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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35화 (35/500)

第七章 공조(共助)(5)

그녀는 마방(馬房)에서 말을 빌린 적이 없다. 말이 필요하면 천살단에서 내주었다.

“말 볼 줄 알아?”

그녀가 마방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호발귀는 대꾸 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이 자가!’

등여산은 눈꼬리를 위로 치켜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군가에 무시를 당해보기는 처음이다. 모두 자신 곁에 있으려고 온갖 아부를 떤다. 한데 이 자는 뭐가 잘났다고 대꾸도 안 해?

“말.”

호발귀가 안으로 들어서며 다짜고짜 말했다.

“두 필입죠?”

호발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좋은 놈으로 따로 빼놨습니다. 안장까지 얹어놨으니까 그냥 타고 가시면 됩니다.”

“반환은?”

“아무 데나 버리시면 저희가 알아서 데려오겠습니다.”

마방 주인이 말도 안 되는 조건으로 말을 내주었다.

아니, 아니! 이건 말이 안 돼. 언제 말을 준비했지? 말을 빌리러 올 줄 어떻게 알고? 그리고 지금 돈도 안 받잖아? 말 두 필을 공짜로 내준단 말이야?

천원주, 살단 총주, 검주…… 누구도 공짜로 말을 빌리지는 못한다.

천살단주가 직접 방문하면 혹시 모르겠다. 존경한다는 뜻에서 말을 내줄 수는 있다.

말 한 필 값이 얼마인데, 그걸 공짜로 내주나.

마방 주인이 직접 두 사람을 말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저희 마방에서 제일 좋은 말입니다.”

주인이 말을 하지 않아도 좋은 말이라는 게 한눈에 보인다. 눈이 막고, 이빨이 강건하고, 다리가 쭉 뻗었으며, 털에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이거 정말 타고 가도 돼요?”

등여산이 믿을 수 없어서 되물었다.

“네. 타고 가십쇼.”

“누가 시킨 건데요?”

이번에는 마음속에 짚이는 사람이 있어서 물어봤다.

검주 주치균이 미리 와서 말을 해놨을 수도 있다.

검주는 말을 능숙하게 잘 다루니까 가장 좋은 말을 선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냐!’

등여산은 곧 고개를 흔들었다.

호발귀가 마방에 들어서자마자 ‘말’이라고 말했다. 마치 준비해 놨다는 것을 아는 사람처럼.

이거 호발귀가 시킨 거다.

누가 호발귀 대신 움직였는지도 짐작된다. 딱따구리!

따각! 따각!

말을 몰고 필양을 빠져나왔다.

“딱따구리가 뭐야? 배수 두목?”

“하바리.”

“하바리? 제일 낮은……?”

“제일 낮다고는 할 수 없고, 배수 세계에 들어온 지 좀 되긴 했는데, 손재주가 없어서 일은 못 하는 놈. 하지만 눈썰미는 있어서 밥값은 하지.”

“그러니까 딱따구리가 날 찍었구나?”

“……”

“모래알은 뭐야?”

“다 죽인다고. 모래알까지 파헤쳐서 연관된 사람들 모두 죽인다는 협박.”

등여산이 호발귀를 쳐다봤다.

“정말 그럴 생각이었어?”

“그게 이쪽 법이야.”

“……”

등여산은 할 말을 잃었다.

배수와 연관된 자들을 모두 죽인다. 가족, 친척, 친구, 연인 모두 죽인다.

그게 법?

마인들이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이는 것과는 또 다른 아주 치밀하고 무서운 조직 법이다.

사실이 그렇다면 배수 세계의 율법이 혈천방보다 더 무섭다.

하지만 배수 조직이 탄탄하고 치밀하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반면에 배신을 밥 먹듯 한다는 소리는 들어왔다. 천하에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배수라고.

‘모래알’이라는 말에는 숨겨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냄새 좋군.”

문득, 호발귀가 말했다.

“냄새? 무슨 냄…… 아!”

등여산은 곧 고기 굽는 냄새를 맡았다. 아주 익숙한 냄새, 닭구이를 할 때 풍기는 냄새다.

“고기 한 점 얻어먹고 가지.”

호발귀가 냄새 풍기는 쪽으로 말을 몰았다.

어처구니없게도…… 닭을 굽던 사람들이 달아나 버렸다.

닭 두 마리가 모닥불에 노릇노릇 구워져 있다.

따듯한 밥도 밥그릇에 담겨 있다. 저들은 야외에 나오면서 밥그릇까지 가지고 나왔다.

채소 반찬도 있다.

호로병 두 개가 떨어져 있는데, 안에는 따뜻한 차가 담겼다.

닭을 구우러 야외에 나오면서 이제 막 끓인 차를 호로병에 담아서 나왔다.

고기 한 점 구워 먹는데 정성이 참 많이 담겼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아.”

등여산이 털썩 주저앉아서 망설임 없이 밥을 먹었다.

호발귀는 닭고기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뜯어먹었다. 미식가가 고기 맛을 음미할 때처럼 정성스럽게 먹었다.

“하오문은 공짜로 움직이지 않아. 그렇지?”

“……”

“그럼 반대로 뭘 줬다는 건데, 가진 게 없잖아. 아무것도 줄 것이 없는 사람한테 왜 이렇게 잘해줄까?”

“피를 주기로 했지.”

“뭐?”

등여산은 잘못 들었나 싶어서 되물었다.

“피.”

호발귀가 짧게 말했다.

절대로 잘못 듣지 않았다. 분명히 ‘피’라고 말했다. 누구를 죽이겠다는 뜻이다.

“누구 피?”

“장기충.”

“장기충이 누군데? 귀무살 죽이기 전에 다른 사람도 죽이려고? 살인 청부도 맡는 거야?”

“장기충은…… 하오문 강하 분타 분타주였어. 믿을 수 없는 놈인데, 이용하기는 좋아서 써먹으려고 했지. 비자에게 붙잡히기 전에. 장기충이 귀무살을 불러와야 했는데…… 내가 잡혀가는 바람에 강하 분타가 쑥대밭이 되었어.”

“아!”

등여산은 비로소 장기충이라는 이름을 기억해냈다.

호발귀가 강하 분타 이야기를 하니까 하오문 수십 명이 하루아침에 죽은 사건이 기억났다.

“그놈들 복수 해주기로 했다. 어차피 같은 놈과 싸워야 하니까. 하오문 놈들, 혈천방에는 찍소리도 못하거든. 대신 싸워준다니 얼마나 좋아.”

“내가 또 오해했네? 살인 청부 받은 줄 알았어.”

“……”

호발귀는 대꾸 없이 닭만 먹었다.

등여산은 서신을 적어서 전통에 넣었다. 그리고 자신이 앉았던 자리에 놓고, 위에 돌을 얹었다.

주치균에게 전하는 전서다.

호발귀도 전서를 받았다. 호로병 밑에 놓여 있었던 것인데, 식사가 끝난 후에 읽었다.

“하오문?”

“……”

호발귀는 아예 대꾸하지 않았다.

서신을 다 읽고는 물을 뿌려서 종이뭉치를 만들어 버렸다.

서로 공공연하게 밀마를 남기고, 밀마를 거뒀다.

호발귀는 하오문이 전해주는 소식을 듣고, 등여산은 천살단에 소식을 전한다.

“그러고 보니 요즘 장진 스님이 안 오네?”

등여산이 안장 끈을 단단히 조이며 말했다.

“……”

호발귀는 여전히 말이 없다.

호발귀가 말 등에 올라타려다 말고 잠시 멈춰 섰다. 한 발을 등자에 올린 채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잠시 이야기 좀 할까?”

호발귀가 등자에서 발을 내리며 말했다.

“정말이야?”

등여산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어차피 난 필요 없어. 솔직히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게 신기할 따름이지.”

호발귀가 무표정하게 말했다.

“사실대로 적어주는지 확인할 수 없잖아.”

“머릿속에 담긴 것을 적어주는 데는 항상 그런 의심이 따르지. 그 문제는 내가 해결해줄 수 없어. 알아서 판단해. 믿을 수 없다면 그만두고.”

호발귀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혈마록을 적어주겠단다. 지필묵을 가져오면 일 권부터 십 권까지 모두 적어주겠단다. 강하까지 가는 동안 쉴 때마다 적으면 다 적을 수 있을 거란다.

이보다 좋은 제안이 어디 있나.

호발귀가 엉터리로 적어줄 수도 있다.

그녀는 아직 혈마록을 해독해내지 못했다. 지극히 일부분만 풀어냈을 뿐이다. 혈마록 일 권을 완전히 풀이하는 데는 적어도 십 년 이상 걸릴 것 같다.

대충 예상한 기간이 그렇다.

호발귀가 십 권 모두를 적어준다고 해도 당장은 그림의 떡이다.

그래도 앞날을 위해서는 받아둬야 한다. 그리고 죽을힘을 다해서 해독해야 한다.

혈마록 고어는 땅속 깊숙이 숨겨진 보물이다.

문고리만 찾으면 활짝 열 수 있다. 고어나 밀마를 풀이하는 데는 첫 실마리가 중요하다.

‘실마리는 이미 찾았어.’

일 권에서 마영심도를 찾아낸 것처럼, 곧 다른 고어도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등여산이 말했다.

“차라리 해독한 것을 적어줄 수는 없어?”

“난 해독 못 해. 어떤 말인지도 몰라. 지렁이 같은 글자를 기억하고 있느니 적어준다는 거지. 언제 잊어버릴지도 모르고. 또 귀무살과 싸우다가 죽을 수도 있고.”

‘거짓말! 이미 풀어냈잖아!’

등여산은 눈살을 찌푸렸다.

호발귀는 혈마 무공을 수련했으면서 끝까지 혈마록을 풀어내지 못했다고 우긴다.

“그거 공짜로 적어주는 거 아니지?”

“당연.”

호발귀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는 게 뭐야?”

“전부다.”

“그렇게 말하면 막연하고. 구체적으로 말해. 뭘 원해?”

“귀무살, 나 혼자서는 상대할 수 없어. 귀무살은 살인귀들이라서 한 명이면 모를까 두 명 이상만 돼도 힘들 것 같아. 그래서 부탁한다. 귀무살을 죽이는 데 적극적으로 협조해 줬으면 해.”

등여산은 멍청해졌다.

‘뭐 이런……!’

호발귀는 쳐다보는 눈길이 매우 복잡했다.

호발귀가 말했다.

“무인, 병기, 조언. 뭐든 좋다. 도와줄 수 있는 게 있으면 전부 도움받고자 하는데.”

등여산이 물었다.

“귀무살을 죽이려고?”

“그래.”

“귀무살과 부딪쳐봤어?”

“옛날에. 동패 죽이는 모습을 봤지. 그놈들 신법도 보고. 후후! 귀신 같은 놈들이야.”

등여산은 호발귀를 빤히 쳐다봤다.

이 남자는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 모른다. 혈천방 무공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을 모른다.

귀무살 한 명 정도는 상대할 수 있다고? 이게 지금 말인가?

주치균은 귀무살 대여섯 명을 격살할 수 있다. 귀무살이 아무리 귀신 같아도 검벽 검주를 넘어서지는 못한다. 검신 구학봉의 광류비검이 장난인 줄 아나.

호발귀는 주치균을 몇 수만에 무너트렸다.

귀무살은 호발귀를 만나지 말아야 한다. 호발귀 그림자만 봐도 도주해야 한다.

물론 싸움에는 변수가 많다.

함정에 걸려들 수도 있고, 암계에 당할 수도 있다. 무공이 강하다고 반드시 이기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지.

등여산이 말했다.

“내가 뭔가는 해줄 수 있을 것 같아.”

“그거면 됐다. 혈마록은 거짓 없이 적어줄 테니 의심하지 마라.”

호발귀가 일어섰다.

“내가 비무 상대가 되어줄게.”

“……?”

“매일 한 번씩 비무해. 전력을 다하면 내가 다치니까, 살살 해줘야 해. 강하에 도착할 때쯤 되면 내가 해줄 수 있는 거 다해줬다는 걸 알게 될 거야.”

“날 수련시키겠다는 거야?”

“대신 한 가지만. 난 그쪽이 언젠가는 마성이 드러날 거라고 봐. 그쪽이 원하지 않아도 살인귀가 돼. 그래서 참회동에서 죽이려고 했던 거야.”

“그런 일 없어.”

“만약 그렇게 되면…… 내 손에 죽어줘.”

“……!”

“난 그쪽을 죽일 수 없어. 그쪽은 날 죽일 수 있지. 그러니까 아주 작심하고 칼을 맞아줘야 해. 그쪽이 살인귀로 변할 때, 내 손에 죽어달라는 말이야.”

“그럴 일 없어.”

“아니, 변해. 반드시. 옛날 혈마처럼. 만약, 내 제안 허락하지 않으면 그쪽을 수련시키기는커녕 귀무살 제물이 되게 만들 거야. 난 그럴 수 있어.”

“약속이란 것은 언제든 깰 수 있어. 날 어떻게 믿고.”

“맞아. 사람을 어떻게 믿어. 사람은 못 믿지. 그러니까 이거.”

등여산이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에는 까만 환단이 올려져 있었다.

호발귀가 환단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무엇인지 물어보지도 않고 덥석 삼켰다.

“뭔지 물어보지도 않아?”

“날 죽일 수 있는 약이겠지.”

“후회하지 않겠어?”

“염병! 혈마는 관심도 없어. 사부가 살아있으면 구하고, 왕소와 동패를 죽인 귀무살만 죽이면 돼. 간단한 걸 가지고 뭘 살인귀니 어쩌니 난리야. 가!”

호발귀가 앞장서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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