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마전인-25화 (25/500)

第五章 급할 것 없잖아(5)

봉혈폐맥(封穴廢脈)은 매우 잔혹한 수법이다.

봉혈까지는 괜찮다. 봉혈은 시전자가 언제든 풀어줄 수 있다. 하지만 폐맥은 영구히 풀지 못한다. 힘이라고는 개미만큼도 못 쓰는 나약자로 만들어 버린다.

혈을 짚는 게 점혈(點穴)이다.

혈을 짚으면 짚힌 혈은 일시 누르는 압력의 영향을 받는다. 혈이 마비되기고 하고, 막히기도 한다. 혈은 신경에 영향을 미쳐서 일시 고통을 망각시켜 주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점혈은 곧 풀린다.

인체는 자연정화 기능이 있다. 불순물은 내보내고, 막힌 곳은 스스로 뚫으려고 한다. 혈도 역시 신축성 있게 움직이기 때문에 점혈된 곳도 시간이 지나면 풀린다.

무림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점혈을 하면서 혈이 풀리지 않게 매듭을 지어놓는다.

봉혈이다.

이 매듭짓는 방식이 각 문파마다 다르다.

그래서 매듭을 보면 어느 문파에서 어느 정도의 고수가 봉혈했는지 알 수 있다.

봉혈은 시전자 혹은 봉혈 수법을 아는 사람이 풀어줄 수 있다.

폐맥은 완전히 다른 경우다.

폐맥은 인위적으로 경맥을 망가트리는 것을 말한다. 임맥(任脈)을 망가트리기 위해서는 네 곳을 패쇄하는데, 첫번째 회음혈(會陰穴), 여섯 번째 기해혈(氣海穴), 열두 번째 중완혈(中脘穴), 열여섯번째 옥당혈(玉堂穴)을 파괴한다.

봉혈이 아니다. 완전 파괴다.

그러면 임맥은 기능을 상실한다. 존재는 하지만 사용이 중지된 통로가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봉혈을 하고 폐맥을 하면 사람은 죽어야 마땅하다.

흔히 ‘기가 막히면 죽는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숨을 쉴 수 있는 구멍, 기도(氣道)가 막히면 죽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경맥이 막히면 죽는다.

그런데 봉혈폐맥을 해도 인간은 산다. 왜? 어떻게?

완전 봉혈, 완전 폐맥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혈을 망가트려도 혈 자체를 없애지는 못한다. 천군만마로 성(城)을 짓밟아 버리면 성은 없앨 수 있지만, 성터는 없애지 못하는 것과 같다.

성터에서는 풀이 자라고, 벌레가 기어 다닌다.

여전히 생명력을 지닌다.

이 생명력은 무인이 건드리지 못한다. 기껏해야 성을 막거나 없앨 수 있을 뿐이다.

봉혈은 할 수 있지만, 혈은 없애지 못한다. 그래서 생기가 흐른다.

혈도를 파괴해서 경맥을 망가트릴 수 있다. 하지만 혈자리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래서 파괴된 혈을 통해 생명 유지에 필요한 기운이 끈기 있게 흐른다.

성터의 생명력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은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

땅을 모르는 사람은 모든 것을 성에 의지한다. 성이 사라지면 인생도 끝난다.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 인생을 포기하고 좌절한다.

봉혈폐맥을 당하면 재기불능 상태에 빠지는 것도 이런 경우다. 일어설 생각을 하지 못한다.

봉혈폐맥만 시키면 상대를 완전히 망가트린 줄 안다. 성만 없애면 이겼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재기할 수 없다. 너는 이제 어떤 것도 하지 못한다!

인간 모두가 여기에 해당한다.

성터의 생명력을 아는 사람은 성이 없어져도 웃는다.

성은 또 지으면 된다. 막대한 돈과 인력이 필요하지만, 여건만 갖춰지면 성을 지을 수 있다. 당연하지 않나? 매우 당연한 말이다. 성터를 아는 사람은 그렇다.

우습게도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무림 역사상 딱 한 명뿐이었다.

혈마!

“역천금령공(逆天禁靈功)은 지식(止息)에서 시작해. 숨을 멈추고. 그래. 이러다가 죽겠다 싶을 때까지 멈춰!”

장진 스님이 연공을 도와주었다.

스님이 하는 말을 이미 알고 있지만, 옆에서 한마디 해주는 게 아주 큰 도움이 된다.

“후우우웁!”

호발귀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뚝! 멈췄다.

머리로 피가 쏠리고, 의식이 가물거릴 때까지 숨을 멈춘다. 이렇게 해서 힘을 쓰겠나 싶기도 하고,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무공인가 의심도 간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숨을 멈춰서 죽는 사람은 없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숨을 멈출 수가 없다. 정말 죽겠다 싶으면 생각할 것도 없이 숨길이 트인다. 그러니 죽을 걱정은 하지 않고 마음껏 숨을 멈춰도 된다.

“이제 던져!”

장진 스님이 고함쳤다.

단전 주위를 살펴보면 응어리진 것이 있다. 그것을 몸 밖으로 던지라는 말이다. 하지만 단전 주위조차 보지 못하겠는데, 응어리진 것을 어떻게 찾나.

“던져! 어제도 못 했잖아! 오늘도 못 할래! 던져!”

숨이 막힌다. 이제는 숨을 쉬어야겠다. 단전 주위도 보지 못했는데, 스님은 자꾸 던지라는 말만 한다. 응어리진 것을 던지기 전에 뇌가 터져 죽을 지경이다.

역천금령공은 일반적인 진기운행도를 무시한다. 임맥이니 독맥이니 따지지 않는다.

하나, 죽을 만큼 숨을 멈춰라.

하나, 단전을 봐라.

하나, 단전에 달라붙은 찌꺼기가 있다. 그것을 밖으로 던져라.

단전에 달라붙은 찌꺼기가 무엇인지, 어떻게 던지라는 것인지 일절 설명하지 않는다.

역천금령공은 찌꺼기를 던진 다음부터 설명이 시작된다. 무엇을 던져버리지 않으면 입문조차 하지 못한다.

이런 사실은 이미 일 년 전에 깨우쳤다. 하지만 머릿속에 담긴 것을 몸으로 펼치려니 정말 안 된다. 생각할 때는 간단했는데, 이게 이렇게 어려웠나?

“그래, 그럼 그만하자. 계속 이 지랄만 하지 뭐. 한 십 년쯤 하면 던질 수 있을 거야.”

며칠동안 계속 첫 단계에서 실패다.

“나 간다. 잘 해봐.”

장진스님이 포기하고 일어섰다.

순간, 호발귀는 아주 고요한 정적을 느꼈다. 팔십일수 무심무실공에서 말하는 적정 상태다. 지식이 의식되지 않는다. 숨을 쉬고 있을 때처럼 편안하다.

‘어떻게 된 거지?’

뇌가 질식했다.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다.

정말로 숨이 막혀서 견딜 수 없을 때, 딱 한 번만 더 참았다. 이제는 정말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딱 한순간만 참았다. 그렇게 서너 번쯤 참은 것 같다.

그러자 숨이 막히지 않았다.

숨에 대한 생각이 달아났다. 대신, 몸이 확 열렸다.

경맥이 뚜렷하게 보인다. 단전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오장육부도 보이는 것 같다.

이령귀화도 보인다.

붉은 불꽃과 푸른 불꽃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단전을 감싸고 있다.

단전에 달라붙은 응어리진 찌꺼기가 무엇인지도 알겠다. 진기다. 고정된 단전은 그릇이고, 유동적인 것은 찌꺼기다. 진기가 단전을 넘실거린다.

이령귀화는 고정된 단전 속에 스며있다. 역천금령공은 움직이는 진기를 활용한다. 이령귀화는 수비 장수고, 역천금령공은 공격을 전담하는 선봉장이다.

쌍두사가 이렇게 맞물린다.

이령귀화와 역천금령공은 둘이 아니다. 하나다. 둘 모두 같은 몸통을 가진 뱀이다.

몸통은 나다. 성터다. 생명력이다.

나는 지금 성을 버리고 성터에 있다. 성을 감상하는 게 아니라 성터를 만진다. 흙을 만지고 풀을 만진다. 흙속에 사는 벌레를 만지고 있다.

유동적인 것은 언제든 흘려버릴 수 있다. 진기는 또 생성된다. 사라지면 만들어진다. 성터 위에 지어진 성이지 않나.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다.

저것을 어떻게 던질까? 생각할 필요도 없다.

역천금령공, 생명력에 모든 것을 맡긴다. 강풍이 불어와서 성터 위에 쌓인 찌꺼기를 확 쓸어가게 내버려 둔다. 찌꺼기에 얽매여서 붙잡지 않는다.

‘던진다’는 생각을 하자 진기가 스스로 확 빠져나갔다.

갑자기 경맥에 불이 붙는 느낌이 든다.

진기가 너무 빨리 빠져나간다.

경맥을 빠져나가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극심한 마찰이 일어난다. 경맥에 불이 붙는다. 팔팔 끓는 기름이 혈관 속으로 들어선 것처럼 극렬한 고통이 일어났다.

“끄아아아악!”

호발귀는 비명을 쏟아냈다.

강하고 크고 바다처럼 넓은 기운이 쏟아져 나가기에는 경맥이 너무 협소하다. 아주 좁은 협곡을 지나치는 것 같다. 그러니 바람은 더욱 거세진다.

이 한순간만큼은 너무 고통스러워서 영혼조차 빠져나간다.

적과 마주 선 상태에서 운기하면 어떻게 될까? 적이 앞에 있는지 없는지 모를 것이다. 모든 생각이 전신에서 일어나는 고통에 집중될 것이다.

한순간, 머릿속이 텅 비어 버렸다.

꽈앙!

몸이 터졌다!

상대는 이것과 싸워야 한다. 진기의 주인조차 고통스러워하는 역천진기와 맞닥트려야 한다. 이것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순간, 꽉꽉 뭉쳤던 압력이 일시에 터진다. 두 배, 세 배, 네 배로 증폭된 진기를 맞이한다.

누가 상대할 수 있을 것인가!

장진 스님은 묘한 재주가 있다.

지렁이 글자를 움직여서 비급을 만들어 준다.

혈마록 열 권에 기재된 지렁이 글자가 무공 여덟 개로 변했다. 한 권에 여섯 가지 무공이 담겼고, 두 권에 이화귀령이 설명되었고, 나머지 일곱 권이 역천금령공이다.

혈마록은 역천금령공이다.

무림에서 말하는 ‘혈기’는 성터, 인간 본연의 생명력이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생기다.

팔십일수는 참 조잡하다.

성터 위에 올려놓기는 했지만, 작은 움막에 불과하다. 사실, 아홉 가지 무공 중 팔십일수가 가장 약하다. 무심무실공을 제외하면 모두 일반 초식에 지나지 않는다.

콰앙! 꽝! 꽝! 꽝! 꽝!

역천금령공이 막아서는 것들을 모두 밀쳐버렸다. 거침없이 꿰뚫어 버렸다.

성터에 흉물스럽게 남아있던 성의 잔재가 확 쓸려나갔다. 성터가 깨끗하게 정비되었다. 닫혔던 성문도 열렸다. 성터에서 일어난 강한 바람이 닫힌 문을 갈이 찢어버렸다.

봉혈 매듭이 뜯겨 나갔다.

폐맥은 쓸려나가고 새살이 돋아났다. 새로운 성이 새워진다.

“크으윽! 칵!”

호발귀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피를 토해냈다. 그리고 모래성 허물어지듯 스르륵 무너져버렸다.

“할 수 있다고 했지?”

장진 스님이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내려다봤다.

“뚫…… 었나?”

호발귀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봉혈폐맥을 뚫었다. 풀어냈다. 봉혈폐맥을 풀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는데, 풀었다.

몸이 날아갈 듯 상쾌하다. 힘이 불끈불끈 넘친다.

당장이라도 석문을 박차고 뛰쳐나가도 될 것 같다. 이 상태라면 어떤 자와도 싸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숨! 숨! 숨! 숨 쉬어. 흥분을 가라앉히고. 너 잘하는 것 있지? 무심무실공. 그거 펼쳐.”

장진 스님이 머리를 만졌다.

호발귀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서둘 것 없어.’

이제 겨우 생명력의 맛을 봤다.

봉혈폐맥을 뚫은 것은 대단한 일이다. 힘으로 봉혈폐맥을 뚫어내려면 얼마나 강한 힘이 필요할까? 상상할 수 없다. 내공 고수 열 명이 손을 합쳐서 진기를 불어 넣어준 것과 같은 힘이다.

하지만 호발귀는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알지 못했다. 봉혈폐맥을 풀었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전혀 자각하지 못했다. 자신이 가진 힘도 몰랐다.

그에게는 귀무살이나 천멸사 무인이 여전히 상대조차 할 수 없는 강자들이다.

우선 무공이란 것을 몸에 붙인다. 쌍두사를 완성한다.

십 년, 이십 년…… 기간은 상관없다. 몇십 년이 흘러도 무방하다. 머릿속에 들어있는 무공들을 자유자재로 펼칠 수 있을 때, 그때에서야 석문을 열고 나간다.

“난…… 여기서 나갈 수 있을까?”

“내가 그걸 알면 부처님이지 사이비 중이겠냐?”

호발귀가 피식 웃었다.

지금 석문을 여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런데도 당장 석문을 열고 싶다는 유혹이 일어난다.

지금은 유혹과 싸울 필요가 없는데, 싸운다.

봉혈폐맥을 풀지 못했을 때는 이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는데…… 사람 마음이란 이렇게 간사하다.

시간은 많다. 넘치는 게 시간이다.

그는 젊음을 포기했다. 예쁜 여자를 만나서 자식을 스무 명 정도 낳겠다는 생각도 접었다.

돈 벌 욕심도 접었다.

배수 짓이라는 게 원래 땀 흘려 일하기 싫은 족속들이 편히 살고자 하는 짓이다.

한마디로 못된 짓이다.

소매치기, 도둑질…… 이런 짓거리는 아무리 좋은 포장지로 포장을 해도 손가락질당한다.

한때는 이왕 배운 게 이것이니, 세상을 훔쳐보자는 생각도 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망상이라는 걸 곧 깨달았다.

손가락은 잘 놀려야 한다. 자칫, 한끝만 삐끗하면 날수수처럼 다리 병신만 된다.

사실, 배수는 세상을 훔치기는커녕 당장 먹고살기도 힘들다.

남의 주머니에 있는 것을 훔쳐서 사니 편하게 잘 살 것 같지만, 사는 걸 보면 거지나 다름없다. 사실이 그렇다. 남의 주머니를 뒤져서 챙긴 돈으로 잘 살면 얼마나 잘 살겠는가. 어떤 때는 하루 술값도 안 나온다.

어차피 돈 하고는 인연이 먼 삶이라고 생각했다.

기껏 욕심을 부린다는 게 예쁜 여자나 만나보는 것이었는데…… 다 포기한다.

삶에서 더는 추구할 게 없다.

참회동에 갇힌 몸이 무엇을 바라겠는가.

고기를 먹어본 적도 오래되었다. 하찮은 고기 한 점……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개조차도 일 년에 몇 번은 뜯어먹는 고기 조각을 입에 대보지 못했다.

이런 날은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희망도 없고, 즐거움도 없다.

그렇다고 할 일이 없는 건 아니다. 인간은 묘한 동물이라서 비좁은 골방에 가둬놔도 할 일을 찾고야 만다. 그래서 심심함, 무료함을 달랜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나니 오히려 홀가분하다.

무공에 집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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