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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14화 (14/500)

第三章 탈출할 수 없다면(4)

“잘 봐라. 옷째기다.”

날수수가 손에 면도를 들고 슬쩍 허수아비를 지나쳤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날수수는 손을 쓰지 않았고, 허수아비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호발귀는 옷이 찢어져 있는 것을 봤다.

보름이 지났을 때, 호발귀는 손에 면도를 들고 허수아비 곁을 지나쳤다. 날수수처럼.

“집게따기는 혼자 못해. 옆에서 바람 잡아주는 놈이 있어야 해.”

“누가 옆에 있어야 하는 건 귀찮아. 지금 당장 해야 하는데, 옆에 보조자가 없으면 못 한다는 거잖아. 아무 때나 할 수 있게, 혼자 할 수 있는 것만 가르쳐줘.”

“일단 이건 배워둬야 해. 배수 기본이다.”

일 년이 지났을 때, 호발귀는 보조해주는 사람 없이 혼자서 집게따기를 했다.

“거봐. 혼자 할 수 있잖아.”

“그러다 너 임자 만나면 뒈진다.”

“중원에서 이거 누가 제일 잘해?”

“나.”

“킥! 킥킥!”

“너…… 지금 웃냐?”

“중원 제일 배수는 신투(神偸) 갈천위(葛仟委)잖아. 그건 지나가는 똥개도 알아.”

“알면서 왜 물었냐?”

“뭐라고 말하나 보려고.”

“이놈아, 알려면 똑바로 알아. 갈가하고 나하고 둘이 맞짱 뜨면 갈가 거지 돼. 갈가놈은 맞아가면서 배수 짓을 배운 거고, 난 빠른 직관과 날렵한 손을 가지고 태어나서 뭘 배울 필요가 없어. 알겠냐, 이 젖비린내 나는 놈아!”

“킥킥! 킥킥!”

“친구 없지?”

“그거 먹는 거냐?”

“친구만 없는 게 아니라 사람이 아예 없어.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잠꼬대로 중얼거리는 사람도 없고. 인생을 어떻게 살았기에 사람이 그렇게 없어?”

“네놈 같으면 내 앞에서 잘 수 있냐?”

“안 자지.”

“거봐라, 인마! 그럼 넌 네 앞에서 어떤 놈이 누워 자면 가만히 내버려 두냐?”

“내버려 두지, 그럼 뭘 어째?”

“에끼!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해라. 아마 네 놈 같으면 속곳까지 홀랑 벗겨 먹을걸?”

“강하에 하오문(下午門)인가 뭔가 생긴다는데, 우린 가입 안 해?”

“이놈아, 나중에 나 죽어도 그런 덴 얼씬도 하지 마. 도둑놈들끼리 모여서 뭘 어쩌자고. 먹물 속에 몸 담그고 있으면 뼛속까지 시커메져.”

하오문은 개방(丐幫)과 더불어서 문도가 가장 많은 방파다.

강하에 하오문 분타가 생겼다.

호발귀는 하오문도가 아니다.

사부가 펄쩍 뛰면서 반대했기 때문에 두 번 다시 입 밖에 내지도 못했다.

하오문에서 압력이 여러 차례 들어왔다.

배수 짓을 그만두던지, 아니면 하오문도가 되라고. 허락받지 않고 배수 짓을 하면 손목을 잘라버리겠다고. 야산에 끌고 가서 묻어버리겠다고. 뒷골목을 다닐 때, 뒤통수 조심하라고.

지금까지는 날수수가 모든 압력을 깨끗이 처리했다. 하오문에 가입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가입하라고 협박하는 자들을 모조리 두들겨 패버렸다.

황수 이북 하오문에게 날수수와 호발귀는 눈엣가시다.

날수수가 하오문에 몸담지 않은 이유를 나중에야 알았다.

날수수는 투심문 문주다. 노야가 전대 문주이고, 현 문주는 날수수다. 그러니 일파의 문주가 어떻게 다른 집단에 수하로 들어갈 수 있겠나.

강하 배수치고 호발귀에 대한 소문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놈이 손 한 번 잘못 놀렸다가, 피똥 싸는 중이다. 놈과 짝짜꿍이 되어서 껄떡거리던 동패와 왕소가 사라졌다. 죽음이 의심되는 행방불명이다.

장물아비인 노야는 자진했다. 사실, 자진이 아니다. 자신을 빙자한 살인이다.

날수수도 강하를 빠져나가려다가 잡혔다.

강하 하오문에게는 이빨 사이에 끼어있던 생선 가시가 쭉 빠진 기분이다. 아주 시원하고 통쾌하다.

하오문 강하 분타주인 장기충(長己漴)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제일 먼저, 호발귀의 영역이던 장선루를 접수했다.

장선루 자체는 큰 돈벌이가 안 된다. 객잔을 뜯어먹고 사는 놈들은 따로 있다. 배수들은 투숙객을 노린다. 지리적인 위치가 좋아서 돈이 많거나 밀회를 즐기고픈 연놈들이 종종 찾는다.

이런 놈들은 돈을 잃어버려도 속으로만 끙끙 앓지 크게 나서서 일을 벌이지 못한다.

장기충은 재빨리 장선루주와 밀약을 맺었다. 그리고 밀약을 맺은 김에 뒤처리해줄 점원까지 정했다.

아주 기분 좋다.

장기충은 막 침실로 들어서려다 말고 깜짝 놀라서 물러났다.

“엇! 깜짝이야! 네 놈이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

그는 일부러 수하들이 들을 수 있게끔 크게 말했다.

호발귀가 침상에 누워있지 않나. 마치 자기 침상이라도 되는 듯 편하게 두 발 쭉 뻗고 누워있다.

‘한참 기분 좋은데, 이놈이 왜 여기 있는 거야? 장선루를 건드렸다고 지랄하나?’

그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호발귀 사정이 그리 편안하지 않다. 도주하기도 바쁜 판에 영역 따위에 신경을 쓸 리 없다.

‘도와달라고 온 거야!’

한때는 티격태격했지만 그래도 같은 배수 아닌가? 배수가 무인에게 쫓기고 있으니 같은 배수의 입장에서 도와달라. 하오문의 힘 좀 빌리자.

호발귀가 의도가 빤히 보였다.

장기충은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날아갈 것처럼 들떴다.

호발귀는 돈뭉치다.

호발귀를 잘만 이용하면 배수 짓 몇 번 한 것보다도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이건 배수의 느낌이다. 돈이 될 물건이니 잘 다뤄야 한다.

‘장선루를 먹자마자 이놈까지. 이러다가 너무 많이 먹어서 배 터지는 거 아냐? 그래도 먹을 때 먹어둬야지? 강하에서 먹을 게 항상 있는 건 아니잖아? 흐흐!’

“야, 인마! 여기가 어디라고! 지금 너 찾는다고 온 동네가 발칵 뒤집혔어. 이상한 놈들이 마구 죽이면서 돌아다닌다며? 너 도대체 뭘 손댄 거야?”

그는 가장 궁금한 점부터 물었다.

도대체 뭘 훔쳤기에 강하가 이렇게 발칵 뒤집혔나.

호발귀가 전낭을 내밀었다.

“뭐야?”

“오백 냥.”

“오백 냥? 그러니까 이걸 받고 널 숨겨 달라 이거야?”

“하루에 백 냥씩 닷새 치다.”

장기충의 눈이 찢어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부릅떠졌다.

“너 방금 하루에 백 냥이라고 했냐?”

“그래.”

“너 혹시……?”

장기충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혀를 내밀어 입에 침을 묻혔다.

강하의 전주(錢主), 노야가 죽었다.

노야는 일가족이 없다. 처도 없고, 자식도 없다. 가게에 점원 한 명 두지 않았다.

그가 죽자 많은 사람이 달려들었다. 마치 쉰 음식에 쇠파리 꼬이듯이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달라붙어서 난장판을 만들었다.

노야는 강하의 대부호다.

그가 하루에 주고받는 돈만 해도 시장 사람들이 하루 거래치에 해당한다. 그 돈이 어디에 숨겨져 있을 것이다.

벽을 깨고, 바닥을 부수고, 땅을 팠다.

힘없는 사람들은 멀리서 구경이나 하고, 힘 있는 왈패들은 서로 먼저 파겠다고 주먹다짐을 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정말로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싶게 땡전 한 푼 나오지 않았다.

그놈들이 다 쓸어갔구먼.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노야를 죽인 자들이 돈도 가져갔다고.

장기충은 혹시 호발귀가 그 돈을 가져가지 않았나 싶어서 입맛을 다셨다.

“책 몇 권 훔쳤는데, 아마도 무공비급이었던 모양이야. 그것 때문에 저 난리들이야. 당분간만 있다가 갈게.”

“무공비급? 무슨 비급?”

“몰라. 태워버렸으니까.”

“태워? 아! 아까워라. 태울 거면 나나 주지. 쩝! 오백 냥에 닷새는 그렇고…… 삼 일만 하자. 삼일 정도는 막아줄 수 있어.”

“좋아.”

호발귀가 흔쾌히 대답했다.

“뭐? ‘좋다고?”

장기충은 눈을 희번덕거렸다.

호발귀는 돈이 없다. 강하에서 손이 가장 빠르고, 귀한 물건을 많이 빼낸다. 하지만 번 만큼 쓴다. 상당히 많이 쓴다. 돈을 모을 생각이 전혀 없는 듯 흥청망청 써댄다.

그런 놈이 사흘 머물겠다고 오백 냥을 선뜻 건네?

이건 갓 태어난 갓난아기가 돈주머니를 내민 것과 같다.

호발귀에게 돈이 얼마나 있나? 냄새를 맡아봤다. 그도 배수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한 번만 쓱 훑으면 돈이 얼마나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호발귀는 돈이 없다. 자신에게 준 전낭이 전부다.

‘돈 없이 이 세상을 어떻게 돌아다녀. 그렇다면 곧 다른 돈이 생긴다는 거지.’

그는 수하들을 불렀다.

“저놈이 삼 일 안에 움직일 거야. 은밀히…… 아주 은밀히 뒤를 밟아. 들킬 것 같으면 아예 뒤따르지도 말고. 기회는 또 있으니까. 뒤를 밟는 게 중요한 게 아냐! 들키지 않는 게 중요해! 알았어!”

“저놈 되게 약은데……”

“그러니까 뒤를 잘 밟아야지!”

수하들이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흐흐! 너무 걱정 턱 놓으세요. 이런 일이라면 쉰내 나도록 해왔으니까.”

계획이 있다.

지금 강하를 벗어나겠다고 발버둥 치면 오히려 덫에 걸려들기 쉽다.

사부가 보면 한심하다고 핀잔을 하겠지만, 잠시 움츠린다.

하오문 강하 분타도 안전한 장소는 아니다. 저들이 곧 이곳을 주목할 것이다.

닷새를 머물면 잡힌다. 사흘도 위험하다. 이틀 안에 저들의 동정을 파악해 내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도주하는 것보다 저들의 움직임을 보면서 도주하는 게 훨씬 낫다.

무턱대고 도주하는 게 아니라 적을 보면서 도주한다.

귀무살이 움직이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한 걸음을 움직이고도 두 걸음을 움직인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 거리가 점점 멀어진다.

‘잡아봐. 나도 최선을 다할 테니까.’

호발귀는 침상에 앉아서 손을 움직였다.

원충노인의 팔십일수!

팔십일수는 무공이 아니다. 그가 지금까지 해왔고, 가장 잘 아는 수법들이다. 배수 기술이다. 절반은 사부에게 배운 것이고, 절반은 처음 보는 수법이다.

‘폐맥수(廢脈手). 왜 이게 배수에게 필요하지?’

폐맥수는 경맥을 막아버리는 수법이다. 어떤 경맥을 막느냐에 따라서 심장마비를 불러올 수도 있고, 머리에 피가 쏠리게 만들 수도 있다. 굉장히 위험한 수법이다.

날수수는 폐맥수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원충노인의 팔십일수 중 이십칠 수가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악수(惡手)가 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그런 수들은 전부 배우지 않았다. 사부가 일부러 가르치지 않았다.

호발귀는 사부의 마음을 이해한다.

그러잖아도 일 벌이기 좋아하는 성격에 이런 수법들까지 수련했다면 크게 사고를 쳤을 것이다. 강하에서 제 세상이라도 된 듯 미쳐 날뛰는 범죄자와 충돌했을 게 뻔하다.

‘이런 건 탈출에 도움이 되겠는데?’

그는 폐맥수를 수련했다.

쒝! 쒜엑! 쒝!

오지(五指)를 모으기도 하고, 풀기도 하고, 퉁기기도 하면서 혈도 치는 수련을 했다.

여인이 음식 찌꺼기가 잔뜩 묻은 치마를 빨았다.

“미친놈, 토할 거면 나가서 토할 것이지 남의 치마에 토하고 지랄이야.”

여인이 치마를 빨면서 연신 투덜댔다.

“어떤 놈이 우리 월향(月香)이를 화나게 했을까?”

장기충이 여인 뒤로 다가서며 말했다.

“왔어? 갔던 일은?”

빨래하던 여인이 뒤돌아서며 반색했다.

장기충을 쳐다보는 여인의 얼굴을 활짝 핀 장미꽃처럼 화사하고 밝았다.

“내가 갔는데 잘 안 될 리가 있어? 잘 됐지. 이제 장선루는 내 영역이야.”

“잘 될 줄 알았어. 그럼 호발귀는 완전히 끝난 거야?”

장기충은 즉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그리고 여인 곁으로 바싹 다가서며 나직이 속삭였다.

“너 혹시 그놈들 어디 있는지 알아?”

“누구?”

“누구긴 누구야. 호발귀를 떡으로 만들 놈들 말이지.”

“그 사람들이 어디 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알아봐?”

“그래, 알아봐.”

“왜?”

“흐흐! 호발귀 그놈, 내 손에 있어.”

“뭐? 어쩌다가?”

“그놈이 제 발로 걸어왔지 뭐야. 오백 냥까지 던져주면서 삼 일만 머물재. 그러라고 했지.”

“그럼 지금 분타에 데리고 있는 거야?”

“그래.”

“너무 위험하지 않아? 노야와 왕소, 동패를 죽인 놈들인데.”

“흐흐흐! 내가 누구냐, 내가! 내가 바로 강하 분타주 장기충 어르신이다. 흐흐흐!”

장기충이 여인의 허리를 휘감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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