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十二章 오해중첩(誤解重疊)(2)
수투는 감각에 의존해서 활동한다.
오감(五感)은 매우 중요하다. 오감이 바짝 곤두서야 수투 짓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오감이 밝으면 뛰어난 수투가 된다.
거기에 하나 더, 육감을 보태야 한다. 그래야 수투 세계에 이름자를 내밀 수 있다.
육감은 수투를 하기 전이나, 한 후에 쓰인다.
돈이 많은 사람을 고르는 것, 위험한 사람을 거르는 것, 돈이 되는 물건과 되지 않는 물건을 파악하는 것 등등 이 모든 것을 분간하는 힘이 육감이다.
호발귀는 육감이 매우 좋은 편이었다.
돈이 많을 것 같은 사람은 돈이 많았다. 겉모습이 아무리 번지르르해도 느낌상 뭔가 없어 보이면 주머니도 텅 비었다.
문질러도 주위를 둘러보면 괜찮아 많이 한다
그가 수투 짓을 몇 번 하지 않고도 항상 돈이 넉넉했던 이유는 상대를 잘 골랐기 때문이다
‘위험!’
호발귀는 위험을 느꼈다.
진기를 일으키지 않은 상태라서 위기를 느끼는 것도 오직 본능에만 의존한다.
느낌이 위험을 말해준다.
‘밖에 도천패가 있을 텐데?’
도천패를 뚫고 들어온 자? 그렇다면 혈마 무공이 아니면 상대할 수 없다.
그러나 혈마 무공은 사용할 수 없다.
지금 위기를 느낀 것처럼, 육감은 또 다른 위험도 말해준다.
혈마가 멀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는 혈마는 무림이 말하는 혈마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무림이 말하는 혈마는 무공이 굉장히 강한 마인을 일컫는다. 살인에 미쳐서 앞뒤 안 가리고 마구 칼을 휘두르며, 손속에 자비를 남기지 않는다.
혈마가 나타나면 세상에 시신이 넘친다.
호발귀가 생각하는 혈마는 장진 스님이다.
장진 스님은 평등한 관계에 있을 때는 매우 좋은 벗이다. 하지만 균형이 어긋나서 혈마 무공이 호발귀를 압도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매우 차가운 마인으로 변한다.
혈마 무공이 강해질수록 장진 스님은 차가워진다.
혈마 무공이 호발귀를 집어삼키면, 장진 스님은 승복을 벗고 혈마가 된다.
호발귀는 두 번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한다.
육신은 호발귀이지만, 영혼은 장진 스님이 차지한다. 혈마 무공이 영혼과 육신을 완벽하게 지배한다.
이것이 호발귀가 생각하는 혈마다.
혈마 무공을 잘 알지 못하면서 계속 사용할 수는 없다.
호발귀는 아직도 차갑게 얼어붙었던 장진 스님의 얼굴을 잊지 못한다. 하얀 이를 드러내면서 웃던 모습,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날카롭던 눈빛을 기억한다.
혈마가 될 것 같으면 자진하겠다고 등여산과 약속했다.
‘으음!’
호발귀는 오감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혈마 무공을 사용하지 않고 위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도천패를 제치고 들어선 자들을.
호발귀는 당장 사용할 수 있는 무공이 또 있다.
혈마 무공을 알기 전부터 달달 외우고, 몸으로 표현하고, 손으로 사용한 무공이다.
투심문 절공!
무심무실공을 기반으로 한 원충노인의 팔십일수.
‘좋아! 뭐 이런 기회에 사문 무공 좀 사용해 보지. 노인네가 좋아하겠어. 후후!’
호발귀는 사부를 떠올렸다.
투심문 무공은 이미 도천패가 진가를 증명해 냈다. 도천패는 총주와 맞상대할 정도로 강하다. 비록 그의 무공이 대도문 무공이지만, 어쨌든 투심문이 훔쳐서라도 명맥을 빛내주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투심문 무공이다.
이제 또 호발귀가 투심문 무공을 빛낸다면 노인네는 입이 찢어지는 것도 모르고 웃을 것이다.
‘병주기식. 망기호흡, 몽. 몽중몽. 일층우일층적몽경……’
호발귀는 무심무실공의 구결을 읊었다.
호발귀는 동굴 벽에 등을 붙이고, 눈은 감고, 감각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잊었다.
마음이 없으니, 일어나는 일도 없다.
내 안에서 들끓는 것은 없다. 밖에서 일어나는 일만 감각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되어 진다.
툭! 투툭!
동굴 벽을 타고 빠르게 지나가는 도마뱀을 감지했다.
눈을 감고 있지만, 동굴에서 벌어지는 일이 밝은 대낮에 본 것처럼 생생하게 전달된다.
휘익! 촤륵!
조용한 가운데 옷자락 쓸리는 소리가 들렸다.
검벽 무인 정도 되면 기척을 내지 않고 움직일 수 있다. 그런데도 옷자락 쓸리는 소리를 들었다. 저들이 숨기지 못한 것이 아니다. 호발귀 청력이 상상 이상으로 예민하다.
‘하나, 둘, 셋……’
저들의 숫자를 헤아렸다.
모두 다섯 명이 잡힌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다섯 명에게서는 위험이 느껴지지 않는다.
‘누군가 또 있어.’
정작 강렬한 경계심은 전혀 다른 곳에서 풍겨진다.
무심무실공에 잡히지 않으면서 고요하게 존재할 수 있는 고절한 고수가 있다.
호발귀는 차분하게 기다렸다.
스읏!
눈앞으로 한 명이 스쳐 지나간다.
호발귀는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물방울이 떨어지듯 가볍게 톡 떨어트렸다.
팔십일수 중 하나인 일지공(一指功)이다.
혈도는 목 밑 대추혈(大椎穴)을 타격했다. 타법은 송곳을 비비 돌리면서 쑤셔 넣듯이 순간적으로 손가락을 비틀었다.
태산금나 타법이다.
등여산이 그의 몸을 타통시킬 때 사용하던 수법인데, 혈도마다 다른 타법을 사용해서 기억해 두었다.
“훗!”
격타당한 사내가 들릴 듯 말듯 나직한 신음을 토했다. 그리고 스르륵 무너졌다.
호발귀는 손을 뻗어서 쓰러지는 자를 부둥켜안았다.
천주혈은 사혈(死穴)이 아니다. 하지만 호발귀처럼 타법을 변화시키면 대추혈을 관통해서 앞가슴에 있는 선기혈(璇璣穴)까지 동시에 타격한다.
장창으로 목 밑 부분부터 가슴까지 꿰뚫린 것과 같은 효과가 일어난다.
격타당한 사내는 이미 절명했다.
호발귀는 손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이들이 자신을 찾아온 목적은 죽이는 데 있다. 이들 몸에서 풍기는 진한 살기가 곧 일어날 죽음을 말해준다.
그러니 손속에 사정을 남길 이유가 없다.
어차피 양쪽 중 한쪽만 남아야 한다면 한 명이라도 더 수를 줄이는 게 낫다.
순간, 다른 자들이 걸음을 멈췄다.
그들도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다. 호발귀는 소리를 흘리지 않고 타격했지만, 이미 눈치챘다.
촤촤촤촥!
동굴에 흐르는 공기가 심하게 요동친다.
저들이 성난 고양이처럼 갈기를 곤두세웠다. 살기가 날카롭게 피어났다.
호발귀는 절명한 무인을 품에 안고 조용히 서 있었다.
츠읏! 츠으으읏!
저들이 호발귀를 탐지하기 위해 오감을 곤두세웠다. 호발귀도 마찬가지, 전신 감각을 매우 날카롭게 일으켰다. 먼저 상대를 발견해야 유리해진다.
‘은호(隱呼), 망흡(忘吸)!’
내쉬는 숨을 숨기고, 들이쉬는 숨을 잊는다.
침착하게, 서둘지 말고 천천히 저들을 찾는다.
탁! 탁! 타탁!
무인들이 발을 들어서 바닥을 쳤다.
‘신호!’
저들은 존재가 드러나는 것을 개의치 않고 신호를 보낸다.
호발귀는 벽에 등을 붙인 채 조용히 귀만 기울였다.
‘하나. 거기 있었군. 또 하나……’
남은 네 명의 위치를 하나씩 찾아냈다.
그때, 생각지도 않던 일이 벌어졌다.
탁탁! 화아아악!
갑자기 동굴 한구석에서 부싯돌이 번쩍이더니 밝은 횃불이 확 켜지면서 동굴을 밝혔다.
저들이 보낸 신호는 횃불을 밝히자는 것이었다.
일순, 모든 사람이 일거에 드러났다. 호발귀가 파악한 네 명은 물론이고, 남은 한 명까지 찾아냈다. 물론 저들도 호발귀를 발견했다. 그가 동료를 붙잡고 있는 것도.
“이놈!”
촥! 촤악!
무인들이 일제히 호발귀를 향해 검을 겨눴다.
‘주치균!’
호발귀는 네 명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들 뒤에 서 있는 낯익은 사내를 봤다.
‘가능할까?’
주치균을 보자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다.
혈마 무공을 사용하면 이기는 것은 일도 아니다. 죽일 수도 있다. 하지만 투심문 무공으로 주치균을 상대한다는 것은 조금 어렵게 여겨진다.
주치균은 재빨리 호발귀 상태부터 살폈다.
정상인가, 아닌가? 완쾌되었나, 아직도 부상이 남아있나? 완쾌되었다면 정상적인 싸움을 할 수 없다. 생각했던 대로 암수를 사용해야만 승산이 있다.
지금, 이 순간 정의는 없다. 정도도 없다.
오직 호발귀 죽이는 일에 모든 초점을 맞춘다.
지금 동굴에서 행하는 일은 평생 그를 괴롭힐 것이다. 비굴한 행동, 양심적인 가책, 불의, 치욕 등등 좋지 않은 온갖 감정이 회오리칠 것이다.
모두 기꺼이 감수한다.
한평생 불편한 가슴을 안고 살아가더라도 오늘은 호발귀를 죽여야겠다.
그런데…… 호발귀 상태를 훑어나가던 그의 눈에 언뜻 다른 것이 들어왔다.
동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천 조각이다.
‘저건!’
찢어진 옷 조각!
주치균은 등여산이 어떤 옷을 즐겨 입는지 안다. 어떤 색감을 좋아하는지, 어떤 질감을 선호하는지 잘 안다.
매일 등여산을 만났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을 봤다. 그녀가 풍기는 냄새를 맡았다.
동굴 바닥에 찢긴 천 조각, 옷조각이 있다.
등여산과 호발귀가 떨어진 옷조각에 신경 쓰지 않았다. 무심히 지나쳤다. 찢어진 옷도 아니고 겨우 천 조각 하나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런 것에 신경 쓰기에는 호발귀 상태가 너무 나빴다.
호발귀 역시 내면에서 일어나는 역천금령공을 억제하는데 전력을 다하는 중이었다.
정녕, 옷을 찢어버린 사건 그리고 찢긴 옷조각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것이 주치균의 눈에 띄었다.
“이놈!”
주치균은 생각했던 암수도 제쳐놓고 벼락같이 신형을 솟구쳤다.
꽈지지직!
빛살이 몰아친다. 검광이 폭풍처럼 전개된다.
검신 구학봉의 비사칠초가 후두둑 쏟아졌다.
호발귀는 안고 있던 검광 속으로 내던졌다. 동시에 시신이 들던 있던 검을 낚아채서 마영심도 십칠 식을 전개했다.
주치균은 수하의 시신을 벨 수 없었다. 시신을 베고, 내친김에 호발귀까지 벨 수도 있었지만 죽은 수하가 비명을 지르는 듯해서 즉시 검을 물렸다.
그 순간, 주치균을 향해 마영심도가 몰아쳤다.
꽈과과광! 꽈직!
무심무실공으로 펼치는 마영심도는 매우 조잡하다.
역천금령공을 섞으면 귀신의 그림자처럼 살기만 번뜩이는 무서운 도법이지만, 무심무실공으로 펼치면 힘 조절을 못 하는 어린애가 세게만 휘두른다는 느낌이 든다.
첫 번째 격돌이 일어났다.
주치균이 쳐낸 검이 밝은 빛을 뿌리면서 확 달려들었다.
양광보조(陽光普照)가 어수룩하기 짝이 없는 마영심도를 거침없이 내리쳤다.
쒜엑! 까앙!
호발귀는 검 든 손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면서 비틀비틀 물러섰다.
역시 마영심도는 역천금령공으로 펼쳐야 한다. 성질이 전혀 다른 심공으로 펼치니 제 위력을 드러내지 못한다. 평생 면벽만 하던 선승이 질주하는 적토마를 다루는 심정이다.
“부상 중이군.”
주치균이 살기를 번뜩이며 말했다.
이미 그는 다음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 검을 들어서 호발귀의 미간을 겨눴다.
“참 웃기네. 대체 왜 날 죽이지 못해서 안달이야? 내가 먼저 천살단에 해코지한 적이 없잖아? 그런데 살단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왜 날 죽이지 못해서 안달인데?”
호발귀가 물었다.
진실로 그 이유를 알고 싶어서 물은 것은 아니다. 시간이 필요했다. 마영심도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혈마 무공을 끌어낼 수는 없다. 초식만 전개하는 것도 혹여 변수가 생길까 봐 우려된다.
“궁금한 점은 염라대왕에게 물어봐! 왜 죽어야 했는지!”
쒜에에엑!
주치균이 사라졌다. 검만 남았다. 검이 심장을 노리고 곧장 쏘아져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