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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22화 (22/500)

第五章 급할 것 없잖아(2)

짹! 짹! 째째짹!

산새가 아침부터 분주하게 우짖는다.

호발귀는 근육이 비틀려서 누워있기 힘들 때까지 실컷 잠을 잤다.

참회동을 왜 두려워하나? 참회동은 좋은 점이 많다. 일단 누가 건드리지 않아서 좋다. 잠을 실컷 잘 수 있고, 여기저기 상한 몸도 차분하게 치료할 수 있다.

손에서 부르르 경련이 일어난다.

‘또?’

호발귀는 경련이 일어나는 손을 마주 잡았다.

양손으로 서로 꽉 쥐자 경련이 잦아들었다.

마참지 시술은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다. 사람이 어느 정도 아파야 미칠 수 있는지 알고 싶으면 흑살단을 복용해 보라고 권하련다.

금제법과 침법이 같이 사용되지만, 흑살단만 먹어도 오장육부가 뒤집힌다.

그만한 고통을 받았는데 어떻게 멀쩡할 수 있겠나. 손에서 경련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다리에 쥐가 나고, 자다가 가위에 눌려 헐떡이고. 후후!

참회동에 갇혔다고 조급할 필요도 없다.

지금부터 진짜 싸움이다. 앞으로 몇십 년에 걸친 긴 싸움을 해야 한다. 어쩌면 준비만 하다가 참회동을 벗어나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른다.

그런 싸움을 해야 한다.

석문 아래에 작은 공간이 있다.

손 하나도 집어넣지 못할 정도로 작은 공간인데, 그곳으로 주먹밥이 들어온다.

그에게 주어진 하루 식사다.

반찬은 없다. 달랑 소금 묻힌 주먹밥 세 개다. 그나마 따뜻한 밥도 아니다. 차디차게 식은 밥이다. 겨울에는 돌덩이라서 품에 안고 녹여야 먹을 수 있다.

주먹밥 세 개로 하루를 버텨야 한다.

참회동은 벽에서 벽까지 세 걸음밖에 되지 않는다.

앉거나 누울 수는 있지만, 몸을 크게 움직일 수는 없다. 굳이 몸을 움직이고 싶다면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이 훨씬 낫다.

참회동은 무척 어둡다.

사면이 석벽이기 때문에 빛 한 점 새어들지 않는다.

주먹밥을 놓아두는 작은 구멍이 바깥세상으로 통하는 유일한 출구다. 그나마 그곳을 통해서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다. 그리고 낮과 밤도 구분할 수 있다.

석실 구석에는 작은 도랑이 있다.

석실 북면에는 벽을 따라서 작은 도랑이 있다. 도랑 위쪽과 아래쪽에 동전만 한 구멍이 뚫려있고, 위에서 물이 내려와 아래쪽으로 흘러간다.

도랑 깊이는 손가락 두 마디 정도다.

그 물이 식수다. 세면도 해야 하고, 대소변도 그곳을 통해서 해결한다.

이곳에서 평생을 보내야 한다.

참회동에 길드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하루면 충분히 느끼고도 남는다.

호발귀는 잠을 청했다.

딱딱한 돌바닥에 얇은 이불 한 장 없다. 잠자다 보면 한기가 치밀어서 몸을 돌돌 말고 잔다.

하지만 호발귀는 석실이 마치 집처럼 편했다. 일단, 쫓길 염려 없고, 죽을 위험도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만 자도 주먹밥을 넣어준다.

하루, 이틀, 사흘……!

때가 되면 주먹밥을 먹었고, 그 이후로는 잠만 잤다.

머릿속에 혈마록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읽을 줄 모른다. 어떤 뜻인지도 모른다. 설혹 글자 몇 개를 안다고 해도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지 못한다.

형당주는 이런 사람이 뭐가 무섭다고 봉혈폐맥을 시행했을까?

진기를 일절 사용하지 못한다. 지금뿐만이 아니다. 앞으로 영원히 진기를 끌어내지 못한다.

천살단은 봉혈폐맥을 풀 수 있을까? 아마도 못 풀 것이다. 봉혈폐맥을 당했다는 말은 심심찮게 들리는데, 그걸 풀고 무공을 다시 사용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호발귀는 손을 내려 단전에 박힌 강침을 잡았다. 그리고 살살 비틀었다.

꾸우욱!

“하악!”

호발귀는 강침을 비틀자마자 급하게 헛바람을 토해냈다.

극심한 통증이 단전에서 일어나더니 순식간에 전신으로 퍼진다. 마참지 고통이 즉각 되살아났다. 뼛속을 저려 울리는 고통이 전신을 뒤흔든다.

“크으으윽!”

호발귀는 배를 움켜잡고 쩔쩔 맸다.

힘이 일순간에 쫙 빠져나갔다. 극심한 무력감도 밀려왔다.

‘기분 더럽네.’

팔다리가 힘을 잃고 너덜거렸다.

이상하다. 이번 고통은 마참지에서 겪은 고통과는 완전히 다른데, 마참지 통증이 되새겨졌다. 마치 마참지에서 흑살단을 복용한 느낌이 들었다.

강침을 약간 비튼 것인데, 그런 고통이 생겼다.

형당주가 한 말은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전신 혈도가 천살단 독문 수법으로 폐맥 당했다. 단전 진기도 쓸 수 없다. 어깨는 말할 것도 없다. 주먹밥을 먹는 데는 지장이 없다. 하지만 손을 어깨 위로 올리는 것은 힘들다.

이런 상태로는 그 어떤 무공도 수련하지 못한다.

‘무공을 수련할 수 없나?’

권각을 수련하지 못하면 내공이라도 수련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조차도 안 된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조급한가? 그러지 마라. 마음을 편안하게 가져라. 그렇지 않으면 이런 곳에서는 정말 미쳐버린다.

‘미칠 것 없어. 여기서 늙어 죽는다고 생각해. 이제 다시는 세상을 볼 수 없다고. 세상에 급히 나가야 할 이유도 없잖아? 천천히…… 잠이나 자자.’

그는 팔베개하고 드러누웠다.

진시(辰時) 무렵, 석문 밑에 있는 작은 구멍이 열렸다.

턱!

주먹밥이 작은 구멍 안으로 던져졌다.

“저기, 여보쇼.”

그는 그가 가버릴까 봐 급히 말했다.

“뭐야?”

상당히 신경질적인 대답이 들려왔다.

“심심하기도 하고…… 뭐 소일거리가 없을까? 책 같은 거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책?”

“너무 무료해서 말이오.”

“후후후! 비급을 해독하려고?”

“하하! 이런 몸으로 비급은 무슨. 그저 무료함을 달래려고.”

“어디서 시건방지게 수작질이야! 책을 가져다 달라고? 이놈아, 머릿속에 있는 것부터 먼저 꺼내놔!”

밥을 날라다 주는 무인이 야멸차게 대답했다.

툭!

오늘도 어김없이 주먹밥이 던져졌다.

그는 처음 왔을 때처럼 부리나케 달려가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 누가 훔쳐 갈 것도 아닌데.

참회동에는 벌레 한 마리 살지 않는다.

은은한 자단향(紫檀香)이 참회동을 감싸고 흐르면서 벌레와 해충을 쫓아준다.

‘저걸 먹지 말고 놔둬?’

할 일이 없다 보니 주먹밥을 가지고 장난치기도 한다. 역시 소일거리다.

그는 주먹밥을 먹지 않고 놓아두었다.

다람쥐라도 올까? 쥐가 올까? 새가 와서 쪼아 먹을까?

참회동은 동굴이다. 동굴 입구는 막혀 있지 않다. 활짝 열려있다. 그 안에 무수한 석실이 있고, 자신 같이 죄를 지은 자들이 감금 형벌을 받는다.

낮이 지나고 밤이 되었다. 어둠이 점점 짙어졌다.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서 아침이 되었다,

무인이 주먹밥을 가져왔다.

툭!

그가 새 주먹밥을 놓고 헌 주먹밥을 주워 들었다.

“배가 불렀나 보군. 처먹지 않는 걸 보니.”

“놔둬. 쥐라도 먹게.”

“하하하! 모르나 본데, 여긴 쥐조차도 얼씬거리지 않아. 네놈 냄새 맡기 역겹다고.”

주먹밥은 치워졌다.

무인 말이 맞았다. 참회동에는 새 한 마리, 쥐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았다.

참회동에 갇힌 지 얼마나 지났을까?

날짜가 헤아려지지 않는다. 해도 없고, 달도 없는 곳이어서 시간 감각이 사라졌다.

턱에 수염이 거칠게 자랐다.

덜컥! 툭!

세상에서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소리가 들렸다.

그 전에 산길을 걸어 올라오는 발걸음 소리를 듣는다. 무인은 아는지 모르겠는데, 그는 오른쪽 발을 더 힘껏 내디딘다. 척추가 휘었다는 증거다.

이런 소리가 반갑다.

하루 중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소리라서 귀를 기울이게 된다.

호발귀는 주먹밥을 집었다.

그런데 따듯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식은 밥을 돌돌 뭉친 것 같다. 식은 밥은 아니다. 한 입 베어 물면 안은 따뜻하다. 겉만 차갑게 식었다.

‘겨울인가……’

참회동은 기후 변화도 감지하지 못한다.

석실이 동굴 안쪽 깊숙한 곳에 있어서 거센 바람이 들이치지 않는다. 또 주먹밥을 꺼내는 작은 입구 외에는 사방이 온통 돌이다. 석관 속에서 사는 것과 진배없다.

춘삼월 봄날에 왕지네가 잡자고 독림에 들어갔다.

그날, 왕소가 죽었다. 다음 날, 동패가 죽고, 다음날은 노야가 죽었다.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사람이 죽었다.

가까운 사람이 몇 명밖에 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더 많은 사람이 죽었을 것이다.

여름 복중에 마참지 시술을 겪었고, 가을 문턱에 참회동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겨울이다.

한 계절을 주먹밥만 먹고 살았다.

팔십일수를 모두 수련했다.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없다. 따뜻한 기억 하나 가지고 하루종일 버틴 적도 있다.

하지만 무공수련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팔십일수 역시 무공이지만, 그는 배수의 손놀림으로 인식하고 수련했다.

양손을 좌우로 활짝 펼치고 빙글 돌았을 때 그려지는 원.

그 안에 있는 물건은 모두 자신 것이다.

확인해 본 것은 아니다. 사람에게 써보지 않은 기술은 기술이라고 할 수가 없다.

오늘도 팔십일수를 수련한다.

수련이라고 해서 별다를 것은 없다. 구렁이가 담장을 기어가듯 천천히 손을 움직인다.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완급을 조절하면서 손을 움직인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료해서 발광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이런 수련도 열심히 하지는 못한다.

어깨에 박힌 역사침 때문에 조금만 움직여도 팔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아프다. 진기 주입은 애당초 불가능하고, 힘을 과하게 쓰면 팔이 떨어져 나갈 듯 아파온다.

팔십일수를 수련하고 나면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수련을 시작하면 중간에 몇 번은 이를 악물고 참아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너무 아파서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부들부들 떨다가 힘없이 드러눕는다.

사실 이런 고통이 즐겁다.

참회동 생활은 너무 무료하다. 고적하다.

이렇게라도 자신에게 고통을 주어야만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팔이 끊어질 듯 아플 때, 비로소 아직도 살아있구나 하는 희열이 느껴진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한 해가 고통 속에서 저문다.

사내는 자고로 삼근(三根)을 조심하라고 했다. 혀를 조심하고, 손을 조심하고, 아랫도리 물건을 조심하고.

배수들끼리 농담 삼아 하는 말이다.

이 농담의 주제는 성적인 희롱에 있다. 아무 여자나 찝쩍대지 말라는 뜻이다. ‘말조심해라’, ‘남의 물건을 탐하지 마라’는 교훈적인 측면은 무시된다.

그런데 정말 그런 일이 자신에게 벌어졌다.

손 조심, 손 조심, 손 조심!

그는 양손을 어깨높이로 들었다.

어깨가 끊어질 듯이 아파온다. 역사침이 더 진한 고통을 안겨주려고 꿈틀거린다.

아직은 참을 수 있다.

그가 지켜보는 것은 손의 떨림이다.

마참지 시술은 그를 폐인으로 만들어 놨다.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끔 짓이겨 놨다.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머리가 흔들리고 손이 떨렸다.

그런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

몸의 떨림은 완전히 사라졌다.

가끔 그때의 고통이 생각날 때가 있다. 그러면 갑자기 등줄기에서 찬바람이 일어난다. 금방이라도 형당주가 석문을 열고 들어와서 손가락으로 꾹꾹 혈을 눌러댈 것 같다.

‘됐어.’

그는 만족했다.

몸이 거의 완쾌되었다.

외적인 상흔뿐만이 아니라 내적인 상흔까지도 거의 제 자리를 찾았다.

그는 팔을 내리고 쉬었다.

예전, 날수수가 책 한 권을 들이밀었다.

“가져.”

“뭔데? 돈 되는 거야?”

“읽어봐.”

“글 못 읽어.”

“그러니까 배우라고 했잖아, 인마! 글 모르는 게 자랑이냐!”

“따분하게 글은…… 배수 놈이 손만 빠르면 됐지 글은 배웠다가 어디 쓰려고. 됐어.”

“그냥 구경이나 해봐.”

“귀찮다니까.”

“이것만 배우면 천하 물건이 모두 네 거다. 그래도 싫으냐?”

“날수수는 이거 배워보고 하는 말이야? 글 알아?”

“그럼 마. 내가 너처럼 무식한 까막눈인 줄 아냐!”

“그럼 됐어. 이걸 배워도 이렇게밖에 못 산다면 배워서 뭐해.”

“햐! 자식 거 말 되게 많네. 저 골통 저거…… 그래 마, 네 마음대로 해라. 글을 알아야 절기를 전수해 줄 수 있는데, 제가 싫다는데 누가 어째.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인마!”

열여섯 살에 처음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엉터리 사부에게서.

그때가 생각난다.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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