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六章 출동(出洞)(2)
“무정삼절은 어디에 좋을까?”
호발귀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합공 대응.”
장진 스님이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툭 말했다.
“합공 대응? 하! 그게 좋겠네. 무정삼절로 합공을 상대한다.”
호발귀는 양손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이령귀화는 음기와 양기가 구분되어서 움직인다.
한 뿌리에서 꽃 두 송이가 피었다. 각각의 꽃이 전혀 다르게 움직일 수 있다. 왼쪽 꽃이 햇볕을 쫓는다고 오른쪽 꽃까지 따라가지는 않는다.
이령귀화 속에는 양의심공(兩儀心功)이 포함된다.
무림에서는 양의심공만 해도 매우 고절한 절기로 여긴다. 양의심공을 깨달은 고수도 몇 명 없다. 한데 이령귀화를 알면 양의심공은 저절로 따라온다.
뿌리가 몸이고, 꽃이 손이다.
몸도 하나, 머리도 하나, 하지만 생각은 둘이다. 손 두 개가 각기 다른 무공을 펼쳐낸다.
“무정삼절은 사용하는 병기에 따라서 전혀 다른 무공이 되니까, 양손에 검과 창을 잡고 같은 초식을 펼치면 다른 무공처럼 보인다? 이거 좋은데.”
“그럼 네 주 병기는 뭐로 할건데?”
장진스님이 물어왔다.
“검.”
“검도 없잖아?”
“구해야지.”
“구해? 아미타불! 넌 아직 멀었다. 무검(無劍)이 유검(有劍)을 이긴다는 말도 몰라? 병기가 뭐냐고 물으면 멋있게, ‘난 필요 없어. 이 두 손이면 돼!’하고 말해야지. 넌 멋을 몰라. 무정삼절 제일식(第一式)은 멸천겁(滅千劫)이야. 알지?”
호발귀는 멸천겁을 떠올렸다.
장진 스님이 해주는 말은 새로운 게 아니다. 이미 읽으라고 가져다 준 비급에서 봤던 말들이다. 다만, 조금 쉽게, 이해하기 편하게, 한번 말해도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해준다.
“침을 뽑아내니까 좋지? 손발을 움직일 수 있잖아.”
“진기를 써도 될 것 같은데?”
“아직 일러. 밖에 들킬 일 있어? 무의식 중에 초식이 흘러나올 정도는 되어야 돼. 이제 겨우 일 년 수련한 것 가지고, 뭐 뽐낼 거나 있어?”
“아무리 그래도 너무 기 죽인다.”
호발귀는 빈손으로 검초를 수련했다.
이령귀화나 역천금령공을 일으키지 않고 무공을 전개하지는 못한다. 어떤 무공이나 기본 진기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진기를 사용하기는 한다.
다만 일성(一成), 딱 일성만 쓴다.
일성에서 조금만 높여도 손에서 바람소리가 일어난다. 파공음이 석벽을 울린다.
참회동을 기웃거리는 사람은 없다. 마음 놓고 손발을 놀려도 된다.
조급할 필요는 없다. 남는 게 시간이다. 밥 먹고 할 일이 없는 곳이다.
스으읏!
손으로 멸철겁을 그려냈다.
양손으로 똑같은 모습을 그렸다.
소요문은 한때 강성했지만, 후계자 다툼 끝에 몰락한 문파다.
당시, 소요문을 강성한 문파로 만들어 준 검법이 소요청명검법(逍遙靑冥劍法)이다.
소요귀명검법은 소요청명검법과 같은 검법이다.
다만, 같은 검법을 오직 살상 목적으로만 사용하면 어떤 검이 되는지 보여준다.
확인히 다른 검이 된다.
하지만 두 검법 모두 검법 전체를 관통하는 요결은 같다.
온유하면서 면면(綿綿)한 진기로 차분히 검초를 이어간다.
단숨에 승부를 내는 파격적인 검초는 없다. 그래서 공격보다는 수비에 치중한다.
천천히 검초를 풀어가면서, 상대를 자신의 검으로 빨아들인다.
그러다 보면 상대 스스로 ‘아! 걸렸구나! 졌다!’라는 느낌이 들게 된다.
청명검법과 귀명검법은 모두 소요신공(逍遙神功)으로 펼쳐야 제 위력이 드러난다.
호발귀는 소요신공을 모른다.
장진 스님이 준 비급에도 소요신공이라는 글자는 청명검법을 설명할 때만 나온다.
그래도 귀명검법을 펼칠 수 있다.
역천금령공을 귀명검법에 실으면 강맹함과 온유함이 고루 섞인 특이한 검초가 형성된다. 청명검법도 귀명검법도 아닌 역천검법이 탄생한다.
역천금령공은 소요신공처럼 검을 끝까지 잡아준다. 반나절 동안 검초를 이어가도 끊김 없이 이어준다. 부드럽기만 한 검이 아니라 때로는 강맹하게 몰아치기도 한다.
“어때? 편하지?”
장진 스님이 말했다.
“소요신공도 이런가? 이 검법은 상당히 편안한데?”
“소요문이 원래 도문(道門)이니까. 소요검법처럼 온유하게 살아야 하는데, 도사라는 놈들이 후계자 다툼이나 하니 망하지. 잘 망한 거야.”
“미향암도 문 닫지 않았어? 넌 아예 여기서 살잖아.”
“넌 기껏 도와주니까 배은망덕하게!”
“아미타불!”
호발귀는 장진 스님을 대신해서 불호를 외웠다. 활짝 웃으면서.
츠으읏! 촤앗!
혈천도법이 전개된다.
혈천도법의 무리는 매우 간단하다. 진기 흐름을 평소보다 서너 배 이상 빠르게 휘돌린다.
진기가 팽이 돌아가듯 팽팽 돌아간다.
한데 이렇게 진기를 빨리 돌리면 혈관에 압박이 가해진다. 핏줄이 부풀어 오르고, 피의 흐름도 굉장히 빨라진다. 심장이 압박을 이기지 못할 정도로 빨라진다.
당장 피부에 변화가 일어난다.
살갗, 얼굴, 몸 전체가 새빨갛게 변한다.
온몸이 피로 물든 듯 새빨갛게 변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붉다’라는 정도가 아니라 ‘핏물이 뚝뚝 떨어진다’라고 생각될 만큼 새빨갛다.
혈천도법을 일으킨 채 걸어가면 붉은 귀신이 스르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스읏! 스읏! 스읏!
그는 혈천도법을 펼치면서 좁은 석실을 왔다 갔다 거닐었다.
혈천도법은 수련하는 것 자체가 강맹한 운공이 된다.
진기가 도법의 빠름을 따라가 줘야 한다. 심장이 피의 압박을 견뎌내야 한다.
‘가만! 어차피 손놀림이잖아? 병기를 쓰는 것도 아니고. 그럼 팔십일수를 혈천도법처럼 빠르게 쓰면?’
슈웃!
문득, 생각난 것이 있어도 혈천도법 방식으로 원충노인의 팔십일수를 써봤다.
허공에 붉은 기운이 번뜩였다가 사라졌다.
너무 빨라서 손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붉은 그림자, 붉은 환영만 번뜩인다.
혈천도법은 무리만 존재했던 무공이다.
‘이런 식으로 수련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라는 막연한 추측만 난무했다.
하지만 수련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죽을 힘을 다해서 달리기를 하면 피가 급격히 뛴다. 무척 빨리 뛴다. 하지만 두 배까지는 어림도 없다. 피가 도는 속도는 가만히 앉아있는 사람보다 조금 더 빠를 뿐이다.
그 정도만 해도 심장이 벌컥거린다.
하물며 피가 빨리 돌아서 혈색에 변화까지 일으키는 것은 무척 어렵다. 죽을 힘을 다해서 뛰는 것도 아니고, 손발을 움직여서 만들어 내야 하는 변화이기 때문에 더욱 힘들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피를 두 배 이상 빨리 돌릴 만한 움직임을 일으키지 못한다.
그래서 추상적인 무리만 존재했던 무공이라고 말한 것이다.
하지만 혈천도법이 탄생했다.
역천금령공을 바탕으로 혈천도법을 펼치면 피가 급격하게 뛴다.
‘이거 정말 좋은데? 이걸 이용해서 배수를 하면 그야말로 신의 손이 되겠어. 너무 빨라서 눈에 보이지 않잖아. 아! 안 된다! 이것 때문에 안 돼!’
혈천도법을 운용하면 붉은 그림자가 흐른다.
손은 안 보여도 붉은 빛이 눈앞에서 어른거린다. 결국은 눈에 띄게 된다.
슈웃! 슛! 슛! 슈우웃!
혈천도법을 운용한 팔십일수가 현란하게 흘러나왔다.
이령귀화 바로 밑으로 귀화미요공(鬼火迷擾功)이 뒤따른다.
장진 스님이 알려준 무공 중에서 이령귀화와 성질에 비슷한 공부가 귀화미요공이다.
귀화는 손끝으로 일으키는 불꽃이다.
양기를 엄지에, 음기를 중지에 모으고 양손가락을 튀기면 불꽃이 튀겨진다.
한데 불꽃 생각이 암흑이다.
엄밀히 말하면 불꽃이 아니라 검은 연기가 피어난다고 보는 편이 맞다.
순간, 상대는 아주 잠깐 동안이지만 시력을 잃는다. 일순, 세상이 캄캄해진다. 옆에서 칼이 들어와도 모르게 된다. 감각조차도 마비된 것이다.
이것이 귀화미요공이다.
원래 귀화미요공은 사술이었다.
손에 수투를 끼고, 손가락에 화약와 인을 묻혀서 불꽃을 일으키는 조잡한 속임수였다. 잠깐 불꽃에 한눈을 파는 사이, 슬쩍 주머니를 낚아채거나 칼로 찌른다.
이런 속임수는 지금도 하오문 잡배들이 사용하고 있다.
이령귀화는 귀화미요공을 절정무공으로 둔갑시켰다.
살천광마(殺天狂魔)라는 자가 있었다.
“일일불살(一日不殺)이면, 토혈일확(吐血一鑊)이다!”
그가 늘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다.
하루라도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억울해서 피를 한 솥이나 토해낸다.
그가 늘 중얼거렸다는 한마디만 들으면 살천광마에 대해서 다 안 것이다.
구뢰마권(九雷魔拳)은 살천광마의 무공이다.
살천광마는 세상을 거침없이 누볐다.
그를 저지하고자 수많은 영웅호걸이 나섰지만, 늘 참담한 죽음만 돌아왔다.
살천광마는 너무 강했다.
그가 완전히 미쳐서 자신의 천령개를 내리치지 않았다면 과연 누가 막았을지 의문이다.
권법을 전개하면 주먹에서 우룃소리가 일어난다. 뇌성벽력이 몰아친다. 권법을 전개할 때 일어나는 파공음만으로도 상대방을 충분히 기죽인다.
구뢰마권에 적중당하면 즉사한다.
어디를 맞아도 즉사한다. 몸통을 맞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팔을 맞아도 뼈가 가루가 되어서 흩어진다. 자신의 뼈에 장기가 상해서 죽는 일이 벌어진다.
구뢰마권은 천력을 지녀야만 펼칠 수 있다.
역천금령공은 구뢰마권을 펼칠 수 있게 해준다.
주먹에 살짝만 진력을 깃들여도 우르르릉! 하고 우렛소리가 울린다. 공기가 흔들린다.
이럴 때면 전력을 다해서 구뢰마권을 펼쳐보고 싶다는 유혹을 느낀다. 구뢰마권으로 석벽을 두들기면 어떨까 싶다. 석벽이 무너질까, 주먹이 다칠까.
‘빠르기는 혈천, 파괴력은 구뢰. 은밀함은 마영, 잔잔하기는 소요. 변화로는 삼절, 빠른 죽음에는 귀화.’
무공 종류로 따지면 팔십일수까지 아홉 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다. 혈천도법이 따로 있고, 구뢰마권이 따로 운용되는 게 아니다. 순식간에 혈천도법을 펼쳤다가, 구뢰마권을 전개한다. 또 마영심도로 변화하기도 한다.
모든 무공이 종합적으로 어울려야 한다.
혈천도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펼쳐본 다음에 소요귀명검법을 펼치는 것이 아니다.
매 순간, 순간순간마다 모든 무공이 섞여서 나온다.
호발귀는 장진스님이 왜 무공비급을 여덟 권이나 줬는지 이제야 이해했다.
사실,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내공심법 하나, 무공 하나면 된다고 봤다. 그것만 꾸준히 수련해도 싸울 수 있다고 여겼다.
물론 그런 방법도 있다.
무인들 대다수가 그런 방법을 선호한다.
소림사나 무당파 같은 대문파에 입문한 문인은 상당히 많은 무공을 접하게 된다. 하지만 그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자신만의 절기로 삼아 평생 수련한다.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으로 알려져 왔다.
장진 스님은 의견이 다르다. 그가 준 여덟 권을 총체적으로 버무려야 한다.
여덟 가지 무공이 하나다.
수련은 여덟 가지 무공을 하되, 실전에서는 모두 고루 섞어서 사용한다.
그렇게 될 때까지 수련하는 거다.
웃긴 것은, 그 속에 원충노인의 팔십일수도 녹아버렸다는 것이다.
팔십일수가 섞였다면 다른 무공도 섞일 수 있다. 천 가지, 만 가지가 되더라도 모두 섞인다. 어느 하나를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섞여서 표출된다.
호발귀는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 신수행도(身雖行道), 심도불행(心道不行), 내무소득(內無所得), 외무소구(外無所求)……
몸은 비록 나아가지만, 마음은 움직이지 않는다. 안으로 얻지 말고, 밖으로 구하지 말라.
무심무실공의 구결이다.
무심무실공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데는 천하제일이다.
마음이 명경지수(明鏡止水)처럼 맑아진다. 티 한 점 없는 거울이 된다.
예전에…… 하루라는 짧은 시간에 비급 열 권을 외웠다.
글도 아닌 지렁이 글자, 고어를 말도 안 되는 시간에 외우고는 사뭇 뿌듯해 했다.
내 기억력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그게 과연 타고난 기억력 때문일까? 훗! 아니다. 사부가 가르쳐준 무심무실공이 작용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활 속에 녹아들어가 있었다.
모든 게 그와 같아야 한다.
장진 스님이 준 무공도 잊어버려야 한다. 모든 게 잊혀질 때, 모든 게 하나가 되어서 살아난다.
‘그러나저러나 그 글자들은 어떻게 하지? 누군가는 풀이할 사람이 있을 텐데. 천살단 등여산이 읽을 수 있다고 한 것 같은데…… 혈마 무공은 어떤 것인지 궁금해지네. 후후!’
호발귀는 빙긋이 웃었다.
이제는 차분히 혈마 무공을 생각할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