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四章 배수 짓을 한 대가(4)
침묵은 계속 이어졌다.
황수를 건너와서 마차로 갈아탔다. 그 외에는 바뀐 것이 없다. 가끔 전서구가 오가고, 식사 때가 되면 마혈과 아혈이 조금 풀리고, 그리고는 또 침묵이다.
마차가 멈춰 섰다. 그리고 문득, 몸이 들렸다.
척! 척! 척! 척!
걸음을 걸을 때마다 몸이 출렁거린다. 위로 쳐들렸다가 밑으로 뚝 떨어지는 느낌이다.
‘지하? 하나, 둘, 셋, 넷……’
호발귀는 몸이 출렁거릴 때마다 숫자를 세었다.
계단이 무려 백여 개에 이른다.
온도도 많이 달라졌다. 위는 서늘한데, 밑으로 내려오자 후덥지근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았다.
‘여긴 또 어디야?’
그는 낯선 곳으로 끌려왔다.
그를 데려온 비자는 온다간다 말도 없이 사라졌다. 마차째 이들에게 건넨 채.
처벅! 처벅! 처벅! 처벅!
여러 사람이 걸어온다. 딱딱한 돌바닥을 밟은 소리가 은은하게 울린다.
동굴, 공동(空洞)에서 발생하는 독특한 소리다.
“나다.”
걸어오던 사람 중 한 명이 말했다.
차차차차착! 차차착!
쇠붙이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병기 울림이다. ‘나다’라는 말 한마디에 적어도 서른 자루 이상 되는 병기가 치워졌다.
‘여기…… 호굴(虎窟)이다!’
호발귀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호랑이 굴에 들어왔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살아서 나가지 못한다.
처벅! 처벅! 처벅! 척!
여러 사람이 걸어와 그의 앞에 섰다.
“이 자인가?”
“네.”
“혈마록 열 권을 외웠다고?”
“네.”
“고어를?”
“팔비자님께서 확실하게 확인하셨다고.”
“열 권. 음. 한 권을 받아냈으니 아홉 권 남았다. 글자 한 자 빠짐없이 캐내도록.”
“알겠습니다.”
호발귀는 거기까지밖에 듣지 못했다.
느닷없이 목 뒤에서 강한 압점을 느꼈다. 누군가가 강하게 혈을 눌렀다. 그리고는 바로 혼절했다.
척! 착! 스읏!
호발귀는 의자에 앉혀졌다.
얼굴을 가렸던 복면도 벗겨졌다. 그러자 희미한 불빛이 작은 화살이 되어서 눈에 꽂힌다.
호발귀는 눈을 뜨려다 말고 다시 감았다.
너무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작은 유등(油燈) 불빛에 눈이 시릴 정도라면, 시간이 적어도 보름 이상은 지난 것 같다.
그는 실눈을 떠서 빛에 적응했다.
“날뛰지 마라. 묻는 말에만 대답해라. 또 묻는 말에는 반드시 올바르게 대답해라. 이 규칙을 깰 때마다 뼈가 부러진다. 경고는 없다. 용서도 없다.”
“아니, 당신들이 누군데…… 아악!”
호발귀는 말을 하다 말고 벼락같이 비명을 내질렀다.
우둑!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왼손 새끼손가락이 단번에 부러졌다.
‘이놈들!’
호발귀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곳이 천살단인가? 천살단은 마(魔)에 대응하는 정도 최강집단이라고 들었는데, 이곳이 정말 천살단 맞나?
손가락을 꺾은 자는 무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칠고 천박하다. 사파 인물과 다를 바 없이 협박하고, 길거리 파락호처럼 손가락을 분질렀다.
“혈마록 열 권을 외웠다고?”
“약속한 게 있는데……”
“무슨 약속? 언제 나와 만난 적이 있었나?”
무인이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호발귀는 입술을 비틀어서 억지 미소를 흘렸다. 이 자들이 어떤 식으로 할 것인지 대충 짐작된다.
“날 잡은 그 비자. 사내 비자. 그 사람이 혈마록을 언급하면서 머리를 세게 쳤는데, 희한하게도 머릿속이 텅 비면서 외운게 사라지는 거야. 그래서 한 권을 잃어버렸어. 그런데 지금 또 손가락이 부러지면서 한 권이 사라지네? 어쩌려고 그래?”
“후후후! 그런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잊어버린 것을 되살리는 데는 전문이라서.”
“정말 그럴까? 내 머리는 화가 날수록 멍청해지는 것 같더라고. 뭘 자꾸 까먹어.”
“두고 보면 알겠지.”
“그때는 너무 늦지 않을까? 모두 다 잊어버리면.”
“너, 진짜 이름은 없고. 호발귀. 뒤따를 호(扈). 가물귀신 발(魃). 그림자 귀(晷). 귀신처럼 움직인다는 뜻인가? 나이는 스물하나. 열다섯에 날수수 밑에 기어들어 가서, 열여덟에 실전 투입. 시작한 지 삼 년 정도 됐군. 그런데 십삼비자의 이목을 따돌리고 혈마록을 빼낼 정도. 언제 솜씨 한 번 보지.”
무인이 호발귀의 이력을 쭉 나열했다.
그가 말한 것은 간단한 신상명세다. 하지만 이 정도를 알아내려면 강하 사람을 거의 다 만나봤어야 한다.
아니, 그 이상이다. 강하 사람은 그의 한자 이름을 모른다. 모두 호발귀라고 불러대지만, 뜻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사람은 없다. 도대체 한자 이름을 어디서 알았을까?
동냥하던 거지를 사부가 데려갔다. 그때 나이가 열다섯 살이다. 그런데 이 나이, 사부가 정해준 것이다.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오직 동냥하던 기억밖에 없는데 어떻게 나이를 알겠나. 사부가 ‘넌 열다섯이다’라고 말해서 나이가 정해졌다.
이 자들, 정보력이 대단하다.
“조사 많이 했네?”
“날수수는 투심문 이십일대 도주. 이게 있으니 네가 이십이대인가?”
무인이 호발귀 목에 걸린 동패를 들어 보였다.
“난 그런 거 몰라. 줘서 받기는 했는데, 그게 뭔지도 모르겠고. 여긴 손님 대접이 원래 이래?”
“여기는 마참지(魔塹地)다.”
‘마참지? 이름 한번 지독하네.’
호발귀는 속으로 혀를 찼다.
마참지란 마귀들의 구덩이란 뜻이니, 곧 마귀들을 잡아 죽이는 곳이다.
무인이 말했다.
“이곳은 마와 극성이야. 마라는 놈은 땅에 묻혀버리지. 네 마음에 마가 끼었다면, 너도 땅에 묻힐 것이다.”
“내가 비자에게 내건 조건 중 두 번째가 안전 보장이야. 내 안전에 대한 확답을 들어야겠는데? 자꾸 협박만 당하니 자꾸 기억력이 사라져. 지금도 한 권이 가물거리는 게, 곧 잊어버릴 것 같아.”
“다 잊어버려도 괜찮다. 그런 거에 너무 부담 느끼지 마라. 잊어버릴 건 억지로 붙잡아도 잊어버리고, 생각날 건 머리를 두엄 속에 파묻어도 생각나는 법이지. 혹여 생각나거든 기술하고, 아니면 어쩔 수 없고.”
무인이 작은 나무 상자를 열었다.
‘이놈들이 정말 고문을!’
호발귀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지금부터 살이 찢기고 뼈가 부러질 것이다.
“크윽! 크윽! 끄으윽!”
호발귀는 사지를 바동거리면서 발발 떨었다.
온몸의 근육이 갈가리 찢겨나간다. 뼈가 가루가 되어 흩날린다. 오장육부는 억센 힘에 비틀린다.
이제 죽는구나 싶어서 몸을 쳐다보면 아무렇지도 않다. 그런데 고통은 쉬지 않고 달려든다. 육신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있지 않은가.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뼈가 부러지는 것처럼 아프다. 인내력이 한계를 넘어선다.
“으으……!”
입에서 침이 질질 흐른다.
콧물도 뚝뚝 떨어진다. 아까는 바지에 오줌도 지렸다. 그냥 툭 쏟아졌다.
마참지라는 말을 들었을 때, 대충 고초가 있을 줄은 알았다.
참기 힘들 정도로 힘든 고문을 당할 것이다. 발갛게 달군 인두로 살을 지질지도 모른다. 정말 그럴까? 그래도 정도인인데 그런 고문을 할까?
이들은 정도인이 아니다.
몽둥이로 두들겨 팬다거나, 손톱을 뽑는다거나 하는 세상에 알려진 고문은 사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주변만 둘러봐도 알 수 있다.
마참지에는 고문 도구가 일절 없다.
의자 한 개.
이것이 마참지에 있는 집기의 전부다.
아! 작은 목함, 나무상자가 있었다. 그 속에서 검은 단환을 꺼내 입에 틀어넣었다.
단환은 달콤했다.
꿀로 버무렸는지 입에 들어가자마자 아무 저항감 없이 스르륵 녹아내렸다.
그런 후, 숨 막히는 고통이 휘몰아쳤다.
심장이 뚝 멎었다가 다시 뛴다. 심장이 멈출 때마다 숨을 쉴 수 없어서 헐떡거렸다. 멧돼지가 달려들어서 뱃살을 뜯어먹는 것 같다. 살을 파먹고 내장도 씹어먹는다.
“끄으으윽!”
호발귀는 이를 악물면서 비명을 내질렀다.
흑살단(黑殺丹)은 독약이다.
혈맥을 조이기도 하고, 느슨하게 풀어주기도 한다. 심장을 조였다가 풀어준다. 장염에 걸렸을 때처럼 창자를 뒤틀리게 하고, 신경을 마비시키고도 하고 경직시키기도 한다.
혈관에 불도 붙인다.
온몸이 생으로 태워지는 듯한 고통을 느낀다. 지옥에 열화지옥(熱火地獄)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떨어진 느낌이다. 너무 뜨거워서 미칠 것이다.
죄수는 온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받는다.
숨도 막힌다.
얼굴을 물속에 처박아 넣을 때처럼 가슴이 꽉 막힌다. 너무 답답해서 스스로 가슴을 할퀴는 자도 있다.
거기에 사근멸지법(絲筋滅吱法)까지 사용한다.
세근(細筋)이 갈가리 찢어진다. 찢어진 곳에서 맷돌로 가는 듯한 통증이 일어난다.
아혈을 점하지 않고 사근멸지법을 시행하면 목청이 터져나간다.
고골승천법(枯骨昇天法)도 있다.
고골이란 죽은 뒤에 살이 썩고 남은 뼈를 말한다. 갈아서 하늘로 올려보내야 한다.
뼈마디가 또각또각 끊어진다.
살점이 떨어져 나간다.
남은 뼈가 불에 태워진다.
한 가지 법에 이 모든 고통이 담겨 있다.
천살단 형당은 고문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단약 하나와 혈도를 봉하고 폐하는 금제술 몇 개, 혹은 침 몇 개로 이 모든 고통을 맛보여 준다.
죄수에게 일어나는 고통은 환상이 아니다. 실제로 일어나는 고통이다. ‘사지가 절단되는구나’하는 것은 느낌이지만, 그에 준하는 고통은 진짜다.
모든 고통이 생생하다.
아예 미친다.
그렇다. 미치고 싶다. 이런 고통을 받느니 차라리 미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설마 미친놈까지 고문할까.
“죽겠다. 쉬었다가 하지.”
“지독한데요. 이 정도면 벌써 불어야 했는데. 흑살단을 좀 과하게 썼는데,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좀 쉬었다가 네 개로 늘려.”
“네? 그럼 죽습니다.”
“늘려.”
“아, 알겠습니다.”
“머릿속에 담긴 것을 모두 적게 만들어. 무슨 일이 있어도 다 캐내. 알았어!”
형당주가 무섭게 말했다.
* * *
어느 순간, 고통이 아련해졌다.
몽(夢)!
꿈이다. 이건 현실이 아니라 꿈이다.
잠에서 깨어나기만 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거다. 그런데 왜 아프지? 가위 눌렸나? 숨도 답답해.
- 은호(隱呼), 망흡(忘吸). 일층우일층적몽경(一層又一層的夢境).
내쉬는 숨을 숨겨. 들이쉬는 숨은 잊어.
가만히, 조용히, 꿈을 지켜봐. 꿈에 휘둘리지 말고, 꿈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네 모습을 봐.
그는 깊이깊이 들어갔다.
날수수는 배수의 기본이라며 이 수법을 가르쳤다.
먼저 고요한 적경(寂敵)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 옆에서 사람이 죽어도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이런 상태가 된 후에야 배수 짓을 하라고 당부했다.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고요한 적경 상태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때는 기회가 아무리 좋아도 배수를 해서는 안 된다.
원충노인의 팔십일수에도 이 말이 있다.
당연하다. 사부의 모든 것은 원충노인의 팔십일수에 근거한다.
소매치기에 사용되는 수법들 모두가, 손가락의 움직임까지도 팔십일 수에서 말한 것이다.
무심무실공(無心無實功).
팔십일수의 첫 번째 장에 쓰여 있던 글자다.
무심무실공이 자연스럽게 전신으로 유포되었다.
고통에 흔들리는 육신을 버리고, 정신을 맑고 고요한 적경 속으로 밀어 넣는다.
전신에서 일어나는 고통을 제삼자의 눈으로 지켜본다.
“끄으윽! 끄으으으윽!”
입에서는 여전히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아프지 않다.
입으로는 신음이 쏟아지는데, 이상하게도 아프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투심문은 문(門)이라는 말을 쓰지만, 문파가 아니다.
문도도 없고, 문규도 없다. 그저 선대에서 후대로 대를 이어서 전승될 뿐이다. 문파에 대한 자긍심도 없고, 굳이 맥을 이어야 한다는 의무감도 없다.
처음 시작은 그렇게들 한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나이가 들면 투심문에 모든 것을 바치는 열혈 도둑놈이 된다.
노야가 그렇다. 나이 구순을 넘기면서까지 오직 투심문만을 생각한다. 사부가 그렇다. 투심문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도 미련 없이 내놨다.
‘그냥 투심문 무공이라고 말하지. 치잇! 오래 속이지도 못할 거였으면서.’
이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원충노인의 팔십일수는 무공이다.
자신이 배웠던 모든 배수 짓이 바로 무공이다.
심공(心功), 신법(身法), 보법(步法), 권각술(拳脚術), 지법(指法), 수공(手功), 내상을 입으면 치료하는 요상법(療傷法)까지 모든 무공이다.
팔십일수는 그냥 읽으면 배수 짓밖에 안 보인다.
겉에 포장된 꺼풀 하나를 벗겨내야만 하얀 속살을 내보인다.
‘인식 변화’가 바로 포장된 꺼풀을 벗겨내는 도구다. 배수에 관한 생각을 완전히 버리고, 오로지 무공을 접한다는 생각으로 달려들어야만 속살이 보인다.
은호, 망흡.
내쉬는 숨을 숨긴다. 들이쉬는 숨을 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