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十二章 오해중첩(誤解重疊)(3)
주치균은 비사칠초 최후초식인 사즉사를 생각했었다.
검벽 무인들이 호발귀의 손발을 잠시만 붙잡아주면 사즉사를 펼칠 수 있다.
검벽 무인들의 검에는 미혼약이 묻어있다.
검을 쳐내면 미혼 분말이 호발귀를 향해 흩어진다.
내공하고는 상관없이 호흡기를 통해서 심장으로 침투하는 독이기 때문에 방비할 수 없다. 또 중독되기만 하면 견딜 수 없는 통증을 느낄 것이다.
그 사이에 사즉사를 펼친다.
대단히 야비한 수법이지만 혈마를 이기는 방법은 이것뿐이니 어쩔 수 없다.
이런 방법보다 더 지독한 방법이 있다면 서슴없이 그 방법을 선택했을 것이다.
혈마를 이기는 완벽한 방법!
주치균은 머리를 쥐어짠 끝에 최악의 방법이라고 생각해낸 것이 독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한데 호발귀의 모습을 보니 굳이 미혼 분말을 사용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내 무공만으로도 충분해!’
솔직히 사즉사까지 펼칠 필요도 없다. 비사칠초를 절반도 풀어내기 전에 싸움이 끝날 것이다.
쒝! 쒝! 쒝!
검이 호발귀를 그었다.
호발귀는 피투성이가 되어서 뒤로 물러섰다.
검을 받아내지 못한다. 주치균이 움직이는 기색만 보여도 깜짝 놀라서 주르륵 물러선다.
‘확실히 약해졌어!’
이럴 수도 있나? 부상 중인 줄은 아는데, 무공까지 약해질 리는 없지 않나.
“혈마 무공을 쓰지 그래?”
주치균이 검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혈마 무공을 상대할 수 있다고? 그 사이에 장족의 발전을 했나? 참회동에서는 어림도 없었잖아? 혈마 무공을 쓰면 너 죽어. 지금 널 죽여달라고 충고하는 거야? 너도 참 웃긴 놈이다. 세상에 죽여달라고 사정하는 놈도 있네.”
호발귀는 주치균의 말에 장난처럼 대꾸했다.
‘이놈 뭔가 있어!’
주치균은 확신했다.
호발귀가 간단한 말에 쓸데없이 길게 대답한다.
주치균에게는 호발귀의 말이 ‘제발 내게 시간 좀 줘’라는 말처럼 들렸다.
“내공이 딸리나?”
“검 들고 죽이겠다는 놈이 그런 것까지 묻는 거야? 심하네.”
츠읏! 츠으읏!
주치균은 말을 하면서 진기를 모았다.
밤이 길면 꿈도 길다고 했다. 시간을 오래 끌면 변수가 발생할 수 있다.
빨리 끝낸다. 이번에 끝낸다.
파앙!
주치균의 검에서 새파란 검광이 터져 나왔다.
검광은 동굴을 샅샅이 누볐다. 검에서 쏟아진 빛이 동굴 전체를 바람이 훑듯이 스치며 지나갔다.
태양이 온 세상을 밝힌다. 환한 햇살이 세상 구석구석까지 스며든다. 새파란 검광이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단숨에 쓸어내린다. 일수에 삼백육십 초가 터진다.
양광보조(陽光普照)!
쒜에엑!
검광이 터졌다. 호발귀를 향해서 빛살 수백 가닥이 쏘아졌다. 어느 검이 진검이고, 어떤 검이 환상인지 분간할 수 없다. 모든 검이 진검처럼 보인다.
휘이익!
호발귀는 예상한 대로 물러섰다.
그가 물러서면서 펼친 신법도 이제는 눈에 들어온다.
투심문 은허신법이라는 것인데, 별다른 변화가 없다. 지극히 은밀하게 다가서려고 만든 신법으로 보인다. 싸움에서 사용할 용도로 만든 신법은 아니다.
주치균은 은허신법에서 문득문득 오히려 다리를 붙잡아 놓는 치명적인 단점을 찾아냈다.
‘여기!’
우측 발을 좌측 발 뒤로 놓을 때, 신형이 딱딱하게 굳는다. 물론 바로 이어서 좌측 발을 옆으로 펼치지만, 아주 잠깐은 타격하기 좋은 몸이 된다.
주치균은 양광보조를 전력으로 떨쳐냈다.
쒜에에에에엑! 퍼억!
빛살이 퍼져나간 끝에 호발귀 몸에 걸렸다. 검이 단단한 육신을 뚫고 들어갔다.
‘됐다!’
양광보조가 통했다.
일격에 이어서 이격, 삼격, 사격 계속 터진다. 오격, 육격, 칠격 연달아서 터진다.
호발귀가 피를 뿌린다.
호발귀는 정신없이 물러서고 있지만, 그가 물러서는 속도보다 검이 쳐내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호발귀는 미처 두 걸음도 물러서지 못하고 쓰러질 것이다.
그때쯤이면 최소한 삼십 검 정도는 터질 것이고, 가만히 내버려 둬도 과다출혈을 이기지 못한다. 그때,
차앙!
검과 검이 부딪쳤다.
양광보조가 빛살을 뿌리기 시작하면 죽음이 찾아올 때까지 그치지 않는다.
그런데 중간에서 쇳소리가 울렸다.
양광보조가 막혔다.
‘이게 무슨?’
주치균은 깜짝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까앙! 까앙! 깡!
호발귀가 연속적으로 터지는 검을 일일이 받아낸다.
호발귀의 검은 빠르지 않다. 느린 편이다. 하지만 신법이 빨라서 느린 검속을 보완해준다.
‘음!’
주치균은 신음했다.
호발귀가 신법을 바꾼 것은 아니다. 여전히 은허신법을 전개하고 있다.
바뀐 것은 속도다.
은허신법은 정(靜)을 추구한다. 고요한 신법, 느린 신법, 차분한 신법이다.
그래서 싸움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한 것인데, 이제는 완전히 바뀌었다. 속도가 매우 빨라졌다. 느린 검을 보완해 줄 수 있을 정도로 빠르다.
말을 조금 바꿔서 말하면 검속까지 빨라지면 능히 주치균의 검을 상대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주치균은 양광보조를 거두고 물러섰다.
지금 호발귀가 전개하는 은허신법은 정적이지 않다. 동적이다. 매우 빠르다.
원래 은허신법은 동정(動靜)을 함께 포함한다. 하지만 진가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정적인 은허신법만 사용했다. 그러다가 싸우는 와중에 동적인 은허신법을 찾아냈고, 바로 펼쳤다.
호발귀 상태는 이런 논리만이 설명할 수 있다.
싸우는 도중에 신법의 또 다른 면을 깨달아? 그리고 즉시 사용해?
말도 안 되지만, 호발귀가 직접 몸으로 보여주었다.
은허신법은 정적일 때는 하늘에 떠가는 구름처럼 유유하다. 동적일 때는 쏟아져 내리는 급류처럼 빠르다. 정과 동을 상황에 따라서 활용하니, 세상의 모든 걸음을 담는다.
굉장한 신법이다.
이것이 정말로 한낱 배수 집단인 투심문 무공이 맞나?
스읏!
주치균은 비사칠초 최후초식인 사즉사를 준비했다.
양광보조가 통하지 않으면 다른 초식도 통하지 않는다. 빠름은 신법으로 막아내고, 변화는 직감으로 찾아낸다. 싸우는 와중에 무공이 발전한다.
더욱이 지금 호발귀가 싸우는 모습을 보면 내상이 완전히 나은 것처럼 보인다.
혈마 무공을 언제든 사용할 수 있다.
검까지 맞아가면서 혈마 무공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지만, 혈마 무공이 나타나면 절망뿐이다.
“미혼을 쓰자.”
주치균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뒤에서 싸움을 지켜보던 검벽 무인들이 일제히 앞으로 튀어나왔다.
쒜에엑! 쒜엑!
그들은 다짜고짜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들의 검은 호발귀를 적중시키지 못했다. 호발귀는 제법 여유까지 찾았다. 비교적 편안한 모습으로 검벽 무인들의 검을 맞이한다.
후후! 호발귀, 잘못 생각했다.
검벽 무인들은 몸을 베자고 검을 쓰는 게 아니다. 검을 휘둘러서 검에 묻힌 미혼 분말을 퍼트리고 있다.
‘시작됐어!’
이제는 야비한 수를 썼다고 후회해도 늦었다. 이미 암수는 시작되었다.
호발귀 상태를 보면 지금이라도 사즉사를 펼치면 죽이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싸움을 확실히 매듭짓기 위해서 암수를 펼친다.
피윳! 쒜에엑! 파라라락!
검법이 분분히 펼쳐졌다.
동굴은 좁다. 공기 흐름이 한정되어 있다. 반대로 독분은 강력하게 효력을 발휘한다.
“흑!”
호발귀가 신음을 흘리며 물러섰다.
“후욱!”
검벽 무인도 가슴을 움켜잡고 뒤뚱뒤뚱 물러섰다.
미혼 분말은 호발귀뿐만이 아니라 검벽 무인들도 중독시킨다. 그래서 재빨리 해독단을 복용한다.
주치균도 해독단을 꺼내서 입에 물었다.
“으으……”
호발귀가 가슴을 움켜잡고 비틀거렸다.
미혼 독분이 심장에 침투했다.
호발귀는 심장이 터져나가는 것처럼 아플 것이다. 숨이 콱 막히고, 심장이 쿵 떨어지고, 바늘로 꾸욱 쑤시는 것 같은 통증에 식은땀이 쏟아질 것이다.
원래, 독분은 심장을 정지시키기까지 한다.
일반인에게는 치명적인 독이다. 칠보사의 독처럼 미혼 독분도 맹독에 속한다.
하지만 무인은 독분을 억누르거나 밀어낼 수 있다.
시간이 있다면 밀어낼 것이고, 급한 상황이라면 억누르는 선에서 그칠 것이다.
억누른다는 말은 심장에 독분이 쌓여있다는 뜻이다. 당연히 고통이 따른다.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오는 신음이 고통의 강도를 대신 말해준다.
“미안하다!”
주치균이 버럭 고함질렀다.
호발귀를 죽이는 점은 미안하지 않다. 다만 떳떳하지 못한 방법으로 죽이는 것이 미안하다.
물론 호발귀는 고통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지금 그가 하는 말도 듣지 못할 것이다.
쒜에에엑!
주치균은 사즉사를 펼쳤다.
사즉사의 원래 초식명은 오분폭사(五分爆死)다.
검이 다섯 조각으로 나누어져서 오방(五方)을 차지한다. 그리고 각 검편(劍片)이 백 조각으로 분리되어 폭사된다.
폭사는 오방 안쪽으로만 집중되는 게 아니다. 사방으로 비산한다. 그래서 시전자 역시 위험을 벗어나지 못한다. 모두가 함께 죽는 동귀어진(同歸於盡) 수법이다.
타앙!
주치균의 검이 다섯 조각으로 쪼개졌다.
검편은 허공으로 솟구치더니 우산처럼 넓게 펼쳐져서 내려앉았다.
동서남북에 한 조각씩, 그리고 호발귀 머리 위에 한 조각.
“하아앗!”
주치균은 손잡이에 꽂혀 있던 비침 다섯 개를 뽑아냈다. 그리고 젖먹던 힘까지 끌어내서 검편을 향해 던졌다.
타앙! 탕! 탕!
비침이 정확히 내려앉는 검편 다섯 개에 적중되었다. 순간,
꽈드드드득!
검편에서 기이한 소리가 울렸다. 무엇인가 삐걱거리는 듯, 아귀가 비틀리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상한 말이지만 검편이 살짝 웃는 듯 보였다. 그리고.
꽈앙! 꽝!
검편이 화약 터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터졌다.
각 검편에는 주치균의 내공이 밀집되어 있었다. 아주 강력한 힘이 담겨서 무겁게 내려앉는 중이었다.
비침이 밀집된 내력에 구멍을 냈다.
단단하게 뭉쳐진 진기가 매우 빠른 속도로 흩어졌다. 작은 구멍을 통해서 쏟아져 나갔다. 바닷물이 실 구멍으로 쏟아져 내리듯 엄청난 압력이 검편을 쪼갰다.
“크으으으윽!”
주치균은 쏟아지는 검편을 피해서 급히 신형을 물렸다.
하지만 검편이 워낙 빨라서 몸에 숭숭 구멍이 뚫렸다. 혈전을 치른 사람처럼 핏물이 쏟아졌다.
검벽 무인들은 미리 피해 있었다.
“아! 이게 인간의 무공…… 인가?”
검벽 무인 중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오분폭사는 오방 안쪽으로만 밀집시킬 수 있다면 지금보다 열 배는 더 강력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방법은 없다. 밀집된 진기를 터트리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오분폭사는 반경 십 장을 휩쓸었다.
더욱이 호발귀가 오분폭사를 맞은 곳은 협소한 동굴이다. 가늘게 쪼개진 검편을 피할 곳이 없다.
“괜찮으십니까?”
검벽 무인이 피를 철철 흘리는 주치균을 부축하며 물었다.
“호발귀는?”
“죽었을 겁니다. 지금 바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호발귀! 호발귀부터 확인해! 살아있으면 즉시 죽여!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다!”
주치균은 부축하는 검벽 무인들을 떠밀었다.
쉬잇! 쉭!
검벽 무인들이 동굴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주치균은 함께 따라서 들어가지 못하고 털썩 주저앉았다.
오분폭사를 알고 있어서 비침을 던지자마자 몸을 피했다. 그런데도 이 꼴이다.
호발귀는 미혼 독분에 심장까지 얼어붙은 상태다.
죽을 수밖에 없다.
만약, 이런데도 살아났다면…… 혈마다. 사람이 아니라 혈마다.
주치균은 부르르 치를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