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十一章 진기이상(眞氣異常)(1)
역천금령공은 말 그대로 역천의 힘을 가지고 있다. 하늘을 뒤집어엎을 힘이 있다.
이령귀화가 생기를 보존해 준다고 해서 마음대로 쓰는 힘이 아니다. 매우 조심스럽게, 칼날 위를 걷듯이 예리하게 살피면서 사용해야 하는 힘이다.
쌍용, 이령귀화가 역천의 힘을 감당하지 못할 가능성은 항상 존재했다.
호발귀는 이런 점을 미처 알지 못했다.
터엉! 쫘아아악!
이령귀화가 역천금령공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났다.
팽팽하게 유지되던 경계선이 무너졌다. 물과 기름을 가르던 유막(油幕)이 찢어졌다.
혼돈이다.
역천금령공과 이령귀화는 존재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마구 뒤엉켰다.
순간, 생기는 혈기를 변했다.
잔잔하고 활기 넘기던 기운이 앞뒤 구분하지 못하고 날뛰는 난폭한 기운으로 돌변했다. 파릇파릇하던 기운 대신에 활활 불타는 용암 덩어리가 전신을 집어삼켰다.
터엉!
들끓는 기운이 한순간에 전신을 확 휘어잡았다.
‘헉! 이런 말도 안 되는……!’
호발귀는 너무 놀라서 눈만 끔뻑거렸다.
뱃속에서 일어나는 기운은 이미 자신의 진기가 아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힘이다. 그것도 거역하지 못할 절대적인 힘이 몰아친다.
살기!
살기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치솟았다.
- 조용히 살고 싶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편히 살았으면 좋겠지? 안 돼. 넌 이미 혈마야. 이 세상 사람들이 널 가만 놔두지 않아. 어떻게든 죽이려고 할 걸? 도천패? 킥킥! 그놈 널 죽이고 투심문 보물을 차지할 거야. 등여산? 킥키킥! 그 년은 더하지. 살천단 책사가 뭐가 부족해서 너같은 놈과 같이 다니냐? 널 이용하고 죽일 거야. 세상이 모두 이래. 내가 방법을 알려줘? 모두 죽여. 저 자식들이 널 죽이기 전에 네가 먼저 죽여. 죽여. 죽여. 죽이면 돼. 죽여!
악마가 속삭인다.
환청처럼 들리는 음성이 진실처럼 들린다. 정말로 자신을 위해서 해주는 말 같다.
‘허억!’
호발귀는 매우 당황했다.
이 살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머리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라고 말한다. 하지만 마음은 이미 받아들이고 있다. 도천패와 등여산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치솟는다. 아니, 그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일 것 같다.
몸이 마구 떨린다.
‘하아!’
호발귀는 살기를 추스르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 모두 죽여. 죽이면 돼. 이렇게 간단한 걸 가지고 뭘 고민해. 비밀 하나 더 알려줘? 사람을 죽이면 죽일수록 네 힘이 더 세져. 네가 완벽하게 강해지면 아무도 널 못 건드려. 누구든 죽일 수 있다는 거지. 킥킥킥! 이런 비밀, 사람들이 안 알려주지? 등여산이 알려줬어? 킥킥!
역천금령공이 파괴 본능을 건드렸다.
살아있는 생명체를 모두 죽이고 싶어진다.
살기는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땅바닥을 기어가는 벌레까지 말살하고 싶다.
후욱! 훅! 후우욱!
입에서 거친 숨이 뿜어졌다. 혀를 꽉 깨물고 있지만 두 손은 이미 술 취한 사람처럼 후둘후둘 떨렸다. 상대가 누가 되었든 상관없다. 살아있기만 하면 된다. 죽이고 싶다!
‘마공! 마공이야. 이건 수련하면 안 되는 마공이야!’
혈마비록은 강하고 좋은 면도 있지만 나쁜 면도 있다. 나쁜 면을 건드리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 언제든 악마로 변신할 수 있는 여지가 다분했다.
그때, 그의 눈에 한 여인이 들어왔다.
‘등여산! 아! 안 돼!’
호발귀는 들끓는 살기를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정신만 멀쩡하게 붙잡을 수 있다면 이를 악물고라도 버틸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잠이 쏟아질 때처럼 순간순간 정신이 끊어진다.
자신은 언제든 살기의 노예가 될 수 있다.
‘이 여자, 여기 있으면 안 돼. 아주 지독한 꼴을 당하게 돼. 단순히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어. 어쩌면 갈기갈기 찢어버릴 지도 몰라. 사람 흔적이 남지 않을 만큼……’
호발귀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대충 감지했다.
살기가 정신을 집어삼키기 일보 직전이다. 정신이 뚝뚝 떨어진다. 깜짝 놀라서 정신을 차려보지만, 정신을 잃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살기가 몸을 지배한다.
자신은 곧 혈마가 된다.
단순한 예감이 아니다. 확신한다. 지금은 살기를 꾹 누르고 있지만, 순식간에 고삐가 풀릴 것이다.
“가!”
호발귀는 등여산을 향해 소리를 빽 질렀다.
등여산이 호발귀를 쳐다봤다.
그녀는 깜짝 놀란 듯 눈을 부릅떴다. 아니, 몸을 움찔거리면서 부르르 치를 떨었다.
그녀도 호발귀 상태를 봤다.
시뻘건 얼굴,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동자, 부르르 떨리는 살, 다닥다닥 부딪치는 이빨.
매우 비정상이다.
호발귀는 금방이라도 그녀를 덮칠 듯이 몸을 꿈틀거린다.
당장 덮치고 싶은데, 간신히 참는다는 몸짓이 확연히 보인다.
‘살기? 설마 나를?’
그녀는 눈빛을 차갑게 굳히고 호발귀를 쳐다봤다.
맞다. 호발귀는 그녀를 죽이려고 한다. 그녀를 쳐다보는 눈빛이 쾌락으로 젖어들었다.
정신 잃은 살인마의 눈빛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호발귀가 정신을 꼭 잡고 있다. 살기를 터트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한다.
‘상태가 매우 불안해. 이제 곧 일을 저지를 것 같아. 대책을 세우려면 지금 당장 시도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아주 험한 꼴을 당한다.
‘마혈을 제압해?’
가장 먼저 치민 생각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좋은 생각이지만 실행하기 힘들다. 그녀는 호발귀보다 하수다. 무공으로 호발귀를 점혈할 수 없다.
“가!”
호발귀가 동굴 벽에 등을 턱 기대며 소리쳤다.
호발귀로써는 최선을 다해서 참고 있다. 이를 악물면서 몸을 떠는 모습이 보인다.
등여산이 빠르게 말했다.
“점혈하면……”
“가!”
호발귀는 그녀가 말을 꺼내자마자 버럭 일갈을 내질렀다.
‘이런 미친!’
호발귀는 상당히 당황했다.
등여산이라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죽이고 싶은 생명체만 보인다.
배고픈 맹수가 먹잇감을 보듯이 살기 어린 눈길이 등여산의 전신을 훑는다.
“가! 제발!”
호발귀는 동굴 벽에 등을 바짝 붙이고 소리쳤다.
동굴의 차디찬 기운을 느끼고 싶다. 그렇게 해서라도 살기를 가라앉혔으면 좋겠다.
파아아앗! 부와와악!
역천금령공은 더욱 기승을 부렸다.
진기 통제를 완전히 벗어났다. 제멋대로 질주한다. 멈추려고 해도 멈춰지지 않는다. 산불처럼 전신을 불태우면서 살기를 한껏 끌어올린다.
“으…… 으!”
호발귀는 신음을 흘리면서 걸음을 옮겼다.
그는 자신이 등여산을 노리고 다가선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는 아직도 동굴 벽에 몸을 바싹 밀착시킨 상태라고 생각했다. 살기를 참고 있다고.
그러나 아니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동굴 벽에서 서너 걸음이나 떨어져 있다. 등여산을 향해서 다가서고 있다. 아니, 생명체를 향해서 걸어간다.
지금 또 한 걸음 내디딘다. 후들거리는 다리가 질질 끌리듯 끌려나간다.
“가! 가!”
이제는 소리 지를 힘도 없다.
가라고 말하고 있지만, 음성이 점점 안으로 사그러졌다.
호발귀는 제정신이 아니다. 이미 살기에 이성을 잃어버렸다.
점혈이 유일한 방법이다.
스읏!
등여산은 손가락을 곧추세웠다.
그녀의 무공은 호발귀를 압도하지 못한다. 그러니 호발귀 스스로 점혈을 당해주어야 한다.
그녀가 본 호발귀는 혈마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지금도 보고 있지 않나. 살기를 참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그러니 그 역시 점혈을 원할 것이다. 일단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후, 다른 대책을 세워야 한다.
“지금 점혈해요!”
등여산은 호발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지공을 펼쳤다.
슈웃!
태산파의 태산금나가 터졌다.
점혈이라면 무림 어느 문파에도 뒤지지 않을 절정 공부 이력음유지(二力陰柔指)가 번쩍! 빛났다.
순간, 그녀는 새빨갛게 번들거리는 눈동자와 마주쳤다.
뜨겁게 달아오른 눈동자에는 이성이 담겨있지 않다. 오직 살기만 번들거린다.
“엇!”
등여산은 헛바람을 토해냈다.
호발귀는 점혈 당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이미 살기에 사로잡힌 살성이 되어서 생명체를 말살할 생각만 가득하다.
살기…… 마인이 되었다.
‘잘못됐다!’
위험이 퍼뜩 감지되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퍽!
“큭!”
등여산은 느닷없이 틀어박힌 일격에 헛바람을 토해냈다.
한순간, 숨이 콱 막혔다. 눈앞에서 별이 번쩍거렸다. 세상이 캄캄해지고, 모든 생각이 떨어져 나갔다.
“크흑!”
등여산은 배를 움켜잡고 털썩 무릎을 꿇었다.
복부에 틀어박힌 일격에는 바위를 부수고도 남을 만한 힘이 담겨있었다.
호발귀는 손속에 사정을 담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호발귀의 움직임이 다소 둔하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성과 살념이 충돌하기 때문인 것 같다. 한쪽은 살기를 터트리려고 하고, 한쪽은 억누르려고 한다.
쉬익!
혈수가 날아왔다.
등여산은 급히 피하면서 다시 한 번 이력음유지를 펼쳤다.
퍽! 부욱!
이력음유지가 호발귀를 타격했다. 호발귀의 혈수는 그녀를 스치며 지나갔다.
옷이 부욱 찢어졌다.
그녀는 당혹해서 찢어진 옷을 끌어당겼지만, 이미 뽀얗게 드러난 살을 가릴 수는 없었다.
‘타격했어!’
등여산은 즉시 호발귀를 따라붙으며 지법을 쳐냈다.
호발귀가 둔해 있을 때, 어떻게든 점혈해야 한다. 지금 놔주면 혈마가 된다.
쒜에엑!
이번에는 빈 허공만 때렸다. 호발귀 역시 그녀를 타격하지 못했다. 옷만 찢으면서 지나갔다.
부욱!
옷이 또 찢겼다.
상반신이 환히 드러났다. 하얀 어깨가 드러났다.
그녀는 급히 두 손을 모아서 가슴을 가렸다.
“아!”
등여산은 탄식했다.
호발귀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이제는 그녀가 공격할 수 없는 상태다. 한순간에 무공이 두 배는 급진전했다. 혈마가 호발귀를 집어삼켰다.
사태는 이미 최악을 향해 치닫는 중이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갓!”
호발귀의 음성이 크게 들려왔다. 동시에 거친 힘이 그녀의 등을 거세게 격타 했다.
퍽!
매우 강한 충격이 척추뼈를 울렸다.
호발귀가 놓아주었다. 상황이 좋아진 것은 아니다. 마지막 남은 이성을 간신히 붙잡은 것 같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망설이면 또 잡힐 것이고, 그때는……
‘도망가야 해!’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직 한 생각, 지금 당장 도주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후다다닥!
그녀는 호발귀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몸을 퉁겨냈다.
정신없이 달렸다.
뒤돌아볼 정신이 어디 있나. 다른 생각은 뚝 끊겼다. 오직 동굴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만 든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호발귀가 머리끄덩이를 잡아챌 것 같다.
타탁! 타타타탁!
찢어진 옷자락을 움켜쥐고 정신없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