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一章 잘못된 물건(5)
애완견이 몸에 봇짐을 두르고 나타났다. 같이 따라와야 할 십오비자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불길한 예감대로 십오비자는 독림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귀무살이라는 놈들, 지독하긴 지독하다. 독림을 빠져나오기까지 비자 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
‘나도 안전하지 못해.’
십삼비자는 급히 애완견 허리에 감긴 봇짐을 끌어냈다. 그리고 안을 뒤적였다.
‘엇!’
십삼비자는 당황했다.
비급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 책만 없는 게 아니다. 봇짐 속에 당연히 들어있어야 할 은신포(隱身布)도 없다. 비자에게는 검이나 다름없는 옷인데.
십삼비자는 급히 봇짐을 털어봤다.
“응?”
책과 은신포 대신에 이상한 것들이 쏟아졌다.
왕지네가 한 꾸러미나 묶여 있다. 나무 상자도 있는데, 뚜껑을 열자 전갈이 튀어나왔다.
봇짐 속은 독물로 가득하다.
십삼비자를 노리고 일부러 독물을 넣은 것은 아니다. 왕지네를 묶어놓은 솜씨나, 전갈이 손상되지 않도록 목갑 속에 넣어놓은 것으로 봐서……
‘독림에서 독물을 채집했어. 하!’
그는 기가 막혀서 말문이 막혔다.
십오비자의 눈썰미는 알아준다. 십육비자 중 가장 날카롭다. 그런데 어떻게 봇짐이 바뀐 것도 몰랐을까?
혈천방이 물건을 찾아간 것은 아니다. 놈들이 가져갔다면 봇짐 속에 독물을 넣지도 않았다.
엉뚱한 놈이 중간에서 채갔다.
십삼비자는 왕지네와 전갈을 한참 동안 뚫어지게 쳐다봤다.
* * *
‘걸렸다!’
드디어 먹잇감이 포착되었다.
얼굴을 완전히 뒤덮는 큰 방갓을 눌러쓰고, 봇짐을 맨 나그네가 걸어오고 있다.
얼핏 보면 아무 이상도 발견할 수 없다. 평범한 나그네다.
하지만 그는 불안하다. 몹시 불안해서 걸음을 떼어놓을 적마다 사방을 살핀다.
‘불안한 행동! 큿! 안 그런 척해도 내 눈은 못 속여. 드디어 한 놈 걸렸고.’
그는 나그네를 주시했다.
신발에 흙먼지가 수북하다. 먼 길을 걸어왔다. 한데, 지친 기색이 전혀 없다. 보폭이 일정하다. 걸을 때마다 두 다리에 힘이 쭉쭉 들어간다.
‘무인이라는 거지?’
왕소(王劭)는 나그네가 무인임을 알아봤다.
나그네는 무인이라는 표식을 전혀 흘리지 않는다. 누가 봐도 평범하다. 무인다운 모습이라거나 예리함, 강건함 같은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자신을 완전히 숨겼다.
어지간한 무인도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완벽하게 숨겼다.
하지만 그는 사람을 전혀 다른 측면에서 관찰한다. 습관을 본다. 숨는 자들은 대부분 자신을 완전히 감췄다고 생각하겠지만, 그의 눈에는 무인의 버릇이 환히 보인다.
나그네는 경계심을 풀지 않는다.
어디서 누가 어떤 식으로 기습을 취해도 맞받아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
어깨는 느슨하다. 힘이 들어가 있지 않다.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지만, 몸은 편안하다. 양손은 묵직해 보이고, 가슴이 딱 벌어진 데 반해서 허리가 잘록하다.
‘제법 한 가닥 하겠는데.’
나그네가 어떤 인물인지 파악되었다.
다음은 병기다.
그의 몸을 훑었다.
머리는 방갓을 썼다. 무기가 아니다. 등에는 봇짐뿐이다. 아무것도 없다. 허리도 비었다. 품속이나 신발 같은 곳에 암기를 숨겼을 것 같지도 않다.
권각술(拳脚術)이 워낙 뛰어나거나 암기, 또는 비수같이 작은 병기를 쓰는 자다. 건추(鍵錐)나 간(鐗)처럼 부피가 작아서 품에 찔러 넣을 수 있는 병기를 쓸지도 모른다.
병기에 대해서는 대충 추정만 할 뿐, 속단하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그의 눈길을 잡아끈 것은, 나그네 옆을 졸졸 따르는 개다. 털이 거칠고, 생김새도 형편없고, 몸집도 작지만…… 그의 눈은 속이지 못한다. 명견이다.
개가 몹시 피곤해 보인다.
사람도 피곤하고, 개도 피곤하다. 거칠게 자란 털에는 흙먼지가 뿌옇게 쌓여 있다.
‘손님!’
먹이 중에서도 아주 좋은 먹잇감이다.
강하(江下)는 이 세상에서 인간이 머물 수 있는 최악의 마을이다.
황수 건너편 사람들은 강하를 아예 날급말(垃圾末), ‘쓰레기 끝자락’이라고 부른다.
마을 뒤는 독 숲, 흑림이다. 지옥을 등에 지고 있다. 앞은 먹을 수도 없고, 여름만 되면 홍수가 나서 마을을 물바다로 만들어 버리는 황수가 가로막았다.
이런 마을에 들어서는 사람은 세 부류다.
첫째 부류는 추격대를 피해서 서둘러 황수를 건너온 사람이다. 살인, 강간, 방화, 도둑질 등 무엇 하나는 잘못했다. 그것도 용서받지 못할 정도다.
이들은 건드리면 터진다.
강하에 쭉 눌러앉으려고 온 사람들로, 서열 정리가 될 때까지 마구 부딪친다.
둘째 부류는 너무 가진 게 없어서 바깥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이다.
강하에는 흑림에서 흘러나온 독충, 독사, 독초 등 독물이 즐비하다. 발에 밟히는 게 독물이다. 물론 흑림 독물이니 한결같이 독이 세다. 잘못 손대면 즉시 황천길이다.
하지만 그런 놈들이라도 잡아서 입에 풀칠하겠다는 사람들이다.
첫째와 둘째 부류는 배수도 손대지 않는다. 가진 게 너무 없어서 옷을 쨀 마음도 안 생긴다.
배수의 먹잇감은 ‘손님’이다.
길을 가다가 강하를 잠시 거쳐 가는 사람들인데, 이들은 마음껏 털어도 된다.
수수(掱手:소매치기)는 무인을 건드리지 않는 편이다.
무인의 감각은 보통 사람의 열 배가 넘는다.
등 뒤에서 가랑잎이 떨어지는 것까지 감지해내는 고도의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들의 이목은 날아오는 비수를 꿰뚫고, 십 장 밖에서 기어가는 개미를 알아챈다.
제아무리 뛰어난 수수라도 무인에게서 무엇인가를 빼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세상에 예외 없는 법칙이 어디 있는가.
‘너! 걸렸어!’
“저 사람 보이지? 개 데리고 있는 사람.”
“저 사람? 돈이 있을까? 내가 보기에는 빈털터리 같은데. 괜히 헛수고하는 거 아냐?”
“헛수고 아냐. 봇짐이 매우 묵직해. 옷가지 몇 벌 있다고 하기에는 너무 무거워. 분명히 금붙이 같은 게 있어.”
왕소가 자신 있게 말했다.
“이런 건 호발귀가 딱인데. 기다렸다가 호발귀가 오면 같이 하는 게 어때? 우리끼리는 좀 그렇잖아?”
호객 역할을 맡은 동패(棟牬)가 불안한 듯 말했다.
“괜찮아. 작업해. 호발귀 그놈, 어제오늘 코빼기도 안 비친다. 그놈 올 때까지 마냥 기다리다가는 저놈 떠나. 야! 내 손도 좀 믿어!”
“그 말이 아니라…… 알았어. 작업하지 뭐.”
동패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아이구! 먼 길 오셨네. 이 신발에 먼지 좀 봐! 손님, 조용하고, 아늑하고, 값도 싼 방이 있는 뎁쇼.”
호객꾼이 나그네의 발길을 잡았다.
“됐다.”
“아이구, 손님. 그러지 마시굽쇼.”
호객꾼이 나그네에게 찰싹 달라붙으며 말했다.
“저희는 후원도 있고, 연못도 있습죠. 각 채가 따로 떨어져 있고, 그러면서도 가격은 다른 집과 똑 같습니다요. 절대 후회하시지 않을 겁니다요.”
한 가지를 제시한다.
조용하다! 다른 사람과 만날 일이 없다. 여기에 반응을 보이면 제대로 찍은 거다. 그런데,
“됐다.”
나그네는 거절했다.
홀로 떨어져 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아니, 불안해하는 사람이 조용한 객사를 싫어할 리가 없다. 구미가 당기기는 하는데, 그보다 앞선 조건이 있는 게다.
호객꾼은 그런 사람을 대비해서 두 번째 제안을 한다.
“손님, 정말로 후회하지 않으신다니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값이 싼 대신에…… 히히! 안으로 좀 걸어 들어가긴 하는데, 정말 조용한 곳이 있습죠. 뒤에 강도 있어서 경치도 그만이고요. 한 번 가보시고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이놈이 되려 닷 푼을 드립죠.”
여기서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진 곳에 있다. 그리고 뒤에 강이 있어서 탈출이 쉽다.
이 말에 반응을 보이면, 놈은 도망자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닷 푼을 주겠다고?”
나그네는 짐짓 흥미를 느낀 듯 물어왔다.
놈은 확실히 도망자다. 구석진 곳과 뒤에 강이 있다는 말에 구미가 당겼다.
“아, 드리고 말굽쇼. 대신 마음에 드시면…… 헤헤!”
“알았다. 가보자.”
나그네가 피곤한 기색으로 말했다.
왕소는 벽을 따라서 걸었다.
방에 있는 자는 도망자다. 신경이 오직 바깥 동정에 쏠려 있을 것이다. 그러니 배수 짓을 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뭐……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니고.
드디어 목적한 곳에 왔다.
장선루(長仙樓)는 하루 방값만 스무 냥이다. 그런 방을 닷 냥에 내줄 미친놈이 어디 있나.
으슥한 곳에 있고, 뒤에 강까지 있어서 탈출하기도 쉽고…… 도망자가 투숙하기 딱 좋은 방을 기다렸다는 듯이 내줄 때는 의심이라도 했어야지.
‘열닷 냥이면 본전, 그 이하면 손해.’
그는 장선루주에게 스무 냥을 지급했다. 손님에게 방값으로 닷 냥을 받았으니 남은 돈은 열닷 냥, 이 돈은 도망자의 봇짐에서 수거해야 한다. 아니, 그 이상을 수거해야 한다. 작업하느라 공들이고, 노력한 품삯도 계산해야지.
스읏!
막아놓은 돌멩이를 치우자 벽에 조그만 구멍이 뚫렸다. 왕소는 구멍에 눈을 댔다.
‘역시 도망자!’
예감이 맞았다.
그는 구석진 방에 있으면서도 불안한 모습이다. 왔다 갔다 똥 마른 강아지처럼 서성인다. 그러면서도 마을에 눌러앉을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살인을 한 놈도 황수를 건너면 마음을 풀어놓는데…… 누구에게 뭔 짓을 저지른 거야?’
왕소는 나그네가 궁금해졌다.
강하에 처음 발길을 들이면 누구나 불안해한다. 하지만 불안에도 종류가 있다. 낯선 환경에 대한 불안감과 추격에 대한 불안감은 질적으로 다르다.
나그네는 아직도 도주하는 중이다. 강하에 있으면서도 계속 쫓기고 있다.
‘뭔 짓을 해서 쫓기는지 모르겠다만, 잘 해결하길 바라고……’
그는 방안을 살폈다.
장선루는 방의 구조가 모두 똑같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옆에 짐 놓는 탁자가 있다.
손님은 대부분 그곳에 봇짐을 벗어놓는다. 들고 온 것, 메고 온 것들을 풀어놓는다.
탁자 밑에는 귀중품을 보관하라고 철함(鐵函)도 비치해놨다.
여비를 두둑이 가진 부자 여행가를 위한 배려인데, 사실 진짜 부자는 강하 같은 곳에 오지도 않는다.
손님은 대부분 방에 들어서면 마음을 풀어놓는다.
방이 생각 밖으로 아늑해서 안도감을 느끼게 해준다. 이 방안에서만큼은 자신을 방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그만큼 장선루는 포근하다.
짐도 편안한 마음으로 탁자에 올려놓는다.
손님도 봇짐을 탁자 위에 올려놨다. 하지만 여전히 편안하지는 않다. 왔다 갔다, 왔다 갔다…… 끊임없이 방안을 서성인다. 잠시 멈춰서서 깊은 생각을 하기도 한다.
“휴우!”
손님이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히 고민거리가 있다. 아주 깊은 고민거리다.
‘좋아. 시작한다!’
손님에게 어떤 고민이 있는지 몰라도, 방안을 서성이는 행동은 그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다. 이쪽으로 왔다가 몸을 돌려서 저쪽으로 가는 동안, 작업을 끝낸다.
* * *
강하는 작은 마을이다.
강하 사람들은 넓다고 생각하겠지만, 십삼비자가 보기에는 무척 좁다.
이런 곳에서 설치는 배수가 몇이나 되겠나.
어느 놈이 되었든 한 놈만 잡으면 다른 놈들도 고구마 줄기처럼 쭉 딸려 나올 것이다.
십삼비자는 독림에서 봇짐을 가로채 간 자가 배수라고 확신했다.
한낱 배수가 독림 같은 데서 뭘 하고 있었는지, 어떻게 십오비자의 눈길을 피해서 봇짐을 낚아챘는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지만…… 배수 짓만은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봇짐에서 집게가 나왔다.
살모사가 입을 벌리지 못하게끔 집게로 머리를 꽉 눌러놨는데…… 집게가 매우 정교했다.
배수들이 남의 품에 있는 전낭을 집어가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다.
일단 배수부터 쳐 볼 생각이다.
다행히 배수 짓이면 빨리 비급을 회수해서 황수를 건너가면 된다. 하지만 배수 짓이 아니면…… 어떻게 한다? 귀무살이 쫓아오고 있는데.
‘훔쳐. 빨리.’
십삼비자는 벽에 난 구멍으로 동정을 살피고 있는 눈동자에게 말했다. 뭐든 빨리 훔쳐 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