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마전인-24화 (24/500)

第五章 급할 것 없잖아(4)

‘시술이 사람을 미치게도 하는군.’

눈길을 헤쳐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참회동 일직 무인 말처럼 호발귀는 미쳤다.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고 중얼거린다. 손에 책을 들고 있는 것처럼 뒤적거린다. 끊임없이 중얼중얼 혼잣말을 읊어댄다. 한숨도 쉬고 웃기도 한다.

완전히 미쳤다.

무슨 말을 하나 하고 귀를 기울여 봤지만, 모깃소리보다도 작아서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호발귀는 크게 말하는 것처럼 입을 쩍쩍 벌린다.

거짓 행동이다. 목구멍 밖으로 나오는 소리는 바로 옆에 있어도 듣지 못할 만큼 작다.

호발귀는 상상 속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형당주는 다른 부분도 봤다.

호발귀가 일어섰다. 그리고 꼼짝하지 않는다. 가만히 서서 멍청하게 앞만 본다. 처음에는 잠깐 서 있는 줄 알았는데, 거의 반나절을 움직이지 않았다.

무엇을 하는 중인가? 생각이라는 것을 한다.

그 부분이 께름칙하다.

미친 자의 집중인가? 미치면 주변을 망각하니,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다.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내면만 쳐다보는 일이 가능하다.

봉혈폐맥은 풀리지 않았다. 단전과 어깨에 박아놓은 강침도 손대지 않았다.

호발귀는 팔다리에 힘을 주지 못한다.

그런데 뭐가 이리 불안한 것인가? 왜 호발귀만 보면 죽였어야 한다는 생각이 치미나.

‘저런 상태라면 오래 살려두는 것이 오히려 죄악인데. 이미 혈마록도 잊어버렸을 거고.’

중원 불문(佛門)에 장진이라는 자는 없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 불교 각 종단에 확인해 봤는데, 장진이라는 법명을 사용하는 스님은 없었다. 암자도 모두 훑어봤다. 미향암이라는 암자는 없다.

호발귀는 귀신을 본다. 귀신에게 말한다.

마참지 시술은 다양한 후유증을 일으키지만, 호발귀 같은 증상은 아직 없었다.

‘무공을 수련한 것은 아니니까.’

형당주는 고개를 내둘렀다.

* * *

툭!

주먹밥이 던져졌다.

주먹밥에서 김이 모락모락 솟구쳤다. 아지랑이처럼 여러 줄기의 김이 하늘을 향해 올라간다.

날이 풀렸다.

지난겨울은 지독하리만치 추웠다.

온도 차가 거의 없는 석실인데도, 사지를 오므리고 덜덜 떨면서 밤을 보낸 적이 한두 번 아니다.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서 장진 스님과 나누던 대화도 끊겼다.

주먹밥에 들어있던 대나무 잎도 사라졌다. 책도 주지 않는다. 원래대로 돌아갔다.

호발귀는 대화가 끊긴 사실도 알지 못했다.

생각할 것이 너무 많다.

머릿속에 쌍두사(雙頭蛇)가 들어있다.

머리 두 개에 몸통이 하나인 쌍두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꼬리가 없고, 양쪽 끝에 머리가 달린 쌍두사를 말한다.

쌍두사가 입을 쩍 벌리고 서로를 물었다.

배고픈 뱀이 자기 꼬리를 먹이인 줄 알고 먹는 것처럼, 뱀 두 마리가 서로를 먹으려고 한다.

왼쪽 머리는 이령귀화(二靈鬼火), 오른쪽 뱀은 역천금령공(逆天禁靈功)이다.

이 두 놈이 우두머리다.

이령귀화 밑에 귀화미요공(鬼火迷擾功)이 있다. 귀화미요공은 구뢰마권(九雷魔拳), 혈천도법(血天刀功)을 끌어낸다.

역천금령공 밑에는 마영심도(魔影心刀), 소요귀명검법(逍遙鬼冥劍法), 무정삼절(無情三絶)이 있다.

여덟 가지 공부가 각각 별개이면서 한 몸통 속에 들어있다.

이것들은 따로 놀지 않는다. 한 몸 속에 있어서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마영심도를 펼치다가 혈천도법으로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 귀화미요공을 펼치다가 무정삼절로 넘어가기도 한다.

무인이 들으면 말도 안 된다며 고개를 돌려버릴 것이다.

더 웃긴 것은…… 원충노인의 팔십일수도 쌍두사 속에 들어있다는 것이다.

뱀 두 마리의 이빨 속에 숨겨져 있는 독액이 팔십일수다.

쌍두사 몸통 속에는 어떤 무공이 들어가도 하나로 섞이게 된다.

소림사 금강권을 넣으면 구뢰마권과 금강권이 뒤죽박죽 섞여서 전개된다.

이래서야 제 위력이 나올까?

여덟 가지 공부 중 가장 강한 것이 이령귀화와 역천금령공이다. 그래서 머리가 되었다.

그러면 이 모든 것을 하나로 감싸버린 뱀 껍질은 무엇인가? 글자다. 호발귀도 이해하지 못하는 구불구불한 지렁이 글자가 꾸물꾸물 움직여서 뱀 껍질을 만들었다.

호발귀도 이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른다.

그는 실제로 무공을 수련하지 않았다. 머릿속으로만 그려봤을 뿐이다. 실제로 몸을 움직여봐야만 이 무공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을 텐데.

눈을 감고 세월의 흐름을 잊는다.

장진 스님과 대화하는 것도 잊고 머릿속에 그려진 글자를 따라간다. 지렁이 글자로 껍질을 만들고, 안에 갇힌 무공들을 하나씩 끄집어낸다.

투둑! 툭! 투투툭!

단전에 박힌 강침이 움직였다.

“크으윽!”

호발귀는 살이 뜯기는 통증에 풀썩 주저앉았다.

운기하지 말라고 했는데, 운기했다. 이령귀화 구결을 맞춰서 진기를 끌어냈다.

사실, 욕심을 부려볼 만했다.

이령귀화는 음기와 양기, 두 개의 정령이 부딪쳐서 만들어내는 불꽃이다.

이령귀화를 만들어내려면 음양의 조화가 이뤄져야 한다. 어느 한쪽이 무너지면 충돌이 생기지 않는다. 완벽한 신체 조화가 이뤄질 때, 이령귀화도 일어난다.

이령귀화는 억지로 수련할 필요가 없는 공부다. 천지자연의 기운을 흡수하면 자연스럽게 이령귀화가 형성된다.

이령귀화로 단전을 감싸고, 역천금령공으로 공격을 가한다. 그러면 이령귀화와 역천금령공은 서로를 공격하느라 한층 더 강해진다. 단전이 쇠구슬처럼 단단해진다.

이때, 강침을 뽑아낸다. 단전은 두 공부의 전장터, 흩어지지 않는다. 안심하고 뽑아내라.

“다시 해봐. 할 수 있어.”

석문을 열고 석실 안까지 들어온 장진 스님이 성난 표정으로 재촉했다.

“안 될 것 같은데?”

“그럼 뒈졋!”

장진 스님이 화를 벌컥 냈다.

“중이 그런 말을 써도 돼? ‘뒈져’가 뭐야? ‘뒈져’가.”

“빨리! 저놈들 오잖아!”

뚜벅! 뚜벅!

호발귀는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방금까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들린다. 누가 왜 오는 거지?

“빨리!”

호발귀는 재촉에 못 이겨 눈을 감았다.

이령귀화로 단전을 감싼다. 역천금령공으로 공격시키자 단전이 철옹성처럼 단단해졌다.

단전에 박힌 강침을 잡아 뽑는다.

강침이 단전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지만, 이령귀화의 기운으로 강하게 밀어낸다.

뚜둑! 뚝! 투투둑!

강침이 살점을 잡아 뜯으며 뽑혔다.

“크헉!”

그는 극심한 아픔에 신음을 토해냈다.

“참아. 마참지 시술에 비하면 어린애 장난이잖아?”

장진 스님이 약 올리듯 말했다.

“허억! 허억! 허억!”

호발귀는 가쁜 숨을 토해냈다. 장진 스님이 놀려도 대꾸할 기운이 없다.

강침을 뽑기는 했지만, 생살을 찢은 탓에 핏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부욱!

그는 옷을 찢어서 상처를 감쌌다.

“하나는 됐고……”

장진 스님이 어깨를 어루만졌다.

“됐어. 오늘은 그만!”

호발귀가 급히 손을 휘휘 내저으며 말했다.

“약골하고는. 그래, 그럼 오늘은 이만. 어깨 쪽은 좀 수월해. 진짜 고통은 봉혈폐맥을 풀 때야. 푹 쉬어.”

장진 스님이 석문을 열고 나갔다.

푹푹 찌는 여름이 지나갈 무렵, 복부 상처가 아물었다.

단전은 멀쩡하다. 형당주가 말한 기혈이 역류하는 듯한 고통은 일어나지 않았다.

절대라는 말은 믿을 게 못 된다.

그는 어깨에 박힌 역사침을 잡았다. 먼저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 것을 잡았다.

역사침은 우산 형태의 침이다.

침이 뼛속에 틀어박혀 있는데, 우산을 거꾸로 펼쳤을 때처럼 활짝 펼쳐져 있어서 빼낼 수가 없다.

꾸욱!

그는 침을 더 안으로 밀어 넣었다.

“끄으윽!”

비명이 절로 나온다.

역사침은 뼈에 박혀 있다. 뼈를 뚫고 들어와서 부챗살을 펼친 상태다.

뼈를 다치지 않고 역사침만 움직이는 방도는 없다.

“역사침을 살살 미끄러트려.”

“안으로 더 깊이 박힐 텐데?”

“그게 함정이야. 모두 그런 생각이라서 시도조차 못 해. 급히 넣으면 깊이 박히지만, 부드럽게 살살 밀어 넣으면 부챗살 침 끝이 오므려져.”

침을 움직일 수가 없다. 조금만 움직여도 어깨가 떨어져 나갈 것 같다.

“무심무실공을 운용해.”

원충노인의 팔십일수는 무공일까? 무공이다. 무공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면 뛰어난 수공과 지법, 장법, 신법, 보법 등등이 수두룩하게 보인다.

하지만 쌍두사를 만들고 나니 무공 같지가 않다. 어린애 손장난에 불과할 정도로 약하다.

그나마 무심무실공은 쓸만하다. 지금처럼 마음이 들뜰 때 운용하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 하늘이 무너져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

배수 짓을 하기에 앞서서 마음을 가라앉힌다. 손뿐만이 아니라 몸 전체에 화기(和氣)를 심는다. 따뜻한 기운이 봄 햇살처럼 포근하게 번져나간다.

“후우우우웁!”

거칠게 몰아치던 숨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본다. 본다. 본다. 강침을 본다!

스윽! 슥! 스으윽!

강침이 뼈를 뚫고 들어간다. 그래도 움직임을 포기하지 않는다. 계속 밀어 넣는다.

드디어 침 끝 부챗살이 오므라졌다.

장진 스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불제자답게 항상 진실만 말한다. 때때로 너무 과격하게 말해서 탈이지만.

부챗살을 닫았으면, 이제는 빼낸다.

통증을 주시한다. 아픔이 일어나는 순간을 감지한다. 살이 찢어지는 듯 아프면 부챗살이 펼쳐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럴 때는 다시 밀어 넣었다가 다른 방향으로 꺼낸다.

통증으로 침의 모양을 본다.

“끄윽!”

부지불식간 비명이 흘러나왔다.

부챗살이 펼쳐졌다. 그래서 다시 밀어 넣는다. 부챗살이 접힐 때까지, 그리고 다시 빼낸다.

역사침이 서서히 뽑혔다.

휘이이잉!

찬 바람이 불어온다.

석실에서 차가운 기운을 느꼈다면 벌써 겨울 깊숙이 들어섰다는 뜻이다.

참회동에 들어와서 겨울을 세 번째 맞이한다.

“올겨울에는 봉혈폐맥을 풀어야지?”

“그거 잘못 건드리면 죽잖아. 좀 천천히 풀려고.”

“천천히? 넌 안 그런 것 같은데 검이 되게 많아. 그래서 복수는 하겠어?”

“너 요즘 나 부추기는데 맛 들였어. 무슨 스님이 그래? 복수한다고 설쳐도 막아야 할 판에.”

“내가 요즘 신통력을 얻었어. 보여줄까?”

“또 허풍.”

“후후! 아미타불. 이 신통력은 부처님의 힘이야. 저승에 있는 사람을 볼 수 있는데, 누굴 볼래?”

“뭐?”

“노야가 궁금하지? 사조.”

“자, 잠깐!”

만류하고 자시고 할 틈이 없다. 장진 스님은 호발귀 눈앞에 손을 쫙 폈다.

그러자 지옥 풍경이 보였다.

사조…… 노야가 울부짖는다. 늙고 병든 노인이 가슴에 칼을 꽂고 비틀거린다. 앉지도 눕지도 못하고, 똑바로 서지도 못한 채 끽끽 울어댄다.

“노야!”

호발귀가 노야를 와락 움켜잡으려고 할 때, 장진이 어깨를 탁 쳤다.

“그만!”

사조의 모습이 눈앞에서 홱 사라졌다.

“이래도 배부른 생각 하면서 편이 있겠다면 할 말이 없고. 봉혈폐맥은 천천히 풀까?”

“넌 중이 아니라 악마야.”

“이렇게 해서 널 도울 수 있다면 제대로 된 중이지.”

“봉혈폐맥을 풀어도 여길 빠져나가기는 힘들 텐데? 방법이 있어?”

“없지. 그러니까 잡념 버리고 수련이나 해.”

장진 스님이 화가 났는지 횅하니 사라져버렸다.

언제 갔는지 느끼지도 못했는데, 팍! 하고 사라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