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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귀귀환-310화 (310/316)

310화 변화

균형을 깨는 존재는 여럿 있었다.

천화련주가 판단하기로 혈마교의 교주나 흑살문주 그리고 북해빙궁주는 균형을 깨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살려 뒀다. 그들은 필요악이다. 정의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그들은 도움이 됐다.

백성들의 심리를 통제할 수 있도록 했으며, 그들이 품은 마기는…….

천화련주가 심어 놓은 하나의 열매 같은 것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그런 존재들은 균형을 깨는 존재들이 아니다.

천화련주가 판단하기로 균형을 깨는 이들은, 비록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이들을 지칭한다. 물론, 대부분 천화련주가 나서기도 전제 중원의 풍파에 휩쓸려 사라져 버리곤 했다. 대표적으로 신룡태자(神龍太子), 성수화타(聖手華陀), 건곤신마(乾坤神魔)가 있다. 그리고 그들과 황극린은 또 다르다.

그는 천화련주가 심어 놓은 혈마교주나 흑살문주를 상대하고도 살아남아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방금 보여 준 능력은, 인간이라면 가지지 말아야 할 힘이었다.

까드드득-

까득!

뼈가 부딪치고, 움직이는 소리. 실로 소름이 끼쳤다. 천화련주의 육신이 눈 깜빡할 새에 변화하기 시작한다.

손톱은 길어지고 검게 변했다.

피부가 녹색과 보라색이 섞여 기괴하게 변모했다. 또한, 머리카락이 순식간에 길어졌다.

“넌… 까득, 여기서, 죽어야, 한다.”

말이 어눌해졌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단지 그의 신체 구조가 급격하게 바뀌어 제대로 사람의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게 문제였다. 잠깐 보이는 그의 이는 마치 짐승의 것과 같았다.

솨악!

검은 손톱이 황극린을 향해 휘둘러졌다.

“……!”

손톱에 담긴 진득한 마기가 공간 자체를 물들였다. 황극린은 직접적인 타격을 피해 냈지만, 사방을 옥죄는 마기에 순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황극린의 뇌기는 마기를 찢을 수 있다.

그러나 천화련주의 마기는 확실히 무언가 달랐다. 혈마교주나 유령 그리고 흑살문주가 다루던 것과는 말이다.

촤아아악!

천화련주의 전신에서 피가 솟구친다. 인간 수십 명을 짜내 만들어진 듯한 피의 양. 그것은 한 방울, 한 방울 의지가 있는 듯이 황극린을 노리며 쇄도했다. 촉수처럼 유연하게 뻗어 오는 그 공격에 황극린은 중단전의 힘과 함께 뇌혼을 터트렸다.

쿠릉! 쿠릉!

황극린의 손짓 한 번에 마기가 찢어진다. 핏줄기가 녹아내렸다.

하지만 천화련주의 공격이 끝이 없었다.

콰지지지지직-!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황극린의 표정이 변하기엔 충분했다. 천화련주는 마경 내부에서도 황극린의 뇌탄에 당했다. 마경에서 나왔으니 더 약화됐어야 한다.

천화련주는 더 강해졌다.

그리고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와 핏줄기는 점점 거세지고 있다.

- 까드드득!

그러나 천화련주의 얼굴도 볼만했다. 황극린의 뇌전을 마주하면서 느끼는 것인데, 평범한 힘은 절대 아니었다.

콰아앙!

단순히 황극린의 뒤로 접근했을 뿐인데도, 천화련주의 순간적인 속도에 충격음이 발생한다.

“재생, 그것은, 인간의 것이, 아니다.”

조금 더 빨라진 천화련주의 말. 황극린은 그의 얼굴을 가까이서 마주할 수 있었다. 얼굴과 전신에서 얇은 지렁이들이 기어 다니는 듯이 꿈틀이고 있었다.

천화련주가 손톱을 앞세워 손을 내질렀다.

그의 손과 황극린의 권격이 부딪친다.

뇌혼(雷魂).

뇌화경천(雷火經天).

극도의 양기를 품은 뇌기는, 화염도 일구어 낸다. 마기를 찢을 수 있는 건 뇌기만이 아니다. 황극린이 발현하는 모든 힘이 뇌기를 상대할 수 있다.

화염과 뇌기가 뒤섞인 황극린의 권격.

천화련주가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촤아아아악!

천화련주의 몸에서 피보라가 몰아쳤다. 그것은 분명 피처럼 보였으나, 정확히는 피가 아니었다. 천화련주의 적혈강은 물처럼 부드러웠으나 강철보다 단단했다. 유려하게 움직이는 피보라가 황극린의 권격에서 파생된 뇌화경천을 흘려 내고, 막아 냈다. 심지어 작은 틈을 찾아 피의 칼날을 쏘아 대기도 했다.

주먹과 손바닥이 부딪쳤지만, 황극린의 몸에 크고 작은 상처가 남았다.

물론, 금방 회복되긴 했지만…….

‘내력의 소모가 심하군.’

뇌혼을 발동하는 건, 심력과 내력 모두를 소모한다.

그러나 아직은 예상 범위 내였다.

쿠릉!

뇌격의 굉음이 터졌고.

황극린이 순식간에 천화련주의 뒤로 이동했다.

“……!”

천화련주는 당황하는 눈치였다.

황극린은 저들이 사용하는 암천성휘의 힘을 따라 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기에 비워 낼 수 있었고, 순수한 뇌기를 몸에 채워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기(氣)를 다루는 방식에선 배울 점이 많았다.

예를 들면, 흑살문주가 보여 줬던 영역(領域)이었다. 그는 자연의 기를 이용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빠르게 진을 형성한다. 그리고 그 공간 속에 녹아 마치 축지법이라도 쓴 듯이 이동했다.

황극린은 뇌전의 영역을 만들어 냈으며, 쇄도하는 피의 칼날을 모두 피한 채로 천화련주의 뒤로 도착할 수 있었다. 천화련주가 만들어 낸 피의 칼날이 빈 공간을 베어 내고 있다.

뇌혼.

뇌정우(雷霆雨).

뇌전이 비처럼 쏟아진다. 위에서 아래가 아니라 옆에서 옆으로. 황극린의 손끝을 따라 뇌전이 폭사됐다. 천화련주의 전신이 뇌전으로 집어삼켜졌다.

쿠르으응-!

순간적으로 발한 빛은 일정 반경의 어둠 자체를 지워 버릴 정도로 강렬했다. 당연히 그 빛은 마기에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후두두둑!

단단하기 그지없던 천화련주의 피들이 땅으로 힘없이 추락했다.

뇌정우에 직격당한 천화련주의 한쪽 눈동자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리고 몸 곳곳에서 탄내가 진동하고 있다. 동물의 살이 타는 냄새가 아니었다. 마치 독극물이 탄 것처럼 기괴한 내음이 퍼져 나갔다.

황극린의 공격은 한 번이 끝이 아니었다.

쿵! 쿠웅!

주먹을 휘두른다. 단순히 내공만으로 만든 것보다 실제 주먹이 더 빠르고 간결할 때가 많았다. 천화련주의 뼈마디가 부서지는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살가죽이 터져 나갈 때마다 그의 피가 황극린의 몸에 튀었다.

‘이놈…….’

그리고 황극린은 그를 타격하며 느꼈다.

천화련주도 보통 인간이 아니라는 걸 확실하게 말이다.

‘맞으면서 변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얼핏 불안정하게 일렁이던 지렁이의 움직임과 같은 꿈틀거림이 사라지고 있다. 그의 육신은 마치 인간이 아닌 도마뱀처럼 변해 가고 있었다. 분명 황극린의 권격에 뼈가 부서지고 피부가 타들어 갔는데도, 점점 피부의 색이 일원화되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수준의 회복이로군. 아니, 회복이 아니라 변화인가.’

황극린은 짧은 순간 판단했다.

단순히 뼈를 부수고, 피부를 타게 하는 것으로는 그를 완전히 해치울 수 없다.

‘뇌와 심장.’

동시에 노린다.

황극린은 확실하게 천화련주의 약점을 파악했다.

그의 양손에 뇌기가 맺혔다. 그것은 마치 창처럼 예리하게 날이 서 있었다. 그것을 들고 천화련주의 머리와 가슴에 찔러 넣었다.

콰우우우우-!

동시에 뇌창의 기운이 폭발했다. 단순히 찌르는 게 끝이 아니다. 뇌창에 담긴 뇌기는 뇌탄처럼 그의 육신을 좀먹을 것이다.

그러나 황극린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천화련주는 간발의 차이로 머리로 향하는 뇌창을 피해 냈다. 심장은 겨우 찌를 수 있었지만…….

타닥.

천화련주는 흑살문주가 활용하던 영역의 진법화를 이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순수한 육신의 힘만으로도 그의 속도는 순간 황극린이 놓칠 수준이었다.

참으로 놀라웠다.

살짝 떨어진 곳에서 천화련주와 황극린이 마주한다.

천화련주는 이질적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한쪽 팔은 부서지고, 심장은 꿰뚫려 있었지만… 눈빛은 흉흉하게 번뜩이고 있다.

“무림인 중에서 너만 한 존재는 없었을 거다.”

천화련주는 황극린을 인정했다.

솔직히 조금 전에는 죽을 뻔했다. 뇌창에 담긴 힘은 천화련주조차도 이성을 잃을 정도로 강렬했다. 아직도 가슴이 뛰고, 머리가 지끈거린다. 머리가 관통당했다면… 황극린의 승리로 끝났으리라.

“너도 사람은 아닌 것 같군.”

천화련주는 기괴하게 변화한 손을 내려다본다.

“대가라고 할 수 있겠지.”

그의 말에는 왜인지 분노가 담겨 있었다.

“아직 완벽하지 않았다. 시간이 더 필요했다. 네게 사용할 힘이 아니었다.”

이제는 발음 또한 어눌하지 않았다.

“그러나 네게서 다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구나.”

천화련주는 황극린의 뇌전에서 가능성을 보았다.

비록에서 예언한 그것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황극린을 통해 답을 찾아야 한다.

“네가 내 앞에 나타난 것은 하늘의 시련. 염원을 이루지 못하게 방해하는 천심이겠지.”

“…….”

“언제나 그래 왔듯. 우리는 극복할 수 있으리라.”

천화련주는 우리를 언급했다.

“너는…….”

“네 피는 무슨 맛일지 궁금하구나.”

“……!”

황극린이 황급히 바닥을 박치고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 순간 힘없이 추락했던 천화련주의 피가 꽁꽁 뭉쳐 솟구치기 시작한다. 수백 개의 피의 촉수가 황극린을 향해 돌진한다.

촤아아아아-!

가공할 속도. 허공답보로 공간을 밟고 이동했지만 피해 내기가 쉽지 않았다.

“큭.”

심지어 뇌혼으로 만든 반탄지기를 뚫고 들어온다.

황극린의 뇌기는 마기를 찢는다. 그렇다면 천화련주의 마기는 황극린의 뇌기를 뚫을 수 있을까? 정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이미 황극린은 왼팔이 잘린 전적이 있다.

수백 가닥의 피의 촉수가 황극린의 사지를 결박했다.

“다시 묻겠다. 네 힘은 어디서, 어떻게 얻은 건가?”

“그게 왜 궁금한 거지?”

천화련주는 황극린이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언제든 반격할 준비를 하고 있으리라. 그 예로 황극린을 속박한 촉수들은 마비가 된 듯이 움찔움찔 떨고 있다. 단순히 황극린의 뇌기와 접촉하는 것만으로 적혈강의 지배력이 감소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온전히 마기를 받아들인 순간.

천화련주의 머릿속엔 패배란 없었다.

“신수의 내단.”

“…….”

“본 적이 있나?”

황극린의 머릿속에 한 단어가 떠올랐다.

인형혈삼. 그것은 인간의 형태를 한 붉은 삼이었다. 새로운 삶을 찾게 되었어도 그 존재를 찾아 헤맸지만, 알고 있는 자들이 없었다.

지금 천화련주는 분명 인형혈삼을 언급하는 것이다.

“인형혈삼을 말하는 건가?”

“…….”

인형혈삼이라는 말에도 천화련주는 놀라거나 하지 않는다.

“그걸 취한 건가?”

“나도 하나 묻지. 신수의 내단을 취하면 무엇이 달라지는 거지?”

“신수는 영물의 극. 과거 대지를 지배하던 이들은 신수라 불렸다. 지금보다 더 농밀했던 대기의 기운을 받아들여 덩치를 키우며, 인간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내력을 품고 있었지.”

황극린의 머릿속에 현무가 떠올랐다.

“그런 힘이다. 그리고 우주와 소통하여 얻은 힘이 아닌 지극히 순수한 자연의 힘이지.”

“…….”

“다시 묻겠다. 신수의 내단을 취했는가?”

“뭐가 달라지지?”

“살려 주도록 하지.”

자비를 베풀듯 말하는 천화련주.

외형이 바뀌고 난 뒤로 그는 달라졌다. 지금도 그의 눈빛에는 분노가 깃들어 있다. 조급함도 엿보인다. 그의 말대로 지금 당장의 변화는 큰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는 뜻이다.

“네가 원한다면 아끼는 만뇌문도들도 살려 주마. 네 피를 바치는 대가다.”

“천화련의 뇌옥에 들어가라는 말이로군.”

“이해가 빠르구나.”

천화련주는 인간의 피를 뽑아 내력으로 치환했다.

신수의 내단을 취한 황극린의 피라면… 오늘의 부작용을 감당하는 것도 가능하리라.

순간적으로 절대적인 힘을 얻었다.

그러나 이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선택이었다. 지금도 천화련주의 머릿속에 온갖 목소리가 들려온다. 마경과 정신을 연결한 대가였다.

“말하라.”

황극린이 미소를 머금는다.

“무서운가 보군.”

“…….”

“내가 신수의 내단을 취하지 않았다고 할까 봐 말이다.”

천화련주의 분노가 깊어진다.

그의 숨소리가 조금씩 깊어지고 있다.

황극린은 천화련주에게 위험한 존재다. 사대마제 중 세 명의 합공에도 살아남았던 천화련주다. 그의 무력은 절대적이라 칭할 만하다. 그런데도 황극린 한 명을 당해 내지 못했다. 결국, 최후의 수단을 꺼내야지만 황극린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그런 존재가 신수의 내단을 취한 게 아니라면?

단순히… 재능이었다면?

천화련주의 계획은 모두 일그러진다.

순수한 인간의 재능과 노력으로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게 천화련의 오랜 신념이었으니까.

“감이 확실히 잡히는군. 이번 생에서 왜 다르게 살 수 있었는지.”

“이번 생……?”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천화련주의 얼굴.

황극린은 솔직히 인형혈삼이 신수의 내단인지 아닌지는 상관없었다. 그는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할 뿐이었다. 살수로 살아갈 때도 그러했듯. 지금도 마찬가지다.

“네가 그토록 바라던 신수의 내단을 내가 취했다고 치자.”

“너는…….”

“그럼 어찌 승리를 장담하고 자비를 베풀 수 있지?”

“……!”

이변은 황극린을 속박한 피의 촉수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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