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四章 배수 짓을 한 대가(3)
열 명이 책상에 앉아서 책을 살폈다.
그들은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았다. 머리를 묶은 끈이 유일한 외부 물체다.
그들은 두 손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있다.
어떤 경우에도 손을 책상 아래로 내려서는 안 된다. 실수로 물건을 떨어트리면 벽에 붙어서 있는 사람이 다가와서 주워준다. 그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벽에 달라붙어 있는 사람도 발가벗었다.
그들은 책상에 앉은 사람을 한 사람씩 맡아서 지켜본다. 그들이 필요한 게 무엇인지 살펴서 대신 일 해준다. 그들이 보는 책에 눈길을 주면 안 된다. 절대로 책상 위를 쳐다보면 안 된다.
촤르륵!
발가벗은 사람이 책장을 넘겼다.
그들은 책을 읽고 있지 않다. 읽은 것은 금지된다. 오직 책 상태만 살핀다.
중간에 파손된 부분은 없는지, 낱장이 뜯어져 나가지는 않았는지, 물이나 불의 침범을 받은 부분은 없는지, 더러운 오물이 묻지는 않았는지……
모든 부분을 점검한 후, 기록지에 꼼꼼히 적었다.
책을 다 살펴봤으면 두 손을 깍지껴서 머리 위로 올리고 눈을 감는다.
점검이 끝났다는 소리다.
한 명, 두 명…… 손을 들어 올리는 사람이 많아졌다.
드디어 마지막 남은 한 명까지 깍지 낀 손을 머리 위에 올리고 눈을 감았다.
“끝났습니다.”
벽에 붙어 있던 사람이 보고했다.
“수고했다.”
마공관주(魔功館主)가 고개를 끄덕였다.
“집어넣겠습니다.”
“그래.”
“그러지.”
마공관주와 형당주(刑堂主)가 동시에 말했다.
지하 밀실에 마공 비급을 출입시킬 때는 반드시 두 명이 동의해야 한다. 마공관 주인인 마공관주와 계율을 관장하는 형당주가 마공 비급을 같이 관리한다.
이 부분은 불변이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마공 비급을 꺼내지 못한다. 또 반대로 들이지도 못한다.
이번에는 반입(搬入)이다.
밖에서 수거한 마공 비급을 점검했고, 상태를 기록지에 남겼다.
그들은 지하로 들어섰다.
젊은 무인이 길을 밝히기 위해서 횃불을 들고 앞장섰다. 그 뒤를 마공관주가 걸었고, 마공관주 뒤에는 비급 육십 권을 든 무인 여섯 명이 뒤따랐다.
형당주는 제일 뒤에서 걸어왔다.
계단을 내려서자마자 묵직한 철문이 나타났다.
“열겠습니다.”
무인이 열쇠를 꺼내서 자물쇠를 풀었다.
찰칵!
자물쇠 한 개가 풀어졌다.
마공관주이 열쇠를 꺼내서 자물쇠 하나를 풀었고, 형당주가 마지막 자물쇠를 열었다.
그르르릉!
철문이 묵중한 울림을 토해내며 열렸다.
지하 밀실에는 비급 삼백여 권이 쌓여 있다.
대부분이 마경이다. 정종무공 중에서 지하 밀실로 내려온 것은 삼십여 권에 불과하다.
정종 무공은 무엇인가? 또 마공은 무엇인가? 이 기준을 정하기가 상당히 난해하다.
무공의 본성은 두 가지다. 하나는 심신 수련이고, 또 하나는 살상이다. 이 두 가지 본성을 고루 갖추어야만 뛰어난 절정 무공이라고 할 수 있다.
심신수련에만 치중하면 도인술(導引術)이 된다. 살상에만 치중하면 마공이 된다.
이 두 가지를 가르는 건 오로지 사람의 생각이다.
범인(凡人)의 눈에는 금강권이나 마령권(魔靈拳)이나 똑같게 보인다. 범인은 바위를 깨트릴 수 있는 금강권도 무섭다. 꼭 마령권만 무서운 게 아니다.
범인이 보는 무공과 무인이 보는 무공은 차이가 크다.
무공을 옳게 쓰면 정공(正功)이요, 나쁘게 쓰면 마공인가? 그런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무공 자체는 정마(正魔)가 분명하다. 극악한 사람이 사용해도 정종 무공은 마공이 아니다.
마공을 구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그중 가장 뚜렷한 것 중에 하나다. 수련 방법으로 정마를 구분하는 것이다. 수련하는 방법이 극악하면 마공이다. 타인을 해치면서 수련하면 마공이 된다.
하지만 이런 구분도 경계가 모호하다.
정공도 타인을 꺾으면서 수련한다. 꺾는 과정에서 상대방을 죽일 경우도 있다.
그러면 마공인가?
지하 밀실에 있는 비급은 마공이다.
정공과 마공의 구분은 단주, 천살단주가 한다. 역대 천살단주가 구분했고, 지금의 천살단주가 하고 있다. 그분의 안목으로 봤을 때, 몹쓸 무공이라고 판단된 것들이다.
이 무공이 왜 여기에 있어야 하나?
그런 질문을 하려면 적어도 천살단주와 비등할 정도로 강해야 한다. 약한 자의 눈에는 안 보이는 것도 강자의 눈에는 보인다. 그리고 천살단에서 최강자는 단연 천살단주다.
“칠혈독검경(七血毒劍經).”
마공관주가 기록지를 읽었다.
비급 열 권을 들고 있던 무인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무인은 그가 들고 있는 열 권 중에서 칠혈독검경을 골라내어 서가(書架)에 놓았다.
“정리 다 했습니다.”
젊은 무인이 말했다.
“매번 상당한 책이 들어오는데, 그래도 끝이 안 나는군.”
마공관주가 어두운 신색으로 말했다.
“혈마록도 곧 도착할 예정입니다.”
“그건 아직 마공이라고 할 수 없다. 비급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판에. 말을 할 때는 신중하도록.”
“죄송합니다. 혈천방 무공이라서 당연히 마공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인이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그놈…… 비급을 외우고 불태웠다고?”
문득, 형당주가 생각난 듯 물었다.
“음. 그렇게 보고받긴 했어.”
“비급을 외우고 불태웠다. 하하! 말은 쉬운데 그게 가능한가? 하루에 비급 열 권을 외울 정도라면, 천재 중 천재 아닌가. 그것도 혈마록을? 이봐, 자넨 외울 수 있나?”
형당주가 젊은 무인을 보며 말했다.
“……”
무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천살단에는 많은 무인이 있다.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누구도 단 하루 만에 비급 열 권을 외운 자가 없다. 그런 시도도 해보지 않았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면, 한낱 소매치기라도 머리 하나만큼은 인정해줘야 한다.
그런데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또 있다.
혈마록은 고어로 쓰여졌다. 글을 읽지 못한다. 그러면 글을 모르는 자가 글을 외웠다는 것인데, 그럴 수가 있나? 글을 모르는 자가 어떻게 비급을 외워? 그것도 하루 만에 무공비급 열 권을 획순 하나 안 틀리고 달달 외워? 그게 외워져?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비자가 현장에서 처리하지 못하고 압송하는 걸 보면 보통내기가 아닌 것 같아.”
“그렇겠지.”
형당주와 마공관주는 마공관에 반입된 마공 육십 권에 대한 기록지를 살피며 말했다.
어떤 무공이 반입되었으며, 상태는 어떤지 최종적으로 점검한다.
이후, 두 사람이 각기 날인하면 마경 육십 권은 정식으로 천살단 수장고에 보관된다.
마공관주가 기록지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십삼비자의 눈을 속이고 비급을 가로챘다. 배수라고는 하지만 대단한 솜씨. 정말 그게 가능한지 한참 생각했는데, 역시 불가능해. 기이한 놈이야.”
“투심문이잖나. 가능할 수도 있지.”
“그래서 더 인정하기 힘들어. 투심문의 잔재주가 비자의 살인적인 감각을 속였다는 게.”
“변수가 있었겠지.”
두 사람은 무심히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투심문은 아는 사람만 안다. 아는 사람은 무림 제일 신투로 투심문을 꼽는다. 모르는 사람은 신투 갈천위를 거론한다.
두 사람은 투심문을 안다.
투심문 비기라면 십삼비자가 당할 법도 하다고 생각한다.
형당주가 말했다.
“놈이 오면 형당 아니면 마공관에서 맡아야 하는데, 우리가 맡는 게 어때? 아무래도 비급을 받아내는 면에서는 우리가 낫지 않을까 싶은데.”
“다 점검했어. 날인하지.”
마공관주는 대답을 회피하고 먼저 지장을 찍었다.
* * *
동굴을 나선 후부터 줄곧 마혈을 제압당한 채 운반되었다.
철썩! 철썩!
물이 뱃전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바깥 풍경을 볼 수는 없지만, 배를 탔다고 생각한다.
‘황수를 건넌다!’
희한하다. 황수를 건널 때까지 귀무살이 나타나지 않는다.
‘뭐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천살단 비자가 이 정도야? 하! 귀무살이 최고인 줄 알았더니.’
호발귀는 궁금한 점이 있어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사내가 마혈을 찍으면서 아혈(啞穴)까지 찍었다.
호발귀가 조용히 가기를 원한다.
사내 탓을 할 수는 없다. 자신이 비급을 적어주는 조건으로 내건 게 황수를 건너가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방법으로 건너가더라도 할 말이 없다.
몸은 두 사람이 움직여주고 있으니 됐고, 마혈과 아혈을 찍혔으니 움직일 수 없고, 얼굴을 복면으로 뒤집어씌웠으니 바깥 구경도 할 수 없고, 할 수 있는 것은 생각뿐이다.
호발귀는 아예 긴장을 풀어버리고 원충노인의 팔십일수를 참오했다.
삼마돌각수(三魔突角手)!
삼마돌각수는 지법(指法)으로 사람 목젖을 꿰뚫는다.
천돌혈(天突穴)!
엄밀히 말하면 삼마돌각수는 삼마돌각지가 되어야 한다. 수공(手功)이 아니라 지법(指法)이다. 그런데도 수라고 명명한 것은 지법을 사용해서 타격하지만, 결국은 관수(貫手)로 찌른 것처럼 손 전체를 관통시키기 때문이다.
이것이 돌각수다.
삼마(三魔)란 같은 초식을 사용하는 세 가지 방법을 말한다.
초식은 하나인데, 다른 사람이 보면 전혀 다른 초식을 구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이런 착각이 일어날까?
타격점은 한 군데, 천돌혈이다. 그러나 지력이 흘러오는 길은 만변(萬變)이다. 어느 곳에서든 공격할 수 있다. 위치 변화가 상당히 자유롭다.
위에서, 옆에서, 아래에서.
공격이 시작되는 위치가 다르다. 위치가 다르니 당연히 공격 형태도 달라진다. 타격점을 노리는 수법도 위치에 따라서 약간 차이가 난다.
이런 점들이 같은 초식을 전혀 다른 초식처럼 보이게 만든다.
삼마돌각수는 강공(强攻)이다.
거센 물살이 협곡으로 밀려들듯이, 진기가 손가락으로 빨려들기 시작해서 공격 부위에 이를 때는 온몸의 진기가 일시에 터져버리는 광폭함!
삼마돌각수는 일단 펼치면 본인조차도 거둘 수 없는 살인비공이다.
‘어떻게 이런 무공이!’
호발귀의 안색이 미미하게 꿈틀거렸다.
원충노인의 팔십일수는 배수를 위한 공부다. 소매치기에 필요한 손놀림을 모아놨다.
삼마돌각수의 원래 진의(眞意)는 속임수다.
눈앞에 양손이 드러나 있다. 드러난 손은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사이, 암수(暗手)가 움직인다. 상대방의 눈을 속인 손이 물건을 훔쳐낸다.
양손을 이용한 속임수가 분명하다.
그런데 삼마돌각수를 무공 측면에서 풀이하자 이상한 무공이 되었다. 아주 강력한 강공으로 돌변했다.
팔십일수가 이렇게 변할 것이라고는 호발귀조차도 몰랐다.
‘팔십일수, 이거…… 무공이다!’
단순한 손놀림이 아니다. 절정 무공이다. 삼마돌각수는 치명적인 살인 비공이다.
한낱 손놀림인 줄 알았는데, 그게 어떻게 해서 무공이 되었을까?
팔십일수를 다시 생각하되, 이번에는 무공이라는 생각을 가지도 접근했다.
팔십일수는 무공이다. 어떤 무공인지 실체를 드러내라!
꾸루룩! 꾸룩!
비둘기 소리가 들렸다.
여인이 무엇인가를 적는지 화선지에 붓 닿는 소리도 들렸다. 진한 먹 냄새도 풍겼다.
‘전서구를 이용한다면, 황수를 건너온 거야!’
정말로 귀무살 손을 빠져나왔다.
이제 비급은 천살단 것이다. 그가 태우지 않았다면 벌써 비자 손에 넘겨졌다.
꾸루루루룩!
전서구가 날아갔다.
호발귀의 손에 찐빵이 쥐어졌다.
이때, 마혈이 약간 풀린다. 두 다리는 움직이지 않고, 손과 입만 움직인다.
“황수를 건너온 거야?”
“입 다물어. 굶기 싫으면.”
호발귀는 입을 다물었다.
이 자들은 정말 아혈을 막는다. 굶는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니 찐빵이라도 얌전히 먹는 게 낫다.
‘황수를 건너자마자 비급을 써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어디 보자고. 어디까지 데려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