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三章 탈출할 수 없다면(5)
푸드드득!
전서구가 날아왔다.
혈천방이 세상과 담을 쌓고 산 줄 알면 큰 오산이다. 특히 강하는 흑림 코앞에 있다. 그런 곳에 사람 한두 명 심어놓지 않았다고 생각하나.
동네 아낙에서부터 기녀, 도박꾼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에 혈천방 사람들이 쫙 깔려있다.
무지가 전서를 열어보았다.
“잡았네.”
그가 픽 웃으며 말했다.
잡을 줄 알았다. 이 좁은 땅에서 뛰어봤자 벼룩 아닌가.
“어디 있어?”
“하오문 강하 분타.”
“그럴 줄 알았다. 배수 놈이 갈 곳이 그런 곳밖에 더 있어? 내가 갔다 오지.”
잔살이 일어섰다.
“아니, 아니, 아니.”
무지가 막 움직이려는 잔살을 잡았다.
“놈이 삼 일을 머문다고 했네? 시간은 넉넉해.”
“놈이 있는 곳을 아는데도 잡지 말자고?”
“비급이 없어. 노의 소지품을 샅샅이 뒤져봤는데, 비급 같은 것은 없다는 거야.”
“그럼 어디 은밀한 곳에 숨겨놨다는 거잖아?”
잔살이 다시 주저앉았다.
“잡아서 닦달하면 오히려 입 다무는 수가 있어. 본인 스스로 가져오게 만들어야 해. 우리가 가는 게 아니라 놈이 제 발로 오게 해야 해.”
“제 발로? 여기 오면 죽을 걸 빤히 아는데 올까?”
“이놈이 여기 있다고 말해주는 거야. 비급을 가져오면 모두 살려주겠다고 하고.”
무지가 한쪽 구석에 축 늘어져 있는 날수수를 보며 말했다.
날수수는 움직일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원래 다리가 좋지 않은데, 허벅지까지 도끼에 찍혔다.
“다리 말고 다른 데를 찍을 수는 없었나?”
“말을 진작했으면 좀 살살 쳤지. 지금도 괜찮아. 움직이는 데는 전혀 지장 없어.”
쌍부가 말했다.
귀무살에게는 아주 효과적인 고문 수법이 있다.
역마참맥법(易魔僭脈法)은 기혈을 뒤틀어 버린다. 중원 오대 혹형(酷刑) 중 하나인 분근착골(分筋錯骨)이 장난으로 보일 만큼 지독하다.
분근착골은 근육이나 뼈를 비튼다. 부러트린다. 찢어놓는다. 하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역마참맥법은 기혈을 뒤틀어 버리기 때문에 절반 이상이 죽는다.
날수수의 목숨 따위는 걱정하지 않는다.
놈은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 지금 죽으나 내일 죽으나 마찬가지다.
알아볼 게 많은 것도 아니다. 투심문은 멸문한 줄 알았는데, 어떻게 건재할 수 있었나? 또 노야가 긁어모은 재산은 얼마나 되고, 어디에 있나?
첫 번째 질문은 호기심이다.
투심문은 공공문파 중에서는 최상위에 있던 문파다. 일인단맥(一人單脈)으로 이어지며, 공공수법을 모두 배우면 대낮에 여인 속곳도 벗겨갈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투심문은 이미 멸문되었다.
호발귀처럼 잘못된 물건을 탐했고, 그 대가로 지옥 끝까지 추격을 당한 끝에 마지막 일인이 쓰러졌다.
그가 노야다.
노야가 죽는 모습을 본 사람이 많다. 죽음을 확인했다는 사람도 다수였다.
그런데 투심문이 어떻게 이대(二代)나 더 이어졌을까?
이것이 두 번째 질문인데, 두 번째 질문 역시 시간때우기다.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기 때문에 묻는 것일 뿐, 투심문이 몇 대가 이어졌건 상관하지 않는다.
노야가 했다는 와주 노릇도 웃기는 말이다.
노야가 투심문주인 것을 알았다면 그가 어느 정도 부자인지 묻지도 않았다.
투심문은 훔친 물건을 처분한 적이 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보물 중 이 할 이상이 투심문에 흘러 들어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밖으로 나온 물건은 없다. 모두 어디 보물창고 같은데 쌓아둔 것으로 짐작한다.
정말 그럴까?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면 되지.
지금까지 역마참맥법을 견뎌낸 인간은 보지 못했다. 어떤 인간도 기혈이 역행하는 고통 앞에서는 진실을 술술 토해냈다. 역마참맥법으로 전신을 찢으면서 묻는다.
호발귀 어디 있어?
그리고 시간때우기로 자잘한 것을 묻는다. 돈 어디 있어? 어떻게 살아남았어?
* * *
다정해 보이는 중년 부부가 걸어오며 말했다.
“좀 쉬었다가 가. 너무 걸었더니 발이 부르텄어.”
“조금만 참아. 이제 다 왔어. 곧 시원한 물을 떠서 발 씻겨줄게.”
여인은 키가 작고 몸이 후덕하다. 날렵하다기보다는 둔해 보인다. 몸과 비교하면 머리가 큰 편이라서, 미인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음성은 꾀꼬리처럼 맑다.
남자는 마을마다 한두 명쯤 있다는 훈남이다. 키가 크고, 얼굴도 잘생겼고, 몸도 좋다.
저벅! 저벅!
두 사람은 아무 거리낌 없이 걸어왔다.
하오문도는 편한 의자에 상반신을 눕히다시피 앉아서 부부를 쳐다봤다.
‘어디서 온 놈들이지?’
일단 이곳에 처음 들어선 사람들이라는 건 알겠다.
입은 옷이며, 말투며…… 황수 이북 사람들과는 매우 다르다. 강 건너에서 온 사람들이다.
부부가 하오문도 앞에 섰다.
‘길을 물어보겠지. 객잔이나 다루? 발이 부르텄다고 했으니까. 쳇! 돈 가진 건 없네. 이것들 알거지야.’
하오문도의 눈에서 흥미가 사라졌다.
부부 중 사내가 걸어와서 말했다.
“저 안에 있나?”
“뭐가?”
“호발귀라는 자.”
“뭣!”
하오문도는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두 부부는 전혀 의심스럽지 않았다. 낯선 사람이기는 했지만, 경계할 만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무인도 아니었고, 살인자처럼 차가운 느낌도 들지 않았다.
아주 평범한 부부였는데…… 호발귀를 물어?
“퇴로는 몇 군데야?”
여인이 남자 옆에 서며 물었다.
“무, 무슨 말씀이신지 알아들을 수가……”
척!
말을 하는 하오문도의 목에 소도가 얹혔다.
여인이 귓속말하는 듯 사내에게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목에 칼을 댔다. 다른 사람이 보면 비밀스러운 말을 주고받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어, 언제 뽑았지?’
하오문도는 새파랗게 질렸다.
칼 뽑는 것을 보지 못했다. 칼이 다가오는 것도 보지 못했다. 원래부터 목에 칼이 대여져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하지만 섬뜩한 기운은 여실히 전해진다.
“말만 하면 돼. 퇴로는?”
“여, 여섯 군데.”
“여섯 군데 모두 한 명씩 지키고 있는 거야?”
“네, 네.”
“방에 다른 통로는 없어? 암로(暗路) 같은 거 말이야. ”
“어, 없습니다.”
하오문도는 묻는 말에 순순히 대답했다.
중년 여인이 뿜어내는 살기가 매우 거세다.
범죄자 마을에서 생활한 사람이라면 이런 살기가 어떤 결과를 일으키는지 알고도 남는다.
수틀리면 죽는다.
하오문도는 두 남녀를 동패와 왕소를 죽인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살기가 매서웠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탈출로는 어디야?”
“저기 저곳.”
하오문도가 큰 능수버들을 가리켰다.
능수버들 뒤로 담장이 있다. 날랜 장정이면 두어 번만 도약해도 뛰어넘을 수 있다.
“담장 뒤는 어디야?”
“야패(夜貝).”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담장 뒤쪽이 왜 탈출로인지 알겠다.
야패, 저녁 조개는 도박장을 일컫는 은어다.
조개가 화폐를 뜻한다는 사실만 알면 은어를 몰라도 어떤 곳인지 짐작할 수 있다.
도박장으로 스며들면 찾기가 어렵다.
범죄자 마을에 형성된 도박장은 침입 불가가 원칙이다. 본인들 스스로 신성한 영역으로 취급한다.
“가자. 앞장서.”
“네? 네……”
하오문도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이 자들과 엮이기 싫다. 호발귀는 얼마든지 잡아가라. 하지만 나는 제발 놔줘라.
하오문도가 간절한 얼굴로 여인을 쳐다봤다.
여인의 표정이 냉담하다. 너무 냉담해서 오히려 꾸물거리다가는 좋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든다.
“그럼 제가 먼저.”
쉬잇!
하오문도가 물 찬 제비처럼 미끄러져 갔다.
다른 하오문도들은 눈치 빠르게 물러섰다.
하오문도가 쩔쩔매면서 데려오는 두 사람은 한눈에 봐도 고수다. 신법이 너무 차이가 난다. 하오문도는 죽을힘을 다해서 뛰지만, 저들은 유유히 뒤따른다.
죽이고자 하면 당장 죽인다.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
강하에 자리 잡은 배수답게, 일제히 물러섰다.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응?’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호발귀가 있어야 하는데, 귀신처럼 사라졌다.
“아니, 아니! 분명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남녀를 안내해 온 하오문도가 당황해서 소리쳤다.
탁자 위에는 찻잔이 놓여있다. 찻잔에서는 아직도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른다.
방금까지 차를 마시려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있다.
하오문도가 방안을 빠르게 훑었다.
없다. 정말로 없다. 어떠한 기척도, 느낌도 없다. 무인의 감각이 아니라 배수의 느낌으로 살펴봤는데, 함정에 빠졌을 때처럼 느낌이 싸하다.
‘도망을? 그럴 만한 시간이 없었는데?’
탁자 위에 찻잔을 보면 조금 전까지는 분명히 있었다.
필요 없는 말이지만, 굳이 시간상으로 계산해 보면 그가 협박을 받을 무렵에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나.
어디로 사라졌을까? 호발귀가 머무는 방은 사방이 환히 뚫려있는 듯하지만, 사실은 다 막혀 있다. 뚫고 나갈 곳을 하오문도가 지키고 섰다.
방안에 비밀통로가 있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비밀통로는 없다. 집주인이 모르는 비밀통로가 있다면 몰라도 절대 없다.
“저,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이미 빠져나간 것 같은데요.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하오문도는 정말 모르겠다는 듯 머리를 조아렸다.
살귀들의 눈 밖에 나면 죽는다. 두 남녀는 아직도 흉흉한 살기를 쏘아내고 있다. 칼도 아직 거두지 않았다. 독을 발랐는지 시퍼렇게 빛나는 칼날이 요사스럽게 번뜩인다.
“됐어. 나가봐.”
여인이 말했다.
여인은 방안을 쓸어봤다.
사람이 숨을 만한 곳이라고는 침상 밑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게 빤한 곳에 숨을 리 없다. 무엇보다도 생기(生氣)가 감지되지 않는다. 분명히 아무도 없다.
“어디로 갔을까? 금방 빠져나간 것 같은데.”
사내가 말했다.
“오면서 계속 주시했는데, 집 밖으로 나온 사람은 없어. 우리가 오기 전에 빠져나갔거나.”
“그건 이게 해결 안 돼.”
사내가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찻잔을 가리켰다.
호발귀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누군가는 차를 마시려고 했다. 그리고 지금 방안이 텅 비었다.
두 사람이 오는 도중에 사라졌다는 말이다.
“뜨거운 차가 있다는 건 우리가 오고 있을 때 도주했다는 건데. 나간 사람은 보지 못했고. 그럼 이 안에 있겠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어있어.”
남녀는 얼굴을 마주 봤다.
숨어있을 곳은 한 군데다. 침상 밑!
다른 곳은 모두 확 트였다. 사람이 숨어있을 공간이 없다. 바닥은 단단한 돌로 되어 있고, 천정은 나무를 이어서 만든 지붕이 한눈에 들어온다.
숨을 곳은 오직 침상 밑뿐이다.
두 사람은 은밀히 기척을 확인해 봤다.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숨소리를 들어봤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오감을 모두 끌어내서 느껴봤다. 사람이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사람은 없다. 하지만 확인은 해봐야 한다.
저벅! 저벅!
남자가 침상으로 다가섰다. 순간,
쒝!
침상 밑에서 사람 손이 번개처럼 뻗어 나왔다.
“웃!”
남자는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이번 공격은 확실히 의외다. 제대로 기습당했다.
우선 사람 기척을 감지하지 못했다.
침상 밑을 확인하기 위해서 다가서긴 했지만, 분명히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손이 뻗어 나왔다.
두 번째로 손놀림이 무척 빠르다. 피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다. 섬전처럼 튀어나온 손이 사내를 움켜잡으려고 했다. 그래서 물러섰는데, 어느새 방향을 바꿔서 발등을 노렸다. 과일 깎는 과도(果刀)가 거칠게 발등을 찍었다.
쉬잇!
사내는 미처 대처할 틈이 없어서 뒤로 물러섰다. 그때,
“이놈!”
사내 뒤에 서 있던 여인이 와락 달려들었다.
물론 뒤로 물러섰던 사내도 과도를 피해낸 후, 물러설 때보다 더욱 빠르게 덮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