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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26화 (26/500)

第六章 출동(出洞)(1)

스읏!

휘장을 들추고 사내가 들어섰다.

큰 키, 강인하고 날렵한 몸, 뚜렷한 이목구비, 여인처럼 맑은 피부, 자신 있는 행동…… 지나가는 사람이 한 번씩은 되돌아볼 정도로 빼어난 미남자다.

“내 이럴 줄 알았어.”

사내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허리에 손을 얹고 주위를 돌아왔다.

방은 지저분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사방에 종이 뭉치들이 널려 있어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어? 왔어?”

종이 뭉치 틈에서 여인이 고개를 쳐들었다.

서글서글하고 큰 눈, 흑요석처럼 까만 눈동자, 오뚝한 코, 붉은 입술, 백옥처럼 맑은 피부.

여인은 결점이 없어 보인다.

매우 아름다워서 눈을 떼기가 힘들다. 얼굴을 보고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한 가지, 여인은 매우 털털하다.

발 디딜 틈도 없이 지저분하고, 먼지도 가득 쌓인 곳에 앉아있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 머리도 며칠 동안 감지 않은 듯 헝클어져 있고, 옷도 마구 구겨져 있다.

“넌 어떻게 된 게! 이게 뭐냐, 이게! 방 좀 치워놓고 살지.”

사내가 눈살을 찡그리며 방안에 들어섰다.

여인은 돌바닥에 철퍼덕 앉아있었다. 신발을 신고 다니는 바닥인데, 개의치 않는다.

사내가 들어섰는데도 여인은 일어서지 않았다. 사내를 흘깃 쳐다봤을 뿐, 들고 있던 종이로 다시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 뚫어지게 종이를 쳐다봤다.

“너 오늘 씻기는 했냐?”

여인은 대꾸도 하지 않는다. 대신 앉으라고 손으로 탁자를 가리켰다.

“이거 뭐야? 너 밥도 안 먹었잖아?”

사내가 탁자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탁자에는 식은 밥과 반찬들이 손도 안 댄 채 놓여 있었다.

여인은 밥은 잡곡으로 하며, 일식삼찬(一食三饌)을 원칙으로 한다. 잔칫날도 예외가 아니다. 어떤 날이라도 반찬은 딱 세 가지만 놓여야 한다.

“야! 밥이나 먹고……”

“쉿!”

여인이 방해되는지 손을 들어서 말을 제지했다.

하지만 사내도 여인에게 눌리지 않았다.

“야! 이럴 거면 뭐하러 불렀어! 나 그냥 간다!”

사내가 벌떡 일어섰다.

“좀생이.”

“뭣!”

“뭘 그런 것 가지고 벌떡벌떡 화를 내고 그래? 사내가 진득하고 묵직한 맛이 있어야지.”

“하! 너……”

사내는 말을 잇지 못했다.

여인이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들고 있던 종이를 사내 코 앞에 불쑥 들이밀었다.

“봐.”

“하여간 넌…… 못 말린다니까.”

사내가 싫지 않은 표정으로 종이를 받아들고 읽었다. 하지만 곧 그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이건!”

“마영심도(魔影心刀). 맞지?”

“음!”

사내가 침중한 눈으로 여인을 쳐다봤다.

“이게 나온 거야?”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재빨리 말을 이었다.

“구결을 자세히 살펴봐. 우리가 알고 있는 마영심도와 조금 달라. 이게 원본인 것 같아.”

사내는 뚫어지게 글을 쳐다봤다.

“그러네. 아주 미세하게 달라. 마영심도는 맞는데…… 이건 단순한 초식인데? 내공이 뒷받침되지 않았잖아? 빠진 부분이 너무 많아서 속단할 수는 없겠네.”

“이거, 혈마 무공이야.”

여인이 종이 뭉치 한 묶음을 탁자 위에 올려놨다.

사내는 일순 말을 잃었다. 무거운 눈으로 종이뭉치를 쳐다볼 뿐, 입을 열지 못했다.

여인이 말했다.

“이제는 단주님께 말해야겠어.”

* * *

형당주가 천원주의 집무실에 도착했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집무실 앞에 서 있던 호위 무인이 옆으로 물러서며 문을 밀쳐주었다.

형당주가 집무실로 들어섰다.

안에는 천원주 외에도 이미 다섯 사람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마공관주와 사전(四殿) 전주(殿主)까지? 대체 무슨 일이기에?’

형당주는 침착하게 걸어갔다.

“제가 늦었습니다.”

“아뇨. 맞게 오셨어요. 이분들이 빨리 오신 거지. 앉으세요.”

천원주가 자리를 권했다.

형당주가 자리에 앉으며 마공관주를 힐끔 쳐다봤다.

두 사람은 눈빛으로 짧게 인사했다.

형당주와 마공관주는 마공비급을 같이 관리하기 때문에 자주 만나는 사이다. 하지만 사전 전주는 굉장히 중요한 회합이 아니면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일이 원래 정보 관련 일들이기 때문이다.

형당주가 자리에 앉자, 천원주가 말했다.

“오늘 호발귀와 조금이라도 연관있는 분들은 모두 오시라고 했어요. 우선 형당주님, 호발귀가 어떤 상태인지 소상히 말해주세요.”

“네, 호발귀는 현재 미친 상태입니다. 환영 속에 틀어박혀서 세상과 담을 쌓았습니다.”

형당주가 즉시 대답했다.

호발귀를 참회동에 가둔지 벌써 사년 째다. 처음에는 관심을 가졌지만, 근래 일 년 안짝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솔직히 호발귀가 갇혀있다는 사실도 잊었다.

그랬는데…… 회합이 있기 전에 호발귀에 대해서 자세히 파악해 보라는 지시가 있었다.

느닷없이 떨어진 지시다.

대체로 이런 급작스런 지시는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을 때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형당주는 즉시 참회동을 찾아갔고, 호발귀의 상태를 직접 관찰했다.

그 결과, 미쳤다는 결론을 내렸다. 예전에도 같은 판단을 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런 상태라면 굳이 참회동에 가둘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호발귀 옆에 스님이 있다고 했나요?”

“장진 스님이라고 합니다. 호발귀가 상상 속에서 만들어 낸 인물입니다.”

“호발귀가 그 스님하고 무슨 말을 주고받죠?”

“뭐라고 하기는 하는데 워낙 소리가 작아서 듣지 못했습니다. 천시지청술을 펼쳤는데도 듣지 못했습니다. 하루 중 절반 이상을 이야기하고 있죠. 삼 년 전만 해도 대화를 하는 게 뜸했는데, 요즘은 온종일 중얼거립니다.”

“마참지 시술의 후유증이 맞나요?”

“네. 확실합니다.”

형당주가 자신 있게 말했다.

“아뇨, 약전주(藥殿主)님께 여쭌 거에요. 마참지 시술 후유증이 맞아요?”

“맞습니다.”

약전주가 대답했다.

그도 이번에 지시를 받고 참회동에 가서 호발귀 상태를 살폈다.

진맥할 필요도 없다. 한눈에 봐도 미쳤다는 것을 알겠다.

“이상한 점은 없었나요? 가령 일부러 미친 척한다거나. 물론 확실히 보셨겠지만, 티끌만큼이라도 미심쩍은 부분은 없었는지. 아주 조금이라도요.”

“없었습니다.”

약전주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천원주는 이번에는 비보전주에게 물었다.

“혈마록을 잃어버린 후에 혈천방에서 아무 움직임도 없었나요?”

“웬걸요. 사 년 전에는 발칵 뒤집혔죠. 귀무살 놈들, 하오문 강하 분타를 몰살시켜 버렸으니까요. 지금도 혈마록을 찾기 위해서 전 중원을 뒤지고 있습니다.”

비보전 전주가 말했다.

그는 정보 수집을 관장한다. 전서구를 비롯한 연락 도구부터 십육비자까지 모두 담당한다.

“그 덕분에 세작들을 많이 찾아냈습니다. 놈들이 호발귀를 찾는데 눈이 뒤집혀서 조금만 의심스러워도 나대는 통에.”

세작전(細作殿) 전주가 말했다.

혈천방과 천살단은 중원 무림에 세작을 펼쳐놓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일반인이다. 농부, 어부, 광부 등 다양한 직종에 퍼져있고, 아낙도 상당수다. 세작전 전주가 관할하는 세작만 무려 삼만여 명에 이른다.

혈천방도 중원 무림에 세작을 심어놓고 있다. 하지만 이번 호발귀 사건 때문에 노출된 자들이 많다. 신분 은폐보다는 호발귀를 찾는 것에 더 비중을 많이 둔 까닭이다.

천원주의 눈길이 호발귀와는 아무 관계도 없을 것 같은 마공관주에게 돌아왔다.

“마공관에서 혈천방 육공(六功) 중 마영심도를 주셔야겠어요.”

“마영심도 말씀입니까?”

“네. 마영심도에 관한 게 얼마나 있죠?”

“마영심도는 총 십칠 식인데, 저희가 수집한 것은 오식입니다. 그나마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가져다 주세요.”

“지금 가져옵니까?”

“네.”

마공관주가 형당주를 쳐다봤다.

마공관에서 마공 비급을 들일 때와 빼낼 때는 늘 형당주와 함께 한다.

형당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 * *

단주의 집무실은 매우 비좁고 어두웠다.

다섯 평 공간에 책상이 하나 있고, 책상 옆으로 의자가 다섯 개 놓여 있었다.

집기라고는 그것이 고작이다.

햇살이 들어오는 창문은 아주 작아서 늘 어두웠다. 대낮에도 등잔불을 켜야 할 정도다.

집무실에는 등잔도 없다.

단주는 낮에는 물론이고 밤에도 등잔을 밝히지 않는다.

작은 창문을 통해서 비치는 달빛으로 책을 읽는다. 늘 그 정도 빛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덜컹!

문이 열리면서 일남이녀가 들어섰다.

중년 여인은 천원주 유리검 주당염이다.

종이 뭉치 속에 묻혀 있던 젊은 여인은 책사 등여산이다.

중원 제일의 천재로 천문지리(天文地理)에 달통했고, 병법과 책략에 능했다. 열여섯 살에 천살단 책사로 임명되어서 천살단주를 보필한다.

키 크고 잘생긴 사내는 천살단주를 호위하는 검벽(劍壁) 검주(劍主) 주치균(周治均)이다.

나이는 서른 둘, 별호는 광류비검(光流飛劍)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현 군왕(郡王)의 둘째 아들이다. 즉, 황제의 증손자다. 하지만 황족으로써 누릴 수 있는 모든 권한을 포기하고 검을 선택했다.

“할아버지!”

문이 열리자마자 등여산이 활짝 웃으면서 뛰어들었다.

“허! 허허!”

천살단주는 기쁜 마음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가슴팍으로 와락 뛰어드는 등여산을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응? 이게 무슨 냄새지? 쉰내? 너 머리 안 감았구나!”

“할아버지! 보자마자 타박이세요?”

“허허허!”

천살단주가 웃었다.

천살단주는 매우 비정하다. 무표정하다. 늘 감정 없는 음성으로 말한다. 살인을 명할 때도 감정 변화가 없다. 하지만 세상에서 오직 한 명, 등여산에게만은 활짝 웃는다.

“아! 냄새가 너무 나서 안 되겠죠? 오늘 회합을 한 시진만 미뤄주시면 제가 데려가서 씻겨오겠습니다.”

“어멋! 원주님까지!”

등여산이 천원주를 쏘아보았다.

“그러게 넌 왜 씻지도 않고 다니니? 사내가 그런 꼴이어도 한 소리 듣는데, 여자가. 넌 저런 애가 뭐가 좋다고 재만 보면 실실 웃는 거야? 푼수처럼.”

“네?”

검주 주치균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웃음은 잠시뿐이다.

천살단주는 등여산이 내민 종이와 천원주가 가져온 마영심도를 비교했다.

단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잖아도 웃지 않는데, 더욱 무심해졌다. 너무 표정이 굳어서 무섭기까지 하다.

“혈마록이 혈마 무공이었군.”

천살단주가 침중하게 말했다.

“호발귀를 당장 죽여야 해요. 비록 미쳤다고는 하지만 안심할 수 없어요.”

등여산이 빠르게 말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혈마록을 외운 게 잘못이죠. 차라리 미치지 않았으면 의지로라도 말하지 않겠지만, 미쳤으니 어떻게 말할지 알 수 없습니다.”

검주 주치균이 등여산 말에 동조했다.

“제 생각도 같아요.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을 강제로 지울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죽이는 것뿐이에요.”

천원주도 죽이자고 했다.

그들은 혈마록을 빼낼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이백년 전에 존재한 혈마를 뒤쫓다 보면 혈마 무공에 대해서 치를 떨게 된다. 인간이 어떻게까지 잔인할 수 있는지 악마의 극한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 일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참회동에서 호발귀가 중얼거린다는 말이 혈마록 내용인지도 모른다. 고어를 자기 나름대로 풀어서 읽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면 더 큰일이다.

“음! 어쩔 수 없군. 이 일은…… 네가 처리해.”

천살단주가 검주 주치균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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