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四章 배수 짓을 한 대가(1)
쒜엑! 쒜에엑! 쒜엑!
손과 손이 엇갈린다.
여인은 연환권(連環拳)을 사용했다.
일 권이 이권으로, 이권이 삼권으로, 삼권이 사권으로 계속해서 이어진다. 상대에게 반격할 틈을 주지 않고 연속적으로 권력(拳力)을 쏟아냈다.
침상 밑에서 튀어나온 호발귀는 과도로 연환권을 맞받았다.
쒝! 쒜엑! 쒝!
과도가 여인의 주먹 안쪽, 완맥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어제혈(魚際穴), 태연혈(太淵穴), 경거혈(經渠穴)…… 독사가 손목을 물겠다고 달려든다.
‘정확하게 혈도만 노리고 있어! 이놈이 무공을!’
호발귀가 사용하는 무공은 중원 무공이 아니다. 사권(蛇拳)과 흡사하면서도 아주 다르다.
우르르릉!
여인이 권법을 변형시켰다.
연환권을 거두고 파쇄권(破碎拳)을 떨쳐냈다.
권을 뻗을 때마다 광풍이 몰아쳤다. 우렛소리가 요란스럽게 방안을 뒤흔들었다.
호발귀는 감히 맞받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내공은 극악.’
초식 변화는 날카로운데 정심한 내공을 닦지 않았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놈이다. 내공도 없는 놈이 초식을 능숙하게 구사하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제 장난은 그만!”
여인을 따라서 급하게 덮쳐온 사내가 맹렬히 일 권을 쳐냈다.
쉬잇!
여인을 공격하던 과도가 방향을 바꿔서 사내를 내리찍었다. 이번에도 손목에 있는 혈도를 노렸다.
“어디서 한눈을!”
여인이 비웃듯이 말했다.
호발귀는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여인과 싸우는 와중에 목표를 바꿨다. 여인조차도 완벽하게 제압하지 못했으면서 다른 자를 상대하려고 한다.
우르릉! 우르르릉!
귓가에 뇌성벽력이 들렸다. 여인이 쳐낸 권력이다. 아니, 이미 복부에서 격렬한 통증이 일어났다.
“크윽!”
호발귀는 고통스럽게 비명을 내질렀다.
맷집 하나는 타고났다고 자부했는데, 여인의 주먹은 맷집으로 상대할 수 없는 흉기다.
그는 풀썩 꼬꾸라졌다.
사내는 쓰러진 호발귀를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일초지적(一招之敵)? 누가 봐도 그런 말을 할 상대다.
사실이 그렇다. 십육비자는 간자이지만 무공도 상당하다. 무공이 약하면 간자 일도 제대로 못 한다. 귀무살이나 일파의 문주 정도 되는 자와도 서슴없이 싸울 수 있어야 한다.
비자에게 배수는 한주먹거리도 안 된다.
만약 비자와 배수가 싸운다면, 배수에게 판돈을 걸 미친놈은 세상천지에 없다.
그런데 방금 십육비자 중 두 명이 배수 한 명과 손속을 겨뤘다.
실제로 싸워보니 어떤가? 일초지적인가? 놈을 일 초 만에 끝내려면 연환권에서 끝냈어야 한다. 파쇄권으로 변초(變招)하고, 진기까지 끌어올린 후에야 제압했다.
놈이 사용한 수법은 무엇인가?
과도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칼을 들기는 했지만, 병기라고 할 수 없다.
철저하게 혈도만 공격한 무공이 기막히게 좋다.
무림에는 혈도만 타격하는 무공이 있다. 놈이 사용한 무공이 그런 종류인 것 같은데…… 내력이 형편없으니 위세는 강하지도 억세지도 못했다. 하지만 정확성이나 변초의 빠름은 일류고수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뛰어났다.
“배수가 이런 무공을 사용하다니, 놀랍군.”
“그러네. 무슨 수법인지 알아봤어? 난 모르겠던데.”
사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파악하지 못했어. 일단 나가자. 여긴 오래 있을 곳이 못 돼. 날수수가 아직 버텨주고 있어서 시간을 벌었지만, 곧 끝날 거야. 역마참맥법에는 장사가 없어.”
사내가 쓰러진 호발귀를 옆구리에 꼈다.
쉬이익! 쉬익!
두 사람은 바람처럼 사라졌다.
밖에는 하오문도가 지키고 있지만, 두 사람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들이 떠나고, 텅 빈 방 안에 찬 바람이 맴돌았다.
사방에서 음습함이 몰아친다. 어둡고, 축축하고, 진한 흙냄새가 코를 찌른다.
눈을 뜨자 진한 어둠이 밀려왔다.
‘뭐야? 내가 왜 여기……?’
호발귀는 잠시 생각을 정돈했다.
복부에 주먹을 한 대 얻어맞은 것이 생각난다. 세게 한 대 맞았는데…… 그 후로는 기억이 뚝 끊겼다.
‘그때 기절했네.’
거기까지 기억을 되살리자, 혼절하기 직전의 상황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었다.
두 사람이 들이닥쳤다.
귀무살이 아니다. 귀무살 다섯 명은 죽을 때까지 잊지 않는다. 너무도 뚜렷하게 기억 속에 새겨놓아서 오랫동안 보아온 사람처럼 생생하다.
두 사람은 누굴까?
단정할 수는 없지만, 누군지 알 것 같다. 두 사람을 보자마자 딱 짚이는 것이 있었다.
독림에서 죽은 비자와 같은 냄새를 풍긴다.
걸음걸이, 사방을 경계하는 모습, 말하는 모습에서 같은 종류의 무공이 읽힌다.
배수의 느낌이지만, 천살단 비자와 동종 인간이다.
‘어쩐다?’
저들은 혈마록을 노리고 왔을 텐데, 혈마록은 이미 태워버렸지 않나. 그러니 줄 것이 없다.
천살단 비자도 귀무살이나 다를 게 없다. 자신에게 혈마록이 없는 것을 알면 당장 죽일 것이다. 아니면 어디 숨겨놨겠거니 하고 고문을 가하겠지.
빠져나가야 한다.
귀무살이 오기를 바란 것이지, 천살단 비자가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내가 다가왔다. 침상 밑을 뒤져볼 생각이다.
그 기회를 잘 잡으면 집 밖으로 뛰쳐나갈 수 있다. 깜짝 놀랄 정도로 기습을 취한 후, 재빨리 도주한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빠져나가지 못한다.
두 사람과 싸울 생각은 없었다.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에 기습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취했다.
하지만 결국 잡혔다.
몸을 빼야 하는데, 미처 신형을 움직이기 전에 여인이 덮쳐들었다. 그리고는 끝났다. 사실, 기습을 취한 후에 몸을 빼지 못했다면 결과는 정해진 것이었다.
똑! ……똑!
어디선가 물방울이 한 방울, 두 방울 느리게 떨어졌다.
‘여긴 어디야?’
어디 동굴 같은 곳에 갇혀 있는 것 같은데…… 천살단 비자에게 잡혔다면 모든 게 끝났다고 봐야 한다.
천살단 비자는 귀무살을 이기지 못한다. 독림에서 비자가 귀무살에게 당하는 것을 봤다. 형편없이 무너졌다. 싸움이라도 할 것도 없었고, 일방적으로 도살당했다.
비자가 어떻게 강하로 들어왔는지 모르지만, 빠져나가지는 못한다.
강하에서는 도주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추격의 기본은 밀집된 조직망이다. 단단하고 오밀조밀한 조직으로 틀을 짠다. 움직일만한 길목은 모두 차단하고, 눈을 부릅뜬 채 지켜본다.
이것이 기본이다.
혈천방은 기본에 충실하다.
황수 이북에 있는 모든 마을이 혈천방 관찰 대상이라고 하면 너무 과한 말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혈천방은 황수 이북을 환히 들여다보고 있다.
엎드리면 코 닿을 곳에 범죄자 마을들이 있는데, 지켜보지 않을 리 없다.
기본 위에 개인 능력이 보태진다.
귀무살은 살인을 즐긴다. 살인귀다. 대체로 이런 자들은 사람을 쫓는 데도 능하다. 쫓아가면서 죽이는 것이 더 큰 즐거움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강하에서 귀무살의 추격을 피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렇다면 무공으로 귀무살을 눌러야 한다. 피하지 못하면 싸우기라도 해야 한다. 하지만 강하에서 귀무살을 누를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없다.
강하를 빠져나갈 방법은 오직 하나, 직접 자신의 눈으로 보고 피하는 방법뿐이다.
귀무살을 살펴야 한다.
그 일을 시동 걸어 줄 사람이 바로 장기충이다. 아직 아무런 언질도 없지만.
장기충이 귀무살 소식을 물어와야 한다.
사부가 잡혔다면 사부 이야기를 할 것이고, 돌아가셨다면 그 말을 할 것이다. 그러면서 밖으로 유인할 것인데, 그때 따라간다고 하고 정반대로 튀면 된다.
그를 믿어서 강하 분타에 의탁한 게 아니다. 그가 배신할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의탁했다.
그 외에는 어떤 행동도 해서는 안 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사부와 와서 같이 가자고 해도 따라가서는 안 된다.
자신이 직접 귀무살을 보고 피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사부……’
문득, 사부가 생각났다.
사부는 어떻게 되었을까? 필시 잡혔다.
운 좋으면 즉사했고, 운 나쁘면 사로잡혔다. 귀무살에게 사로잡히면 죽는 것보다도 못하다. 동패와 같은 모습이 될 때까지 고문받을 것이고, 결국은 죽임을 당할 것이다.
사부가 귀무살을 유인할 테니 도망가라고? 왜 도주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않으실까.
노야도 사부도 혈천방을 너무 알지 못했다. 혈천방에 대해서 문외한인 자신도 아는데, 강호에서 뼈가 굵었다는 노인들이 몰랐다니 한심하다.
사부의 희생은 헛된 것이었다. 아니,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만은 없다. 오히려 그렇게 잡힌 게 더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죽음이 빨리 닥칠 테니까.
동패가 죽었다. 왕소도 죽었다. 노야도 죽었다.
모두 죽는다.
저들은 사부도 살려두지 않는다.
유인책으로 움직인 것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물건을 훔치는 순간부터 사부의 운명은 정해졌다.
발본색원(拔本塞源), 삭초제근(削草除根)!
철저하게 뿌리를 뽑는다.
굳이 이렇게까지 지독하게 살계를 여는 이유를 모르겠지만, 강한 자가 죽이겠다는데 할 말이 없다.
사부는 아직 살아있다. 저들이 사부를 통해서 자신을 찾고자 하니 쉽게 죽일 리 없다. 하지만 이제 자신이 비자에게 잡혔으니, 사부의 죽음도 예상된다.
‘사부, 잘 가슈!’
그는 어둠 속에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부에게, 강하 제일의 배수 날수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제길! 복수를 해주려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빠져나가지도 못하잖아. 후후! 모두 개죽음당했네. 노야, 사부, 왕소, 동패…… 미안해서 어쩌나.’
호발귀는 정신 놓은 사람처럼 피식피식 웃었다.
천살단 비자는 그를 잡아놓고 어디로 간 것 같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도주할 생각은 하지 못한다. 칼에 베인 것도 아니고 주먹에 한 대 맞았을 뿐인데,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마혈을 제압당한 상태다.
“끄윽!”
몸을 움직이려고 하자, 몸은 꼼짝도 하지 않고 목에 걸린 목걸이만 미미하게 흔들거렸다.
‘후후!’
갑자기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오문 강하 분타에 머물면서 동패에 구멍을 뚫어서 목걸이로 만들었다.
동패는 투심문의 신물이다.
투심문!
사부는 투심문이라는 도문(盜門)의 제이십일대 도주(盜主)다.
이게 웃기지 않나. 도둑놈 집단의 수장이라니. 그것도 대를 이어서 물려받는다니.
도둑은 두 명, 세 명이 이해관계가 맞아서 같이 움직였다가 일이 끝나면 즉시 헤어진다. 도둑이 문파를 만들어서 움직인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노야가 이십대 도주다.
사부가 노야의 선물이라고 내준 것은 ‘제이십이대 도주 호발귀’라는 신분이다.
노야의 선물이 이것이다.
동패 안에는 투심문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
투심문의 역사, 무공, 투심문이 모은 재물까지 작은 동패 속에 모두 들어있다.
사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투심문의 역사나 무공 따위는 관심거리도 아니다. 역사라는 것은 도둑질한 사례이고, 무공이라는 것 또한 도둑질하는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 관심사는 투심문의 재물이다.
투심문 도둑이 훔친 물건은 대단히 많다. 그것들 모두 어떤 곳에 소장되어 있다. 성 하나를 사고도 남을 엄청난 재산이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
이런 사실을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눈의 희번덕거리면서 달려들 것이다.
작은 동패는 그만큼 소중하다.
그런데…… 노야는 정말 사람 볼 줄 모른다. 그토록 귀중한 물건을 하필이면 사는 것보다 죽을 가능성이 더 많은 사람에게 내줬냐는 거다.
그래서 웃음이 새어 나온다.
“후후후!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