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六章 출동(出洞)(5)
스읏!
호발귀는 비틀거리면서 바닥에 떨어진 검을 주웠다.
단검이 심장을 찔렀다. 가슴을 뚫고 들어와서 밑으로 쭈욱 그어내렸다.
한 치만 바싹 다가섰어도 여지없이 심장이 뚫렸다.
다행히도 호발귀는 딱 한 치 뒤에 있었다. 사내에게는 불행이고, 그에게는 천운이다.
“여자! 여자를 놓치지 마! 지금 죽여! 네 앞날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눈 질끔 감고 죽여!”
장진스님이 다급하게 외쳤다.
“잠깐! 잠깐! 잠깐! 조용히 해봐. 저 여자, 별 위험도 안 되는 것 같은데, 왜 아까부터 죽이라고 난리야! 여자와 어린아이는 안 죽인다니까!”
호발귀가 고개를 내둘렀다.
“너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저 여자 지금 아니면 영원히 못 죽여! 알았어!”
장진 스님이 잔소리를 늘어놨다.
호발귀는 장진 스님의 잔소리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솔직히 그는 기분이 매우 좋았다. 가슴에 일격을 당했지만, 날아갈 듯이 상쾌했다.
혈천도법을 일으킨 상태였다. 비록 손으로 펼치는 무공이지만, 혈천도법의 구결을 여실히 따라갔다. 그러다가 한순간, 일지공으로 수법을 바꿨다.
사내를 팔십일수로 몰아세우고, 마지막은 구뢰마권으로 결정지었다.
생각했던 것이 실전에서 드러났다.
아홉 개 무공이 하나로 섞여서 마구잡이로 튀어나왔다. 쌍두사가 제대로 작동했다.
승부는 명확하게 갈렸다.
믿기 힘들지만, 주치균이 반수 차이로 패했다.
그런데 호발귀가 이상하다. 주치균을 곤경에 빠트리고도 승부를 결정짓지 못하고 있다. 다른 사람 같으면 벌써 달려들어서 숨을 끊었을 것이다.
‘일격을 당해서 정신 못 차리나?’
물론 호발귀도 가슴에 검을 맞았다. 하지만 멀쩡하게 서있다. 반면에 주치균은 일어서지도 못하고 있다.
누가 봐도 승부를 마무리할 순간이다.
아니, 호발귀는 마무리를 짓지 못한다.
사실, 지금 호발귀는 반미친 상태다.
싸움 중에도 계속 누군가와 중얼거렷다. 좀처럼 싸움에 집중하지 못했다.
지금도 장진 스님이라는 자와 대화 중이다.
‘기회는 지금!’
등여산은 진기를 일으켰다.
그녀는 무공을 깊이 파고들지 않았다. 어떻게 된 것이 무공은 영 시들했다. 무림에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다. 아주 많다. 주로 병법 분야에 관심이 많다.
만약 천살단에서 다른 직책을 제시했다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책사라는 직함을 주었기 때문에 수하 한 명 없는 자리라고 해도 기꺼이 응했다.
그렇다고 무공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주치균이나 천원주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당주(堂主)와는 손속을 맞댈 수 있다.
그녀는 섬서(陝西)의 패자(霸者)인 태산파(泰山派) 장문인의 여식이다.
태산파의 태산금나(泰山擒拿)는 소림금나(少林擒拿), 태극금나(太極擒拿)와 함께 무림 삼대 금나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녀가 바로 태산금나의 의발전인이다.
슈웃!
그녀는 재빨리 신형을 쏘아냈다.
호발귀를 공격하기 위해서 움직인 게 아니다. 석문을 닫으려고 철삭을 잡아당겼다.
구르르릉!
석문이 빠르게 닫혔다.
‘튀어나올 거야!’
그녀는 호발귀가 뛰쳐나올 것에 대비해서 입구를 지켰다. 순간!
탁!
눈앞에서 손가락 퉁겨지는 소리가 났다.
“앗!”
그녀는 깜짝 놀랐다.
앗차! 싶었다. 호발귀에게 귀화미요공이 있다는 것을 아주 잠깐 놓쳤다.
순간적으로 앞이 깜깜해졌다.
마술(魔術)? 사술(邪術)? 잡술(雜術)? 뭐가 되었든 간에 귀화미요공은 효과를 발휘한다.
파파팡! 파앙!
그녀는 허리띠 한쪽을 잡고 힘껏 쳐냈다.
요대(腰帶)는 연검(軟劍)이다.
남들은 태산파에 금나수만 있는 줄 알지만 뛰어난 검도 있다.
설화팔극검(雪花八極劍)!
흩날리는 눈처럼 부드럽고, 간밤에 꽁꽁 언 눈꽃처럼 아름다움 속에 날카로움을 감추었고, 여덟 가지 운용법이 얽히고설키며 서릿발을 일으킨다.
등여산이 연검으로 펼치는 설화팔극검은 아름다운 검무(劍舞)를 연상시켰다.
하지만 검날은 매서운 법!
쒜에에엑! 쎄에엑!
연검이 즉시 석실 입구를 봉쇄했다.
호발귀가 뛰쳐나오는 것을 막는다. 그와 싸울 생각은 하지 않는다. 석문이 닫힐 동안만 막으면 된다. 그런데,
츠읏!
어느새 검이 목에 닿았다.
묵사검이 금방이라도 목을 가를 듯 차갑게 얹혔다.
“아!”
그녀는 연검을 축 늘어트렸다.
호발귀가 석문을 빠져나왔다. 석굴에 갇혀 있던 맹수가 우리 밖으로 뛰쳐나왔다.
참회동을 찾을 때까지만 해도 호발귀가 맹수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맹수는커녕 위험하다는 느낌을 티끌만치도 주지 않는 무지렁이였다.
그녀가 혈마록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모습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쫓아왔다.
그런데 이게…… 뭐지?
“여자는 죽이지 않아.”
호발귀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비록 모깃소리만 하게 중얼거려서 잘 들리지 않았지만, 등여산은 똑똑히 들었다.
‘빠져나가지 못해! 검 버려!’
등여산은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려는 말을 삼켰다. 대신, 전혀 엉뚱한 말을 했다.
“스님, 호발귀에게 검을 버리라고 말해줄래요? 싸우고 싶지 않아서 하는 말이에요.”
검을 목에 댄 사람은 호발귀인데, 전혀 보이지 않는 엉뚱한 사람에게 말을 건넸다.
대답이 돌아왔다.
“아미타불! 소승은 소저를 죽이라고 권했는데, 이놈이 말을 듣지 않아서. 소저는 아주 불길해. 느낌이 좋지 않아. 소저와 얽히면 반드시 끝이 좋지 않을 것 같단 말이야.”
말을 한 사람은 호발귀다. 그가 일인이역을 한다.
‘역시!’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호발귀와 장진 스님은 정신세계가 완전히 다르다.
호발귀는 그녀에게 적의를 보이지 않았는데, 장진 스님은 강한 적의를 드러냈다.
등여산은 이번에는 호발귀에게 말했다.
“저를 죽이지는 않으실 거죠?”
“검을 버려.”
호발귀의 말투에서 적의를 읽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는 한 번 더 자극을 가했다.
“무인에게 검을 버리라는 건 예의가 아니죠. 대신 검을 거둘 게요. 싸울 생각은 없으니까.”
스륵! 착!
등여산은 연검을 버리는 대신 허리에 다시 찼다.
호발귀가 적의를 품었다면 검을 쓸 것이다. 아니면 연검을 뺐을 것이다.
그때쯤 호발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귀화미요공은 아주 지독하다. 적어도 숨 몇 번 몰아쉴 동안은 장님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녀는 호발귀 모습을 봤다.
두 눈이 맑다. 흐리멍텅하지 않다.
검을 들고 있는 모습도 꼿꼿하다. 정신이 불안한 모습은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호발귀는 그녀가 검을 거두자, 자신도 검을 내렸다.
확실히 그녀를 죽일 생각이 없다. 대신 그의 눈은 입구를 향한다. 참회동을 탈출할 생각이다.
‘안 돼! 이대로 빠져나가면……’
그녀는 처참한 살육전을 상상했다.
천살단에 피바람이 분다.
호발귀가 지금 이대로 움직이면 제일 먼저 참회동을 지키는 형당 무인이 죽을 것이다. 또 산을 내려가면서 많은 무인과 만날 것이고, 그들 모두를 가차 없이 벨 것이다.
호발귀는 매우 위험한 맹수가 되었다.
그녀가 불쑥 말했다.
“귀무살, 만나고 싶죠?”
“후후후!”
호발귀가 입구에서 눈길을 돌려 그녀를 쳐다봤다. ‘귀무살’이라는 말에 강하게 반응했다.
“그 사람들, 만나게 해줄게요. 귀무살은 찾기가 쉽지 않아요. 같은 혈천방도라고 해도 거의 못 찾죠. 강하로 가서 독림을 뒤지면 찾을 수 있을까요? 강하에 있던 혈천방은 이미 장소를 옮겼어요. 자, 동패, 왕소, 노야. 강하에서 죽은 사람들이죠? 그 사람들 복수는 어떻게 할 건데요?”
“귀무살, 찾을 수 있나!”
호발귀의 눈가에 살광이 일렁거렸다. 미친 증상과 살광을 합하면 한시도 곁에 있기 싫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누구라도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그녀는 태연히 말했다.
“그 사람들한테 안내해 줄게요. 단, 조건이 있어요. 마참지 시술은 잊는다. 어때요?”
“……”
“어때요?”
그녀가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재촉했다.
“좋아. 잊지. 안내해.”
호발귀가 완전히 투지를 누그러트렸다.
“참! 그 검, 이 사람 검인데.”
“잠시 빌린다.”
호발귀는 검을 내줄 생각이 없는 듯 했다.
등여산은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태연히 말했다.
“그러면 그렇게 갖고 다닐 거 아니죠? 검명은 묵사검이에요. 검집이 있으니까 가져가는 게 낫죠?”
등여산은 주치균에게 다가가서 허리를 굽혀 검집을 풀었다.
“호발귀를 혈천방으로 데려갈 거야.”
그녀가 속삭였다.
“이익!”
“화가 나도 참아. 단주님께 전해. 호발귀는 혈마록을 수련했어. 옛날 호발귀는 잊어. 지금은 어린 혈마야. 그러니 추격하지마. 호발귀를 혈천방에 데리고 가면 쑥대밭이 될 거야. 그때 공격해서 혈천방 잔당을 정리해. 연락 남길 테니까 멀찍이 따라와.”
“널 이대로 보낼 수는 없어.”
“걱정하지 마. 이래뵈도 천살단 책사야. 밥값은 해야지. 나, 너 믿어. 그러니 나 죽이지 마.”
“꼭 쫓아간다.”
주치균이 어금니를 꽉 깨물며 말했다.
“자, 검집요.”
그녀는 묵사검 검집을 풀어서 호발귀에게 넘겨주었다.
등여산은 참회동을 걸어 나가며 생각에 잠겼다.
장진 스님, 그 사람 뭐지?
호발귀가 태연히 스님 역할 하는 것을 보면서 퍼뜩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호발귀는 미치지 않았다!
호발귀의 증상을 보면 얼핏 이중인격이 생각난다. 한 몸에 두 사람이 들어있는 경우다.
호발귀와 장진 스님 두 사람이 한 몸에 있다.
이런 경우, 호발귀는 한 사람 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호발귀 역할을 할 때는 장진 스님을 잊어버린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또 다른 한 사람을 잊는다.
그런데 호발귀는 두 사람 모두 같이 공존한다.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호발귀 옆에는 장진 스님이 있을 것이다. 같이 대화하고, 웃고, 즐기지만 장신 스님이 자신의 분신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환상을 보는 것인데, 환상치고는 너무 뚜렷하다.
‘혹시…… 혈령(血靈)?’
등여산은 어떤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모두 생각했다. 설혹 말도 안 되는 전설 같은 말이라도.
혈마록에는 어떤 형태로든 혈마의 영기가 스며있다.
말로는 설명하기 곤란하지만 혈마 정도 되는 초고수라면 영기도 조절할 수 있다.
혈마록에 혈마 혈기가 아주 세심하게 숨겨졌다.
호발귀가 그 기운을 얻었다.
어떤 방법으로 얻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아무도 해독하지 못한 고어와 연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만 한다.
호발귀는 마참지 시술의 후유증으로 미친 것이 아니다. 혈마록을 외웠기 때문에 미친 것이다. 혈마의 혈기는 무척 강하고 독하다. 범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기운이 아니다. 고어를 외워서 혈령을 얻은 것이면 미치는 것이 당연하다.
아니, 그는 미치지도 않았다.
호발귀는 지극히 정상이다.
그가 보고 있는 장진 스님은 혈령이다. 조금 미친 말로 하면 혈마다.
어쩌면 혈마와 전혀 상관없을 수도 있다.
혈마록이 혈마 무공인 것은 확실하고, 그렇다면 혈마록에 혈기를 끌어내는 방법도 담겨 있을 것이다. 인간이 사용할 수 없는 원기가 사용된다.
무공을 전혀 모르던 자가 원기를 손대면 강한 충격 때문에 일시 정신 착란이 생길 수도 있다.
장진 스님은 호발귀 자신이 만들어 낸 자신의 혈기인지도 모른다.
호발귀는 정상이다. 미치지 않았다.
“잠시만요.”
그녀는 호발귀를 멈춰세웠다.
참회동 앞에 형당 무인이 서있다.
그녀는 무인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살며시 손을 뻗어 두 손을 잡으며 말했다.
“좀 쉬어요.”
푸욱!
그녀는 형당 무인의 마혈을 짚었다.
이것이 최선이다. 그렇지 않으면 호발귀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기에.
그녀가 말했다.
“지금부터는 빨리 갈 거예요. 부지런히 따라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