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二章 죽음이 더해지니(1)
“흐음!”
손님이 문 입구까지 왔다가 다시 돌아서 창가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순간,
스읏!
왕소는 안을 지켜보던 작은 구멍에 손가락을 넣고 옆으로 살짝 밀었다.
작은 구멍이 손 하나 집어넣을 정도로 넓어졌다.
그는 구멍에 팔을 넣고 손가락 사이에 끼워둔 면도날로 재빨리 봇짐을 그었다.
슷! 스스슷!
봇짐이 옆으로 쭉 찢어졌다.
배수에게 얌전히 놓인 봇짐을 찢는 것은 일도 아니다.
일명 ‘배따기’라는 기술인데, 봇짐 형태를 완벽하게 유지한 상태에서 벽에 붙은 쪽만 살짝 짼다.
손님이 보기에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이미 생선 배를 가른 것처럼 입이 쩍 벌어졌다.
첫수는 여기까지!
그는 재빨리 손을 빼고, 넓게 벌어진 구멍을 살며시 닫았다.
손님이 봉창(封窓)까지 갔다가 돌아섰다.
그는 차분하게 기다렸다.
뚜벅! 뚜벅! 뚜벅!
손님은 깊은 생각을 하면서 걷느라 봇짐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른다.
손님이 돌아선다. 기회가 또 왔다!
슷! 스스스! 사악!
작은 구멍을 열고, 팔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갈라진 배를 통해서 봇짐 속 물건을 꺼냈다.
이 기술은 ‘맹서(盲鼠)치기’, 쉬운 말로 두더지치기라고 한다.
두더지가 땅굴을 파듯이 손만 살짝 움직여서 물건을 빼낸다. 눈으로 볼 수 없으니 오로지 손끝 감각으로만 물건을 판단한다. 쓸데없는 옷가지는 젖혀 놓고, 돈이 될 만한 것만 건져낸다.
시간은 없고, 소리는 내지 말아야 하고, 뒤질 것은 많다.
쇠붙이!
딱딱하고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거기에 약간 탄력까지 있다.
‘은이다!’
그는 즉시 손에 잡힌 것을 끄집어냈다.
역시! 생각했던 것처럼 은덩이가 쭉 딸려 나왔다.
왕소는 만족해서 활짝 웃으며, 구멍을 살며시 닫았다.
사실, 장선루를 이용한 수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구멍 여닫기다.
구멍을 열었을 때, 바깥 햇살이 안쪽으로 스며들지 않도록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바람이 불어도 안 된다. 벌레 같은 것이 날아 들어가도 안 된다.
구멍을 여닫는 행동 자체도 중요하지만, 주위 환경을 잘 살피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봇짐이 찢겼다!
십삼비자의 눈가에 이채가 번뜩였다.
‘이런 방법도 있었군. 후후!’
자신이 직접 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정말 물건을 잃어버렸을 수도 있었다. 아예 객잔에 구멍을 뚫고 배수 짓을 할 줄은 생각도 못 했으니까.
배수가 이용하는 작은 구멍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도 찾지 못할 정도로 은밀했다.
매우 은밀하고 정교한 장치다.
드륵!
벽처럼 위장한 나무 밀창이 소리 없이 열렸다. 그리고 봇짐 속에 들어있는 돈이 슬쩍 빠져나갔다.
배수는 남아도는 게 시간이라는 듯 서둘지 않고 조금씩 빼낸다.
재미있는 놈들이다. 하지만 이 순간, 십삼비자는 배수 짓에 더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음!’
그의 얼굴이 곤욕스러움에 잔뜩 일그러졌다.
퍼엉!
봉창 너머로 노란색 폭죽이 보였다. 창호지에 가려져서 자세한 것은 보지 못했지만, 분명히 노란 폭죽이다.
귀무살만 사용하는 폭죽!
벌써 꼬리가 잡혔다.
흑림에는 애견만 들여보냈다. 흔적이 드러날까 봐 자신은 들어가지 않았다. 애견은 잘 훈련되었고, 십육비자 냄새를 모두 알고 있어서 종종 이용하곤 한다.
개를 이용해서 물건을 나르면 추격 단서도 끊어진다.
사람이 만든 흔적과 개가 만든 흔적은 완전히 다르다. 그리고 거의 모든 추격자가 개 흔적은 신경 쓰지 않는다. 맹견을 동원해도 사람만 쫓지 개는 추격하지 않는다.
그런데 귀무살은 흔적을 찾았다.
개가 남긴 흔적을 파악했고, 벌써 따라붙었다.
폭죽은 바로 그런 신호다. 귀무살의 신호체계로 볼 때, 노란색은 ‘계속 추격’이다.
꼬리가 잡혔으니 곧 부딪친다.
‘지금 몸을 빼내면 황수는 건너가겠는데, 비급이……’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
황수를 건너면 접선자가 있다. 십육비자 중 두 명, 팔비자와 구비자가 기다리고 있다.
귀무살이 황수를 건너까지 쫓아올 것에 대비해서 탈출로를 짜놓고 있는데…… 비급 없이 물러서기는 싫다. 비급 때문에 여인까지 세 명이나 목숨을 잃었는데.
장선루는 조용하다.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도 들린다.
청력을 한껏 열자, 쓱쓱 은자 집어가는 소리가 음악처럼 아름답게 들려왔다.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위험이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데, 은자에 정신이 팔려있는 모습이라니.
* * *
“폭죽은 왜 쏜 건데?”
잔살이 무지를 쳐다보며 말했다.
혈천방도는 움직일 때마다 의무적으로 보고한다. 그래서 폭죽을 쓴다. 귀무살은 폭죽을 사용하지 않는다. 전권을 위임받기 때문에 일이 끝날 때까지 보고라는 것을 하지 않는다.
천살단에서 귀무살 신호체계라고 알고 있는 것은 사실 혈천방도의 보고 체계다.
무지는 보는 사람도 없는데 폭죽을 쏘아 올렸다.
무지가 말했다.
“말해준 거야. 우리가 왔다. 그러니 너도 준비해라.”
“그러니까 그걸 왜 말해주냐고?”
“황수가 요 앞이야. 객잔에 들 시간이면 벌써 배를 타고 건너갔다고. 추격자가 있을 것을 빤히 알면서도 황수를 건너가지 않고 객잔에 들어? 이상하지 않아?”
“내 생각은 조금 다른데.”
언월이 말했다.
“황수를 건너온 놈만 벌써 셋. 이 정도면 많이 넘어온 거 아닌가? 무지 말대로 황수를 코앞에 두고 객잔에 머무는 게 이상하긴 한데, 이놈만 죽이면 우리 임무도 끝나니까. 무엇보다도 비급을 계속 남의 손에 맡겨두고 있는 게 불안하기도 하고.”
“내 생각도 그래. 일단 비급을 회수하는 게 급선무. 쫓을 만큼 쫓았고, 강하 땅을 밟은 비자도 더는 없을 것 같고. 이만 끝내는 게 좋겠어.”
쌍부가 말했다.
그들은 명령하는 자와 명령받는 자가 있지만, 상하 관계는 아니다. 수평적인 입장에서 임무를 수행한다. 다만 행동을 통일할 필요가 있어서 명령권을 준 것이다.
“의견들이 그렇다면 이만 끝내지. 공격하자.”
무지가 결론을 내렸다.
* * *
덜컥!
기와를 건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잡혔다!’
십삼비자는 즉각 사태를 파악했다.
객잔 지붕을 밟고 서 있을 사람이 누가 있겠나? 그를 잡겠다는 사람이지 않겠나.
“후후!”
그는 가는 웃음을 흘렸다.
쫓아오는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가까이 있었을 줄이야.
목숨에는 미련이 없다. 하지만 비급을 잃어버린 것은 못내 아쉽다.
‘어려운 일인 줄 알고 다섯 명이나 왔는데…… 결국 셋이 황수를 건너지 못하는군.’
그는 즉시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종이에 적었다.
십오비자가 독림에서 비급을 분실했다. 배수 짓인 것 같다. 강하 배수들을 닦달하고 싶었는데,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분명한 것은 혈천방도 비급을 갖지 못했다는 것, 그러니 아직도 비급을 취할 기회는 있다.
이제 자신이 할 것은 없다.
비급을 찾으려면 팔비자, 구비자가 황수를 건너와야 한다. 배수를 빠르게 수배해야 한다.
시간 싸움이다.
귀무살이 먼저 찾아내면 물건은 영영 회수하지 못한다. 반대로 비자 두 명이 바쁘게 움직이면…… 잘하면 천살단으로 가져갈 수도 있다.
아직은 늦지 않았다.
그는 밀지를 작은 전통에 넣었다. 그리고 애견의 항문 속에 전통을 쑥 밀어 넣었다.
애견이 그를 쳐다봤다.
그는 애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황수를 건너가라. 팔비자에게 가. 알았지?”
그는 두 손으로 애견의 머리를 만졌다. 그리고는 개를 집어서 창문 밖으로 던졌다.
풍덩!
개가 강물에 떨어졌다.
최소한 객잔 뒤에 강이 있다는 호객꾼의 말은 맞았다. 작은 실강은 황수와 이어진다.
* * *
스읏!
구멍을 열었다. 팔을 쑥 내밀어서 봇짐을 뒤졌다.
턱!
이번에는 쇠붙이의 느낌이 아니었다. 미끌미끌한…… 전혀 색다른 감촉이 느껴졌다.
‘이게 뭐야?’
손끝에 잡히는 감촉이 영 좋지 않다.
옷가지를 잡은 것 같은데, 그냥 놓기에는 너무 매끄럽다. 질이 매우 좋은 비단옷 같다.
‘집어?’
잠시 망설였다.
남이 입던 옷을 가져서 어디다 팔아먹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비단옷이면 돈 좀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뚜벅! 뚜벅!
빨리 결정해야 한다. 손님이 돌아서려고 한다.
‘에라, 모르겠다.’
그는 손에 잡힌 옷가지를 쑥 빼냈다.
이제 더 건질 게 없다. 전낭에 있는 돈은 모두 빼냈고, 이상한 옷도 가졌다.
‘오늘 완전 횡재했네. 겉보기에는 빈털터리 같았는데, 은자가 족히 백 냥은 넘어. 뭐? 호발귀가 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그놈을 기다렸다가는 이 돈 다 놓쳤지. 흐흐!’
왕소는 만족했다.
그는 구멍을 잘 막고 신나서 일어서려고 했다. 한데 억센 힘이 그의 뒷덜미를 낚아채는 게 아닌가!
“헉!”
왕소는 깜짝 놀라면서 뒤를 쳐다봤다.
흑의 무복을 입은 무인이 뒷덜미를 잡고 씩 웃었다.
“누, 누구신데……?”
왕소는 너무 놀라서 눈만 끔뻑거렸다.
막 도둑질을 끝낸 참이 아닌가. 뒷덜미를 낚아챘다는 것은 도둑질하는 모습을 봤다는 것이고.
‘재수 없게 됐네!’
왕소는 즉각 사태를 파악했다.
여기서 최고 좋은 방법은 무인에게 사정해서 빠져나가는 것이다. 봇짐에서 빼낸 것 모두 주고, 자신이 가진 것까지 내놓고라도 빠져나가야 한다.
‘언제 내 뒤로 왔지? 전혀 몰랐는데.’
왕소는 정녕코 무인이 다가서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바로 등 뒤까지 다가왔는데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발걸음 소리도 못 들었다.
이 자들은 무늬만 무인이 아니다. 진정한 고수다.
“자, 잘못했습니다. 부디 용서를.”
퍼억!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주먹이 복부에 틀어박혔다.
‘헉!’
동패는 왕소에게 다가서려다가 석상처럼 굳어져 버렸다.
처음 보는 자가 나타나서 왕소를 붙잡았다. 그리고 다짜고짜 두들겨 팼다.
객잔에 든 자와 한패인 것이 틀림없다.
‘잘못 건드렸다!’
후회가 확 밀려왔다.
‘병신! 그러니까 호발귀가 올 때까지 기다리자니까. 괜히 혼자 하겠다고 깝죽대더니. 그러나저러나 이놈은 어디 있는 거야? 이놈을 만나야 무슨 수든 쓰지.’
동패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왕소는 신나게 두들겨 맞을 테지만 곧 풀려날 것이다.
겨우 도둑질 좀 한 것 가지고 죽이네 살리네 하지는 않는다. 손모가지를 잘라버린다고 엄포도 놓겠지만, 사실 진짜로 자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괜히 붙어 있다가 같이 얻어맞느니 일단은 피하는 게 좋다.
‘아이고! 어쩌다가 걸려서는. 그럼 앞으로는 여기도 못 써먹는 거네? 제길!’
동패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그는 왕소가 잡혔다는 것보다도 장선루를 더는 이용하지 못한다는 게 더 아까웠다. 장선루를 이용한 맹서치기는 누워서 떡 먹기나 다름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