보인 반응에 자신이 놀랐다.

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거지? 설마 호발귀를 좋아했나? 아냐. 그럴 리 없어!

“나, 가.”

등여산이 문을 밀치고 나갔다.

주치균은 검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간다. 등여산이 떠난다.

등여산은 명조각으로 돌아가겠지만, 그에 대한 마음은 완전히 접을 것이다.

“후후후!”

주치균은 가늘게 웃었다.

술 생각이 난다. 난생처음 스스로 원해서 술이 마시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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