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마전인-44화 (44/500)

第九章 혈기(血氣)(4)

호발귀는 오줌 지린내처럼 퀴퀴한 냄새가 찌든 석실로 던져졌다.

쿵!

호발귀가 석실 한구석에 내동댕이쳐졌다.

귀무살은 호발귀를 짐짝처럼 취급했다.

“지금부터 몇 가지 물어보려는데, 쉽게 가든 어렵게 가든 마음대로 해. 참고로 우린 조금 어려웠으면 좋겠어.”

“크윽!”

호발귀는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쳐들었다.

칼에 두 번 맞았다. 그 상처가 아직도 입을 쩍 벌리고 있다. 한데 치료조차 해주지 않는다.

“귀무살, 몇 명이나 있는 거야?”

호발귀가 먼저 물었다.

“질문은 우리, 넌 대답. 이렇게 쉬운 말도 못 알아들으면 안 되지. 알았니?”

탁!

귀무살이 호발귀 머리를 힘껏 때렸다.

머리에서 불이 번쩍 날 정도로 강렬한 일격이다. 진기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 주먹 쥔 손으로 힘껏 가격했다.

“음!”

호발귀는 머리를 휘청이면서 신음했다.

“혈마록, 외우고 있다며?”

이들은 천살단만 알고 있는 사실을 단도직입 바로 물어왔다.

“천살단에서 머리를 한 대 맞았는데, 희한하게도 그때 한 권이 기억에서 사라졌어. 아! 오늘 한 권 또 잃어버렸나? 두 권은 잃어버린 것 같아.”

“후후! 이 세상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 수는 없는 법이지. 곧 가르쳐줄게.”

“천살단 애들도 그러던데? 마참지 시술? 그런 거 겪어봤어? 솔직히 걔들은 때리지는 않더라. 거기에 비하면 너희는 좀 약한 것 같아. 그렇지?”

“뭣!”

귀무살은 서로를 쳐다봤다.

솔직히 지금 그들은 고문을 시행하려고 했다.

혈천방 본문은 이전했지만, 옛터에는 아직도 고문실이 남아있다. 형틀도 그대로 있고, 고문 형구도 벽에 잘 걸려 있다. 알아서 쓰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어떤 고문도 마참지 시술을 능가하지는 못한다.

귀무살도 마참지 시술을 알고 있다. 귀무살 수련 과정 중에 형국지(刑鞠池)가 있다. ‘고문을 당하는 연못’인데, 그곳에서 마참지 흑살단을 일부 맛봤다.

그 결과, 열 명 중 여섯 명…… 육 할이 비밀을 토설했다.

흑살단을 온전히 복용한 것이 아니다. 백분지 일 정도에 해당하는 극소량만 복용했다. 그것도 진단이 아니라 가짜 환단, 위약(僞藥)을 복용한 결과가 그렇다.

혈천방은 흑살단을 제련하지 못한다.

흑살단이 어떤 약인지 대충 알고는 있지만, 정확하게 신경을 긁어내는 방법은 모른다.

- 마참지 시술을 당할 것 같으면 미리 죽어라.

형국지에서 얻은 교훈이다.

호발귀가 마참지 시술을 견뎌낸 것은 알고 있었다.

그곳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의문이지만, 참회동으로 끌려간 것도 안다.

호발귀를 사로잡았다는 안도감이 그 사실을 깜빡 잊게 했다. 다른 놈들처럼 짓이기면 아는 것을 술술 털어놓을 것이라는 생각에 형옥부터 오게 했다.

호발귀가 말했다.

“혈마록이라는 것, 내가 훔친 것도 아니잖아. 비자가 훔친 것을 내가 훔쳤으니 오히려 감사해야지. 안 그러면 벌써 천살단에 들어가 있을걸? 그거 줄게. 대신 두 가지.”

“두 가지? 뭐냐?”

“사부, 살아있나?”

“살아있다.”

일순, 호발귀는 숨이 턱 막혔다.

사부가 살아있었구나. 사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 그 긴 세월 동안 술 한 잔 안 마시고도 버틸 수 있구나.

“또 하나는?”

“귀무살. 도대체 몇 명이나 있는 거야? 사 년 전 귀무살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데, 당신들이 아니었어. 그 사람들에게 넘겨주면 더욱 좋고.”

“그건 우리도 모른다. 귀무살이 몇 명인지 아는 사람은 딱 한 명뿐이지. 그리고 사 년 전 귀무살이 누구를 말하는지 알겠는데, 누가 참여했는지는 모른다.”

끄덕! 끄덕!

호발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줄 알았다. 길을 오면서 등여산에게 들었던 말과 대충 일치한다.

소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사부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아주 큰 소득이다.

호발귀가 말했다.

“지필묵. 가져와. 이틀 안에 적어줄게.”

“정말이냐?”

“마음 변하기 전에 가져와. 원주인에게 다시 돌려주는 거니 당연한 거지만, 한편으로는 이걸 왜 돌려주나, 그냥 내가 가질까 하는 마음도 있거든.”

“고어는 어떻게 풀었지?”

호발귀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그건 내 일이 아니야.”

“……”

“풀이는 너희가 알아서 해. 물건 돌려주면 그것만 해도 고마워해야지 풀이까지 해달라면 되나. 아! 금창약 좀 가져와. 사람이 다쳤으면 치료부터 해줘야지.”

귀무살은 서로 의미 있는 눈짓을 주고받았다.

“혈마록은 받아내야 해.”

“내 생각에는 그거 별로 중요한 것 같지가 않아. 혈마록을 수련했다는 놈이 우리에게 잡혔잖아. 그러면 혈마 무공이란 것도 고리타분하다는 건데, 그런 걸 굳이 받아야 하나?”

“……”

모두 침묵했다.

사실, 이 부분을 이해할 수 없다.

처음 공격을 가했을 때, 호발귀는 펄펄 날았다. 날개 달린 용이라고나 할까? 다섯 명이 습격했는데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고, 두 명이나 단숨에 죽여버렸다.

그 후, 모두 은신술을 펼쳐서 대기했다.

터무니없이 강한 자와 싸울 때 취했던 전법을 쓴다.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놓고 인내 싸움을 벌인다. 먼저 조급한 쪽이 허점을 드러내도록.

그러면서 독사를 풀어놓았다.

놈은 귀무살을 찾느라 독사까지 신경 쓰지는 못한다. 거의 모든 무인이 같은 행동을 취했다.

상대가 아무리 강해도 일단 독사에게는 물린다.

귀무살은 누구와 싸웠던 싸움 기록을 남긴다. 후인에게 전해서 참고로 하게 만든다. 또 싸움 사실들을 종합해서 필승 전략을 구축할 수 있게 한다.

침묵 속에서 독사를 운용하는 암수는 매우 효과적이다. 성공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여기서부터 호발귀가 삐끗거렸다.

맹 독사에게 물렸으니 정신이 아찔하겠지만, 그래도 검을 굳건히 잡았어야 한다. 독에 중독되었다고 하소연해봤자 누가 봐주나? 더 공격하지.

혈마록을 어떻게 수련한 것인가?

호발귀에게 무공 기초가 없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혈마 무공을 수련했다면 뭔가 달라야지.

솔직히 말해서 혈마록이 욕심나지 않는다.

“이건 묵사검이야.”

귀무살 중 한 명이 호발귀의 검을 꺼내 보였다.

“검벽 검주의 검이지. 그걸 호발귀가 가지고 있어. 묵사검이 뭔지는 알지?”

다른 두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치균이 가지고 있은 검 중 가장 아끼는 검이다. 다른 검은 다 버려도 묵사검만은 버리지 않는다.

그런 검을 호발귀에게 주었다.

이 사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일단 보고하자. 그리고……”

귀무살이 말을 이어가려고 할 때, 폐허나 다름없는 혈천방에서 요란한 종소리가 울렸다.

뎅뎅뎅! 뎅뎅뎅뎅!

종소리는 순식간에 혈천방 전체로 퍼져나갔다.

“천살단이군.”

“올 줄 알고 있었잖아. 검벽 검주까지 왔으니 여기서 버티진 못해. 일단 물러서자.”

“혈천방으로는 못 가.”

“제이지(第二地)로 가지. 가면서 보고를 하고, 제이지에서 기다리는 거야.”

다른 두 사람이 동의했다.

귀무살은 호발귀를 자루에 넣고 입구를 동여맸다.

“혈마록은 다른 곳에서 쓰도록 하지. 여긴 거친 손님들이 와서 피곤해졌어.”

호발귀는 상처 때문에 힘이 없는지 축 늘어졌다. 귀무살이 하는 말에도 대꾸하지 않았다. 자루에 집어넣어도 저항하는 흉내조차 내지 않았다.

사실, 호발귀는 매우 당황했다. 너무 당황해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생기가 정체했다.

이령귀화가 생기를 잘 감싸고 있었는데, 더는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

대체로 이런 현상은 죽음 직전에 일어난다.

자연사일 경우에는 육 개월 전부터 정체되고, 비명사 같은 경우에는 절명 직전에 정체 현상을 보인다.

‘이거 왜 이러지?’

혈마록을 적어주는 것은 아무래도 좋다. 살아있어야 사부를 구하는데 숨이 끊어진다. 지금은 멀쩡해도 곧 죽는다. 흔히 기가 막히면 죽는다고 하는데, 진기가 막힌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생기가 막힌 것을 말한다.

그 생기가 막히기 일보 직전이다.

어째서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겼을까? 혈천방에 종소리가 퍼져나갈 무렵,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겼는데…… 혈마 무공도 사용하지 않았는데 왜?

호발귀가 정체된 원정 때문에 쩔쩔매고 있을 때, 원정이 스르륵 미끄러지더니 텅! 하고 울렸다.

이령귀화가 순간적으로 꿈틀거렸다. 원정이 움직인 충격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고 잠시 흔들렸다. 그리고는 다시 원정이 퉁퉁! 울리기 시작했다.

정체가 해소되었다.

일시 딱딱하게 굳는 현상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아무 일 없다는 듯 곧 다시 움직였다.

‘음!’

호발귀는 침음했다.

혈마가 원정을 왜 혈기라고 했는지 이해했다.

원래 원정은 북돋아 줄 수는 있어도 꺼내서 쓸 수는 없는 기운이다. 순수하고 맑은 우주의 결정체다. 진기처럼 힘을 축적하는 성질도 없다. 외기(外氣)를 받아들여서 새로운 기운을 만들어 내고 탁한 기운은 뱉어낸다.

원정은 흐르는 물처럼 자유자재로 변화한다.

오늘 지닌 원정이 내일이면 완전히 다른 원정으로 교체된다. 어제 기운은 외부로 토해지고, 외부에서 생성된 싱싱한 기운이 안으로 들어와 자리한다.

원정은 살아가는 기운일 뿐, 내 것이라고 할 수가 없다.

그런 것을 꺼내서 활용하면 육신에 상당한 무리가 간다. 그래서 금령공에 역천이라는 말이 붙는다. 하늘의 섭리를 거슬린 공부가 역천금령공이다.

역천금령공은 원정을 진기와 섞어서 사용하게 해준다.

그 대가는 원정 손실이다. 아주 미세하게나마 원정이 소멸한다. 물론 빈 자리는 곧 새로운 외기로 채워지지만, 생기가 사라진 흔적은 상당한 상처로 남는다.

생명이 단축된다.

원정을 혈기라고 부른 것은 내 살, 내 뼈, 내 기운을 내가 갉아먹기 때문이다.

그러면 원정을 사용하면 안 되나?

한 가지 조건만 충실히 지킨다면 사용해도 무방할 듯싶다.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엉뚱하게도 무심무실공이 역천금령공에 적용된다.

몽중몽, 상상재몽!

꿈속에서 꿈을 꾼다. 항상 꿈속에 머문다. 있는 듯 없는 듯 손속을 떨친다. 그러면 역천금령공 역시 육신에 해를 끼치지 않는 한도에서 뻗어나갈 것이다.

물론 이 방법은 순간적으로 떠오른 것일 뿐, 장진 스님이 가져다준 비급 속에는 없었다.

호발귀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모든 일을 병주기식(屏住氣息). 망기호흡(忘記呼吸)에서 시작한다. 숨을 죽인다. 호흡을 잊는다. 하지만 정신은 또렷하다. 아주 맑은 상태다.

싸움을 하더라도 이 상태에서 한다.

순간! 아주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머릿속에서 올챙이 글자들이 꾸물거리면서 움직였다. 고어가 천살단 밀마처럼 이리저리 붙기도 하고 분해되기도 하더니, 호발귀가 아는 글자로 변형되었다.

- 혈기(血氣)는 기(氣), 기체다. 정(精)이나 단(丹), 축(畜)으로 생각하지 말라. 연기처럼 자유롭게 흘러나가고, 흘러들어온다. 그러니 혈기는 원정, 내단, 단축, 내공으로 생각하는 것은 무지다. 어리석은 생각이다.

장진 스님이 건네줘서 이미 알고 있던 비급 내용이다. 이령귀화의 서문에 적혀 있던 글이다.

혈마록이 제대로 번역되고 있다.

혈마록은 고어가 아니다. 고어 형태를 빌린 밀마다. 그러니 해독하기 곤란했다.

혈마는 고어에 생기를 담았다.

혈기는 다른 의미로 ‘피와 기운을 가지고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뜻도 가진다.

살아있는 생물만 혈기를 가진다.

책은 생물이 아니다. 그러니 혈기를 담을 수 없다. 하지만 담았다. 고어에 담았다.

고어를 글자로 보면 혈기가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생명으로 대하면 스스로 움직인다. 푸르스름한 기운이 되어서 내 원정과 합일한다.

병주기식, 망기호흡!

이상하다. 원충 노인의 팔십일수가 혈마 무공을 편안하게 이끌어 준다.

호발귀는 자루 속에서 아주 편안했다.

귀무살이 그를 무척 거칠게 다루고 있지만, 몸이 이리 부딪치고 저리 부딪치는 것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심신이 날아갈 듯 상쾌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