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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56화 (56/500)

第十二章 오해중첩(誤解重疊)(1)

등여산이 동굴을 벗어났다.

‘미안하다.’

주치균은 처음으로 등여산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예전에도 비슷한 말을 많이 했지만, 지금처럼 진심으로 미안하기는 처음이다.

등여산은 뒤도 안 돌아보고 본단으로 갈 것이다.

주치균은 천살단에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총주에게도 호발귀가 있는 곳을 알려주지 않았다.

천살단주도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

그러면 밀마는?

주치균처럼 등여산을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등여산은 머리가 매우 비상해서 속이기가 힘들다.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우면 반드시 속을 짚어본다. 그리고 속임수를 찾아낸다.

하지만 오직 하나, 천살단주가 하는 말만큼 터럭만큼도 의심하지 않는다.

등여산은 회(回)라는 글자를 읽었다.

‘돌아오라’라는 명령이다.

천살단은 같은 명령이라도 귀(歸)라는 글자를 사용한다.

밀마에 국한된 사항이지만, 회라는 글자는 오직 천살단주만 사용할 수 있다.

등여산은 회라는 글자를 읽었기 때문에 한 점 의심 없이 본단으로 돌아갔다.

일단, 등여산을 호발귀에게서 떼어 놨다.

남은 것은 호발귀를 죽이는 것, 하지만 호발귀 무공이 간단하지 않다.

총주가 격상 당했다면 이미 자신의 경지는 넘어섰다고 봐야 한다. 아니, 넘어섰다. 참회동에서 겪어봤지 않나. 분명히 두어 수는 윗길이다.

그런데도 검을 들고 찾아왔다.

죽이기로 작정했으니 죽인다.

먼저 호발귀를 그림자처럼 따르는 도천패를 떼어놓아야 한다. 그래서 총주를 찾아갔다.

총주는 자신에게 미행을 붙일 것이고, 그들을 이용해서 도천패를 떼어낸다.

그 사이, 자신과 검벽 무인 다섯 명이 호발귀를 공격한다.

작전은 세워졌다. 승패는 하늘에 맡긴다.

도천패는 몸이 산처럼 크다. 그래서 잘 숨지 못할 것 같다.

천만의 말씀!

도천패는 가만히 있는 법을 안다.

숨을 죽이고, 움직임을 멈추고, 돌처럼 가만히 앉아 있으면 그를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이곳에는 은신술만 전문적으로 깨는 호적수가 있다.

검벽 무인이다.

검벽 무인은 은밀히 숨어있다가 갑작스럽게 기습 공격하는 자들을 막아야 하는 게 주 임무다.

그들은 항상 암살자를 경계한다.

천살단주를 보호하려면 기습을 막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은신자를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다.

도천패처럼 잘 숨는 자들을 찾아내는 것이 주 임무인 셈이다.

검벽 무인은 충성심과 희생심으로 똘똘 뭉쳐졌다.

무공은 중요하지 않다.

숨어있는 자들이 기습공격을 취해왔을 때, 그들의 병기를 몸뚱이로 받아낼 수 있는 용기만 있으면 된다.

그러니 검벽 무인이 반드시 강한 것은 아니다.

검벽 무인이 도천패를 찾아냈다.

만약 도천패가 다른 상황, 다른 장소에 숨었다면 찾아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지금은 도천패에게 목적이 있다.

동굴을 감시해야 한다. 동굴에 침입자가 있는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도천패에게 이런 목적이 있으니 그가 숨은 장소도 동굴이 잘 보이는 곳이어야 한다. 또 일이 생기면 즉시 달려갈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은신처가 한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찾아낼 수 있다. 은신자를 찾는 게 주 임무인 검벽 무인 눈에는 매우 찾기 쉬운 목표다.

도천패는 바위와 바위 사이에 몸을 숨긴 채 앉아 있었다.

깊이 숨지도 않았다. 몸이 바위 사이로 다 들어가지도 않았다.

막상 찾고 보니 너무 환히 드러난 곳에 있어서 어처구니없을 지경이었다.

도천패는 그저 가만히 있었다.

검벽이 찾는 게 주 임무라면, 숨는 게 주 임무인 문파가 있다.

살수도 그럴 테지만, 투심문 수투들도 기척을 어떻게 숨기느냐에 성패가 갈린다.

수투는 목표에게 은밀히 다가가서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야 한다. 그러자면 절대로 기척을 흘리면 안 된다. 바로 등 뒤에 서 있어도 아무런 낌새를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중원 수투들은 대체로 그런 훈련을 받는다.

도천패도 마찬가지, 그런 훈련을 받았다.

그는 그냥 가만히 앉아 있지만, 전혀 기척을 흘리지 않는다.

슛!

검벽 무인이 그에게 단검을 던졌다.

도천패는 고개를 살짝 들어서 단검을 피했다.

타앙!

단검이 바위에 맞고 튕겨 나왔다.

도천패는 은신처가 발각되었는데도 앉은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단검이 날아오는 속도, 위력을 보면 상대방 무위도 짐작된다.

도천패는 단검을 던진 자들이 약하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수는 많아도 무공이 약하다. 그래서 사자가 개떼를 무시하듯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순간, 검벽 무인 한 명이 빛살처럼 빠르게 쏘아갔다.

“훗!”

도천패는 깜짝 놀라서 황급히 칼을 움켜잡았다. 아니, 벌써 칼을 머리 위로 올리고 빙글 한 바퀴 원을 그려냈다.

천공반선(天空盤旋)이다.

이제 남은 것은 언제 칼을 쳐낼까 하는 공격 순간이다. 유동순간(有動瞬間)을 잡아낸 후, 일기감하(一氣砍下)로 한순간에 공격을 끝낸다.

도천패가 당장 대력도강을 펼칠 만큼 공격해 오는 자가 매섭고 날카로웠다.

쒜에에엑!

사람은 보이지 않고 검이 흐르는 소리만 들린다.

도천패는 칼을 꽉 쥔 채 조그만 움직임도 일으키지 않았다. 석상이 된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고요한 가운데 유동순간을 감지한다.

공격해 오는 자의 방향과 속도, 칼이 내리쳐지는 속도, 그리고 서로 간의 거리.

이 세 가지가 정확하게 어우러져야 한다.

페에엑!

드디어 상대방이 검을 쳐냈다.

‘빠르다!’

도천패는 즉시 칼을 쳐냈다. 유동순간을 잡았다. 상대방이 다가오는 속도를 계산했다. 거리도 완벽하게 파악했다. 남은 것은 일기감하, 단숨에 칼을 내리친다.

쒜에에에엑!

대도가 강력한 힘을 담고 그어졌다. 한데,

슈웃!

상대방이 다가오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물러섰다.

“웃!”

도천패는 대력도강을 회수하지 못하고 땅을 후려쳤다.

퍼억!

땅이 움푹 파일 정도로 거센 타격이다.

상대방은 처음부터 대력도강과 마주칠 생각이 없었다. 공격하는 시늉만 하고 물러섰는데, 기만 행동에 깜빡 속고 말았다. 그만큼 상대방의 움직임이 빠르고 신속했다.

‘강자다!’

도천패는 눈살을 찌푸렸다.

검벽 무인 중, 이 정도로 검법을 구사하는 자라면 검벽주 주치균밖에 없다.

검벽 무인은 이미 숲으로 사라졌다.

적막이 흐른다.

도천패는 칼을 들고 성큼성큼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상대가 안 되는 자들이라면 내버려 두어도 시비를 걸어오지 않는다. 지켜보다가 물러설 것이다. 하지만 전력을 다해야 하는 상대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는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기회를 엿보다가 기습을 걸어올 것이다.

기습을 기다릴 게 아니라 모두 숨은 곳에서 기어 나오게 만든다. 결판을 낸다.

슈각!

도천패는 삼백 년쯤 묵은 듯한 소나무를 향해 대력도강을 펼쳤다.

퍽! 쩌억!

소나무가 단숨에 반으로 갈라져 후드득 쓰러졌다.

동시에 핏물도 튀었다. 소나무 뒤에 숨어있던 자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절명했다.

그러자 숨은 자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스스슷! 사사사사삿!

저들도 자신들이 발각되었다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도천패가 공격해 온다. 발각되지 않은 척, 가만히 앉아 있으면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죽을 게 뻔하다.

“제길! 왜 이 싸움을 우리가 떠맡은 거지?”

“이 새끼들!”

도천패를 에워싸는 무인들이 거친 말을 토해냈다.

처음, 검벽 무인이 도천패를 공격했다. 하지만 도천패가 죽인 자는 검벽 무인이 아니다. 도천패는 모두 같은 자들인 줄 알고 칼을 썼지만, 그가 죽인 자는 잡랑이다.

그 사이, 주치균과 검벽 무인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싸움만 붙여놓고 뒤로 빠진 것이다.

“음!”

도천패는 동굴을 쳐다봤다.

그도 자신이 상대를 잘못 쳤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싸움이 시작되었는데.

자신을 공격했던 자, 검이 무섭도록 빨랐던 자!

그가 동굴을 들어갈 것이다. 호발귀를 공격할 것이다.

도천패는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몸을 빼내지 못했다. 잡랑들이 의외로 강하게 부딪쳐왔다.

“키키! 돼지 같은 놈이 칼은 빨라서. 이런 놈하고는 정면에서 부딪치면 안 되는 거 알지?”

“멧돼지가 힘이 없어서 잡히나? 자, 사냥 좀 해보자고. 킥킥!”

잡랑들을 도천패의 도법을 보고도 전혀 기죽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호승심을 불태웠다.

도천패는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무림이란 곳은 매우 비정한 약육강식의 세계다. 누구든 약한 자는 먹힌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게 최선책은 되지 못한다. 항시 자신은 자신이 지킬 줄 알아야 한다.

호발귀도 자신을 지킬 것이다.

“어디…… 살단 무공 좀 볼까?”

도천패가 칼을 고쳐잡았다.

이들이 살단 잡랑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거지처럼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입과 행동이 거칠고, 매우 독랄한 수법을 사용하는 자들.

“키킥! 멧돼지가 빨리 잡아달란다.”

“이빨 조심해. 저런 놈에게 들이받히면 바로 골로 가.”

잡랑들이 낄낄거리며 유성추(流星鎚)를 꺼내 휘둘렀다.

휘잉! 휘잉! 휘이이이잉!

추가 한쪽에만 달린 단유성(單流星)이다. 줄의 길이는 상당히 길어서 대략 십오 척에 이른다. 줄을 잡는 위치에 따라서 일 척부터 십오 척까지 자유롭게 공격할 수 있다.

쉬잉! 쉬이이잉!

유성추가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유성추의 장점은 공격과 동시에 회수가 시작된다는 점이다. 단발성 공격이지만 매우 빠르고 거세다. 그뿐만 아니라 이어지는 공격 전환도 매우 빠르다. 회수되었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공격해 온다.

도천패는 달려드는 유성추를 쳐내면서 즉시 달려들었다.

타앙! 츠읏! 사사삿!

도천패가 노린 자는 즉시 뒤로 물러섰다. 동시에 다른 자들이 맹렬하게 유성추를 던졌다.

“후웁!”

도천패는 급히 신형을 비틀어서 유성추 합격을 피했다.

이들은 싸움을 빨리 끝낼 생각이 없다. 맞으면 좋고, 피해도 좋다는 식으로 툭툭 유성추를 던진다.

노림수는 분명히 있다.

저들은 도천패에게 끊임없이 움직이라고 주문한다. 자신들은 교대로 공격하면서, 도천패에게는 잠시도 쉬지 말고 계속 신법을 펼치라고 한다.

쉬익! 쒜에에엑! 파앗!

유성추가 쉴 틈 없이 날아왔다.

칼이 닿을 수 없는 거리에서, 그만한 거리를 순식간에 좁혀버리는 병기를 사용한다.

스읏! 스스슷!

검벽 무인들이 동굴 속으로 진입했다.

호발귀 상태가 어떤지 모른다. 하지만 다 나았다고 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등여산이 혼자 떠날 리 없다. 천살단 근처까지 가는 한이 있어도 호발귀를 데려갔을 것이다.

호발귀가 완벽하게 나았다면 정면 승부는 어렵다.

주치균은 참회동에서 일전을 겨뤘고, 여지없이 참패했다.

- 운이 없었나 보네.

- 너무 상대를 얕봤어.

아니다. 호발귀를 얕본 것도, 운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엉겁결에 당한 게 결코 아니다.

전력을 다했는데도 당했다.

순간적인 겨룸이었지만, 주치균은 그야말로 최선을 다했다. 수련한 무공을 모두 펼쳐냈다.

그러고도 당했다.

이번이라고 다를 바 없다. 호발귀가 완쾌되었다면 정면 승부로 죽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암수(暗手)를 사용한다.

검신 구학봉의 제자가 암수를 사용한다고 하면 비웃겠지만, 혈마를 상대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

스스스슷! 스으으읏!

검벽 무인들이 빠르게 동굴 안을 훑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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