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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귀귀환-294화 (294/316)

294화 예지몽

만뇌문을 공격할지, 아니면 후퇴해야 할지 혈마교주와 빙궁주의 의견이 갈렸다. 빙궁주는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극린이야 언제든 잡을 수 있다고 말했지만, 혈마교주는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황극린은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힘을 사용하고 있다.’

다음에 만날 때, 저놈은 왠지 모르게 더 강해져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회계산에서 봤을 때만 하더라도 언제든 죽일 수 있는 애송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일대일로도 쉬이 승부를 장담할 수 없다. 물론, 끝까지 가면 혈마교주 자신이 승리하리라 생각했지만… 다음에 만날 때는 또 다를 수도 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후퇴하는 건 손해가 막심하다.

확실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 혈마교주였지만, 그는 결국 후퇴를 결정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천화련주가 움직였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

앞에는 황극린, 뒤로는 천화련주.

당연히 천화련주가 가장 무섭다. 황극린처럼 진의 이점을 살리거나 동료가 있거나 한 것도 아니었다. 순수하게 한 사람의 무력으로 사대마제 중 세 명에게 승리했다. 유령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아마 사대마제는 덧없이 목숨을 잃었으리라.

“후퇴한다.”

혈마교주가 나지막하게 말한다.

그의 음색에는 분노가 깃들어 있다.

“빙궁주, 다음에 만날 땐, 제대로 된 답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만뇌문을 멸문하고자 작정하고 병력을 결집한 사흑련이었지만, 결국 포기하고 돌아가게 되었다.

‘조만간 다시 찾아오도록 하지, 황극린.’

혈마교주의 눈빛이 스산하게 변했다.

* * *

“저, 저분이 황 장로님의 어머니시라고요?”

“북해빙궁의 부궁주가…….”

“그러고 보니 장로님이 저토록 잘생기신 게 이해가 되네요.”

“와아.”

만뇌문 내에서 부궁주 한소연에 대한 여론은 나쁘지 않다. 아니, 나쁘지 않은 게 아니라 확실히 좋았다. 그 누구도 아닌 황극린의 어머니라는 사람이다. 거기다 중요한 순간에 황극린을 도와 흑살문주와 싸웠다고 하지 않았는가?

사실 만뇌문은 사위로 들어오라는 개소리를 지껄이는 북해빙궁을 싫어했지만, 그건 부궁주 한소연에겐 예외가 되었다. 다 무슨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 판단한다. 아마 빙궁주의 탓이 크리라.

한소연은 그런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만뇌문이 제공한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다. 황극린도 그녀를 바로 찾아가진 않았다. 한소연을 배려하는 것도 있었지만, 그 또한 한소연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준비가 되지 않았다.

처음 만난 순간에야 술술 말을 했지만, 막상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떠올리니 조금 막막해졌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사실 그는 어머니가 자신을 버렸다는 것에 악감정이 없었다. 그녀가 아팠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다만, 한소연은 그에 대하여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황극린은 잠시 시간을 주기로 했다. 적들이 쳐들어올 수도 있으니 운기조식을 하며 내력도 회복하며 말이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을 때.

뇌불이 황극린을 찾아왔다.

“놈들이 다 물러갔단다!”

“그렇소?”

다행이었다.

물론, 물러난 척하고 몰래 쳐들어올 수도 있겠지만… 부궁주마저 이곳에 합류한 마당에 그들이 쉽게 만뇌문에 쳐들어오진 못할 것이다.

“근데 네 엄마랑은 안 만날 거냐?”

“만날 것이오.”

“으음…….”

뇌불이 심각한 얼굴을 했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잘 대해 주거라.”

“…….”

뇌불의 진중한 얼굴.

그 또한 며칠 동안 운기조식을 하며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 무슨 깨달음이라도 얻었는지 황극린에게 어머니를 잘 대해 주라 하고 있다.

“그럴 생각이오.”

“저, 극린아.”

평소답지 않게 소심한 얼굴의 뇌불.

“아니다. 아니겠지. 혹시 놈들이 수작을 부릴지 모르니 잠시 순찰을 나갔다가 오마.”

뇌불은 하려던 말을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황극린도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제 소모한 내공은 거의 회복했다. 어머니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불편한 사이였다. 그렇다고 해도 계속 만나지 않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한소연을 만나러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구자광이 빠르게 달려왔다.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손님?”

“개방 부방주님과 남궁세가의 가주께서 막 도착하셨습니다.”

그들이 공격당하지 않고 도착했다는 말은 혈마교를 비롯한 적들이 정말 후퇴했다는 뜻이 된다. 만뇌문을 칠 예정이었다면, 그들이 만뇌문에 합류하게 놔두지 않았을 거란 말이 되었으니까.

“…….”

어머니와 마주하여 과거를 이야기하는 건, 조금 미루기로 했다.

‘어렵군.’

마음으로는 어머니와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심경이 복잡했다. 그녀를 용서했다고 말할까? 따져 보면 황극린이 그녀에게 용서할 게 있을까? 한소연은 북해를 떠나 있어서 몸이 약해졌을 것이다. 계속 황극린 곁에 있었다면 그녀는 죽었을 것이다.

사실 황극린은 피가 흐르는 가족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잘 모른다.

처음엔 용기 있게 다가갈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어려워진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들을 맞이하고 바로 찾아가야겠다.’

황극린은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리곤, 접객실로 발을 옮겼다.

* * *

한소연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만뇌문의 대접은 훌륭했다. 거기다 황극린 또한 그녀에게 적의를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그가 면전에다 욕을 퍼부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죽음을 가장하고 북해로 떠난 어머니를 보면 당연히 배신감이 들었을 테니까.

그녀 또한 황극린이 했던 말을 곱씹고 있었다.

‘내 단전이 불안정한 것을 바로 알아챘지.’

그 아이가 선경이라고 한 것을 믿지 않았다. 혈마교나 북해빙궁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회생비록. 그리고 결국 그 회생비록으로 ‘마기’를 받아들인 부작용을 완벽하게 없앨 수 있다고 혈마교주는 믿고 있다.

지금은 물러갔다고 하더라도 다시 돌아올 게 뻔하다.

그리고 문제는 또 남아 있었다.

‘천화련주는…….’

부궁주는 빙궁주가 자리를 비운 틈에 중원의 온갖 정보를 긁어모았다. 그리고 역대 빙궁주가 남긴 서적들을 읽으며 과거를 보고, 현재를 마주했으며 미래를 예측했다.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번엔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널 떠나지 않으마.’

그런 생각을 한 한소연은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이제는 어차피 죽을 몸이다. 과거엔 북해로 돌아가면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 그녀에게 갈 곳은 없다. 죽음밖에 선택지가 남지 않은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그녀의 단전에서 마기가 울렁였다. 마기라는 건 품을 수는 있어도 지배하진 못한다. 때때로 마기는 단전이 아니라 머리까지 침범하여 인간을 지배하려 든다. 그것을 이기지 못한다면 괴물이 되어 버리거나 주화입마에 빠진다.

최소한 황극린의 적을 하나라도 깨부수고 죽으려면, 그때까진 마기에 패배하진 않아야 했다. 한소연의 온몸에서 울룩불룩하게 핏줄이 잠깐 꿀렁였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그럴수록 한소연의 피부가 점점 하얗게 변해 갔다.

“우웩……!”

운기조식을 겨우 마친 한소연이 검은 피를 토했다.

‘진짜 얼마 남지 않은 건가.’

씁쓸한 얼굴로 바닥에 쏟아진 피를 보던 한소연.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

이 목소리를 어떻게 잊을 수 있으랴.

한소연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아들에게 못난 꼴을 보일 수는 없었다. 한소연은 북해빙궁의 신법을 펼치며 방을 치우기 시작했다. 피를 닦고, 조금이라도 먼지가 있으면 닦는다.

이각 정도가 지나자 한소연이 겨우 문을 열어 준다.

“죄송합니다. 제가 운기조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소연이 얼굴을 숙인다.

아들을 보는 어머니의 행동이라곤 생각되지 않을 만큼 정중하다. 황극린은 솔직히 어머니와의 추억은 없었지만, 매번 사랑이 담긴 눈동자로 자신을 안아 주었다는 건 기억한다. 물론, 금방 떠나 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황극린이 대뜸 그녀에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한소연이 당황한다.

“왜, 왜 이러시는 건가요? 얼른 일어나세요!”

한소연이 발작하듯 황극린을 일으키려 한다.

그러자 황극린이 말한다.

“어머니, 만뇌문에 입문해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네……? 그게 무슨…….”

만뇌문에 입문해 달라니?

그 말을 듣는 순간, 한소연의 가슴은 미친 듯이 뛰었다. 황극린이 만뇌문도들을 진짜 가족으로 여기고 있다는 건, 이때까지의 정보를 들어 알고 있다.

그렇기에 기대가 된다.

동시에 겁도 난다. 언젠간 다시 황극린을 홀로 내버려 두고 떠나야 한다.

‘난 결국 죽는다.’

황극린의 부탁이었지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전…….”

황극린은 무언가를 내밀었다.

보석처럼 반짝이진 않았지만, 보는 순간 숨마저 멈출 정도로 묘한 아름다움을 품은 원형의 붉은 돌이었다.

“이건 무엇인가요?”

“북해의 저주를 해주 할 수 있는 비약입니다.”

“……!”

한소연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혈마교주가 했던 말이 사실이었다는 말인가!’

황극린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머니가 불편해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실 황극린답지 않게 감정적으로 행동했다. 그 행동의 경위에는 조금 전, 남궁운혜와의 만남 덕분이었다.

그녀에게 황극린은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어쩌면 내가 과거로 돌아오게 되었던 건…….’

전생에서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매우 컸다.

황극린이 조금 전, 만남을 떠올린다.

* * *

“드디어 만나 뵙네요.”

개방의 부방주나 남궁세가의 가주를 맞이하고, 남궁운혜는 황극린과의 독대를 청했다. 무슨 생각인지 부방주나 창천뇌검은 묘한 웃음을 짓고 자리를 비켜 주었다. 물론, 남궁운혜가 황극린에게 독대를 청한 것은 연모하는 마음을 고백하거나 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저는 꿈을 꾸었답니다.”

뜬금없는 소리였지만, 잠자코 듣는다.

“아버지가 황 공자께 죽임을 당하는 꿈이었지요. 저는 그 꿈에서 황 공자님을 쫓아다녔습니다.”

“…….”

황극린의 얼굴이 깊게 가라앉는다.

순간, 남궁운혜의 얼굴을 마주한다. 그녀는 황극린에게서 적의나 살의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황극린이 전생에서 마지막으로 마주한 사람이었다. 당시 그녀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황극린에게 토해 냈었다.

설마 남궁운혜도 자신과 같이 과거로 온 것인가?

‘아니다.’

그랬다면 남궁운혜가 황극린에게 이리도 공손한 태도를 취할 리가 없었다.

“처음엔 그냥 꿈이라고 생각했답니다. 애초에 황 공자님께서 아버지를 향해 검을 겨눌 일이 없었으니까요. 제 걱정에서 발현된 꿈이라 생각했지요. 하지만… 제 꿈에는 묘한 힘이 깃들어 있었답니다.”

“묘한 힘?”

“모두 완벽하게 맞지 않지만… 그래도 몇 가지는 일치하는 게 있더군요. 예를 들면 회생비록이라는 것에 대한 것.”

“회생비록 말이오?”

“예, 꿈에 나왔던 무림맹에선 천화련주가 각 가문의 수장들을 모아 놓고 회생비록에 대한 정보를 모으게 했답니다.”

“천화련주?”

“저는… 꿈이라 명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불경하게도 황 공자님을 계속 쫓아갔었죠.”

“…….”

당시 황극린은 단전이 깨진 상태로 무림맹에게 쫓기고 있었다. 정보에 밝은 황극린이라도, 당시 무림의 정세를 알 턱이 없었다. 당시에 무림의 분위기가 흉흉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런데 천화련주가 회생비록을 모으라 했었다고?

“시간의 흐름은 정확하지 않답니다. 회생비록의 존재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저는 많이 놀라게 되었지요. 하지만 더 중요한 게 남아 있더군요.”

“더 중요한 것이라면.”

“인형혈삼.”

“…….”

남궁운혜의 입에서 그 영약의 이름이 튀어나올 줄 몰랐다.

“천혜의 영약이라 불렸다고… 어렴풋이 알고 있답니다. 하지만 꿈에서 만들어진 것이니 제가 만들어 낸 이름일 수도 있겠지요. 황 공자님이 그것을 찾고 있었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요.”

“……!”

황극린은 정보를 풀어 교특범에게 인형혈삼에 대한 정보를 찾아내라고 했었다. 당연히 찾지 못했다. 그러나 황극린이 인형혈삼을 찾았다는 정보는 누군가에게 흘러들어 갈 수 있었으리라.

예를 들어, 남궁세가에게로 말이다.

황극린이 남궁운혜를 마주한다.

그녀는 딱히 황극린을 의심하는 게 아니었다. 그냥 황극린에게 꿈에서 보았던 이야기를 하고 싶은 듯하다.

“전 예지몽을 꾼 듯합니다.”

“…….”

황극린이 판단하기로 여러 가능성이 있었지만, 남궁운혜는 자신에게 예지의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인형혈삼, 제 꿈에서 그 영약은 엄청난 희생을 낳은 물건이었답니다.”

황극린은 당시 그것을 가지고 있는 상단 호위를 뚫어 내고, 인형혈삼을 훔쳐 왔다. 사실 당시에는 황극린의 몸이 많이 안 좋아졌던 시기였다. 갑자기 든 의문. 자신은 어찌 그것을 얻을 수 있었을까? 무림맹의 척살대에게 쫓기는 신세였다. 막상 사흑련의 사대마제와 만나 보니 당시 207호라 불렸던 황극린이 얼마나 나약했는지 실감한다.

그렇기에.

“저는 꿈에서 보았답니다. 누군가 인형혈삼을 황 공자님에게 주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황극린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는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애초에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황극린이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었지.

‘내가 과거에 인형혈삼을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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