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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귀귀환-299화 (299/316)

299화 계략과 함정

“천화련주가 왜 널 찾는다고 생각하느냐?”

“모르겠소. 들어 보니 황씨 가문의 황보휘를 무림맹으로 불러들인 게 천화련주라고 하더군. 그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오.”

턱을 긁적이는 뇌불.

그 또한 과거에 천화련주를 본 적이 있었다. 역대 천화련주들은 모두 막강한 무위를 자랑했다. 용봉지회에서 만났던 천화련주는 그야말로 괴물이었다.

“용황신가인지 뭔지에 대하여 알고 있느냐?”

“자세히는 모르오. 듣자 하니 마기를 정화할 수 있는 핏줄이라고 했소.”

“으음, 그러고 보니 천화련 놈들이 해괴한 무공을 익히고 있었지. 혈마교주가 네가 타고난 힘을 취하려 널 노렸었다. 어쩌면 이건 천화련주의 함정일 수도 있다.”

황극린도 동감하는 바였다.

그 또한 몰랐던 출생의 비밀. 첫째로는 그의 어머니가 북해빙궁 출신이었다는 점이었고, 둘째로는 황씨 가문이 과거 잘나가던 무가였다는 점이다. 구파일련이나 육대세가라는 이름이 정립되기도 전, 지금과는 전혀 다른 무림에서 활동했던 가문이라 했다.

천화련주는 어떻게 황씨 가문이 용황신가라는 걸 알고 있었을까?

하필이면 왜 사흑련이 싸움을 걸어왔을 때, 그들을 무림맹으로 불러들였을까?

의심이 갈 수밖에 없다.

천화련이 익힌 무공만 보아도 정상은 아니다. 인간의 피를 채혈하여 내공의 양분으로 삼는다는 기괴한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천화련주의 소집령엔 응하지 않을 생각이오.”

“잘 생각했다.”

당연한 일이다.

천화련주가 무슨 속셈인지도 모른다. 거기다 혈마교주가 버젓이 중원을 활보하고 있다. 다짜고짜 만뇌문을 노려 오지 않고 있으니 함부로 자리를 비울 순 없다.

‘거기다 흑살문주도 만만히 볼 상대는 아니지.’

흑살문의 살수들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이 작정하고 살행을 시작하면, 발각하는 게 상당히 까다로워진다.

또 빙궁까지 엮인다면…….

“혈마교가 바로 만뇌문으로 치고 들어오는 게 아니라 화산이나 다른 문파에 지원을 요청하기는 쉽지 않겠구나.”

“괜찮소. 용성이 있으니 말이오.”

“그렇지. 놈은 이제 황제가 되었으니까. 뭣하면 혈마교주가 자리를 비운 틈에 십만대산을…….”

황극린이 미소를 머금었다.

뇌불이 고개를 갸웃한다.

“뭔가 생각이 있더냐?”

“이미 진행하고 있소.”

“마령인가 그 아이가?”

“그렇소.”

마령과 천흉.

두 여인은 십만대산 내부를 뒤집을 계획을 짜고 있었다. 지금 소교주로 책봉된 제1공자 마영비는 마경에 진입했다고 한다. 천마신공을 익히기 위해서였다. 거기다 혈마교의 부교주는 전부 자리를 비웠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그래도 가능하겠느냐? 혈마교의 전력은 만만치 않다.”

맞다.

교주와 부교주를 제외하더라도, 혈마교에는 인재가 넘쳐 난다.

“난 천화련으로 향할 생각이오.”

“응?”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던 뇌불.

그가 이마를 탁 쳤다.

“너 설마?”

“대외적으로는 천화련의 소집령에 응할 생각이오. 하지만 여기서 천화련까지 거리가 있지 않소?”

“만약 사파 놈들이 애먼 계획을 세웠다면…….”

“아마 내가 자리를 비운 틈에 움직일 것이오. 만뇌문을 인질로 삼으려 하든가, 진 밖으로 나간 나를 잡으려 하겠지.”

“함정을 파겠다는 말이로구나.”

“그렇소.”

“후후후.”

뇌불이 싱긋 웃는다.

이런 작전은 나쁘지 않았다. 요즘 만뇌문에 박혀만 있으니 적들의 계략에 놀아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나, 이렇게 주도적으로 상황을 바꿀 수 있다면… 오히려 좋지 않은가?

“놈들이 걸려들었으면 좋겠군.”

그들은 미끼를 던지기로 했다.

* * *

천화련주는 어두운 단상에 앉아 있었다. 황극린이 소집령을 거부할 줄 알았다. 무림에서 명분을 만드는 건 중요하다. 현 무림맹의 맹주는 천화련 출신의 무인이다. 그리고 천화련주 계양은 무신이라 불리고 있다.

“의외로군.”

황극린이 아무리 최근 위상이 높아졌다고 해도, 천화련주와 비교할 수는 없다.

“만뇌문의 행보로 보면 당장 거절할 줄 알았거늘.”

황극린은 천화련주의 소집령에 응했다.

당연한 일이라서 그런지 정파 무림에 큰 반향은 없었다. 뭐, 용성 소속인데도 천화련주의 명령에는 따를 수밖에 없구나, 황극린을 비꼬려는 반응이 조금 있다고는 하지만 극소수에 불과하다.

“군사.”

“예.”

“계빈의 변화는?”

군사 계몽령.

그는 천화련주의 친동생이다. 수십 명에 달했던 천화련의 직계들이었지만, 두 사람을 빼고는 모두 죽었다. 계몽령은 특이하게도 안대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그걸 보면 눈이 성치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소련주께선 확실히 달라지셨습니다.”

계빈은 왜인지 달라진 경위에 대하여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련주는 그가 달라진 시점이 만뇌문에 납치당한 후였다는 걸 알고 있다. 만뇌문에는 황극린이 존재한다. 그가 데리고 있는 황보휘와 같은 출신이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지금은 공녀님과 비슷한 식단을 유지하신다고 합니다.”

“그러고도 균형이 깨지지 않았다는 말인가.”

“예.”

천화련주가 눈을 감았다.

그러자 어두웠던 공간이 한층 더 어두워진 느낌이다. 정확히는 시각적으로 어두워졌다는 게 아니다. 음산하면서도 무거운 기류가 공동 전체를 감싸고 있다. 군사 계몽령은 저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

“소련주를 불러와라.”

* * *

만뇌문의 하위 정보 문파인 무문.

그곳에서 의도적으로 정보를 퍼트렸다. 황극린의 출타 소식은 금세 혈마교주의 귀에도 들어갔다.

부교주 독심마불(毒心魔佛)은 당장 달려가 교주에게 보고했다.

“그렇군.”

천화련주와 황극린이 만난 이후의 상황은 전혀 예상되지 않는다. 천화련주는 무슨 이유로 황극린을 부른 걸까? 애초에 지금 천화련에 박혀 있는 상황 자체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대체 그놈은 뭘 생각하고 있을까?

“두 사람이 만나게 해서는 안 되겠군.”

“황극린의 이동 경로를 추적해 보겠습니다.”

“아니, 그렇게 해서는 놈을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황극린의 실력은 잘 알고 있다. 혈마교주 본인만 하더라도 작정하고 경공을 펼치면 그 어떤 포위망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자부한다. 정확한 경로를 모른다면 추적은 소용이 없다.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청성산을 공략한다.”

만뇌문이 아니라 청성산이다.

그들을 지키고 있는 진은 위험하다. 그 안에서 싸운다면 무의미한 전력의 손실을 불러올 수 있다. 혈마교주가 마지막으로 노리는 건 천화련주다. 이곳에서 전력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만뇌문이 아닌 청성산을 공략하는 거다.

이번에도 놈들은 온갖 함정을 준비해 놓았을 게 분명하다. 그게 아니라면 황극린이 천화련주의 소집령에 응한 것 자체가 거짓일 수도 있다.

“예, 건곤일마(乾坤一魔)에게 준비하라 이르겠습니다.”

결국, 진이라는 건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청성산의 정기를 빨아들여 진을 유지하는 게 당연하다. 진 자체를 노리려면 청성산의 정기를 흩트리면 된다.

건곤일마는 부교주 중에서도 진법에 해박하다.

혈마교주가 저 멀리 보이는 청성산을 바라보았다.

아쉽게도 정파 무림이 황극린을 배척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황극린을 사로잡는 것이었으니까.

‘진의 도움이 없다면 네 힘은 반감되겠지.’

뭐, 진 안에서라도 일대일로 정면 승부를 펼쳤다면.

혈마교주가 가진 패를 모두 보였다면 그 자리에서 황극린을 사로잡을 수 있었으리라 판단했다.

다만, 그가 모든 것을 걸지 않은 건 황극린은 지나가는 작은 관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네가 세상의 중심이라 생각하고 있을 때겠지.’

하나, 틀렸다.

혈마교주가 품속에서 작은 서책 하나를 꺼낸다. 회생비록이라는 제목이 쓰여 있다.

‘난 운명을 알고 있다.’

아는 자와 모르는 자의 간극은 그 어떤 것으로도 메울 수 없었다.

* * *

언제나 사건이란 예상치 못하는 때 터지는 법이다.

콰아앙-!

청성산 곳곳에서 격렬한 폭발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삽시간에 청성산 곳곳에 화염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산이 품고 있는 정기를 흩트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물론, 지맥(地脈)에 담긴 힘 자체를 없애는 건 단기간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청성산의 정기를 기초로 하여 만들어진 진을 흔드는 건, 청성산에 가득한 초목의 정기를 지워 버리면 된다.

“불이다!”

“이게 무슨!”

청성파의 무인들이 상청궁(上清宮)에서 튀어나와 점점 거세지는 화마를 바라본다. 멀리서 보면 은근히 작아 보였지만, 거리를 생각하면 끔찍한 수준이다. 멀리서 들려오는 폭발음이 멈추지 않는다. 작정하고 청성산에 불을 지르는 놈들이 있다.

“흉수를 제거하라!”

“예, 장문인!”

청성파의 무인들이 급박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그건 만뇌문도 마찬가지였다.

“미친 것들이로군.”

불은 점점 강해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잘 타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지만 청성산은 탈 것이 사방에 널려 있다. 그리고 작정하고 불을 질러 대고 있으니 불길이 잡힐 리가 만무하다.

“문주님! 진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나가서 불길을 잡아야 할까요?”

만뇌문을 지켜 주는 진을 버리고 밖으로 나가는 건 몹시 위험하다. 적들이 노리는 게 그것이리라. 그렇기에 쉬이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기다려라.”

뇌불의 말은 모두에게 신뢰를 주기에 충분했다.

“극린이가 가만히 보고 있을 놈이 아니지.”

황극린의 이름이 나오자 문도들의 불안감도 금세 해소되었다. 솔직히 그들의 머릿속엔 해결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지만, 황극린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 * *

“만뇌문에선 전혀 움직임이 없습니다.”

섭혼요희의 보고에 혈마교주는 무심하게 저 멀리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본다. 상당히 오래 준비한 작전이기도 했다. 처음 만뇌문의 진을 겪은 후, 나오자마자 계획했으니까.

“상관없다, 진만 깨진다면 놈들을 제압하는 건 쉬울 터이니. 어쩌면 자멸할 수도 있겠지.”

진으로 만들어진 공간.

그 근간이 파괴된다면 안에 있는 이들은 어떻게 될까?

‘마공과 비슷하군.’

혈마교주는 이 상황에서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파괴를 위한 힘. 하늘의 뜻을 반한다고 하여 역천(逆天)이라 무공 불리는 마공. 기반을 쌓아 튼튼하고 착실하게 쌓아 가는 무공과는 다르다.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하긴 한데.’

황극린은 정확히 보름 전에 만뇌문을 떠났다. 그가 없는 만뇌문에서 경계할 대상은 빙궁의 부궁주와 뇌불이었다. 솔직히 두 사람이 힘을 합친다고 하더라도 별걱정은 되지 않는다.

혈마교주는 지켜볼 뿐이다.

청성산의 기의 흐름이 무너지는 것을 말이다. 사실 그 또한 이런 미친 짓을 해 본 적은 처음이었지만, 거세지는 불길을 보고 있으니 묘한 기분이다. 가만히 그것을 지켜만 보고 싶었다.

그러나.

인간의 염원은 쉽게 이루어지는 법이 없었다.

“교주님.”

“알고 있다.”

불길이 잦아들고 있다. 기름을 뿌려 쉽게 불길을 잡지 못하게 했다. 이미 커져 버린 불을 잡을 방법은 흔치 않았다.

“부궁주로군.”

화공(火功)을 익힌 자들의 천적이 바로 빙궁도들이라 할 수 있다.

그들 또한 화공에 약하긴 하지만 불길을 잠재울 수 있다면 만뇌문에선 유일하게 그녀뿐이다.

혈마교주가 걸음을 옮긴다.

잔치를 훼방 놓는 존재는 제거하면 그만이었으니.

현란하진 않지만 묵직한 경공. 순식간에 공간을 밟아 가며 혈마교주가 이동한다. 그가 도착한 순간, 눈앞의 화마가 완전히 사라졌다. 회색빛의 연기가 사방에 흩날리고 있다.

“예상외로군.”

혈마교주가 연기를 보며 말했다.

그러자 한 사내가 연기 속에서 걸어 나왔다. 조금 전까지 활활 타올랐던 불길이 무색하게도 그의 의복은 티끌 한 점 없이 깨끗하다.

“어떤 수단으로 불길을 잠재운 거지?”

“굳이 말해 주고 싶진 않지만.”

황극린이 혈마교주의 질문에 대답했다.

“죽기 전의 마지막 궁금증일 테니 알려 주도록 하지. 내 체질이 특별한 편이라서.”

“체질이라.”

혈마교주가 미소를 머금었다.

체질이랑 불길을 잠재운 것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진 모르겠지만, 뭐가 됐든 황극린의 신병을 확보하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

“이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더 미련하군.”

혈마교주는 여유가 넘쳤다.

“진 바깥에서 나와 마주할 생각을 했다니 말이야.”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겠지.”

“틀린 말은 아니로군. 나이에 비해 과한 성취를 이룬 것은 맞으니까. 하나, 이번 네 선택은 확실히 틀렸다.”

혈마교주가 여유가 넘치는 이유는 하나였다.

이번엔 많은 준비를 했다. 황극린이 정말 겁도 없이 진 밖에서 그를 맞이할 줄은 몰랐지만, 상황이 술술 풀리고 있었다.

“나 혼자만 왔다고 생각하고 여기까지 내려온 모양이지만… 틀렸다.”

“흑살문주라도 대동했나?”

“아니, 그는 여기에 없다.”

“…….”

예상외로 혈마교주의 도발에도 황극린은 큰 반응이 없다. 부궁주를 믿고 있는 건가? 흑살문주의 곁에 누가 있는지 알고 있다면, 저런 반응을 보이진 않을 테지.

“빙궁의 부궁주를 믿고 있는 모양이로군. 하나, 이번엔 막을 수 없을 거다. 흑살문주의 옆엔 또 다른 중원 최고의 살수가 함께 있으니까.”

“그렇군.”

왜인지 황극린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마치 그쪽은 아무 걱정도 되지 않는다는 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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