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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46화 (46/500)

第十章 살단(殺團)(1)

강가에 집이 있다.

사람들이 찾아오기 힘든 곳에 지어진 집인데, 열 명도 머물 수 있을 만큼 크다.

집 주위는 녹음이 우거져 있다.

멀리서 보면 누렇게 말라버린 지붕과 기둥 몇 개밖에 보이지 않는다. 호기심으로 다가오려고 해도 길을 찾기가 힘들다. 집 뒤는 경사가 무척 급한 언덕이다.

강은 폭이 좁은 대신 물살이 세고 깊다.

배를 타지 않고는 찾아오기가 힘든 곳이다.

귀무살은 강가 집에서 묵었다.

“여기서 오래 있을 거야?”

“곧 간다.”

“종이와 붓 좀 가져다주지? 가만히 있기에는 심심해서.”

“혈마록을 적게?”

“이 사람들은 혈마록을 적어준다고 해도 시큰둥하네. 천살단은 이거 적어달라고 이상한 약까지 먹였는데.”

“알았다.”

귀무살이 냉담하게 말했다.

그들은 호발귀를 편하게 풀어놨다.

칼에 베인 상처도 아물지 않았고, 혈을 단단히 눌러놨기 때문에 움직이기 힘들다고 봤다.

덕분에 호발귀는 사지를 마음대로 놀릴 수 있었다.

귀무살이 지필묵을 가져왔다.

어차피 혈천방에서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호발귀를 잡아놨다고 보고했으니 곧 소식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는 제이지에서 꼼짝하지 않는다.

“정말 기억하는 거지?”

“자꾸 이러면 적어주기 싫어지지. 비자에게 빼앗긴 것을 멀쩡하게 돌려준다는 데도 그래.”

“알았다.”

귀무살이 물러섰다.

혈마록을 적기 시작했다.

글씨를 쓰는 게 아니다. 그림을 그린다. 고어, 올챙이처럼 구불거리는 글씨를 천천히 그려나갔다.

서둘 필요는 없다.

혈천방에 혈마록을 돌려주기 위해서 지필묵을 달라고 한 것이 아니다.

혈천방은 왕소와 동패를 죽였다. 복수의 대상일 뿐이다. 사부를 잡아갔다. 구출해야 한다. 적대적인 관계이지 협조하거나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도 혈마록을 적어나간다.

머릿속에 기억해둔 혈마록이 꿈틀거렸다. 이해하지 못했던 고어들이 말끔하게 풀이되었다. 글자로 변형이 되었고, 익히 알고 있는 혈마 무공이 되었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혈마록을 적어나간다.

‘변을 떼어내는데 삐침은 그대로 두고, 옆 글자와 붙이면 타(打).’

종이에 그림을 그려갈 때마다 머릿속에서는 해석된 글자가 요동쳤다.

“그걸 왜 써? 내가 이미 비급을 줬잖아.”

“비급에서 보지 못한 게 있어.”

“보지 못한 거? 뭐가 있을까? 비급은 온전한 건데? 있는 그대로 다 줬다고. 내가 뭔가 빼먹었다는 거야?”

“빼먹은 것은 아닌데, 해석된 비급에서는 볼 수 없는 게 있어.”

“해석된 비급?”

“그런데 혈마 무공을 어디서 난 거야? 혈마 무공이면 그렇다고 말을 해줘야 알지.”

“지금은 알았잖아.”

“여러 사람이 말해줘서 알았지.”

“그게 뭐가 중요해. 배웠으면 됐지.”

“쉿! 조용. 글 좀 쓰고.”

“도대체 뭘 본다고 그럴까? 빼먹은 게 없는데.”

호발귀는 장진 스님조차 침묵시켰다.

글 쓰는 데 방해된다. 고어가 글자로 변하는 과정에서 푸르스름한 기운이 생성된다.

혈기다!

혈마록 열 권은 따로따로 분리해서 해석하면 혈기가 보이지 않는다. 열 권을 통째로 놓고, 열 권 모두를 한꺼번에 쫙 펼쳐놓고 해석해야 혈기가 보인다.

비급으로 혈기를 보려면 책을 분해해야 한다. 책을 찢어서 각 장을 모두 늘어놓아야 한다. 열 권 모두 낱개로 찢어서 펼쳐놓아야 전체적으로 흐르는 혈기를 볼 수 있다.

호발귀는 혈마록을 외웠다.

우연이라고 해도 좋고, 필연적이라고 해도 좋다. 어쨌든 머릿속에 담았다.

그 순간, 혈마록이 쫙 펼쳐졌다.

머릿속에서는 책을 찢을 필요가 없다. 책장으로 흩어진 것도 아니고 각 글자로 흩어졌다. 훨씬 잘게 찢어져서 쫙 펼쳐졌다. 전체 도면이 완성되었다.

그러자 혈기가 일어난 것이다.

“음!”

호발귀가 침음 했다.

“왜?”

장진 스님이 심심했던지 즉시 물어왔다.

호발귀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어가 풀어놓는 혈기에 정신을 집중하는 중이다.

“미친놈인가?”

“일부러 지랄하는 거 아냐? 방금까지 멀쩡하던 놈이 왜 갑자기 지랄이야?”

귀무살이 곱지 않은 눈으로 호발귀를 쏘아봤다.

호발귀가 마치 옆에 사람이라도 있는 듯이 중얼거린다.

무슨 소리인가 들어보려고 귀를 기울였는데, 잘 들리지도 않는다. 옹알이하듯이 속으로 웅얼웅얼한다.

호발귀가 혈마록을 적어준다고 끄적대고 있긴 한데, 솔직히 귀무살은 혈마 무공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혈마 무공은 과거 무공일 뿐이다.

“본문에서는 아직도 소식이 없어?”

“오늘이나 내일쯤 오겠지. 가고 오는 시간이 있으니까. 늦어도 내일 저녁에는 소식이 올 거야.”

“그런데 저놈이 십이와 십삼을 벨 때, 그 수법 봤어?”

“……”

다른 두 사람은 침묵했다.

그들도 열두 번이나 임무에 성공한 십이살 십자창과 열세 번 임무 성공한 십삼살 쌍겸이 죽은 모습을 잊지 못한다.

두 명이 일 검에 죽었다. 한데, 도무지 어떤 검초인지 알아내지 못하고 있다.

호발귀가 펼친 게 혈마 무공이라면 마영심도, 귀명검법, 혈천도법, 무정삼절 중 하나다. 하지만 당시 호발귀의 움직임은 어떤 혈마 무공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혈마 무공이 아니다. 미지의 무공으로 두 명을 격살한 것이다.

호발귀는 본인이 직접 혈마 무공을 적어주겠다고 나섰다. 혈마 무공에 애착이 없다. 다시 말해서 본인이 펼치는 무공은 혈마 무공이 아니다.

호발귀는 새벽부터 일어나서 혈마록을 적었다. 아니, 그렸다.

올챙이 모습 하나 그리는데 일 다경이 소요될 만큼 정성을 다해서 그려나갔다.

날이 밝아오고 해가 중천에 떴다.

강에서 물새 소리가 들린다. 급하게 휘돌아가는 물살조차도 단조롭게 보인다.

세상은 평온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그때, 강 상류 쪽에서 작은 배가 나타났다.

버드나무 잎처럼 날렵하게 생긴 배는 장정들을 싣고 쏜살같이 달려내려 왔다.

“뭐야? 왜 이렇게 많아?”

귀무살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글쎄. 좀 많은데? 예상보다.”

다른 귀무살도 미간을 찌푸렸다.

작은 배에는 장정 열 명이 앉아있다.

혈천방은 중요하다 싶은 일에는 귀무살 다섯 명을 투입한다.

삼급(三級)으로 분류된 일에는 한두 명만 보낸다. 적어도 이급(二級) 이상일 때만 다섯 명을 보낸다.

지금 호발귀 곁에는 귀무살 세 명이 있다.

거기에 또 열 명을 보내? 그러면 열세 명이 되는데…… 호발귀를 압송하는 일이 일급(一級)에 해당하는 중요한 일인가? 혈마록을 이렇게 중하게 여긴 건가?

스읏! 착!

작은 배는 정확하게 귀무살이 머무는 집 앞에서 멈췄다.

휘익! 처벅! 휘익!

배에 타고 있던 귀무살이 빠르게 내렸다.

“난 삼십 일이다. 나보다 앞선 자?”

배에서 내린 자가 말했다.

강변 집에 머물러 있던 귀무살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삼십일? 삼십 일이라고 했나? 대체로 귀무살은 스물다섯이 넘어가면 교두(敎頭)로 눌러앉는다. 계속 귀무살 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거의 교두가 된다.

교두가 되어야 당주도 될 수 있고, 총관도 될 수 있다.

귀무살로 지내면 오십, 육십 회를 넘어가도 계속 귀무살이다. 살인이 좋고, 강호에서 머무는 것이 좋으면 귀무살을 택하는 것이고, 안정을 택하면 교두가 된다.

배에서 내린 자는 강호를 택했다.

이런 자는 진짜 살인자다.

“없습니다.”

강변 집에 머물던 귀무살이 즉시 일어나서 포권을 취했다.

선배에 대한 예의다.

“호발귀는?”

“안에서 혈마록을 쓰고 있습니다.”

“중지시켜. 지금 즉시 이동한다. 준비해.”

“넷!”

귀무살들이 즉시 움직였다.

귀무살은 임무 완수 횟수로 위아래를 정하지만, 신분은 평등하다. 그래서 존대를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삼십이 넘으면 존경받아 마땅하다.

나이로 보나 강호 경험으로 보나 십 살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이 따라갈 수 없는 거인이다.

‘응?’

호발귀는 한 사람을 봤다.

그는 문양이 화려한 검을 차고 있다.

키가 크고 말랐다. 하지만 마른 게 아니다. 옷을 벗겨보면 잔 근육이 전신을 뒤덮고 있다.

눈매가 날카롭고, 매부리코에 입술까지 얇아서 매우 날카롭다는 인상을 풍긴다. 실제로도 웃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한껏 웃을 때도 입술만 살짝 비트는 것이 고작이다.

저벅! 저벅!

호발귀는 그에게 걸어갔다.

강퍅한 자가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걸어오는 호발귀를 주시했다.

“오랜만이네?”

호발귀가 먼저 말했다.

“이렇게 만나는군. 그때는 참 많이 찾아다녔는데. 그런데, 우리 만난 적은 없잖아? 어떻게 날 알아보지?”

강퍅한 자가 말했다.

동패를 죽였던 자, 다섯 명 중 한 명!

이 자는 동패를 죽일 때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다. 당시, 검을 쓰는 자가 두 명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동패의 팔을 잘랐다. 동패를 산신각 안에 밀어 넣고 불을 질렀다.

이 자는 아니다.

“당신들, 만나고 싶었는데. 모두 어딨어?”

“우릴? 후후! 우린 그 사건 이후 흩어졌다. 모이고 흩어지고, 이게 귀무살이야. 지금 어디서 뭐 하는지도 몰라. 그런데, 만나서 뭐 하게? 복수라도 하게.”

“그래야지. 복수해야지.”

“하하! 그러면 잡히지를 말든가.”

그때였다. 호발귀의 얼굴빛이 아주 빨갛게 달아올랐다. 빨간 물감을 뒤집어쓴 듯 새빨개졌다.

투투투툭! 투투툭!

봉혈이 뜯겨 나갔다.

쒜에에엑!

바람 소리가 터졌다. 호발귀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붉은 그림자가 번뜩인다. 순간,

퍼억!

강퍅한 사내가 허리를 푹 꺾더니 뒤로 비틀거리면서 물러섰다.

쉬잇! 퍼억! 퍽퍽퍽!

주먹이 연이어 터졌다.

호발귀는 사내가 쓰러지지 못하게끔 오른쪽과 왼쪽을 번갈아 두들겼다.

사내의 얼굴이 곧 피투성이로 변했다.

“엇! 저놈!”

“봉혈을 풀었다!”

그때야 사태를 눈치챈 귀무살이 분분히 뛰쳐나왔다.

호발귀는 그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오직 한 명, 강퍅한 사내만 집중적으로 두들겨 팼다.

퍼억! 퍽퍽! 퍽!

사내의 얼굴 뼈가 함몰되어서 흐느적거렸다. 갈비뼈도 부러져서 물컹거렸다.

사내는 이미 의식을 잃었다.

호발귀를 막기에는 서로 간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더욱이 그는 호발귀가 봉혈된 상태인 줄 알았다. 완전히 무방비 상태에서 인간은 표현할 수 없다는 혈천도법을 당했다.

호발귀의 주먹에는 팔십일수의 수공(手功)이 곁들여져 있다.

퍼억! 퍽! 퍽!

사내의 턱이 으깨졌다.

사내는 이미 절명했다. 그러고도 용서받지 못하고, 뼈란 뼈는 모두 부서지는 중이다.

“타앗!”

호발귀가 쩌렁 고함을 지르며 주먹을 떨쳐냈다.

우르르르릉!

주먹에서 우렛소리가 울렸다.

구뢰마권이 사내의 가슴을 가격했다. 가슴뼈를 가루로 만들고, 심장과 폐를 일시에 멈춰 세웠다.

퍼억! 풍덩!

사내가 훌훌 날아가 강물 속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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