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二章 죽음이 더해지니(2)
뚜벅! 뚜벅!
섬전이 손님에게 다가섰다.
“십삼비자.”
“귀…… 무살.”
그들은 서로를 알아봤다.
“우리 서로 불필요한 말은 하지 말자. 목적이 다르니 양립할 수도 없는 사이.”
스릉!
십삼비자가 검을 뽑았다.
검이 어디에 숨겨져 있었나? 분명히 어떤 병기도 지니고 있지 않았는데?
연검(軟劒)이다. 허리에 두르고 있었다.
“아! 서둘지 마. 칼부림 시작하기 전에 그래도 물을 건 물어야지?”
“할 말 없다. 물건도 없고.”
“물건 없어진 건 알아. 그런 걸 물으려는 게 아니라 다른 게 궁금해서.”
잔살이 유들유들 웃으면서 말했다.
“황수 이쪽에 비자가 또 있나? 아니면 황수 건너편에? 꽈리 꼬듯이 이놈에게서 저놈으로 물건을 전달하는 게 너희 특성이니 또 다른 놈이 있겠지?”
“있다고 한들 내가 물건을 잃어버렸는데, 뭐하러 남아있겠나. 벌써 건너갔지.”
“됐어. 그 대답이면.”
스릉!
잔살이 검을 뽑았다.
검이 냉정하다. 비정하다. 차디찬 사기가 물씬 풍긴다. 그 외의 감정은 일 푼도 담겨 있지 않았다.
“후후!”
십삼비자는 체념하며 검을 들었다.
스읏!
그는 검에 진기를 모았다.
귀무살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을 죽이는 귀신이다. 어떤 무공도 이들을 꺾을 수 없다고 알려져 있다. 정말 그런가? 이들도 웃고 울고 말하는 인간이지 않나.
“타앗!”
그는 허리를 낮게 숙이며 삽보(揷步)를 전개했다. 검이 바닥에 낮게 깔려서 쏘아진다. 그런데,
탁!
갑자기 머리 위에서 번갯불이 번쩍 튀었다.
그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풀썩 쓰러졌다.
파리채 휘두르듯이 가볍게 휘두른 검인데, 머리를 절반이나 파고들었다.
주르르륵!
머리에서 쏟아진 핏물이 객잔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꽈앙!
봉창이 산산이 조각나며 흩어졌다. 그리고 쌍부를 어깨에 멘 사내가 객잔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손에 머리가 깨져서 죽은 개를 들고 있었다.
“이거 아무것도 없어. 비급이 없어!”
그가 안에 들어서자마자 소리쳤다.
“뭣?”
“없어?”
모두 멍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봤다.
십삼비자는 이미 죽었다. 개를 통해서 비급을 빼낸 것으로 알았는데, 개에게도 없다니.
무지가 급히 배가 따인 봇짐을 뒤졌다.
비급이 나올 리 없다. 전낭도 쭉 찢어져 있다. 옷가지는 마구 흩어져 있고.
그때, 묘한 물건이 무지의 눈에 들어왔다.
집게에 머리가 눌려 있는 살모사.
봇짐은 십삼비자 것인데, 평생 십삼비자가 만질 것 같지 않은 물건이 나왔다. 그것도 매우 소중하게 봇짐 옆에 잘 모셔놓고 있었다. 천에 둘둘 감아서.
무지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하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왕소를 쳐다봤다.
‘사람이 죽었다!’
왕소는 등골이 오싹했다.
시비가 벌어져서 한쪽이 죽은 것은 그럴 수 있다고 치자. 보아하니 무슨 죄를 짓고 도망한 놈 같은데. 그래, 죽을 수 있다. 머리를 맞아 죽든 가슴을 찔려서 죽든 충분히 죽을 수 있다.
두려운 것은 흑의 무인들이다.
이들은 숨소리 한 올 흘리지 않는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었는데도 시체처럼 감정 없이 지켜본다. 아니, 손님이 머리를 맞아서 피를 튀길 때, 미소를 지었다.
지옥에서 튀어나온 자들이다. 아주 비정하다.
쿡!
왕소의 뒷덜미를 잡고 있던 무인이 등뼈 한가운데를 꾹 눌렀다.
순간, 온몸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찌릿하더니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마혈(痲穴)? 정말 잘못 걸렸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으니까. 한순간이라도 삐끗하면 바로 골로 간다.’
그는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하지만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다. 마혈을 제압한 흑의 무인은 그를 질질 끌고 가서 죽은 십삼비자 옆에 앉혔다.
너도 죽을 수 있다는 진한 협박이다.
‘죽은 놈을 보고 겁 좀 먹어라 이거지? 그래, 알았다. 겁먹은 척해줄게.’
왕소는 겉으로는 겁먹은 척했지만, 속으로는 웃었다.
그도 강하 출신이다. 툭 하면 살인이 터지는 곳이다. 술을 마시다가도 칼질하고, 밥을 먹다가도 수틀리면 목을 꺾어버린다.
거친 놈들이라면 매일 상대하고 있다.
하지만 겉으로는 벌벌 떨어야 한다. 잔뜩 겁을 집어먹고 금방이라도 기절할 듯이 굴어야 한다.
“으으……!”
그는 신음을 흘리며 덜덜 떨었다.
탁!
왕소를 끌고 온 무인이 머리를 가볍게 때렸다.
이제 슬슬 압박이 가해질 모양이다.
왕소는 눈썹을 팔자로 축 늘어트리며 사정했다.
“제, 제발요. 나리들, 전 아무 죄도 없습니다. 전 다만 심부름만 하는 점원에 불과……”
“쉿!”
흑의 무인이 손가락을 입에 댔다.
그는 입을 뚝 다물었다. 이런 자잘한 일은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좋다. 겁에 질려서 자기들 말을 잘 듣는다고 생각하겠지? 어림도 없다, 이놈들아!
흑의 무인이 집게에 머리가 눌린 살모사를 가져왔다.
“이거 누구 거지?”
무인이 집게를 만지며 말했다.
‘호발귀! 이, 이놈…… 이놈 이거 무슨 짓을 한 거야?’
왕소는 단박에 집게를 알아봤다.
집게는 대나무를 깎아서 만들었다. 통으로 쪼개고 칼로 조각해서 형태를 완성했다. 집게가 아교로 붙인 것이 아니라 통짜라서 모를 수 없다.
“모, 모릅니다. 정말 모릅니다. 아이고, 그런 집게가 어디 한둘입니까. 정말 전 모릅니다.”
왕소는 눈물까지 흘리며 사정했다.
여기서 호발귀라는 이름을 불면…… 그놈 죽는다.
이 자들은 결코 살인을 멈추지 않는다. 놈이 어디서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지만 걸리면 죽는다. 어쩐지 어제오늘 코빼기도 안 비치더라니.
“그렇군. 모르는군.”
흑의 무인은 작은 호로병을 가져와 마개를 땄다. 그리고 안에 들어있던 물을 죽은 손님의 몸에 부었다.
물? 물이 아니다. 매캐한 냄새가 훅! 치민다.
‘기름?’
일반적인 기름은 아니고 무가(武家) 같은 곳에서 공격용으로 사용하는 기름이다. 기름에 린(燐)을 섞어서 불이 붙으면 다 탈 때까지 꺼지지 않는다고 들었다.
‘헉! 이, 이놈들이 정말!’
왕소의 불길한 예감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호로병 하나를 모두 쏟아낸 흑의 무인이 다른 호로병을 꺼내더니 이번에는 왕소의 머리에 붓기 시작했다.
“헉! 나, 나리들! 모, 모두 말씀드릴 테니까 제발…… 제발요, 나리! 제게는 처자식이…… 엉엉! 정말 전 아무것도 모릅니다. 전 정말 억울합니다! 엉엉엉!”
그는 눈물까지 흘렸다.
마지막 발악이다.
사실, 이 순간 왕소는 죽음을 떠올렸다.
호발귀를 말하면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곧 포기했다.
이놈들은 말을 한다고 해서 살려줄 놈들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호발귀 그놈…… 죽게 할 수 없다. 어차피 죽어야 한다면 나 혼자!
치익!
흑의 무인이 화섭자에 불을 밝히며 말했다.
“죽은 놈에게 불을 붙이겠다. 사람들이 불길을 보고 달려올 때까지 반다경 정도 걸리겠지. 그동안 아는 것을 불지 않으면 너도 탄다.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내지.”
유부(幽府)에서 들려오는 귀신의 호곡성인가? 사람 음성이 이렇게 차도 되나?
‘아! 이놈들 진짜 살인귀다!’
왕소는 부르르 치를 떨었다.
이자들이 하는 위협은 그가 들어봤던 어떤 위협보다도 강했다.
진심이다. 이 자들은 진심으로 말하고 있다. 굳이 자신에게서 무엇을 들을 생각이 없다. 말하지 않으면 그냥 불을 붙여버릴 것이다. 더 추궁할 생각도 하지 않고.
툭! 화라락!
화섭자 불길이 죽은 손님 몸에 떨어졌다.
기름 묻은 십삼비자의 시신은 금방 불덩이로 변해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몸을 옆으로 움직이고 싶었다. 손님을 태우는 불길이 자신에게 옮아 붙을까 봐 두려웠다.
흑의 무인들은 묵묵히 지켜만 본다.
그들은 묻지도 않는다. 뭘 물어야 사정이라도 하지.
집게 주인을 알고 있으면 말하고, 모르면 입 다물고 있어도 좋다는 투다.
“뭐야! 저거 불이야?”
“불! 불이네! 불이야!”
바깥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쉬잇! 쉿! 쉿!
흑의 무인들이 한 명, 두 명 떠나갔다.
남아있는 자도 무표정하게 불타는 시신만 쳐다봤다.
“저, 저기요! 전 정말 모릅니다요. 알면 진작 말하지 왜 입 다물고 있겠습니까요. 제발 살려주십쇼. 살려만 주시면 손이 발이 되도록 수발을 들어드립죠. 제발 노예 하나 얻는다 생각하시고.”
무인은 왕소가 애원해도 쳐다보지 않았다. 그는 그냥 불붙은 시신만 본다.
‘아! 오늘이네. 내 제삿날이.’
왕소는 비로소 죽음을 봤다. 흑의 무인의 차디찬 눈빛에서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았다.
‘호발귀…… 잘 살아라. 내 몫까지.’
왕소는 마지막으로 사정했다.
“집게 주인 압니다. 압죠. 이곳 놈은 아니고 다른 마을 놈인데, 이름은 모르고 얼굴만 압죠. 살려주시면 제가 앞장서서 안내합죠. 틀림없이……‘
치익!
흑의 무인이 화섭자에 불을 댕겼다.
아직 부족하다! 더 말해!
무인이 말없이 협박했다.
죽일 생각이었다면 불붙은 시신 쪽으로 살짝 밀치기만 해도 된다. 그 역시 기름 먹인 솜이나 다름없으니 불에 닿기만 해도 금방 불덩이가 된다.
밀치지 않고 화섭자를 켠 것은 더 많은 정보를 말하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오기 전에.
왕소는 주절주절 정신없이 말을 쏟아냈다.
“놈이 사는 곳은 낙안교(落雁橋)라는 다리 밑 움막이고요.”
낙안교 다리 밑에 움막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움막 주인이 돌림병에 죽고 난 후, 몇 년째 텅 비어 있다.
“우린 장물을 황수 너머로 넘깁죠. 아무래도 강하는 노리는 놈들이 많아서. 한데 그놈은 이곳에서 자체적으로 처리하는 것으로…… 장물아비는 알 수 없고……”
왕소는 자신이 생각해도 우스울 정도로 빨리 말했다.
그가 한 말은 완전한 거짓은 아니다.
몇 년 전에 타지에서 배수 한 놈이 들어왔다. 살쾡이처럼 생긴 놈이었는데, 간악하기 이를 데 없어서 겨우 피죽이나 끓여 먹는 사람까지 등쳐 먹었다.
그놈은 호발귀가 손 봤다.
배수에게 배수 짓을 했다. 품을 다 털고, 놈의 이름으로 빚까지 얻었다.
결국, 놈은 강하에서도 버티지 못하고 쫓겨갔다.
그놈 말을 하고 있으니 앞뒤가 제법 맞아들어간다. 정신없이, 횡설수설 말할 수 있다.
왕소는 마지막 한 마디도 잊지 않았다. 눈물 어린 눈빛도.
“저는 정말 구전 몇 푼 얻어먹는 죄밖에는……”
“이게 전부야?”
흑의 무인이 다소 편안해진 말투로 말했다.
“네, 네. 정말 소인이 아는 것은 전부 다 말……”
쿡!
흑의 무인이 턱 밑 염천혈(廉泉穴)을 강하게 눌렀다.
왕소는 목이 콱 막히는 충격을 받았다.
급히 말을 하려고 했는데 말이 나오지 않는다. 성대가 꽉 막혔다. 아니, 숨도 막힌다. 숨을 쉴 수가 없다. 기도가 완전히 틀어막힌 것 같다.
그는 손을 허우적거렸다.
툭!
왕소 몸에 화섭자가 떨어졌다.
‘아아아악!’
그는 뜨거움을 참지 못하고 최대한 악을 썼다.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의 음성은 한 마디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화르르륵!
두 구의 불덩이가 방안에서 활활 불타올랐다.
“이게 뭐야! 사람이잖아! 물! 물 가져와!”
사람들이 들이닥치고, 물을 끼얹었지만, 불은 좀처럼 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