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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37화 (37/500)

第八章 도천패(萄泉佩)(2)

‘수련에는 한계가 있어.’

등여산은 살인을 생각했다.

호발귀는 귀무살을 상대해야 한다. 그러자면 아주 강력한 살검이 필요하다. 명검 같은 것은 백 자루가 있어도 쓸모없다. 피를 부르는 살검이 있어야 한다.

현재, 호발귀는 명검 수준이다.

명검을 살검으로 바꿔야 하는데,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다. 좋지 않은 방법이어서 그렇지.

‘어떻게 할까?’

그녀는 천살단에서 날아온 전서를 만지작거려다.

전서에는 그녀가 원했던 답이 들어있다.

근처에 호령산맥(胡寧山脈)이 있다. 강하로 가는 길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큰 산이다. 그리고 호령산에는 범보다 무섭다는 산적이 있다.

그들을 벨 생각이다.

명검을 살검으로 바꾸려면 사람을 해쳐야 한다.

마인들은 수련을 마치는 최종 관문으로 사람을 해친다. 이 과정을 반드시 경험한다. 사람을 해칠 때 비로소 검에 살기가 붙는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해치면 당장 칼에 살기가 감돈다.

검을 뽑지 않아도 검에서 살기가 이글거리는 것은 사람을 해쳐봤기 때문이다.

이 말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지금 호발귀에게는 이런 과정이 필요하다.

‘이 정도 인간들이면 죽어도 싸. 어쩔 수 없지. 꼭 살검이 필요해서는 아니고…… 누군가는 토벌할 거니까. 조금 앞당겨서 토벌한 것뿐이야. 이 사람들 너무 악독했어.’

그녀는 인근에서 가장 흉악한 자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봐달라고 전서를 보냈다.

답이 왔다. 호령산에 있는 산적들이다.

숫자는 대략 서른 명 정도다.

호령산을 오가는 상인을 주로 노리며, 물건만 빼앗는 것이 아니라 목숨까지 앗아간다.

호랑이를 양 떼가 날뛰는 목장에 풀어놓는다.

“이것도 수련인가?”

“말이라고? 아주 중요한 수련이야. 솔직히 말해봐. 검으로 사람 해쳐본 적 있어?”

“……”

“그럼 검으로 사람 찔러본 적 있어?”

호발귀는 이번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한 단계 더 밑으로 내려가 볼까? 주먹으로 사람 때려본 적 있어? 어렸을 때 말고. 음! 열여덟 이후라고 할까? 그래야 제법 큰 싸움일 테니까.”

“……”

호발귀는 이번에도 답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사람을 때려본 기억이 없다.

배수 솜씨가 워낙 뛰어나서 혹여 귀찮은 일을 겪을까 봐 시비를 걸어온 사람조차 없었다.

“열여덟 이후로…… 사람도 때려보지 않았어?”

등여산이 놀란 표정으로 쳐다봤다.

호발귀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싸움을 이렇게까지 모른다면 지닌 무공을 절반도 사용하지 못한다. 그뿐만 아니라 각종 암계에 아주 쉽게 당한다.

‘아! 어쩐지……’

등여산은 호발귀에게 정심음고(停心陰蠱)를 복용시켰다.

정심고는 심장에 틀어박혀서 피를 빨아먹는다. 하지만 빨아먹는 양이 지극히 미량이라서 인체에 해롭지는 않다. 없는 것보다는 못하지만 있어도 아무런 영향이 없다.

하나 천살단에 있는 숫고를 발작시키면 음고는 기름 솥에 떨어진 벼룩처럼 길길이 날뛴다. 그러다가 심장을 뚫고 나온다. 심장이 터지는 것이다.

숫고가 발작하면 호발귀는 죽는다.

호발귀가 혈마의 무공을 온전히 이어받으면, 그를 통제할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이백 년 전처럼 중원 무림 절반 이상이 도륙된다.

그런 것을 내밀었는데, 호발귀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냉큼 삼켰다.

일단 암계에 당한 것이다.

호발귀 스스로 환단을 복용했지만, 등여산이 억지로 등을 떠민 것도 있다.

‘이 사람이 정말 살인귀가 될까? 혈마는커녕 마인 냄새도 나지 않잖아.’

등여산이 말했다.

“사람을 때려봐. 죽여봐. 검에 피를 묻혔을 때, 어떤 느낌인지 알아야 해. 그래야 귀무살을 죽일 수 있어. 단순히 무공만 높다고 죽일 수 있는 건 아냐.”

“그러지.”

호발귀가 담담하게 말했다.

“웬만하면 사람들 모일 때까지 기다리지. 그놈들 중에는 무인도 있다는데.”

두 사람이 호령산으로 들어서자 많은 사람이 막아섰다.

등여산은 무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글을 많이 읽은 부잣집 따님처럼 보인다. 하는 행동이 털털해서 까탈스러워 보이지는 않지만 귀하게 자란 모습이다.

호발귀도 무인 모습은 아니다.

무인이라면 안광도 날카로워야 하고, 몸에서도 살기가 뿜어져 나와야 한다.

무인은 딱 보면 안다.

호발귀는 무인이 아니다. 검을 차기는 했지만, 형식으로 찼다.

사람들이 막아서는 것은 당연하다. 오십 명이 모일 때까지 같이 기다렸다가 산을 넘자고 한다.

호령산을 넘을 동안 호위해 주는 무인도 생겼다.

일정한 은자를 받고 산적들로부터 보호해주는 무인들인데, 도적이 기승을 부린 만큼 숫자가 많다.

그들도 와서 가격을 제시한다.

두 사람은 모든 제안을 뿌리치고 호령산으로 들어섰다.

처음부터 작심하고 산길을 타기 시작했기 때문에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사람 죽여봤어?”

호발귀가 물었다.

“아니. 난 사람을 죽일 필요가 없었으니까.”

등여산이 당연한 거 아니냐는 듯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러면서 나한테……”

“귀무살과 싸우는 사람은 내가 아니잖아? 지려고 싸우는 것도 아닐 거고.”

“후우!”

호발귀가 긴 한숨을 토해냈다.

사람을 죽이라는 말이 못내 마뜩잖은 듯했다.

쉬잇! 쉬이이익!

산을 깊게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사방에서 바람 소리가 일어났다.

입구에서부터 지켜보다가 두 사람 들어서자 재빨리 길을 막는다.

“무슨 무공을 사용할……”

등여산이 호발귀에게 말을 하다 말고 뚝 멈췄다.

쉬이잇!

호발귀가 벌써 신형을 띄웠다.

두 발로 등자를 걷어차고 안장에 올라서는가 싶더니, 이내 왼쪽 나무 위로 달려들었다.

“엇! 이놈이!”

나무 위에 있던 자가 급히 철퇴를 휘둘렀다.

하지만, 호발귀가 훨씬 빨랐다. 어느새 손에는 묵사검이 들려있었다. 그보다 더 빠르게 검은빛 한 줄기가 나무를 가르며 지나갔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손속이다.

“크아아악!”

나무 위에 있던 자가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떨어졌다.

호발귀는 즉시 나무를 두 발로 걷어차고 다른 나무로 날아갔다. 역시 산적이 숨어있는 곳이다.

“이놈!”

산적이 거칠게 고함치며 감산도(砍山刀)를 휘둘렀다.

우르르릉!

호발귀의 손에서 우렛소리가 터졌다. 동시에 감산도를 휘두른 자가 머리를 뒤로 푹 꺾었다.

그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나무 위에서 떨어졌다.

구뢰마권이 머리를 가격했다. 단번에 머리뼈를 부숴버렸다. 머리 반쪽이 완전히 짓뭉개졌다.

호발귀는 숨소리조차 내지 않는다.

쉬잇!

그가 다음 산적을 향해 쏘아갔다.

“아!”

등여산은 당황해서 할 말을 잃어버렸다.

너무 순진해서 사람이나 때릴 수 있으려나 싶었는데, 웬걸? 가차 없이 죽이고 있다.

이 순간, 호발귀는 살인에 미친 살인귀다.

“아아!”

입에서 나오느니 탄식뿐이다.

호발귀를 잘못 봤다. 벌써 몇 번째 정정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반드시 죽여야 할 사람이 되었다가, 순한 양처럼 보였다가, 이제는 치를 떨게 만드는 살인귀로 보인다.

단지 산적을 가차 없이 죽였다고 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호발귀는 냉정하다. 사람을 죽이면서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마치 요리해 먹으려고 닭이나 오리를 죽이듯이 얼음처럼 차게 식은 마음으로 사람을 벤다.

죽이는 방법도 잔인하다.

검을 사용하건 주먹을 쓰건 다시는 살아날 수 없게끔 손을 쓴다. 일격필살(一擊必殺)이다.

괜히 우려했다. 호발귀는 살인자였다.

‘잘했어. 정심음고를 잘 줬어.’

등여산은 정심음고를 사용하게 될 것이라는 예감을 받았다.

호발귀가 발작만 하지 않으면 결코 숫고를 사용할 생각은 없다. 그래서 천살단에 보고도 하지 않았다. 혹여 이 사실을 악용할 사람이 있을까 봐 우려해서다.

백번 천번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등여산은 말에서 내려 냇가로 갔다.

얼굴이라도 씻어야겠다. 사람을 이렇게 잘못 볼 수가 있나. 살인귀를 순둥이로 봤다니. 살인하지 못해서 미쳐있는 사람한테 오히려 죽이는 수련을 해야 한다고 말했으니.

“마영!”

호발귀는 마영심도를 펼쳤다. 머리 위로 검을 들고 땅을 향해서 큰 원을 그린다. 손으로 검을 돌리지 않고, 허리를 퉁겨서 검이 나아가게 만든다.

“무정!”

무정삼절 중 이절, 사혼겁(死魂劫)을 펼쳤다.

마영심도 십육 식에서 무정삼절로 이어지려면 사혼겁을 쳐내야 한다.

“구뢰!”

구르르릉!

어김없이 왼손에서 우렛소리가 일어났다.

마영심도에서 무정삼절로, 다시 구뢰마권으로 이어지는 동안 산적 세 명이 절명했다.

호발귀는 그들을 보지 않았다.

“여기서 귀화!”

터엉!

장진 스님이 호발귀보다 한발 앞서서 귀회미요공을 펼쳤다.

호발귀는 그대로 따라서 했다. 귀화미요공을 터트리고, 바로 혈천도법을 쓴다.

퍼억! 퍽!

두 명이 일시에 나가떨어졌다.

그들의 몸에서 솟구친 피가 눈앞에 확 뿌려졌다.

“봐! 똑바로!”

장진 스님이 와락 화를 냈다.

호발귀는 쓰러진 자들을 지켜봤다. 검을 쳐낼 때는 보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죽이려고 왔다. 혈마 무공으로 겨우 산적을 죽인다. 혈마에 대한 모욕이다.

하지만 장진 스님이 기꺼이 앞장섰다. 대신, 몹시 어려운 것, 정말 하기 싫은 것을 주문했다.

죽는 자를 봐라! 죽는 자의 숨결을 느껴라!

죽는 자를 본다. 그들의 몸에서 생기가 사라지는 것을 본다. 원정이 흩어지는 모습을 본다.

이런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다.

노환으로 죽는 사람은 최소 육 개월 전부터 생기가 흩어진다. 원정이 단단함을 유지하지 못하고 슬슬 풀어진다. 천지자연의 기운이 흡수되지 않는다.

고수나 선정을 오래 한 스님은 이런 현상을 감지한다.

더는 세상의 기운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체내에 있는 기운이 세상 밖으로 흘러나갈 때, 죽음을 예감한다.

아주 예민하게 살펴보면 죽는 날짜까지도 가늠할 수 있다.

그러면 생기가 흩어지지 않게는 못하나? 못한다. 생기는 인간이 다를 수 없다.

보양(補陽)은 할 수 있다.

생기가 세상 기운을 받아들일 때 한해서, 더 활기차게 받아들이도록 유도할 수 있다.

사람이 검에 맞아 죽으면 생기가 일시에 흩어진다. 꽈리 터지듯이 생기 주머니가 팍 터진다.

숨이 떨어지는 것하고는 전혀 다른 현상이다.

장진 스님은 그 모습을 보라고 한다. 생기가 흩어지는 모습, 어떤 생기가 어떤 방식으로 빠져나가는지 관찰하라고 한다. 생기가 정말로 존재하며, 이런 모양이라는 것을 보라고 한다.

생기는 존재한다. 의심하지 마라!

호발귀는 이령귀화와 역천금령공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 생기를 의심하고 있어서다.

원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의념(意念)에 잡히지 않는다. 모양도 형체도 단지 상상 속에서만 느낄 뿐이다. 있다고 믿을 뿐이다.

장진 스님은 죽는 사람을 지켜보게 한다. 생기를 뚜렷하게 확인시켜준다.

“구뢰!”

우루루루룽!

“혈천!”

파아앙! 퍼억!

구뢰마권이 몸통을 가격했다.

가격당한 자가 멀찍이 나가떨어졌다.

묵사검이 혈천도법의 숨결을 쫓아서 흘렀다. 그리고 그 끝에 한 사내의 심장이 보였다.

검이 가슴을 뚫고 들어갔다.

“끄으으윽!”

사내가 신음을 흘리면서 쓰러졌다.

호발귀는 심장을 보지 않았다. 쏟아지는 핏물도 보지 않았다. 두 귀도 막았다. 그래서 신음도 들리지 않는다.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 역시 볼 틈이 없다.

단전, 그 안!

푸르스름한 기운이 피어난다. 푸른 기운은 점점 색깔이 연해지더니 이내 공기 중에 흩어졌다.

사내의 생기가 세상 속으로 흘러들었다.

‘이령귀화가 감싸야 할 것이 저것, 역천금령공으로 움직여야 할 것이 저것.’

호발귀는 생기를 똑똑히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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