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마전인-3화 (3/500)

第一章 잘못된 물건(3)

‘이거 뭐야?’

호발귀는 숨은 곳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귓가로 방금 막 도끼질을 한 자, 검을 휘두른 자, 그들 패거리가 나누는 말이 들렸다.

“미치겠네. 그걸 놓치면 어떻게 해? 흑무연(黑霧煙)은 천살단 비자(秘刺) 놈들이 자주 쓰는 거잖아. 그걸 못 잡아?”

“이놈 움직이는 게 보통 비자가 아니야. 천살단 십육비자(十六秘刺). 그놈들인 것 같아. 다른 무공은 모두 제쳐두고 오직 은신술만 수련한다는 놈들.”

“십육비자든 뭐든…… 아! 쉽게 끝날 일이 복잡해졌네. 어쨌든 잡아야지?”

“계속 찾아보고. 여기서 못 찾아도 황수 건너가기 전까지 잡으면 돼. 침착하자고. 아직은 괜찮아. 놓친 것도 아닌데 뭘 그래. 잘하면 비자 한두 놈쯤 더 잡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기운 내자고.”

‘미치겠네.’

호발귀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어쩐지 기분이 싸하다 했더니, 아주 좋지 않은 물건에 손을 대고 말았다.

대체로 이럴 경우, 미련 없이 물건을 버린다.

잘못된 물건은 오래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 값이 얼마가 나가든 즉시 버리는 게 상책이다.

물건을 버리고, 현장은 떠난다.

버린 물건에는 미련을 갖지 말고, 현장은 눈길도 주지 않는다.

배수 세계에서 오래 살아남으려면 먹을 수 있는 물건인지, 상한 물건인지를 빨리 구분해내야 한다.

이건 상한 물건이다.

‘잘못 건드렸어. 버려야 해.’

하지만 호발귀는 물건을 버리지도 못했다.

숨어있는 곳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다. 오도 가도 못 하는데, 무슨 수로 물건을 버리나. 오가는 것은 고사하고 숨도 크게 못 쉬는 형편이다.

보아하니 병기를 쓴 놈들은 고도의 수련을 거친 자들이다.

- 세상에는 도 아니면 모라는 놈들이 있다. 수련도 그런 식으로 하지. 수련을 성취하거나 죽거나. 청각을 얻거나 죽거나. 후각을 얻거나 죽거나. 그런 놈들은 독 냄새도 잘 맡아. 독 냄새를 맡으면 살고 맡지 못하면 당연히 죽는 거지. 살다가 그런 놈들을 만나면 무조건 납작 엎드려라. 무조건 살려줍쇼! 하라고!

딱 그런 놈들이다.

‘여기서 움직이면 바로 죽어. 꼼짝하지 말아야 해.’

호발귀는 몸이 뻣뻣하게 굳어오는 것을 느끼면서도 움직이지 못했다.

* * *

십삼비자는 애완견을 기른다.

암행을 나갈 때는 본문에 놓고 나가지만, 암행만 아니면 항상 데리고 나간다.

애완견은 보통 개가 아니다.

지금처럼 움직이기 곤란한 곳에서는 손발 역할을 아주 훌륭하게 해준다.

스읏!

개가 위장포를 뒤집어쓴 그를 찾아왔다.

“네놈이구나.”

그는 개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십삼비자가 기르는 개다. 그가 직접 오지 못하고 개를 보냈다.

정확한 판단이다.

귀무살이 움직인 이상 흑림을 빠져나가기는 힘들다. 그러니 다음 비자에게 봇짐을 건네야 하는데, 그 역시 귀무살에게 처형당할 게 뻔하다.

그래서 개를 이용한다.

그는 십 비자가 죽어가면서 가져온 봇짐을 개의 몸에 둘둘 감아주었다.

“주인에게 잘 전해.”

개가 알았다는 듯 혀를 내밀어 그의 손을 핥았다.

개는 잘 짖는다. 아주 목청이 크다. 하지만 소리를 내서는 안 되는 상황도 안다.

툭툭!

그는 빨리 가라고 개를 채근했다.

휘이익!

개가 어둠 속을 뚫고 사라졌다.

‘이제 나만 죽어주면 되나? 그러면 밖으로 나갈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는 게 좋겠지. 유인하려면 확실히 하는 게 좋으니까. 자, 움직일 테니 따라와!’

쉬이잇!

그는 흑림을 질주했다. 많은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기척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킥킥!”

“후후후!”

어둠 속에서 즉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방금 떠난 그림자를 향해 검광이 번쩍 터졌다.

* * *

‘아!’

호발귀는 일련의 움직임을 보자 더 움직이지 못했다.

개가 나타났다.

개는 아주 뛰어난 명견이다. 혹여 의심을 살까 봐 들개인 척 어슬렁거리면서 다가왔다.

연기가 아주 좋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개가 숲 구석으로 다가가더니 배를 깔고 누웠다. 그러자 기가 막힐 일이 벌어졌다. 어둠 속에서 손이 쓱 나오더니 개의 몸에 봇짐을 감아주지 않는가.

그 행동이 너무 은밀해서 하마터면 보지 못 할 뻔했다.

호발귀는 그제야 흑무연을 터트린 자가 겨우 대여섯 걸음 떨어진 곳에 숨어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바로 옆에 숨었는데도 새카맣게 몰랐다.

‘이것들 도대체 뭐야? 지금 뭐 하는 거야? 내가 무슨 일에 끼어든 거지?’

봇짐에 손댄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정말 이번만 벗어나면 손모가지를 잘라버리든가 해야지. 내가 그걸 왜 건드렸지?’

개가 숲을 떠났다.

동시에 다른 움직임들이 빠르게 일어났다.

제일 먼저, 어둠이 숲 안쪽을 향해 빠르게 질주해갔다. 일단의 무리가 바로 뒤를 쫓았고, 곧이어서 병기가 살을 찢고 뼈를 부수는 소리가 들려왔다.

쩌억! 빠악! 퍼억!

어둠 속에서 듣는 뼈 부서지는 소리는 저승사자의 울음소리만큼이나 섬뜩했다.

개를 따라가는 자도 보였다.

저들은 모든 것을 다 보고 있었다. 찾지 못한 것이 아니라 못 찾은 척 한 것이다.

저들이 자신을 보지 못한 것은 천운이다.

아니, 늘 행동이 굼뜨다면서 몽둥이로 등짝을 후려갈기던 날수수(捋掱手) 덕분이다.

날수수가 숨죽이는 법, 기척 숨기는 법, 동요하지 않는 법, 그래서 시신처럼 죽은 듯이 머무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발각되었다.

‘여기 대체 뭐가 들었기에?’

호발귀는 손끝을 봇짐 속에 살그머니 넣어서 내용물을 살폈다.

옷가지 몇 개가 있고, 전낭(錢囊)도 있다. 하지만 내용물 대부분이 책이다.

‘이게 뭐야? 책?’

손끝에 잡히는 감촉이 영 좋지 않다. 쇠붙이 느낌이 강하게 들어야 하는데, 종이! 종이책이 잡힌다. 손끝으로 살짝 더듬어 본 것이지만 틀림없이 책이다.

‘이런! 이게…… 이게……!’

호발귀는 얼굴을 확 찡그렸다.

겨우 책을 훔치자고 이 사단에 끼어든 건가?

황수 이남, 강하(江下) 사람에게 책은 불쏘시개밖에 되지 않는다.

열다섯 마을, 사천여 명의 주민 중 글을 아는 사람이 백 명도 되지 않는다.

그런 서책이 수북이 들어있다.

재빨리 손끝을 움직여서 책을 들춰봤다. 책 밑에 뭔가 다른 게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겨우 이 책 몇 권 때문에 사람을 개 패듯 때려잡겠는가.

‘없어?’

없다. 책밖에 없다.

‘으음!’

호발귀는 인상을 있는 대로 찡그렸다.

잘못된 물건 중에 최악의 것이 바로 종이다. 쇠붙이가 잘못되면 몇 명 죽는 선에서 그치지만, 종이가 잘못되면 수십, 수백 명이 죽을 수도 있다.

‘이건 함부로 버려서는 안 돼. 일단은 날수수에게 보여주고 상의해야 해. 이거 사람 여럿 죽일 물건이야.’

호발귀는 움직이지 않았다.

손은 어떻게 쓸 수 있나?

쥐는 것인가, 때리는 것인가, 만지는 것인가. 또 어떤 용도가 있는가?

- 나(拿), 전(纏), 배(背), 권(卷), 압(壓), 전(展), 등(蹬), 포(抱), 전(轉), 쇄(鎖), 분(分), 조(抓), 추(推), 반(搬), 구(摳), 탁(托), 점(點).

붙잡고, 얽고, 돌리고, 말고, 누르고, 펴고…… 찍고.

날수수는 손의 용도를 열일곱 가지로 규정했다.

그러면 손의 용도에 맞춰서 손을 가장 잘 쓸 수 있도록 용법도 있어야 한다.

열일곱 가지 용도에 맞춰서 열일곱 개의 용법을 연습했다.

스읏! 슷!

조용히, 조용히 손을 움직인다.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팔도 가만히 멈춰놓는다. 오직 손만 움직인다.

조(抓)! 긁는다!

다섯 손가락을 응조(鷹爪)처럼 오므린다.

이 순간, 다섯 손가락은 쇠로 만든 갈퀴처럼 단단해야 한다. 매의 발톱처럼 꽉 움켜잡을 수 있어야 한다. 말랑말랑 물러터지면 손가락 하나로 쿡 찌르니만 못하다.

스읏!

손가락을 오므려서 땅을 긁었다.

땅이 쭉 파였다. 하지만 소리는 나지 않는다. 흙을 긁을 때 작은 돌들도 걸렸지만, 소리를 흘리지는 않았다.

호발귀는 혼자 있거나 적적할 때면 늘 이렇게 열일곱 가지의 용법을 연습했다.

날수수는 열일곱 가지 용법만 능숙하게 다뤄도 굶어 죽지는 않는다고 했다. 배수 짓에 필요한 수법을 특별히 배우지 않아도 남의 품에 있는 전낭쯤은 빼낼 수 있게 된다.

정말 그렇다.

반(搬)! 옮긴다, 나른다!

이쪽에 있는 것을 저쪽으로 옮긴다. 남의 품에 있는 전낭을 내 품으로 옮긴다.

말은 굉장히 쉽지만, 용법을 익히기는 굉장히 어렵다.

반의 용법을 사용하려면 관절 사용에 유의해야 한다.

- 관절과도전전(關節過度展轉), 여반두(如搬頭), 반퇴(搬腿).

관절을 지나치게 펼치는 것은 머리와 다리를 옮기는 것과 같다.

특히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관절 움직임이 적절하지 않으면 전낭을 옮기지 못한다. 옮기는 도중에 발각된다.

스읏!

반을 펼쳐본다.

손목 관절에 힘을 풀고 봇짐을 낚아채듯 들어서 옆으로 옮겼다.

소리가 나지 않았다. 무엇이 움직인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완벽한 ‘반’이다.

‘잘만 하는구먼. 뭐가 미숙하다고……’

날수수는 늘 못한다고 핀잔을 준다. 너만 보면 아직도 젖비린내가 풀풀 풍긴다고 말한다.

‘이제 움직여도 되나?’

호발귀는 앉은 자리에서 반나절 동안이나 꼼짝도 하지 않았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살귀도 떠나갔고, 봇짐을 가지려고 애를 쓰던 사람도 없다.

‘지네 독 좀 가지러 왔다가 이게 뭐냐? 제발 귀찮은 일만 안 생겼으면 좋겠는데.’

호발귀는 캄캄한 어둠 속을 쓸어봤다.

흑림은 독림이다. 독초와 독물이 무척 많다.

독림에는 맹수도 많고, 독충도 많지만 조심만 하면 다치지 않는다. 무조건 독이라면 싫어하는 사람이 문제지, 독에 대한 지식만 갖추면 위험을 피할 수 있다.

호발귀는 왕지네와 붉은 전갈을 채집하기 위해서 종종 독림을 찾는다.

왕지네의 독은 사람을 마비시키는 데 쓴다.

아주 거친 자를 만났을 때, 살짝 지네 독을 풀어서 호흡 마비만 일으킨다.

물론 생명에 지장이 있는 마비는 아니다.

왕지네에게 잘못 물리면 심장마비도 일으키지만, 그렇게까지 심하게는 쓰지 않는다. 배수 짓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도? 딱 그 정도만 쓴다.

호발귀는 독에 대해서 약간, 아주 약간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정도 지식만으로도 강 건너에서 온 온갖 범법자들을 너끈히 상대했다.

지네 독이 다 떨어져서 조금 챙겨간다고 숲에 들어왔다가 이상한 일에 엮었다.

요놈의 손버릇이 시도 때도 없이 발동하는 바람에.

‘됐어. 아무도 없어. 언제까지 여기 눌려 있을 수도 없고, 배도 고프고…… 가자.’

호발귀는 어둠 속에서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코앞에 죽은 사람이 있다. 벌써 시신을 파먹겠다고 독충들이 달라붙었다.

조금 먼 곳에 또 한 사람이 쓰러져 있다.

다른 때 같으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방금 죽었으니 품을 뒤져보면 동전 몇 개라도 나온다.

하지만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니다.

무조건 독림을 벗어나고 싶다. 빨리 돌아가서 따뜻한 밥을 먹고 싶다.

스읏! 스으읏!

호발귀는 어둠 속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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