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六章 출동(出洞)(3)
주치균은 검대(劍臺)를 쳐다봤다.
검대에 검이 일곱 자루 꽂혀 있다. 모양과 크기는 각기 다르지만 하나같이 명검이다.
“고민이네.”
주치균이 손을 턱에 괴고 중얼거렸다.
그때, 방문이 열리면서 등여산이 들어섰다.
“내 이러고 있을 줄 알았어. 또 고민이야?”
등여산이 주치균을 보며 활짝 웃었다.
“하나 골라봐. 뭐가 좋을까?”
“저거.”
등여산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검은색 장검을 가리켰다.
손잡이에 흑요석 두 개가 박혀 있고, 검집 역시 검은색 가죽으로 둘러싸여 있다. 검날도 검은색이다. 묵철(墨鐵)을 사용해서 까만 윤기가 반지르르 흐른다.
명검 중 명검, 묵사검(墨斜劍)이다.
검이 너무 날카로워서 피도 묻지 않는다고 하여 비킬 사(斜)자를 사용한다.
“애 묵사검이야?”
“피가 묻지 않잖아.”
“그래도 피는 흘러.”
“어휴! 어느 검이나 피는 다 흘러. 알아서 해. 안 갈 거야?”
“같이 가려고?”
“응.”
“좀 참지? 어련히 죽인 다음에 말해줄까.”
“아니,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내 성격 알잖아. 마음 급해서 못 기다려.”
“알았다. 알았어. 가자.”
주치균이 묵사검을 집어 들었다.
“참회동 가본 적 있어?”
“아니. 처음이야. 처음 가보는 곳에서 살인이라. 썩 내키지 않아. 단주님도 좀 너무하시는 것 같아. 이런 건 좀 아랫것들 시키면 안 되나?”
“지금 한 말, 할아버지한테 일러?”
“설마.”
“……”
“너 정말이야!”
등여산이 배시시 웃었다.
이 여자, 이르고도 남는다. 저렇게 배시시 웃으면서 미주알고주알 중얼거릴 것이다.
“아! 항복! 항복. 지금 말은 취소.”
“그냥 말만으로는 안 되고, 광류비검 비사칠초(飛死七招)를 보여준다면 생각해 볼게.”
“알았어. 알았어. 보여준다. 보여줘!”
주치균이 소리를 빽 질렀다.
광류비검은 검신(劍神) 구학봉(具壑俸)의 무공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검학 중 최고봉으로 꼽힌다. 광류비검 십이 식 중에서도 비사칠초는 단연 백미다.
비사칠초가 펼쳐지면 반드시 생명이 떨어진다.
그래서 비사칠초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아니면 사용하지 못하도록 문규에 못 박아 놨다.
등여산은 그런 검학을 보여달라고 조른 것이고, 주치균은 보여준다고 답했다.
“정말 보여줄 거지? 언제?”
“오늘은 그렇고, 내일.”
“알았어. 그럼 기대하고 있을게?”
등여산이 활짝 웃었다.
저런 모습, 너무 아름답다. 꽃 만 송이가 일시에 피어나는 듯 화사하다. 보통 여자들이 잘 씻지도 않고, 다듬지도 않으면 마음도 가지 않는데, 등여산은 도무지 매력이 감춰지지 않는다. 보면 볼수록 빠져든다.
“뭐해? 안 가?”
등여산이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고 있는 주치균을 다그쳤다.
“문 열겠습니다.”
형당 소속 무인이 말했다.
“수고하세요.”
등여산이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아닙니다. 당연히 할 일입니다.”
형당 무인은 황송한 듯 급히 허리를 숙였다.
등여산은 모든 사람에게 친절히 대한다. 어려운 것을 보면 참지 못하고 도와준다.
원래 성격이 그렇다.
그래서 더 고맙다. 가식이 아니라 진심으로 대해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녀만 보면 미소 짓게 된다.
형당 무인도 활짝 웃었다.
“그 웃음, 나만 보면 안 되나?”
“무슨 소리야?”
“아니, 그냥 해본 말.”
“이상한 말 하지 마. 분위기 어색해져.”
“후후!”
주치균은 쓴웃음을 흘렸다.
등여산 같은 여자가 말 속에 포함된 뜻을 모를 리 없다. 늘 그렇듯이 거리를 둘 뿐이다.
등여산은 주치균을 사내로 보지 않는다. 오직 벗이다. 많은 여인이 얼굴 한 번 보겠다고 달려드는 사내를 앞에 두고도 친구 이상의 거리를 주지 않는다.
그래도 주치균은 마음을 접지 않았다.
계속 등여산을 지켜보고, 아끼고, 보살핀다.
등여산을 아니 구애도 하지 않는다. 그녀가 친구로 생각하니, 친구로 옆에 있는다.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게 해준다.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힘껏 도와주고. 그러다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다가…… 혹여 눈길이 돌아오면 그때에나 구애해볼까?
“연다?”
등여산이 쇠고리를 잡으면서 말했다.
“네가 열려고? 넌 어떻게 여자가 얌전하지 못하게. 그런 게 있으면 힘없는 척하면서 물러서 있어야지.”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그르릉!
등여산이 쇠고리를 잡아당기자 철문이 열렸다.
참회동은 동굴 깊은 곳에 있다.
형당 무인이 지키고 있는 입구에서부터 무려 오십 장으로 안으로 들어간다.
중간에는 방금 연 것과 똑같은 철문이 스무 개나 설치되어 있다.
밖에서만 열 수 있고, 안에서는 절대로 열 수 없는 완벽한 차단 장치다.
참회동에 갇히면 빠져나오지 못한다.
참회동을 지키는 무인은 한 명이지만, 천 명이 지키고 있는 것보다 탄탄하다.
그르르릉!
철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응? 누구지? 누가 오기로 했어?”
호발귀가 장진 스님에게 물었다.
“밥 주러 오는 건 아냐. 그럼 뭘까? 널 풀어주려고? 풀어줄 만한 일이 생겼나?”
“풋! 어림없는 소리. 여기에 혈마록이 담겨있잖아. 절대로 안 풀어줘.”
호발귀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톡톡 쳤다.
“그럼 널 구슬리려고 오나 보지.”
“설마 이걸 열지는 않겠지?”
호발귀가 석문을 가리켰다.
석문이 열리면 곤란해진다. 복부와 어깨에 박힌 강침을 뽑아버렸지 않나. 석문이 열리면 단박에 들킨다.
봉혈폐맥을 푼 것도 발각된다.
한쪽 구석에 틀어박혀서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으면 혹여 속일 수 있겠다 싶은 생각도 든다. 어림없는 소리다. 봉혈폐맥을 푼 것은 낯빛만 봐도 안다.
“내 생각에는 석문도 열 것 같은데?”
장진 스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싸우는 수밖에 없네. 아직은 아닌데. 조금만 시간을 더 줄 순 없나?”
호발귀가 미간을 찌푸렸다.
호발귀는 무공 수련을 한다고 했지만, 효과적으로 하지 못했다.
진기를 마음껏 사용해 본 것도 아니고 병기를 쓴 적도 없다. 언제 검이나 칼을 잡아봤겠나. 도법과 검법을 수련했지만, 맨손으로 초식만 그려본 정도다.
실전 경험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수련을 해보지 않았다.
석문이 열린다고 생각하니 걱정부터 덜컥 치민다.
“그래도 다행이다. 그나마 쓸 수 있는 게 있잖아.”
장진 스님은 걱정도 되지 않는지 매우 편안해 보이는 표정으로 말했다.
“쓸 수 있는 거?”
“너 갑자기 왜 이래? 쫄았어? 상황이 급해지니 아예 머리가 돌아가질 않네. 너 손으로 할 수 있는 거 없어?”
‘팔십일수! 구뢰마권!’
손으로 펼칠 수 있는 무공이 많다.
살천광마는 구뢰마권으로 도검을 가진 무인과 싸웠다. 그들 모두 저승으로 보냈다.
‘좋아!’
호발귀는 호승심이 바짝 일어났다.
다른 것은 몰라도 팔십일수와 구뢰마권이라면 자신 있다.
자신 있는 무기가 생기자 마음도 침착해졌다.
신수행도(身雖行道), 심도불행(心道不行)!
몸은 움직여도 마음은 움직이지 않는다. 길을 걷지만, 마음은 걷지 않는다. 몸은 싸워도 마음은 싸우지 않는다. 불같은 분노, 투지가 필요할 때도 있지만 팔십일수는 적정을 원한다. 오로지 적정 상태에서 싸운다.
스읏!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그러자 미처 듣지 못했던 소리가 들렸다.
차랑! 차랑! 차라랑!
‘맑다!’
소리가 무척 맑다. 쇠가 소리를 낸다. 검음(劍音)이 흘러나온다. 검명(劍鳴)이 토해진다.
‘명검이다!’
호발귀는 검을 알아봤다.
이런 검을 지닌 자는 내력도 심상치 않을 것이다. 평범한 무인이 아니라 상당한 고수다.
‘내가 상대할 수 있을까?’
그는 고개를 들고 장진 스님을 쳐다봤다.
장진 스님은 싸움은 자신 일이 아니라는 듯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선정에 들었다.
저 사람은 자신이 죽어도 저런 모습일 것이다.
‘친구라는 게!’
호발귀는 눈을 흘기며 다시 정신을 모았다.
츄웃!
살기가 전해져온다. 살기를 느끼자 등줄기에서 찬바람이 일어난다. 머리끝이 쭈뼛 곤두선다.
‘굉장한 살기!’
호발귀는 이토록 지독한 살기를 접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있었다. 기억을 되새겨보니 예전에 이런 살기를 맛봤다. 귀무살이 산신묘에서 동패를 죽일 때.
살기는 상대에 따라서 다르게 느껴진다.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진하게 느껴진다. 힘없는 자가 드러낸 살기는 아무리 짙어도 위협이 되지 않는다. 하늘을 찢을 듯한 원한을 실어 보내도 상대방은 겨우 고양이가 성내는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다가오는 자는 강하다.
그의 기운에 잠식당했다. 그래서 살기가 더 짙게 느껴진다.
이런 현상은 매우 당연하다. 그는 진기를 운용하고 있지만, 호발귀는 전혀 쓰지 않고 있다. 아직은 석문을 열지 않을 수도 있어서 최대한 기운을 억제한다.
‘살기가 상당히 진한데…… 원한이 아니야. 이건 진짜 살기야. 날 죽이러 오는 거야.’
호발귀를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왜 갑자기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해 봤다.
사 년 동안이나 참회동에 가둬놓았던 자를 갑자기 죽여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머릿속에 혈마록을 담고 있는데, 그것조차 필요 없다는 말이잖나.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철컥!
자물쇠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틀렸다. 살기를 품은 자가 석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다.
아직 검을 뽑지는 않았지만, 석실로 들어서기 무섭게 검을 휘두를 것이다.
호발귀는 한쪽 구석에서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쭈그려 앉았다.
최대한 몸을 숙인다.
만일에 대비해서 준비도 했다. 언제든 몸을 튕겨낼 수 있도록 이령귀화를 은은하게 피워냈다.
이령귀화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경맥에 숨어서 은은히 흐른다. 생기와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드러나는 기운이 없다. 밖으로 표출되는 역천금령공과는 성질이 완전히 다르다.
물론 이령귀화도 너무 진하게 피워내면 발각될 우려가 크다.
생기가 요동치면 활력이 된다. 누가 봐도 기운 넘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드륵!
석문이 열렸다.
후욱!
제일 먼저 횃불이 확! 밀려들었다.
호발귀는 무릎 사이로 얼굴을 파묻었다. 너무 오랜만에 빛을 봐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호발귀냐?”
사내가 물었다.
호발귀는 대답하지 않고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서 사내를 봤다.
아니, 보지 못했다. 보려고 했는데, 눈을 뜰 수가 없다. 횃불이 너무 밝아서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다.
“너무 억울하게 생각하진 마라. 혈마록과 엮어서 잘 된 놈을 본 적이 없으니까.”
스릉!
사내가 검을 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