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十章 살단(殺團)(2)
퓻! 퓨퓻! 퓻!
귀무살이 일제히 품에서 대롱을 꺼내더니 입에 물고 훅훅 불었다.
대롱에서 강침이 쏘아졌다.
호발귀는 강에 빠진 귀무살을 노려보고 있다. 아직은 대롱에서 강침이 쏘아진 것을 모르고 있다.
퍽! 퍽퍽! 퍽퍽!
강침이 호발귀를 격중했다.
호발귀는 아주 크게 비틀거렸다.
“음!”
삼십일살 귀무살이 침음을 흘렸다.
아주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에 귀무살 한 명이 격타당해서 죽었다. 비록 거리가 매우 가까웠다고 하지만 그래도 귀무살인데 반격조차 하지 못했다.
호발귀의 손속이 매우 빠르고 잔인했다.
쿵!
비틀거리던 호발귀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무너졌다.
푹! 푹푹! 푹푹!
강침은 이미 혼절해 버린 호발귀의 전신에 계속 틀어박혔다.
한두 대가 아니다. 수십 대가 틀어박혀서 고슴도치까지는 아니더라도 가시 돋힌 장미넝쿨 정도는 되어보인다.
“그만!”
심삽일살이 소리쳤다.
귀무살은 대롱에서 입을 뗐다.
한 명이 재빨리 배를 몰고 가서 강에 빠진 귀무살을 데려왔다.
“절명했습니다.”
배에 탄 귀무살이 축 늘어진 사내를 쳐다보며 말했다.
“봉혈을 했나?”
“틀림없이 했습니다.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했는데, 이렇게 풀릴 줄은 몰랐습니다.”
“분명히 했어?”
“했습니다.”
“그런데 풀렸다? 이게 푼다고 풀릴 수 있는 봉혈인가?”
“……”
귀무살은 대답하지 못했다.
칠혈용목술(七穴用木術)은 귀무살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수법 중에 하나다.
일곱 혈을 눌러서 사람을 나무로 만든다.
움직일 수는 있지만, 나무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싸우지도 못하고 달리지도 못한다. 심하게 움직일 수도 없다. 신체기능이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누군가를 포로로 잡았을 때, 당장 시전하는 게 칠혈용목술이다.
그래서 삼십일살이 두 번, 세 번 물어본 것이다.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칠혈용목술을 펼치면 시전자가 해혈해 주기 전에는 절대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호발귀가 칠혈용목술을 풀어낸 첫 번째 인물이다.
“사람을 꽤 놀라게 하는군. 귀무살 두 명을 한 수에 죽이고도 사로잡힌다. 말도 안 되는 일. 귀무살을 맨손으로 때려죽인 자가 바람대에 맞아서 쓰러진다. 말도 안 되지.”
그는 말도 안 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현실이 되었다.
호발귀가 입으로 불어내는 마취 침에 맞아서 쓰러졌다. 바람대를 열 대 이상 쓰기는 했지만…… 왜 섬전을 때려죽인 후에 강물로 뛰어들지 않았을까?
탈출할 생각이 없었다.
때려죽인 귀무살을 노려보느라고 탈출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단단히 묶어!”
삼십일살이 말했다.
호발귀는 자유를 잃었다.
손에는 쇠고랑이, 발에는 족쇄가 채워졌다.
귀무살 두 명이 호발귀를 들것에 눕혀서 재빨리 움직였다.
쉬이이잇!
귓가로 바람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됐어. 한 놈 잡았어.’
때려죽인 자가 한쪽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자가 아니라 동패의 팔을 잘라낸 자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쨌든 다섯 명 중 한 명은 잡았다.
호발귀는 희망을 얻었다. 귀무살과 함께 움직이면 이런 식으로 다른 자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 뒤에서 바람대 꺼내는 소리를 들었지만, 피하지 않았다.
저들이 자신을 죽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바람대 대신에 병기를 뽑았을 것이다. 바람대를 꺼냈다는 것은 마취시키겠다는 뜻이다.
한 놈을 죽인 대가로 자유를 잃었지만, 이 정도면 양호하다. 가슴이 뻥 뚫린 듯 시원하다.
‘왕소, 동패. 이제 큰 숨 한 번 쉬어도 돼. 조금 있으면 편히 쉬게 해줄게.’
호발귀는 사부도 생각했다.
사부가 살아있다고 하는데, 어디에 계실까?
스읏! 척! 척! 척!
전력질주하던 귀무살이 일제히 멈춰섰다.
“추격자입니다.”
귀무살이 삼십일살에게 말했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삼십일살이 눈을 가늘게 뜨고 앞에 있는 야산을 쳐다봤다.
야산에 적이 있다.
“너희는 곧바로 가라.”
호발귀를 들고 있는 귀무살 두 명에게 한 말이다.
두 명은 대답도 하지 않았다.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신형을 쏘아냈다.
쒸이이잇!
두 사람은 지금까지보다 배는 빠르게 움직였다. 그야말로 숨이 턱에 닿을 정도로 급하게 뛰었다.
스읏!
삼십일살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귀무살 중 다섯 명이 뒤로 떨어져 나갔다.
“너희와 난 미끼다. 가자!”
삼십일살이 귀무살 네 명과 함께 호발귀를 데려간 두 명을 쫓아갔다.
쉬잇!
야산에서 들짐승이 움직였다.
무엇인가가 바위를 박차고 날아든 것 같은데, 형체는 보이지 않는다. 벌써 어딘가에 숨었다.
‘드디어!’
호발귀를 든 두 명은 공격 기미를 눈치챘지만, 전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쉬잇! 쉬이잇!
바람소리가 계속 일어났다.
저들도 서둘지 않는다. 이미 포위망을 갖춰놓았다는 듯이 여유 있게 움직인다.
쒜에에엑!
갑자기 급한 바람 소리가 일어났다.
야산에서 한 명이 뛰쳐나왔다. 큰 칼을 들고 귀무살의 머리를 쫙 쪼개온다.
귀무살은 공격을 봤지만, 신형을 멈추지 않았다.
쉬이이잇! 쉬이잇!
그들은 계속 앞으로 질주했다. 죽일 테면 죽여라. 공격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공격해라. 우린 장님이다. 앞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공포도 모른다.
“카아!”
머리를 강타한 자가 괴성을 내질렀다.
그는 전력을 다해서 칼을 내리친다. 단숨에 귀무살의 머리를 반으로 가를 기세다. 그때,
퍼억!
허공에서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대도를 내리치던 자는 강한 힘에 떠밀려 삼 장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삼십일살이 화살을 날렸다.
화살은 정확하게 사내의 목을 꿰뚫었다. 신경과 생명을 단숨에 끊어버렸다.
순간, 숲에서 콩 볶는 소리가 요란하게 터졌다.
타타탓! 쒜에엣! 타앗! 꽈앙!
칼이 바람을 가른다. 나무를 내리찍고, 바위를 부순다. 잡초를 잘라서 허공에 붕 띄운다.
야산이 절단나고 있다.
뒤로 빠졌던 귀무살 다섯 명이 야산을 급습했다. 기습자들이 호발귀와 뒤따르는 다섯 명에게 눈길을 빼앗긴 사이, 은밀히 스며든 귀무살이 역으로 공세를 취했다.
“크윽!”
“컥!”
야산에 숨었던 기습자가 오히려 기습을 받았다. 그런데,
“이거 웬 쥐새끼들이 이렇게 많아?”
야산에서 걸걸한 음성이 들렸다. 그리고,
빠악!
갑자기 머리뼈 으깨지는 소리가 울렸다.
걸걸한 음성을 토한 자가 주위에서 굵은 나무를 주워들더니 냅다 귀무살의 머리를 후려쳤다.
쿵!
머리를 맞은 귀무살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쉬잉!
사내가 나무를 거칠게 휘둘렀다.
나무에는 뇌수와 피가 가득 묻어있었다. 나무를 휘두를 때마다 사방으로 비릿한 액체가 비산되었다.
“웃!”
야산을 급습했던 귀무살이 일제히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사내는 물러서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쥐새끼들이 어디서 함부로 설치고 지랄이야? 여기가 네집 안방이냐?”
쒜에에에엑!
사내가 허공으로 신형을 둥실 띄우더니, 들고 있던 나무로 둥그런 원을 그렸다.
“만월천공(滿月穿孔)! 살단이다! 피햇!”
삼십일살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파팟! 파파파팟!
기습자들을 역으로 습격했던 귀무살이 메뚜기떼처럼 사방으로 퉁겨져나왔다.
철수할 때는 뭉쳐있지 마라! 흩어져라!
귀무살은 가장 생존 가능성이 높은 방법으로 움직인다.
지금과 같은 경우, 삼십일살이 살단이라고 소리쳤을 때, 네 명 모두 목숨을 구하기는 힘들다는 생각을 햇다.
그래서 비산한다. 뿔뿔이 흩어지면 죽는 자보다 사는 자가 많다. 그런데,
“킥킥! 이 잡것들이 어디를 가려고!”
“이놈들아, 여기도 있다!”
쒜에에엑! 쒜에엑!
지금까지 당하기만 하던 기습자들이 갑자기 늑대로 돌변해서 달려들었다.
귀무살이 발길이 주춤했다.
그 순간, 만월을 그리던 나무 몽둥이가 뚝 떨어졌다. 섬광처럼, 벼락처럼 떨어졌다.
쾅! 꽈직!
나무는 귀무살의 머리를 박살냈다. 머리뿐만이 아니라 몸통까지 짓뭉개 버렸다.
사내는 허리가 부러져버린 나무 몽둥이를 던져버렸다.
“흩어져!”
삼십일살이 쩌렁 고함을 내질렀다.
순간, 귀무살 주변에서 요란한 폭음이 펑펑 터져 나왔다. 동시에 뿌연 연막도 피어났다.
흩어지라는 말은 속임수다.
어떤 말이든 상대방을 자극한다. 흩어지라고 하면 즉각 포위망을 재정비한다. 흩어지지 못하게 막는다.
저들이 움찔하는 사이, 이쪽은 역으로 숨는다.
흩어지지 않는다. 강적을 앞에 두었을 때, 흩어지는 것은 오히려 죽음을 앞당기는 행동이다. 오히려 똘똘 뭉쳐서 전멸을 각오하고 싸워야 한다.
“흐흐! 쥐새끼들, 귀엽게 노네. 이것들은 항상 이 짓거리야. 변한 게 없어.”
땅에서 새로운 몽둥이를 골라든 사내가 말했다.
사내는 머리를 산발했다. 끈으로 묶지도 않았다. 짐승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었는데, 얼마나 빨지 않았는지 퀘퀘한 냄새가 사방으로 진동한다.
거친 수염, 씻지 않은 얼굴, 누런 이, 늑대처럼 살광으로 번뜩이는 눈동자.,
딱 야만인 모습이다.
이런 모습으로 돌아다니면서 귀무살을 마구잡이로 때려죽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밖에 없다.
살단 총주 미도회랑(迷途灰狼) 오택골(吳澤汨)!
살단 총주는 ‘길 잃은 회색 늑대’라고 불린다. 천살단에 살단 총주이지만 천살단에 머물지도 않는다. 집도 절도 없이 항상 중원을 떠돈다.
그의 곁에는 살단 잡랑(雜狼)들이 따른다.
그들 스스로 잡종 늑대라고 말한다. 만약 그들을 다른 이름, ‘살단 무인’ 같은 식으로 부르면 당장 피가 튄다. 오직 잡랑, 잡종으로 불리기를 원한다.
잡랑의 수는 얼마인지 알지 못한다.
천살단 총주조차도 잡랑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소문이다.
잡랑은 약한 자부터 강한 자까지 고루 존재 한다.
귀무살에게 형편없이 죽는 자가 있는가 하면, 또 귀무살을 잡을 수 있는 자도 있다.
살단! 살단이 쫓아왔다!
쒜에에엑! 빠아악!
살단 총주가 흑무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귀무살을 또 한 명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으악!”
“컥!”
앞쪽에서는 급박한 비명소리가 연신 터져 나왔다.
귀무살도 반격하고 있다. 흑무 속을 은밀히 움직이면서 살단 무인들, 잡랑을 거침없이 베어낸다.
“이 병신들아! 그물을 던져!”
살단 총주가 빽 소리쳤다.
그러자 잡랑이 일제히 투망을 꺼내 들었다.
부웅! 부웅! 부우우웅!
사방에서 투망 휘젓는 소리가 들린다. 그물 끝에 납을 단 투망이 살인 병기가 되어서 휘둘러진다.
잡랑은 그물에 독가시를 달았다.
누구든 그물에 긁히기만 하면 입으로 거품을 토하면서 죽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