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十章 살단(殺團)(3)
펑! 펑! 펑!
폭음이 연속으로 터지고, 연무가 깊은 밤처럼 어둡게 피어났다.
귀무살은 그물 속으로 달려들지 않았다. 살단이 그물을 휘두르자, 즉시 물러섰다.
살단은 귀무살을, 귀무살은 살단을 아주 잘 안다.
이 두 집단은 무림에서 숱하게 만났다. 어떤 때는 살단이 이겼고, 어떤 때는 귀무살이 이겼다.
오늘은 살단이 이긴다.
살단 총주 미도회랑 오택골이 있어서 이긴다.
천살단에서 미도회랑 오택골을 능가하는 무인은 천살단주밖에 없다. 천살단주조차도 오택골과는 승부를 피한다는 소문이 있는 것을 보면 대단한 강자인 것은 틀림없다.
오택골은 병기를 지니고 다니지 않는다.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것, 나무나 돌멩이나 다른 사람이 떨군 칼 같은 것을 주워서 쓴다.
나무 몽둥이를 주워서 귀무살을 때려죽이는 것이 다반사다. 돌멩이로 때려죽일 때도 있다.
매우 잔인하다.
하지만 오택골을 무섭게 만드는 것은 따로 있다.
오택골은 검이나 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도검에 찔리면 눈 한 번 깜짝이지 않고 쳐다본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무덤덤한 얼굴로 때려죽인다.
다른 사람 같으면 푹푹 나가떨어질 중상을 입고도 태연히 움직인다.
사람이 기가 질리게 만든다.
그러니 이번 싸움은 살단이 이긴다. 귀무살이 제아무리 강해도 살단을 이기지 못한다.
“다 죽여버렷!”
살단 총주 오택골이 버럭 고함질렀다.
살단은 귀무살을 노리고 나타난 것이 아니다. 혈마 무공을 사용하는 자, 호발귀를 노리고 나타났다.
들것을 맨 귀무살이 최우선 공격 대상이다.
그들을 죽이고, 들것에 실린 호발귀를 죽인다. 호발귀를 데려가지 않는다. 이 자리에서 죽인다.
들것을 향해 쏟아지는 공격에 매우 맹렬하다.
“죽엇!”
쒜에에에엑!
귀무살을 향해 칼이 날아왔다.
‘음!’
귀무살은 신음을 흘리며 물러섰다.
야산에 나타난 잡랑들은 눈속임이다. 들것을 노리고 나타난 잡랑이 진짜 천살단 살단 무인이다.
칼을 쉽게 피할 수 없다. 전력을 다해도 모자랄 판에 들것까지 들고 있어서는 승산이 없다.
그래도 귀무살은 들것을 놓지 않았다.
파팟! 파파팟!
귀무살이 칼을 피하고 또 피했다. 칼이 몸을 긋고 지나가도 들것을 놓지 않았다.
“크으윽!”
귀무살이 신음을 흘렸다. 그때,
푸욱! 퍼어억!
땅거죽이 들썩이더니 귀무살을 공격하던 잡랑이 풀썩 쓰러졌다.
“가랏!”
삼십일살이 말했다.
“넷!”
귀무살은 즉시 움직였다. 삼십일살이 들것 주변에 흑무를 터트려 주었다.
“하하하! 쥐새끼 대가리가 여기 있었구나! 하하하!”
우렁찬 웃음과 함께 삼십일살 앞에 살단 총주가 나타났다. 손에 나무 몽둥이를 들고.
스릉! 스릉! 스르릉!
삼십일살은 사슬 낫, 쇄겸(鎖鎌)을 잡고 빙빙 휘돌렸다.
사슬 낫은 파괴력이 뛰어나다. 사슬 끝에 날린 낫은 근접전에 유용하고, 다른 쪽에 달린 추는 원거리 공격에 적합하다. 강한 힘으로 사슬을 휘두르면 접근조차 하지 못한다.
휘이이잉!
사슬이 맹렬한 속도로 휘돌기 시작했다.
“아가야. 쥐새끼가 굴에서 나오면 잡혀 먹히는 거야. 넌 왜 굴에서 나왔노? 유서는 써놓고 나왔어야 할 텐데. 니 죽으면 처자식은 어쩌노?”
휘잉! 휘잉! 휘이이잉!
삼십일살은 대꾸하지 않았다.
살단 총주가 속 뒤집는 말을 한다고 해서 같이 따라가면 당장 얻어맞는다. 속을 뒤집을수록 차분하게, 침착하게 대응한다. 일단 사슬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게 한다.
‘빠져나가야 해!’
퍼엉! 펑! 펑!
삼십일살 주위로 폭음이 터졌다.
즉시, 검은 연기가 몽실몽실 피어났다. 그리고 삼십일살의 신형이 어둠 속에 가려졌다.
“이놈아! 모습만 감춘다고 악취가 감춰지냐! 네 놈 몸에서 똥구린내가 나!”
쒜에에엑!
살단 총주가 나무 몽둥이를 휘둘렀다.
살단 총주의 공격은 매우 무식하다. 초식 같은 게 없다. 무작정 내리찍는다. 후려친다. 뒷골목 파락호들이 몽둥이를 들고 설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하지만 무척 빠르고 무척 강하다.
너무 빨라서 막을 수 없고, 너무 강해서 병기며 뼈며 모조리 부서져 나간다.
까앙!
쇄겸이 몽둥이를 견디지 못하고 날아갔다.
스읏!
살단 총주가 어느새 쇄겸 안으로 들어섰다. 쇄겸을 쳐낸 후인지라 막을 수 있는 게 없다.
삼십일살은 낫으로 살단 총주를 찍었다.
푹!
낫이 단주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가, 됐냐? 손맛을 봤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겠지?”
“이 미친!”
삼십일살은 낫을 힘주어 눌렀다. 낫이 가슴을 뚫었으니 아예 심장까지 뚫어버릴 생각이다.
살단 총주는 고통을 즐긴다. 싸움하면서 몸에 상처가 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낫에 찔리고도 웃는다.
고통이 전신에 회오리칠 텐데, 눈은 오히려 광기로 번들거린다.
미친놈! 미친놈과 싸우는 기분이다.
쒝!
흑무 속에서 누릿한 것이 번뜩였다. 순간, 삼십일살은 눈에서 불똥이 확 튀었다.
빠아아악!
머리뼈 부서지는 소리는 나중에 울렸다.
타격이 먼저 이루어지고, 타격음이 나중에 들렸다. 삼십일살이 풀썩 주저앉는 것과 머리 깨지는 일이 동시에 일어났다.
빠악! 빠악! 빠악!
삼십일살은 이미 절명했다. 머리를 가격했을 때, 이미 살아날 수 없는 치명상을 입었다.
그런데도 계속 내리친다.
나무 몽둥이를 들어서 한 번, 또 한 번 계속 후려친다.
삼십일살은 머리가 완전히 뭉개져서 형체를 잃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 듯 계속 쳤다.
퍽! 퍽! 퍽!
나중에는 뼈 부서지는 소리 대신 살을 짓뭉개는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모두 잡아! 모두 죽여!”
살단 총주의 눈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살단 잡랑도 죽고 귀무살도 죽었다.
잡랑은 그야말로 굶주린 늑대처럼 달려들었다. 아귀처럼 달라붙는다는 말이 맞는다. 떼어내고, 흑무로 눈가림을 해도 기를 쓰고 달라붙었다.
귀무살은 흑무를 이용한 살법에 능하다.
잡랑이 흑무 속으로 뛰어든다는 것은 귀무살의 안방으로 들어와서 싸운다는 소리다.
당연히 피해가 크다. 잡랑이 푹푹 쓰러진다.
그런데도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하나를 쓰러트리면 둘이, 둘을 쓰러트리면 넷이 달려든다.
펑! 펑!
들것을 든 귀무살이 마지막 흑연탄을 터트렸다.
‘저곳!’
귀무살은 숲을 쳐다봤다. 일단 숲으로 들어가서 숨어야 한다. 계속 질주하는 것은 자살행위다.
그때, 그들 앞에 잡랑 넷이 나타났다.
잡랑은 살단 총주를 닮아서 씻지 않는다. 옷은 짐승 가죽을 꿰매 입는다. 들판이든 산이든 아무 곳에서나 드러누워서 자기 때문에 두툼한 가죽옷이 편하다.
“그만!”
쒜에에엑!
잡랑은 칼날이 톱니 형태인 거치도(鉅齒刀)를 휘둘렀다.
살짝만 스쳐도 살이 찢긴다. 뼈에 닿으면 즉각 쓸려나간다. 파괴력이 굉장해서 정파 무인들은 사용하지 않는 병기인데, 잡랑은 거침없이 쓴다.
“빌어먹을!”
이제는 어쩔 수 없다. 귀무살은 들것을 놓고 허리춤에서 단창(短槍) 두 자루를 꺼내 들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들것을 지켜야 하지만, 당장 목숨이 사라질 판이다. 맞서 싸우지 않으면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한다. 싸우는 것이 들것을 지키는 길이다.
귀무살의 판단은 옳았다.
까앙! 까아앙! 까앙!
단창과 거치도가 거칠게 부딪쳤다.
들것 뒤쪽을 잡고 있던 귀무살도 즉시 검을 뽑아 들고 잡랑과 어울렸다.
스으읏!
어렴풋이 보이던 신형이 흑무 속으로 완전히 감춰졌다.
“응?”
잡랑이 즉각 경계심을 일으켰다. 하지만 귀무살은 벌써 흑무를 헤쳐왔다. 소리를 내지 않고 은밀히 다가왔으며, 검을 들어 잡랑의 목에 댄 후다.
써걱!
검이 움직였다.
잡랑은 끈 떨어진 인형처럼 풀썩 쓰러졌다.
귀무살은 다시 사라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귀두도(鬼頭刀)를 들고 있는 자에게 다가섰다.
푹!
검이 옆구리를 쑤셨다.
귀무살이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흑무와 은신술을 이용해서 가장 빠르게 적을 죽인다.
그런데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잡랑의 허리에 검을 쑤셔 넣자마자 갑자기 허공에서 매미 날갯소리가 울렸다.
파라라라락!
‘위험!’
귀무살은 즉각 몸을 빼냈다.
하지만 허공에서 활짝 펼쳐진 투망을 완전히 피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어떤 놈이 잡랑의 목숨을 미끼로 내던져서 귀무살을 유인했다.
귀무살이 잡랑에게 다가가서 허리든 목이든 벨 때까지 차분히 기다리고 있었다.
“흐윽!”
귀무살이 미약한 신음을 흘렸다.
투망을 피하기는 했지만, 투망 끝에 달린 납이 오른쪽 상반신을 쓸고 지나갔다.
귀무살의 몸은 곧 피투성이로 변했다.
“흐흐흐! 쥐새끼!”
피를 철철 흘리는 귀무살 앞에 붉은색 투망을 든 자가 나타났다.
‘혈망(血網)!’
귀무살의 눈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혈망은 살단 총주의 제일 수하다. 단주와 함께 먹고, 자고, 말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
직위로는 부두목쯤 되는데, 살단 총주에게는 이런 제일 수하가 많다.
휘윙! 휘잉! 휘이잉!
혈망이 흑무를 거둬내며 빙빙 돌았다.
“흐흐! 이게 정말 쥐새끼지. 네놈이 내 손에 떨어졌구나. 킥킥!”
낭아봉(狼牙棒)을 든 자가 키득키득 웃으면서 들것에 실린 호발귀에게 걸어갔다.
그를 막는 귀무살은 없다.
혈망과 맞선 자는 피떡이 되어서 쓰러졌다.
거치도와 맞선 자도 점점 혈인이 되어갔다. 비록 거치도를 죽였지만, 잡랑이 너무 많다. 강한 자들만 추려서 백여 명이나 투입되었으니 살길이 없다.
휘릭!
봉 끝에 달린 철추(鐵鎚)가 거친 바람을 일으켰다.
오늘 습격에서 제일 목표는 뭐니 뭐니 해도 호발귀다.
- 발견하는 즉시 멱을 따! 볼 것 없어! 그놈을 죽이는 놈은 내 오늘 소원 하나 들어준다.
제일 수하 자리가 코앞에 있다.
“흐흐!”
쒜에에엑!
그는 재빨리 호발귀에게 다가갔다.
밤이 길면 꿈도 많은 법, 변수가 생기기 전에 호발귀부터 죽인다. 일단 죽인 후에 쾌감을 만끽한다.
“꺼졋!”
그는 낭아봉을 힘껏 내리쳤다. 순간,
퍼억!
이상한 소리가 났다.
왼쪽 목덜미에서 불에 덴 것처럼 뜨거운 느낌이 확 일어났다. 그리고 같은 느낌이 지극히 짧은 순간에 가슴을 지나 오른쪽 옆구리까지 이어졌다.
“컥!”
그는 뒤늦게 헛바람을 내질렀다.
몸이 갈라진다. 쓰러진다.
휘이익!
누군가가 호발귀를 낚아챘다. 그리고 쏜살같이 흑무 속을 질주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