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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20화 (20/500)

第四章 배수 짓을 한 대가(5)

마공관주는 침묵했다.

혈마록 열 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얻어내야 한다.

그것을 얻어내려고 십육비자 중 세 명이 목숨을 잃었다. 아니, 그것보다도 혈마록은 반드시 연구해야 한다. 혈마록이 비급이라면 정말 혈기가 적혀 있는지 살펴야 한다.

지금 당장 비급을 받아야 한다.

비급 내용은 천천히 연구하더라도 어떤 글씨가 어떻게 적혀 있는지 봐야겠다.

이건 매우 중대하다.

‘단순 취조로는 안 돼. 머릿속에 든 글씨를 순순히 쓸 수밖에 없는 곳은 마참지뿐이야.’

호발귀를 마참지로 들여보낸 사람이 마공관주였다.

“입을 열지 못했네.”

형당주가 말했다.

“……”

마공관주는 말을 잊었다.

형당주가 무거운 얼굴로 들어설 때부터 이 말을 예상했는데, 막상 듣게 되니 기분이 영 이상하다.

“마참지를 견뎌낸 자가 있다니…… 후후! 살과 뼈로 만든 사람이 맞나?”

마공관주가 허탈하게 말했다.

마참자에 들어가면 십중팔구 죽는다. 살아남은 십중일이도 미치광이가 된다. 무조건 죽거나 미친다. 제정신으로 마참지를 벗어난 자는 한 명도 없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 죽이는 것뿐이야.”

형당주가 침중하게 말했다.

마참지 형국이 끝난 이상, 이제 고문은 소용없다.

고문을 계속 이어갈 수도 없다. 마참지 형국이 끝나면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체력이 떨어진다.

계속 고문을 이어가면 죽는다.

더욱이 호발귀는 정신마저 흐릿해졌다. 형국에 굴복해도 혈마록을 적을 수 없다.

“더 진행하면 목숨이 위태롭다. 그럼 멈춰야지. 계속 하고 싶어도 방법이 없잖나.”

“음!”

형당주는 침음했다.

“대단하군. 지금까지 마참지의 고문을 이겨낸 자는 없었는데. 비자가 현장에서 수습하지 못하고 압송할 때부터 뼈마디가 억센 놈인 줄은 짐작했는데, 설마 마참지의 삼십육법(三十六法)과 팔독술(八毒術)을 견뎌낼 것이라고는.”

마공관주가 허탈하게 말했다.

마참지에서 호발귀에게 쓴 독이 흑살단 외에도 일곱 개나 더 있다. 이른바 팔독술, 여덟 가지 독을 개별적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혼합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금제술은 서른여섯 가지다.

각 금제술마다 뼈가 뒤틀리고, 오장육부가 찢어지는 고통이 뒤따른다. 고통이 일어나는 장소는 각기 다르지만, 머리가 띵띵 울리는 고통은 어느 것 하나 덜하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마공관주는 호발귀라는 존재를 잊어버리고 있었다.

형당주가 나타날 때는 기쁜 얼굴로 혈마록 열 권이 완성했다고 말할 줄 알았다.

그런데 한 권도 얻어내지 못했다.

이런 인간도 있었나? 삼십육법이 어떤 것인데. 팔독술이 어떤 혹형인데, 그걸 견뎌내나.

형당주 역시 이 상황을 말하는 게 괴롭다. 아니, 아직도 믿을 수 없다.

“가세. 어쨌든 보고는 해야지.”

두 사람은 몸을 일으켰다.

천살단은 천원(天院)과 살단(殺團)으로 구분된다.

천원은 내장(內莊) 역할을 하고, 살단은 외장(外莊) 몫을 맡는다.

일반 장원으로 구분하면 천원 원주가 내총관이고, 살단주가 외총관인 셈이다.

마공관과 형당은 천원 소속이다.

두 사람은 호발귀를 마참지에 들여보내기에 앞서서 천원 원주의 허가를 받았다.

유리도(琉璃刀) 주당염(周堂炎).

나이는 쉰 중반이다. 설산파(雪山派) 장문인의 사매이며, 성명절기는 섬도(閃刀), 일명 유리도다. 항상 온화하지만 사마외도에게는 나찰처럼 무섭다.

그녀가 당금 천원 원주다.

두 사람은 그녀에게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

“마참지 고문을 견뎌내요?”

천원주가 상당히 놀란 듯 음성이 높아졌다.

“목숨이 한계에 이를 때까지 비틀어보았습니다만, 견뎌냈습니다. 팔독술, 삼십육법이 제대로 먹혔는데 비명만 지를 뿐……”

형당주가 말끝을 흐렸다.

“그런데도 버텨냈단 말이죠?”

“네.”

“심공(心功)이군요.”

“넷? 죄송하지만 원주님. 마참지 시술은 심공으로 견뎌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단언합니다.”

형당주가 진중하게 대답했다.

마참지 고문은 고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시술이라고 말한다. 독약과 침을 이용해서 육체를 극한 상태까지 몰아붙이기 때문에 시술이라고 말하는 게 맞는 표현이다.

이런 시술에는 어떠한 심공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심공으로 심장마비를 막을 수 있나? 뇌혈관이 터지는 것을 막을 수 있나? 오그라지는 창자를 막을 수 있나?

팔독술은 인간이 의지로 움직일 수 없는 부분을 찢어놓는다.

“마공관주님,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관주님은 마참지 시술을 견뎌낼 수 있어요?”

“견디지 못합니다.”

마공관주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즉시 답했다.

“호호! 천살단에서 독심(毒心)으로는 관주님을 따라갈 사람이 없지 않을까요? 정말 지독하시잖아요. 그런 관주님이 견뎌내지 못한다면 누가 견디겠어요.”

마공관주는 대답하지 못했다.

정말 심공인가? 심공으로 마참지 독술을 이겨냈다고?

대저 심공이란 심신일체(心身一體)에서 우러나온다. 몸 따로, 마음 따로 가는 심공이란 있을 수 없다. 고요함을 생각하면 몸도 고요해지고, 광폭함을 생각하면 화도 불같이 일어난다.

심공으로 고문을 견뎌내는 건 가능하다.

심공을 사용하면 육신의 감각을 조정할 수 있다. 감각을 죽이면 고통도 사라진다.

불로 지지고, 몽둥이로 때리는 고문이라면 어느 정도 고통을 감쇄할 수 있다. 고통이 일어나는 부분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신경도 죽일 수 있다.

하지만 마참지 시술은 어디에서 고통이 발생하는지 알지 못한다.

독약이 주는 고통은 신체 전반을 꿰뚫는다. 육신 전체에서 일시에 고통이 일어난다.

신체의 모든 신경을 일시에 끊을 수 있다면 모를까, 불가능하다.

천원주가 말했다.

“팔독술 삼십육법을 다 썼다면 십 단계까지 갔다는 말인데, 당주님은 몇 단계까지 갈 수 있어요?”

이번에는 형당주에게 물었다.

“……”

형당주도 대답하지 못했다.

호발귀는 엄청나게 시달렸다. 아혈을 틀어막았는데도 비명을 흘릴 정도로 고통스러워했다.

심공을 펼쳤다면 고통스러워하면 안 된다.

웃는 얼굴까지는 기대하지 못해도 편안한 표정 정도는 지었어야 한다.

형당주는 심공이 아니라고 확신했지만, 천원주에게는 말할 수 없었다.

천원주는 마참지에 대해서 두 사람 만큼이나 잘 알고 있다.

그녀가 말했다.

“혈마록을 얻지 못했다니. 흠! 이런 경우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곤란하네요. 혈마록을 가져오려고 십육비자가 세 명이나 목숨을 내놓았는데.”

“죄송합니다.”

“당주님, 그 사람을 데려오세요. 제가 만나볼게요.”

“괜한 헛수고 같습니다. 마참지 곤욕까지 당했으니 어떤 협조도 하지 않을 겁니다. 정 만나시겠다면 나중에 다른 상황을 만들어서 만나시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합니다.”

마공관주가 말했다.

“처음에 그 사람이 무엇을 요구했죠?”

“네?”

“요구 조건이 세 가지였다고 들었어요. 황수를 건널 것, 안전을 보장할 것, 혈마록 한 권에 백 냥. 맞죠?”

“요구는 세 가지지만, 결국은 살려달라는 말 아니겠습니까?”

“살려 달라. 그럼 살려줘야죠.”

“원주님!”

“호발귀는 마참시술을 견뎌냈어요. 그럼 이제 어쩔 생각이세요? 더 진행하면 죽을 것이고. 혈마록은 머릿속에 있고.”

“……”

두 사람은 말을 못 했다.

대답이 너무 뻔한 말인데, 할 말이 없다.

원주가 말했다.

“데려와요. 호발귀를 어떻게 할 건지는 나중에 결정하고, 우선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요.”

호발귀는 걷지 못했다. 그래서 들것에 실려 왔다. 앉지도 못한다. 그래서 등받이를 대주었다.

몸은 이상이 없다. 손발에 묶었던 흔적이 시커멓게 남아있지만, 고문받은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분명히 이상이 있다. 호발귀가 정신을 놓은 듯 멍청해 보인다.

“고생 많았어.”

원주가 애처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미가 자식에게 말하듯 부드러운 말이다. 전장에서 돌아온 자식을 보듬어 안는 듯 따뜻함이 스며있다.

호발귀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가끔 손발을 부르르 떨었다. 어깨를 들썩이기도 했다. 두 눈이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고, 머리도 제대로 세우지 못해서 툭툭 떨어졌다.

마참지 시술의 후유증이다.

“난 천원 원주야. 단주는 아니지만, 웬만한 일은 처리할 수 있어.”

“……”

“혈마록을 줬으면 해. 그것 때문에 죽은 사람이 많아.”

“큭큭! 큭큭큭!”

호발귀가 키득키득 웃었다.

갑자기 어깨를 위로 들었다가 놓는다. 고개를 옆으로 툭 떨궜다가 다시 일으킨다. 본인은 웃고 싶지 않은데, 자신도 모르게 실실 웃음이 흘러나오는 것 같다.

후유증이 매우 심하다.

‘정상이 아니야.’

호발귀의 상태는 누가 봐도 염려스럽다.

“살…… 려…… 줘.”

호발귀가 어긋나는 입술을 간신히 맞춰가며 힘들게 한 마디씩 끊어서 말했다.

“비급이 먼저. 비급을 주면 살려줄게. 약속해.”

원주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녀는 정말 살려줄 것 같다. 약속도 틀림없이 지킬 사람이다. 믿음이 확 간다.

“큭! 큭큭!”

호발귀가 느닷없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노야…… 왕…… 소…… 동패…… 살…… 려줘.”

“……!”

순간, 원주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살려달라기에 자신의 목숨을 살려달라는 줄 알았는데, 죽은 자들을 살려내란다.

원주가 차분하게 말했다.

“사마외도를 막기 위해 평생을 희생한 사람들이 있어. 그 사람 중 다섯 명이 이번 일에 투입되었고, 세 명이 죽었어. 세 명 모두 시신도 못 찾았고.”

“킥킥! 킥!”

호발귀가 시도 때도 없이 키득거렸다.

원주는 무시하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가져온 물건인데, 그런 걸 손대면 어떻게 해?”

“킥! 킥킥킥!”

“그리고 노야, 왕소, 동패. 우리가 죽인 게 아니잖아. 혈천방 귀무살이 죽였어.”

원주가 가까이 다가와서 호발귀의 눈을 들여다봤다.

눈과 눈이 마주쳤다.

호발귀는 극도로 분노해있다. 화를 참지 못해서 미치겠다는 표정이다. 몸만 편하다면 당장이라도 덤벼들 기세다.

이미 복수의 화신이 되었다.

그녀가 말했다.

“죽은 자는 살려낼 수 없어.”

“킥! 킥! 킥!”

호발귀가 웃었다.

눈동자는 이미 풀렸다. 천정을 쳐다보다가, 바닥을 본다. 그녀를 봤다가 주변을 돌아본다.

눈길이 매우 불안하다.

옆에 있는 사람들이 조금만 움직여도 몸을 움찔거린다.

고문 후유증인 것 같은데, 모든 사람을 두려워한다. 이미 공포라는 틀에 갇혀 버렸다.

그런데도 죽은 사람을 살려내라고 말한다.

마음 깊숙이 묻혀있는 원한이 공포를 뚫고 입 밖으로 흘러나온 것 같다.

호발귀는 지금도 정신을 차리려고 애쓴다.

무엇인가 할 말이 많은 듯 입술을 연신 달싹거린다. 하지만 말이 되어서 나오지는 않는다.

원주는 호발귀가 애쓰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

“천천히, 천천히 말해도 돼. 서둘지 말고. 안전은 보장하니까 마음 푹 놓고.”

“비, 비급…… 돌려준…… 다. 살려준…… 다면…… 다 살아본…… 후에. 멀쩡한 몸으로…… 마음껏…… 살아본…… 후에. 킥킥! 킥킥킥!”

원주가 호발귀를 한참 쳐다봤다.

“흠! 그것도 한 방편이겠네.”

천원주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뜻이 그렇다면 그것도 좋을 것 같아. 형당주, 호발귀를 참회동(懺悔洞)에 넣어요.”

“원주님! 그건 안 됩니다!”

마공관주가 털썩 무릎을 꿇으면서 말했다.

“워, 원주님, 고문은 비급을 얻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참회동에 넣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차라리 죽이시는 게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형당주도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혔다.

원주가 그들을 보면서 말했다.

“호발귀가 자기 입으로 말했잖아요. 다 살아본 다음에 돌려주겠다고. 풀어줄 수도 없고. 어디로 도망가도 곤란하고. 참회동에서 살면 안전도 보장되고, 도망갈 우려도 없고 좋지 않아요?”

“원주님, 전체 회의를 요청합니다!”

마공관주가 침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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